클래식FM과 친해지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5월 11일 9:00 오전

클래식FM과 친해지기

라디오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

코로나19로 ‘안방 1열’ 온라인 공연이 유행이다. 하지만 이전부터 라디오를 켜면 우리의 일상에는 음악이 흘렀다. 라디오는 음악과 삶을 연결한다. KBS 라디오 방송국 현장을 찾아 클래식FM을 일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검은 밤하늘이 회색빛 도로와 섞여드는 새벽 5시. 이제 막 마지막 손님을 내려준 택시 기사의 하루가 끝납니다. 피곤할 법도 한데 택시 안은 흥겹습니다. 운전대를 잡느라 굳은 손가락을 구성진 장단에 맞춰 까닥입니다. 이른 아침의 프로그램이지만, KBS 클래식FM 국악의 향기는 어떤 이에겐 집으로 가는 반가운 신호입니다.
그러고 보면 라디오는 참 자연스러운 매체입니다. 무엇을 강요하는 법이 없습니다. 듣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삶의 모양새에 맞게 흘러나옵니다. 나와 주파수가 맞는 음악에만 귀 기울여도 서운한 기색이라곤 없습니다. 늘 언제나 같은 자리에, 그대로 묵묵히 있어 줄 뿐입니다. 클래식FM의 출발점에 41년이란 세월이 흐르도록요. 클래식FM을 제대로 알려면 어떻게 듣는지를 살펴보는 편이 낫겠습니다만, 우선은 무엇을 들려주는지부터 보려고 합니다.
국악의 향기는 전통예술이 지닌 청아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옛글을 낭독하고 글의 정서에 어울리는 음악을 함께 감상하는 코너 ‘옛글 따라 느짓하게’로 새벽을 맞이합니다. 전통음악에 관한 지식을 알고 싶다면 코너 ‘시김새와 추임새’를 들어봐도 좋겠네요.
도도한 고음악으로 아침을 깨우는 새아침의 클래식에서는 시대악기를 활용한 당대연주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듣기에는 출발 FM과 함께가 제격입니다. 바쁜 아침 시간에 흘러나오는 코너 ‘생각의 숲’은 작은 여유를 선사합니다. 책과 음악, 영화 속 한 구절을 들으며 생각을 나눠봅니다. 토요일엔 음악 칼럼니스트 류태형이 코너 ‘클래식 인물탐구’에 출연해 지금 주목할 만한 음악가를 소개합니다.
예술의 향취는 김미숙의 가정음악에서 좀 더 진해집니다. 클래식 음악을 중심으로 미술·영화·인물·타 음악 장르까지 다루어, 문화예술 전반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일주일 내내 늘 새로운 설렘으로 찾아오는 프로그램입니다. 주말에는 첼리스트 송영훈의 진행으로 특별함을 더합니다. 그는 코너 ‘송영훈의 낭만 음악 산책’에서 음악가가 바라본 음악의 역사와 인물, 그리고 음악에 대해 들려줍니다.
클래식FM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그램은 개국과 함께 시작한 KBS 음악실입니다. 그 명성을 증명이라도 하듯, 서로 다른 특색을 갖춘 코너로 매일의 일상을 풍성하게 꾸밉니다. 월요일 코너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에서 국내외 음악 이슈를 다루고, 화요일 코너 ‘살롱 드 피아노’에서는 피아니스트가 추천하는 플레이 리스트를 들려줍니다. 음악가들이 직접 출연하는 수요일 코너 ‘음악실 초대석’은 라이브 연주를 선사하고, 목요일 코너 ‘한국의 클래식21’을 통해 다음 세대를 대표할 음악가를 만나봅니다. 음악 칼럼니스트 양경원은 금요일 코너 ‘콘서트 즐겨찾기’에서 공연실황 음원을 소개합니다. 클래식 차트를 통해 음반계의 동향을 살펴보는 토요일 코너 ‘주목! 클래식 차트’와 한 주의 국내 음악계 소식을 미리보는 일요일 코너 ‘음악실 매거진’도 마련되어있습니다. 오페라 한 편을 라디오 드라마로 구성해 성악가들의 노래와 음악 칼럼니스트 유정우의 해설로 즐기는 ‘월간 오페라’도 인기 코너입니다.
생생클래식은 클래식 음악의 장벽을 대폭 낮췄습니다. 제목은 몰라도 혀 끝에 맴도는 음악을 허밍으로 신청할 수 있는 코너 ‘흥얼흥얼 신청곡’과 클래식 음악의 친근한 안내자, 음악 칼럼니스트 김문경의 ‘오늘의 클래식’ 코너가 그렇습니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라면, 명연주 명음반을 추천합니다. 음악평론가 정만섭이 잘 알려지지 않은 마이너 레이블에서 나온 명반까지 소개합니다. 음반과 연주자에 얽힌 에피소드와 문화사적 배경도 덧붙입니다. 나아가 월요일엔 협주곡, 화요일엔 교향곡과 관현악곡, 수요일엔 독주곡과 소나타 등 요일별로 장르를 구분해 균형 있게 소개합니다.
노래의 날개 위에는 목소리의 온기를 전하는 라디오에 잘 어울리는 프로그램입니다. 가곡·민요·오페라·종교 음악 등 성악곡으로 한 시간을 가득 채웁니다. FM 풍류마을에서는 우리의 말과 음악이 만납니다. 옛말과 사투리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를 알려주는 코너 ‘우리말 여행’을 통해 국악에 한 걸음 더 다가갑니다.
영화·음악평론가 전기현은 세상의 모든 음악에서 클래식 음악을 비롯해 샹송·재즈 음악·영화 음악을 넘나드는 감각적인 선곡으로 충만한 저녁 시간을 선물합니다. 코너 ‘여행자의 노트’에서 음악으로 세계 여행을 떠나는가 하면, 영화와 클래식 음악은 코너 ‘영화가 사랑한 음악’에서 마주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콘서트를 집에서 즐길 수 있는 FM 실황음악은 오랜 시간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최상의 음질에 음악 칼럼니스트 최은규의 친절한 해설이 곁들여집니다. 20분간 진행되는 정다운 가곡은 한국 가곡만 선곡해 들려주는, 짧지만 소중한 프로그램입니다.
하루를 닫는 당신의 밤과 음악은 KBS 아나운서 이상협이 진행합니다. 그는 시집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을 낸 시인이기도 하죠. 낭독 코너 ‘시인의 의자’로 한 편의 시처럼 여운 가득한 밤을 써내려갑니다. 황덕호 음악평론가와 재즈 수첩은 1999년부터 매 주말 밤을 지켜왔습니다. 재즈 음악 애호가의 선곡은 나른한 재즈 선율로 빠져들게 합니다.
글 박서정 기자
KBS 클래식FM과의 하루
05:00~06:00(월~일)
국악의 향기
변우영(진행자) 이경우(연출) 오선화(작가)
06:00~07:00(월~일)
새아침의 클래식
엄지인(진행자) 양인용(작가)
07:00~09:00(월~일)
출발 FM과 함께
이재후(진행자) 정혜진(연출) 박나경·김지현(작가)
09:00~11:00(월~금)
김미숙의 가정음악
김미숙(진행자) 김혜선(연출) 김경미(작가)
09:00~11:00(토~일)
송영훈의 가정음악
송영훈(진행자) 김경정(연출) 정주은(작가)
11:00~12:00(월~일)
KBS 음악실
신윤주(진행자) 이동우(연출) 하지숙(작가)
12:00~14:00(월~일)
생생클래식
윤수영(진행자) 김영동(연출) 최진영(작가)
14:00~16:00(월~일)
명연주 명음반
정만섭(진행자) 김여름(연출)
16:00~17:00(월~일)
노래의 날개 위에
정세진(진행자) 김경정(연출) 윤석미(작가)
17:00~18:00(월~일)
FM 풍류마을
백승주(진행자) 이진희(연출) 황보나영(작가)
18:00~20:00(월~일)
세상의 모든 음악
전기현(진행자) 안종호(연출) 김미라(작가)
20:00~21:40(월~금)
FM 실황음악
최은규(진행자) 김홍철(연출)
21:40~22:00(월~금)
정다운 가곡
이규봉(진행자)
22:00~00:00(월~일)
당신의 밤과 음악
이상협(진행자) 이상호(연출) 장유림(작가)
00:00~01:00(월·일)
재즈 수첩
황덕호(진행자) 김홍철(연출)

아침
AM 9:00

김미숙의 가정음악
김미숙 DJ·김혜선 PD
오전의 인생음악

오전 9시였지만, 밀폐된 라디오 스튜디오에선 아침 공기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지금이 오전임을 알려주는 것은 ‘AM 09:00’이라 적힌 시계, 그리고 김미숙의 목소리 뿐입니다. 어제의 아침과 마찬가지로 오늘의 아침도 두로비코 에아나우디의 피아노곡(stella del Mattino)으로 ‘김미숙의 가정음악’은 문을 엽니다. 시집에 담겨도 손색없는 시어가 김미숙의 목소리를 타고 흐릅니다.
2019년부터 ‘김미숙의 가정음악’을 함께 해온 김혜선 프로듀서는 창 너머의 진행자에게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며 다음 호흡을 준비합니다. 선곡표와 큐시트는 이들이 가는 길을 알려주는 지도와도 같습니다. 실시간으로 뜨는 사연을 모으는 것도 그녀의 일입니다. 금요일마다 ‘그곳에 클래식이’ 코너에 출연하는 유정우 음악 칼럼니스트가 대기 중입니다. 은은한 향의 커피 향내도 어디선가 납니다.
김혜선 피디는 1985년 입사했습니다. 지금은 1FM의 큰 언니 격입니다. 신입 피디 시절 LP를 틀고, CD를 틀었지만, 지금은 전산화된 음원을 컴퓨터에서 꺼내 틉니다. 복사기가 흔치 않던 시절에는 먹지를 깔고 진행자와 엔지니어, 자신이 볼 세 부의 큐시트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늘 그렇듯이 오프닝 멘트가 참 인상적입니다.
김혜선 “김경미 작가는 등단한 시인이기도 한데요. 그가 ‘가정음악’만을 위해 매일 쓰는 시에요. 아무래도 이러한 시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첫 곡이 피디로서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입니다. 어느덧 시가 된 대사가 문을 여니, 그 여운을 되새겨보고 음미하고 생각할 시간을 음악으로 줘야 하는 거죠. 아침이니까 보통은 빠르고 경쾌하게 흐르는 곡들을 많이 틉니다.”
이렇게 오프닝이 지나면 한 숨 돌리나요?
김혜선 “첫 기둥을 세운 것뿐이에요. 그리고 몇 개의 기둥을 더 박아 넣고 그 사이의 풍경을 음악과 사연으로 채우죠. 생방송이다 보니 매번 머릿속이 복잡해져요. 같은 음악이어도 현악기, 관악기, 피아노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고.”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것은?
김혜선 “나의 선곡 감각, 날씨와 시간대가 주는 감각. 그리고 청취자들의 사연.”
음악이 나오는 동안, 유리창 너머의 진행자가 가끔 미소를 보내옵니다. “두 사람 인터뷰 시작한 건 아니죠?”라고 묻는 목소리가 마치 방송 멘트 같습니다. 조금 지켜보고 있자니 그들 사이에서 어떤 호흡도 느껴집니다. 신호를 기다리는 진행자의 눈빛, 그를 위해 신호를 보내는 피디.
호흡이 척척 맞는 모습이 근사하네요. 남녀 관계였으면 더 멋있었겠어요.
김혜선 “그럼 둘이 결혼해야 했죠.(웃음)”
코로나로 인해 요즘 같은 때에는 선곡에도 남다른 신경을 쓸 것 같습니다.
김혜선 “일상에는 늘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잖아요. 심리적으로 불편해도, 티 내지 않고 평소보다 더 많은 위로의 기획을 하며 가고 있어요.”
2009년의 개인적인 기억을 살짝 떠올려봅니다.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접했지만 한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일간지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아오던 ‘호외’ 신문을 거리에 뿌린 날이었습니다. 종일 KBS 클래식FM에선 수많은 장송곡과 레퀴엠을 흘러나왔습니다. 김혜선 피디도 중학 시절에 영부인이 고인이 되었을 때에 라디오에서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중 ‘오제의 죽음’이 종일 흘러나온 것을 떠올립니다. 이처럼 라디오는 세상의 희로애락을 음악으로 물들이며, 눈물을 더하거나, 웃음을 보탭니다.
‘가정음악’은 아침 방송인데요, 무겁고 어둔 음악은 틀면 안 되는 것이죠?
김혜선 “날씨가 너무 화창한데 비탈리의 ‘샤콘’를 신청하시는 분도 있어요. 그럴 때는 일단 저장하고 슬픈 이슈나 날씨가 살짝 가라앉을 때 쓱 꺼내 놓죠. 선곡에 있어서 아침 방송은 장조의 음악이 맞다고 생각해요. 단조의 음악은 좀 조심스럽죠. 9~10시에 방송되는 1부는 10~11시에 비해 좀 더 템포감 있는 곡으로 하고요.”
‘월요병’이 도지는 아침과 한주의 결승점 앞에 있는 금요일 아침, 두 아침을 맞이하는 이들의 기분은 다를 텐데요.
김혜선 “그렇죠. 피아졸라 음악은 웬만해선 월요일에 잘 안 내보내요. 월요일에는 첫 단추를 끼우니 비교적 단정한 음악을 틀죠.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으로 힘을 주기도 하고.”
KBS 콩 게시판에 사연이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모아진 사연은 화면 상 진행자가 읽을 사연과 피디가 준비할 신청곡 사연으로 나뉩니다. 자신의 사연을 읽어주기를 바라며 애타는 마음의 문장도 보입니다. 두 시간 동안 올라오는 사연은 400여 개.
사연과 함께 무엇을 하는 누구라고 밝히는데, 그럼 청취자 유형도 감이 잡히겠네요. 직접 보니 남편과 아이를 생각하는 주부들의 사연이 많네요.
김혜선 “그렇다고 청취자들을 주부로만 국한하진 않아요. 물론 수업에 집중해야 하는 학생들이 듣긴 힘든 시간대인데, 그들은 방학이 되면 과제를 위해 방송을 듣기도 하며 잠재적 청취자가 되곤 하거든요.”
보아하니 세상과 가장 밀폐된 이곳 스튜디오로 사람들의 목소리가 다 모이는 듯 합니다.
김혜선 “갑자기 쓰러진 남편이 회복된 뒤, 건강을 위해 매일 공원을 산책하는 부부가 있어요. 그들의 산책이 시작하고 끝날 때 ‘가정음악’도 문 열고 문 닫는다고 하더라고요. 이러한 사연들은 저와 진행자에게 지금 이 시간에 일어나고 있는 세상의 일들을 알려줍니다. 사연을 접하면서 이 시간에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죠. 가족들 출근, 등교시키고 커피나 마시는 한가한 시간. 이게 전부가 아닐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청취자들이 엽서를 보내기도 했었는데요.
김혜선 “방송 프로그램마다 사서함이 있었죠. 그곳에 사연을 담은 엽서가 쌓이고, 청취자는 자기 사연이 나오는 방송을 기다리고. 채택됐을지 궁금해하면서 말이죠. 보통 열흘 전에 보내왔는데요, 생일축하 메시지를 담은 엽서가 생일이 지나 도착하면 내 일처럼 아쉬울 때가 있곤 했어요. 글씨체로 그 사람의 느낌과 심정을 짐작하고 음악을 고를 때도 있었고요.”
마지막 곡이 흐르고 김미숙이 녹음 부스에서 나옵니다. ‘가정음악’에는 ‘그곳에 클래식이’ 외 위대한 인물들을 살펴보는 ‘마음을 읽다’, 일상을 돌아보는 에세이와 함께 하는 ‘가볍지 않게, 무겁지 않게’ 코너가 있습니다. 김미숙의 안경 쓴 모습이 드라마에선 쉽게 볼 수 없어서인지 낯설면서도 편하게 다가옵니다.
개인적으로 김미숙의 목소리는 ‘가정음악’보다 2002년에 시작한 ‘세상의 모든 음악’의 진행자로 더 익숙합니다. 2007년 하차한 그녀는 11년 만에 KBS 1FM으로 귀향했습니다. 1989~1990년에는 매일 정오부터 1시까지 ‘한낮의 음악실’을 진행하였으니 클래식과 함께 하는 아침(가정음악)-점심(한낮의 음악실)-저녁(세상의 모든 음악)을 모두 거친 셈입니다.
‘가정음악’을 맡은 지 거의 2년이 되어갑니다. 첫 방송 때 기분이 어땠나요?
김미숙 “첫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긴장감이 있었고요. 변화된 라디오 방송 환경과 함께 많은 것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라디오 방송에선 순발력이 대단히 중요한데 마음 같지 않을 때는 당황하기도 했고요.”
변화한 여러 것들 중 아쉬운 게 있었다면?
김미숙 “손 글씨가 담긴 편지를 볼 수 없는 것.”
클래식 음악과의 남다른 인연이 있으시겠죠?
김미숙 “중학 시절 음악선생 덕분이었어요. 제가 다닌 중앙여중·고에는 교내 오케스트라가 있었어요. 중학 시절에 중앙여고가 이화여고 강당을 빌려 쌍십절(10월 10일)에 공연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요, 안 가도 되는 공연이었는데 음악이 좋아서 갔죠. 나중에 보니 그 곳을 간 중학생은 저 밖에 없었더라고요. 배우 생활을 하면서도 시간을 들여 공연장을 많이 다녔어요.”
아침부터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생겼지만 청취자들에겐 절대 티를 내선 안 될 때도 있을 텐데요.
김미숙 “그렇지만 저는 솔직하게 고백해요. 우울할 땐 우울하다고, 기쁠 땐 기쁘다고 말에요. 청취자들에게 고백하면 한결 기분이 자유로워지거든요. 하루는 이런 날도 있었어요. 딸한테 좀 특별한 아침밥을 차려주고 싶어 새벽부터 준비했는데, 안 먹겠다는 거예요. 감정이 상해 순간 목소리가 올라갔죠. 그날 자녀 때문에 속상해하고 미안함을 전하는 청취자들에게 저의 아침을 고백하며 서로 위안을 주었어요.”
사연과 사연 사이에 음악이 흐르고, 음악과 음악 사이에는 삶의 사연이 피어납니다. 아침에 눈뜨고 학교와 직장으로 가기 전인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는지는 ‘가정음악’의 사연을 들어보면 알게 됩니다.
가장 깊었던 사연은 무엇인가요?
김미숙 “고교 2학년 학생이 보내온 거예요. 캐나다로 유학 간 친구가 잠깐 한국에 들렀는데 친구의 유학 이야기를 들으니 본인도 그곳에 너무 가고 싶다는 거예요. 하지만 형편이 안 된다고 했어요. 저는 ‘자신의 형편에 맞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해주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 소녀는 어떤 청년이 되어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떠오르더라고요. 저를 ‘언니’라고 부르며 사연을 보내는 이도 있어요. 그녀는 ‘가정음악’ 듣고 있으면 자기의 일상을 돌아보게 된다 하더라고요. 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저런 톤으로 진지한 대화를 해본 적이 있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저런 이야기를 누구와 나눠본 적이 있나’ 하면서 그 사연을 울먹이며 쓰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간혹 부러울 때가 있더라고요. ‘저 청취자는 사연에 걸맞는 곡을 저렇게 선물 받는구나’ 하면서요.
김미숙 “완쾌한 사람에게 박수쳐주고, 부부싸움한 사람에게 공감하고 호응해주고. 물론 음악과 함께 말이죠. 앞으로도 ‘가정음악’에는 제가 갖고 있는 친근하고 편안한 이미지가 잘 배어 있으면 좋겠어요.”
끝으로 ‘가정음악’을 마구 홍보하시기를. 기회는 이때뿐입니다!
김미숙 “방송에서도 말하곤 해요. 청취자들이 음악과 함께 각자의 일상에 충실하기 위해 ‘가정음악’은 배경으로 두시라고요. 한마디로 무심한 배경 같은 프로그램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웃음)”
그냥 방치하라는 게 홍보인가요?(웃음)
김미숙 “또 있어요. 30대부터 70대까지 청취자의 폭이 넓고, 그들의 사연이 누군가에겐 지혜가 될 때도 있어요. 그래서 클래식 음악의 초보뿐만 아니라 인생 초보도 많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음악과 사연이 여러분들을 성숙하게 할 겁니다.”
글 송현민(편집장)

점심
AM 11:00

KBS 음악실
신윤주 DJ·이동우 PD·하지숙 작가
정오의 음악회

수요일의 오전. 생방송 시작 30분 전입니다. KBS 라디오 스튜디오 로비는 분주합니다. ‘KBS 음악실’의 백미인 ‘음악실 초대석’이 열리기 때문이죠. 초대 손님은 더블베이시스트 성미경과 그의 어머니인 피아니스트 최인자. 제작진과 출연진은 회의를 마치고 녹음 스튜디오로 들어갑니다.
스튜디오에는 ‘김미숙의 가정음악’이 한창 진행 중이네요. ‘가정음악’이 흐르는 동안, 성미경은 악기를 꺼내 연습합니다. “귀국 후 첫 공연”이라며 분주히 준비하는 그의 손놀림에는, 낯선 곳에서 연주를 앞둔 이의 설렘이 묻어 있습니다. 시곗바늘이 11시를 알립니다. 신윤주 아나운서가 나긋한 목소리로 오프닝 멘트를 선사합니다.
“안녕하세요. ‘KBS 음악실’ 신윤주입니다. 평소엔 잘 못 느끼는 낮은 소리 효과, 오늘 제대로 느껴보면 어떨까 싶어서 준비한 ‘음악실 초대석’, 지금 시작합니다.”
자, ‘음악실’의 문이 열렸습니다! 성미경은 첫 곡으로 피아졸라의 ‘키초’를 연주합니다. 창밖에서 연주를 감상하던 이동우 프로듀서. 씩 웃으며 성미경에게 엄지를 추켜세웁니다. “와. 선곡 정말 좋네요!”
30분이 흘렀네요. 그제야 슬슬 스튜디오 내부에 편안한 기운이 감돕니다. 실시간 댓글을 체크하는 이동우 피디 옆으로 슬쩍 자리를 옮겨 질문을 건넸습니다.
‘초대석’에 초청되는 연주자들의 공통점이 있나요?
이동우 “최근에 활동한 연주자 중심으로 출연합니다. 저는 청취자를 대상으로 서비스하는 사람이어서 ‘재미’를 기준으로 삼아요. 특색 있는 기획력을 갖춘 연주자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KBS 음악실’을 맡은 지 2년 정도 됐죠. 가장 인상 깊었던 ‘초대석’ 손님은 누군가요?
이동우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출연했을 때 반응이 뜨거웠어요. ‘음악실’은 신예들이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현재 유튜브 같은 플랫폼이 생긴 지 얼마 안 됐잖아요. 예전에 라디오는 연주자를 알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창구였죠.”
이전에 담당했던 ‘장일범의 가정음악’과 현재 ‘KBS 음악실’의 청취 대상이 다른지요?
이동우 “라디오는 보통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청취자가 분류돼요. 출근 시간에는 집에 있는 분들, 퇴근 시간에는 직장인들이 많이 듣죠. 피디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청취 대상을 많이 고려하진 않아요. 결국 1FM 청취자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KBS 음악실’은 1979년, 1FM이 개국하면서 시작된 프로그램입니다. 당시 음악평론가 서우석(서울대 교수)이 초대 진행자였고, 오전 9시부터 1시간 방송, 저녁 8시에 재방송됐습니다. 초창기에는 명곡 감상에 중점을 뒀다면, 1997년부터는 ‘클래식 음악의 한국화’를 표방하며 한국 작곡가와 연주자의 음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으로 거듭났습니다.
2018년 봄에는 이동우 피디가 새롭게 오며, 오전 11시로 자리를 옮겼어요. 이후 생동감 있는 프로그램으로 분위기를 확 바꿨습니다. 화요일 코너로 생방송 라디오 렉처 콘서트 ‘살롱 드 피아노’를 신설하기도 했죠.
‘살롱 드 피아노’를 기획하신 이유가 궁금한데요.
이동우 “‘장일범의 가정음악’의 ‘위드 피아노’를 발전시킨 거예요. 차이가 있다면, 1년 내내 동일한 피아니스트가 아닌, 한 달에 한 번씩 연주자 변화를 줍니다. 더 다양한 즐거움을 위해서죠. 현재 진정성 있는 청취자 반응이 들어오고 있어요.”
이동우 피디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하지숙 작가가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옵니다. 이동우 피디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집니다. “하지숙 작가님이 ‘KBS 음악실’과 20년을 함께했어요. 저보다 더 전문가!” 하지숙 작가에게 바로 바통을 건네주네요. 스튜디오에는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KBS 음악실’과 함께한 20주년 축하드립니다. 라디오국에서는 이례적인 일이겠네요.
하지숙 “그렇다고 하더라고요.(웃음) 한 작가가 한 프로그램을 20년간 맡는 건 드문 일이죠. 보통 작가가 바뀌는데, ‘음악실’은 독특하게도 피디와 진행자가 변화되어 왔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마치 터줏대감 같아졌네요.”
20년 전에는 글을 쓰는 ‘과정’이 지금과 많이 달랐을 텐데요.
하지숙 “2000년 8월부터 ‘음악실’에서 글을 썼어요. 그때는 인터넷 사용이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죠. 원고를 팩스로 보냈습니다. 퀵서비스도 엄청 이용했고요. 아마 퀵서비스가 없었다면 지금의 ‘음악실’은 없었을 거예요.(웃음) 연주 정보를 알기 위해 직접 예술의전당에 가서 공연 홍보 전단지를 모으기도 했어요. 당시 일주일에 네 번은 공연장에 갔던 것 같습니다. 월간객석도 그때 많이 봤어요! 잡지 전성기였죠.”
예원학교, 서울예고, 서울대, 서울대 대학원에서 순차적으로 공부를 했는데요. ‘음악실’ 작가라고 하면 동문들에게 출연 요청을 많이 받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숙 “공과 사를 구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인터뷰 코너는 제가 직접 섭외를 담당해요. 어떤 음악가를 섭외해야 할지 늘 고민이 많았죠. 그때부터 ‘연주를 잘 한다는 게 뭐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명문대 교수여도 부풀린 정보가 많으니까요. 좋은 연주자들을 소개하고 싶으니 직접 공연장에서 실력을 체크했고요. 그렇게 쌓은 데이터가 ‘음악실’의 역사가 됐죠.”
신진 연주자들이 ‘음악실’을 통해 이름을 많이 알렸는데요. 다 작가님의 공이었네요!
하지숙 “언제부턴가 ‘요즘 누가 연주 잘해?’라고 물으면 ‘‘KBS 음악실’에 출연한 누가 잘 하더라‘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손열음·김선욱·최나경 등의 연주자들이 콩쿠르에서 이름을 알리기 전부터 우리 프로그램에 출연했고요. 사실 음악 현장이 방송과는 거리가 좀 멀어요. 그렇기 때문에 ‘음악실’이 현장과 방송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예전에 비해 현대음악을 소개하는 비중은 적어진 것 같은데요.
하지숙 “저도 아쉬워요. 그런데 현대음악을 소개하면 청취자 반응이 안 좋더라고요.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전까지는 청취자 반응을 잘 몰랐는데, 어느 순간부터 대중의 평에 민감해졌네요. 아쉬운 마음에 프로그램 시간대를 애호가들이 많이 듣는 밤으로 옮기자고 의견을 내기도 했고요. 한국의 창작음악, 현대음악을 소개하는 게 ‘음악실’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실 초대석’은 생생한 공연 실황, 음악가의 집중 인터뷰를 다룹니다. 그동안 해외 콩쿠르에 입상한 신인부터 원로까지 다채로운 음악가를 소개해왔습니다. 역대 ‘초대석’ 출연자 리스트가 곧 한국 클래식 음악의 발자취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 발자취를 새기고 있는 하지숙 작가의 어깨가 무거워 보입니다.
‘초대석’은 보통 연주자 위주로 섭외하나요?
하지숙 “요즘 라이브 연주에 집중하다 보니, 지휘자와 작곡가 초대가 적어졌네요. 이전까지는 한국 음악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다 담는 게 모토였다면, 현재는 ‘Here and Now’가 우리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된 것 같습니다.”
섭외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하지숙 “2000년대만 해도 연주자들이 생방송 인터뷰를 어려워했어요. 방송 전에는 꼭 사전 인터뷰를 진행했죠. 출연자들의 에피소드를 모르면 무의미한 얘기가 겉돌잖아요. ‘초대석’ 인터뷰는 ‘그 사람의 책’이라는 마음으로 준비해왔습니다.”
20년…. 정말 기네요. 기나긴 시간을 ‘음악실’과 함께한 소감이 궁금해요.
하지숙 “그동안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앞서 제 스스로 ‘재미’를 놓친 것 같아요. 클래식 음악의 재미, 방송의 재미, 현장에서 음악을 듣는 재미 같은 게 있잖아요. 앞으로는 좀 더 재밌게 하려고요!”

 

 

유쾌한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방송이 끝났습니다. 클로징 멘트를 한 신윤주 진행자가 밝은 표정으로 스튜디오를 나섭니다. 그는 2013년 4월부터 ‘KBS 음악실’에 합류했어요. 현재 ‘음악실’ 최장기 진행자로 활약 중이죠. 하지숙 작가는 더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거라며, 그에게 바통을 전합니다.
2013년부터 ‘음악실’을 진행하고 계시죠. 처음 진행 제안을 받았을 때가 기억나요?
신윤주 “한 선배가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니 꼭 해보라고 했죠. 제가 이전까진 한국 음악가를 잘 몰랐습니다. ‘음악실’에서 매주 한 분씩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 부끄러웠어요. 그동안 문화 사대주의처럼 유독 우리 음악가들에게 관심이 없었단 걸 깨달았습니다. 이후 무한 애정이 생겨서 우리 연주자들을 잘 소개하겠다는 사명감이 생겼어요.”
‘음악실’의 매력은 역시 인터뷰죠!
신윤주 “연주자들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많은 강도의 노력으로 자신을 음악에 바치잖아요. 제가 느끼기에 다른 직종에 비해 클래식 음악 장르가 가진 시장성이 부족한 것 같아요. 음악가들은 뭔가를 얻겠다는 것보단, 음악을 그저 숙명으로 받아들이더라고요. 21세기에는 흔치 않은 순수한 영혼인 것 같아서, 인터뷰를 하다 보면 그들에게 삶의 지혜를 많이 배웁니다.”
지금껏 담당 피디에 따라서 ‘음악실’의 스타일이 바뀌었나요?
신윤주 “제가 있는 동안 피디가 여러 번 교체됐어요. 지금 맡고 계신 이동우 피디는 일을 벌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요. 클래식 음악이 가진 무게감에 대해 자유로운 사고를 가졌고요. 조그만 스튜디오에서 20명이 합창한 적도 있고, 큰 스튜디오를 빌려서 관객을 초대하기도 했어요. 여러 시도를 하는 게 신선했어요. 그 노력을 청취자 분도 눈치 챘는지 크게 호응해 주십니다.”
진행자로서 앞으로 ‘음악실’의 방향성이 어떻게 나아가길 원하나요?
신윤주 “집에서 라디오를 들을 때, 음악 방송에서 말이 많으면 피곤하더라고요. 청취자 중에서도 ‘말을 좀 줄였으면 좋겠다’라는 의견이 가끔 올라옵니다.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어요. 음악에 더욱 집중하는 방송이 되면 좋겠어요. 라디오는 콘텐츠의 질에 비해 파급력이 크지 않아서 늘 아쉬워요. 최근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온라인 공연에 대한 관심이 늘었잖아요. 오늘도 성미경 연주자가 출연했는데, 청취자들이 보이는 라디오였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사정상 매주 보이는 라디오를 할 수 없으니 안타깝습니다. 주변에서 ‘신윤주는 무슨 복을 타고 나서 매번 눈앞에서 실연을 감상하냐’고 합니다.(웃음) 앞으로 ‘살롱 드 피아노’ 코너도 보이는 라디오로 진행하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글 장혜선 기자 사진 박진호(studio BoB)

‘음악실 초대석’ 출연자 더블베이시스트 성미경

오늘 연주한 곡을 직접 선곡했다고요.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더블베이스의 매력을 어떻게 하면 잘 소개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더블베이스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음역대가 들어있는 곡을 연주하고 싶었죠. 피아졸라 ‘키초’는 이번 방송을 계기로 처음 연습한 곡입니다. 딱 이틀 연습하고 선보인 거예요.(웃음) 피아노의 역할이 중요한 곡인 만큼 어머니와 함께하고 싶었어요. 어머니께서 밤새 연습했다고 하셔서 죄송했지만 행복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할 때면 좀 더 편안한 기분인가요? 오랜만에 어머니와 호흡을 맞췄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모든 무대를 어머니와 함께 했는데요. 연습하는 과정에서 음악적인 부분이 맞지 않아 가끔 충돌이 있었어요. 어머니와 연습하면 유독 더 예민해지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서로 더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준비해 마음이 편안했어요.
연주자에게 ‘공연장’과 ‘라디오 실황’ 연주는 마음가짐이 좀 다른가요? 둘 다 똑같이 긴장되는 것 같아요. 다만 이번 방송은 보이는 라디오가 아니어서 조금 더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었네요.
다음에는 가족이 함께 참여해달라는 청취자 요청이 있더군요. 10년 전쯤 아버지(더블베이시스트 성영석), 어머니(피아니스트 최인자), 오빠(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와 함께 연주한 적이 있어요. 매일 함께 모여 연습했던 과정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 가족이 함께 라디오에 출연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다면 뜻 깊은 자리가 될 것 같아요.
연주자의 성장에 있어서 라디오라는 매체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나요? 그럼요. 특히 요즘은 코로나 19로 인해 대중이 공연장을 찾기 어렵잖아요. 라디오에서는 클래식 음악을 보다 명쾌하게 설명해 주니 많은 사람들이 더 쉽게 음악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저도 운전할 때는 항상 클래식 FM을 듣지요!
다른 현악기에 비해 더블베이스 레퍼토리는 일반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 라디오 방송이 더욱 의미가 있었죠. 오늘 선보인 곡 외에도 대중에게 소개하고픈 레퍼토리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동안 저는 다른 현악기나 관악기의 곡을 편곡하여 연주해왔어요. 그래서 이번 방송에서는 더블베이스를 위한 곡을 소개하려고 고민한 거죠. 더블베이스 곡 중 제가 제일 좋아하는 아돌프 미섹의 소나타 3번은 기회가 된다면 꼭 청중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성미경 더블베이스 리사이틀
5월 30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저녁
PM 6:00

세상의 모든 음악
전기현 DJ·안종호 PD·김미라 작가
저녁, 당신에게

매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방송되는 ‘세상의 모든 음악’은 길 위에 있는 자나 홀로 남은 이를 위한 방송입니다. 직장을 나와 집으로 향할 때, 혹은 홀로 남아 야근 할 적에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전기현 진행자의 멘트가 나오면 차창 너머나 모니터 너머의 바깥 풍경을 멍하니 내다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음악이 흘러나오면 그 음악이 잠시 곁에 머물러있기를 바라며, 촘촘했던 일과의 죔쇠를 살짝 늦춰보게 됩니다.
6시, 이제 곧 시작될 ‘세상의 모든 음악’ 스튜디오의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거대하고 차가운 기계가 놓인 밀폐된 스튜디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가 들려오자, 창 밖 노을이 내려 앉는 은은한 소리, 그 ‘세상의 모든 소리’가 이곳으로 들려오는 듯합니다. 프로그램 연출을 맡은 안종호 프로듀서, 김미라 작가 그리고 스튜디오 유리창 너머로 전기현 진행자가 보입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의 시작 지점입니다.
안종호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진행자의 인사를 듣자마다 편안한 음악 속으로 청취자들을 들어오도록 해야 하죠. 6시 시작부터 10여분 동안에 이뤄지는 일들입니다.”
선곡의 영감은?
안종호 “매일 도착하는 김미라 작가의 원고에서 시작됩니다. 오프닝 멘트와 코너의 원고를 읽고 그날의 선곡 콘셉트를 잡아 나갑니다. 원고에 따라 매일 매일의 선곡 방향을 잡아간다고 할까요? 그 외에도 그날의 날씨가 큰 작용을 합니다. 해 저무는 시간대의 방송이라 계절마다 해지는 시간을 미리 체크해 두었다가 석양과 어울리는 음악들을 고르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해가 길어지는 봄과 여름보다는 가을과 겨울이 선곡하기에 수월한 편이죠.”
그렇게 ‘세상의 모든 음악’은 전기현의 목소리로 인해 ‘노을의 음악’이 되어 하루가 끝나는 지점에 내려 앉습니다. 안 피디가 보고 있는 선곡표와 큐시트에 20곡 정도의 음악들이 보입니다. 어린이합창단이 부르는 ‘사랑으로 하나된 세상’을 시작으로, 영화 ‘5 to 7’ OST, 첼로로 연주하는 ‘아베 마리아’, 헨델의 ‘울게 하소서’, 동요 ‘오빠 생각’ 등입니다. 오페라밴드 아미치 포에버의 ‘So Far Away’가 선곡표 끝에 놓여 있습니다. 진행자는 “어느 나라의 뮤지션 누구가 부른 노래입니다”라면서 음악이 태어난 곳을 알려줍니다. 그로 인해 세상에 많은 나라가 있음을, 또 세상의 모든 음악이 두 시간 동안 이곳으로 모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0분이 지났네요. 이제 어떻게 가나요?
안종호 “마음의 예열이 끝난 셈이죠. 이제는 ‘모든 음악’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클래식·크로스오버·영화음악 등을 들려줍니다. 위로를 주는 글들이 나오고요. 이렇게 중간인 7시를 향해 갑니다.”
감성 방송인데, 선곡과 구성에는 이지적인 전략이 숨어 있네요.
김미라 “주위에 음악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에게 받는 의견이 소중합니다. 음악에 대한 문턱을 좀 낮춰보자는 취지로 시작했으니까요. 대부분 선곡의 조화로움이 좋다는 의견이 많아요.”김미라 작가. 그녀는 오랜 세월 라디오 작가로 살아왔습니다. 1981년 가을, KBS 2라디오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시작으로 그녀의 언어는 꾸준히 방송을 통해 세상에 나옵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의 코너 ‘여행자의 노트’ ‘저녁이 꾸는 꿈’ ‘시가 된 노래’ 모두 그녀의 펜에서 태어납니다. 안종호 프로듀서는 “‘세상의 모든 음악’ 산파이자 산증인”이라 합니다.
이렇게 방송 과정을 보고 있자니, 스튜디오가 아늑한 카페가 되는 듯 느껴집니다. 영업 비밀(?)이 있다면?
김미라 “저녁이 찾아오는 시간에 맞는 정서, 계절에 맞는 정서, 어느 시기에 겪는 감성의 정서가 레시피가 되어 선곡과 진행이 잘 조화를 이룬다는 것.(웃음)”
2002년 ‘세상의 모든 음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김미라 “클래식FM은 클래식 음악 전문 방송이에요. 음악도 방송도 진입장벽이 비교적 높습니다. 그래서 그 문턱을 조금 낮춰보자는 취지로 시작되었죠. 더불어 클래식FM 청취자들이 클래식을 중심으로 들을 수 있는 음악의 폭도 넓혀보고요. 시작할 때 김혜선 프로듀서(현 ‘김미숙의 가정음악’ 프로듀서)가 선두지휘했고, 김미숙 씨가 함께 했어요. 취지부터 선곡까지 클래식FM에서는 선례가 없던 방송이었어요. 방송국 내에선 우리 세 사람을 ‘김트리오’라고 했죠.”
처음부터 지금까지 고수하는 방향이 있겠죠?
김미라 “문턱을 낮춰 많은 음악을 들려주고 알게 하자는 게 지성적인 방향이라면, 감성적인 방향은 ‘위로’. 두 방향의 중간에서 낭만과 정서를 건드려 보자는 것이었죠.”
청취자들의 반응이 중요했을텐데요. 그러한 시도의 성공을 어떻게 체감했나요?
김미라 “차 안에서 들으며 집으로 향하는 이들의 핸들을 돌리게 하는 것…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집에 다왔는데 뭔가가 벅차올라 방송이 끝날 때까지 차에서 내릴 수 없었다고요.”
안종호 “그래서 오프닝 곡만큼 엔딩 곡도 중요해요. ‘세상의 모든 음악’을 다 듣고나면 ‘오늘 라디오는 이 정도면 됐어’ 하면서 그 다음부터는 다른 프로그램을 들을 수 없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여운을 마무리 곡으로 주려고 하죠.(웃음)”
“오늘도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이제는 이 프로그램의 시그니쳐가 되어버린 그 인사가 작가님의 솜씨였다고요.
김미라 “하루를 마치는 사람들에게 (앞서 말한 대로) 주고 싶은 ‘위로’를 대변하는 말이죠. 전 진행자 김미숙 씨가 40대 초중반에 이 방송을 맡았는데, 그녀의 연륜과 느낌에 잘 어울리겠다 싶어서 매일 넣었어요.”
청취자들의 특별한 사연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김미라 “어떤 분이 아홉 시간의 대수술이 끝났을 때, 병석에 누워 처음 들은 말이 방송에서 나온 이 말이었다고 합니다. 이 한 마디가 이렇게 삶의 구석구석으로 녹아들진 몰랐죠.”
음악과 함께 세계 곳곳으로 안내하는 ‘여행자의 노트’ 코너를 들을 때면 그곳으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편으로는 직접 가보면 방송을 통해 느낀 감성과 낭만을 실제로 느낄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여행자의 노트’는 여행자의 감수성을 라디오만으로도 충분히 주는 것 같아요.
안종호 “그곳에 못 가본 이에겐 ‘여행하는 느낌’을 주고, 다녀온 이에겐 ‘추억의 시간’을 주자는 취지입니다. 그 나라의 언어로 된 고유명사들로 그 도시의 풍경을 그리기보다 이방인이 낯선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을 음악과 멘트로 청취자들이 느끼길 원하죠.”
김미라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을 읽고 이스탄불에 대해 쓴 적이 있었어요. 안 피디의 선곡력이 빛을 발했는데, 원고가 미처 표현해내지 못한 느낌을 그 음악이 주었습니다.”
안종호 “작가님의 글이 저의 선곡을 그곳으로 이끌었던 것이죠. 더 정확하게는 작가의 글, 진행자의 목소리가 합쳐졌을 때 떠오르는 음악들이었어요.”
김미라 “전기현 씨는 음악을 소개할 적에 덤덤하게 소개하는 스타일이에요.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 표현하고 싶은 정서를 다 담아내곤 하죠.”
안종호 “‘세상의 모든 음악’에는 다양한 음악이 모여 있기에 자칫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분위기를 딱 잡아줍니다. 이 프로그램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비결이 아닐까 싶네요.”
‘ON AIR’가 켜져 있던 스튜디오의 불빛이 꺼집니다. 진행자가 두터운 문을 열고 나옵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방송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그의 목소리는 방송 때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차분하고 조용합니다. ‘세상의 모든 음악’이 ‘세상의 편한 음악’이 되는 이유도 그의 목소리 때문일 겁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유학한 뒤, 여러 방송의 프로듀서와 진행자로 근무했습니다.
간혹 나오는 샹송이나 프랑스 음악을 소개하는 발음이 음악만큼 좋습니다. 프랑스로 갔던 이유가 궁금한데요.
전기현 “중·고등학교 시절에 라디오를 참 많이 들었어요. 특히 김세원 씨가 진행했던 ‘영화음악실’을요. 그 방송을 통해 여러 영화음악과 음악을 접했고, 그중 프랑스 영화와 음악들이 인상적이었죠. 그 영향으로 프랑스어를 공부했어요. 프랑스어로 들려오는 영화와 음악이 제 삶에 깊이 들어와 있던 때였죠.”
프랑스에서는 영화를 공부했습니다.
전기현 “그러면서도 음악에 대한 관심의 끈은 절대 놓지 않았어요. 유학 시절, 작은 방에도 피아노 한 대를 둘 정도였죠. 프랑스는 월드뮤직의 중심지와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여러 음반도 쉽게 접할 수 있었고요. 그때 공부했던 영화와 음악들, 이방인과 여행자로서 바라보던 도시의 감수성 등이 지금 ‘세상의 모든 음악’에 녹아든 게 아닐까 싶어요.”
일요일에 ‘영화가 사랑한 음악’ 코너가 있습니다. 소개하는 영화를 보지 못한 청취자들도 많을텐데요. 그 코너가 끝날 때 즈음이면 마치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느낌과 감동을 받습니다.
전기현 “‘영화음악실’을 애청할 때, 못 본 영화들이 대부분이었어요. 하지만 김세원 씨가 영화 이야기와 음악을 들려주면 그것을 가지고 그 영화를 상상해보곤 했어요. ‘나만의 영화’가 머리 속에서 만들어지는 순간이었죠. 상상을 더하면 감상의 폭이 더 넓어지는 것 같아요. 그런 느낌을 청취자들과 공유하고 싶어요.”
청취자들로부터 여러 사연이 오기도 하는데요. 기억나는 사연이 있다면?
전기현 “오래 전 일입니다. 누군가가 삶을 포기하려 했나봐요. 그런데 저의 방송에서 들려주는 음악이 좋았다, 살고 싶은 희망이 생겼다라며 사연을 보내왔어요. ‘아, 내가 한 사람을 살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별히 누구를 염두에 두거나 생각하며 진행하나요?
전기현 “아니요.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충분히 ‘다정한 상태’지만, 누군가는 좀 차갑다라고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특정한 누구를 생각하지 않기에 그 누구에게나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끝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전기현 “청취자들이 ‘세상의 모든 음악’을 오랫동안 들어주는 것.”
글 송현민(편집장)

 ‘세상의 모든 음악’ 1~10집 앨범

예전에 클래식FM에는 ‘다시듣기’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본 방송 후에 며칠 동안 제공된 이 서비스를 통해 감동의 순간을 곱씹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중단됐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음악’은 방송 음원을 담은 음반을 꾸준히 발행하기에 그 감동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방송이 처음 시작하던 2002년 1집을 시작으로 작년까지 10집이 나왔고, 5월에 11집이 나올 예정입니다. 방송으로 일상에 음악을 흘려 보냈다면, 음반은 그 음악을 담은 그릇이 되어 우리네 일상 어딘가에 놓이게 됩니다. 때로 음반 속의 음악을 들으며 그 음악이 나오던 때를 추억할 수도 있고요.
3~4분의 음악들이 15~18개의 트랙을 채웁니다. 음반별로 부제가 붙어 있네요. 마치 시집 제목 같습니다. 1집(음악을 들으며 숲을 가다), 2집(PM 6:00…‘쉼’), 3집(저녁, 길모퉁이 카페), 4집(그대, 황혼이면 돌아오듯이), 5집(즐거운 편지), 6집(저녁 창가에서), 7집(이 아름다운 세상), 8집(저녁에, 당신에게), 9집(15주년 기념음반, 2017), 10집(저녁이 꾸는 꿈).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재킷 이미지는 변함 없이 이어지고 있는 시그니처입니다.
그중 8집을 열어봅니다. 안종호 프로듀서의 글이 첫 인사를 건넵니다. “방송이 시작되는 저녁 6시… 일상의 고단함을 뒤로 하고 저마다의 쉼터로 돌아가는 이 시간은 누구에게나 휴식과 위로가 필요한 시간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음악’의 주제는 변함없이 ‘위로’다.”
영화 ‘라 붐’의 주제곡이 첫 곡입니다. 가사 없이, 리옹 오케스트라가 그 선율을 연주합니다. 해설지에 김미라 작가의 설명이 담겨있네요. 1집부터 내지 해설지를 써온 그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을 마음 벽에 붙이며 청춘을 건너간다. 영화 ‘라 붐(La Boum)’의 소피 마르소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추억 속에 장기투숙 중인 ‘당신’일 것이다. 리처드 샌더슨이 부른 라 붐의 주제곡 ‘Reality’를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들으면 세월과 함께 성숙한 ‘당신’을 만나는 느낌이 든다. (…) 섬세한 오케스트라 연주가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소피 마르소를 만나는 듯 아름답다.”
작년에 나온 10집에는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클라리네티스트 이상재가 연주했습니다. 다시 김 작가의 말입니다.
“영원히 25살의 청년으로 남은 가수 유재하의 명곡 ‘사랑하기 때문에’. (…) 유재하가 부르는 ‘사랑하기 때문에’는 애절한 사랑노래였지만, 이상재가 연주하는 ‘사랑하기 때문에’는 살아야 할 이유를 들려주는 음악이다. 그가 시각장애를 딛고 일어선 연주자여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가 이 곡을 연주하는 장소가 거대한 공연장보다는 병원의 로비 혹은 장애우가 함께 하는 곳일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음악 한 장을 일상 어딘가에 놓아두는 것은 위로의 응급상자 하나를 놓아두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KBS 클래식FM
유경숙 부장 어드바이스
일상 속에 음악 놓기

진행자·PD·작가들과 호흡을 맞추며 17개의 알찬 프로그램을 만들어가고 있는 유경숙 부장을 만났다.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몰랐던 클래식FM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자.

작년은 1979년 개국한 KBS 클래식FM이 40주년을 맞은 해였다. ‘방송의 역사’는 ‘라디오의 역사’이기도 한데, 클래식FM 40주년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클래식 음악의 불모지와도 같았던 과거에 그나마 몇 안 되는 FM채널 중 클래식 전문 채널이 생겼다는 건 지금 생각해보아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공연장도 흔치 않고, 음반도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라디오만 켜면 세계적인 음악가의 연주를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었다고 상상해보라. 클래식을 모르는 사람이든, 혹은 잘 아는 사람이든 클래식FM은 친절한 안내자이자 친구와도 같다. 또한 한국음악계의 성장을 이끌고 클래식 팬들도 키워냈다고 자부한다.
4월 2일은 좀 특별한 날이었다. 클래식FM의 개국기념일이자 올해 탄생 250주년을 맞은 베토벤의 음악들이 17시간 릴레이 개국특집방송 ‘불멸의 베토벤’을 통해 종일 흘러나온 날이었다. 유명곡부터 숨겨진 명곡까지 폭넓은 선곡과 연주자들의 렉처 콘서트 등을 통해 베토벤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음악회장에 가지 못한 음악 애호가들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시간이기도 했다.
청취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베토벤이라는 음악가의 드라마틱한 삶과 아직도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의 음악들이 이처럼 다채롭게 해석되고 즐길 수 있다는 것에 우리도 놀랐다. 베토벤이어서 가능한 기획이지 않았을까 싶다. 모든 작곡가를 다룰 수는 없겠지만, 이처럼 다양한 레퍼토리와 음악적 해석이 가능한 인물들을 찾아보려 한다.
코로나로 인해 자택에서 음악을 향유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개발되는 가운데, 클래식FM은 이러한 시류를 어떻게 체감하는가?
청취자들의 문자 참여, 애플리케이션 ‘콩(KONG)’의 댓글을 보면 교사와 학생, 그리고 재택근무 중인 직장인 등 평소 방송을 들을 수 없던 이들의 참여가 많이 늘었다. 3월 2일 ‘출발 FM과 함께’(7~8:00)에 중등 교사가 개학을 하지 못한 아쉬움의 사연을 보내왔는데, 그 사연을 들은 교사들과 학생들의 사연이 쏟아져 ‘힘내라! 학교’라는 새 코너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학교나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노래의 날개 위에’(16~17:00)에선 애니메이션 주제곡 등을 모아 틀기도 했다. 반응이 좋아 특집으로 4회간 계속했다. 2015년에 제작된 클래식 음악동화 ‘부엉이 아저씨, 음악가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도 재방송되어 아이들과 육아에 지친 부모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클래식FM의 청취자들은 어떤 유형인가?
올해 초의 청취율 조사결과를 보면, 20대를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클래식FM을 즐겨 듣고 있다. 20대는 아무래도 활동량이 많은 세대라 청취율이 높지 않은 편이고 50~60대층이 여전히 두텁다. 하지만 10대의 청취율도 의외로 높았다. 클래식FM 뿐 아니라 음악계에도 고무적인 현상이다. 출·퇴근하며 차에서 듣는 이들도 많지만, 가족이 출근·등교한 후 집에서, 혹은 혼자 또는 여럿이 같이 일하는 장소에서, 퇴근 후 혼자만의 공간에서 클래식 음악은 삶의 배경음악이 될 수 있는 예술이다. 따라서 출퇴근 시간대의 프로그램이 높은 청취율을 보이는 다른 채널과 달리 전 프로그램이 고른 청취율을 보이는 것도 클래식FM만의 특징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병원에서 클래식FM을 많이 틀어놓더라. 그러고 보니 태어나기도 전에 뱃속에서 이미 듣는 음악이 아니던가. 0세의 청취율이 가장 높을 수도 있겠다.
클래식FM은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 음반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다. 유성권(바순)·김유빈(플루트)이 녹음한 2019년의 1집을 비롯하여, 2집 이택기·이혁(피아노), 3집 에스메콰르텟의 음반이 나왔다. 특히 에스메 콰르텟 경우는 데뷔 앨범이어서 더욱 유의미한 것 같다. 이 시리즈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이유는?
세계 음악계에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큰 두각을 나타낸 지는 꽤 오래 되었다.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 시리즈는 이들의 연주를 방송을 통해 소개함으로써 청취자들의 음악감상 폭을 넓히고, 국내외로 이들의 신선한 연주를 널리 알리고자 시작한 프로젝트이다. 참가한 연주자들은 클래식FM 관계자들이 실력과 성장 가능성에 있어서 가장 탁월하다고 판단한 이들이다. 그런 그들의 데뷔 음반을 제작하는 것 외에 방송에서 소개하고 들려주는 목적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방송국에서 제작한 음반과 기존 음반사에서 발매한 음반의 차이가 있다면?
음반 소비자들과 수요가 나날이 줄고 있으니 상업성이 보장된 스타들의 음반들만 만들어지고 있다. 초기 기획단계부터 제작비와 판매량에 대한 고려도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음반사들은 상업적 성공을 염두에 두고 음반을 제작할 수 밖에 없다. 한편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 음반은 상업성보다는 기록으로 남길 가치가 있는 음악가의 연주를 담는다. 지금 만들지 않으면 훗날 좋은 연주를 들을 기회가 그만큼 없어진다는 생각으로 제작하고 있다. 노부스 콰르텟, 선우예권, 손정범, 박종해처럼 KBS 음반 발매 후, 더 큰 성과를 거둔 이들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끼곤 한다.
최근 유행하는 무관중 생중계가 있기 전부터 클래식FM은 생중계를 통해 공연장에 가지 않아도 현장의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했다. 특히 교향악축제 시즌에는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현장의 연주와 공기를 호흡하는 이들도 많다. 앞으로도 공연장과 청취자를 잇는 중계는 신경 써야 할 중요한 관건일 텐데.
공연장이 멀고, 시간이 없고, 경제적 부담이 많은 이들에게 공연실황을 전하는 것은 공영방송인 KBS의 중요한 책무 중 하나다. 하지만 중계를 원치 않은 연주자나 단체는 현실적으로 중계가 어렵다. 또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공연이 취소되며 중계방송도 취소된 상황이다. 이처럼 음악회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갈증을 풀어드리고자 KBS교향악단의 무관중 음악회(5월 2일)를 생중계할 계획이다. 공연장에 직접 가진 못해도, 라디오를 통해 청취자들이 좋은 기분을 느꼈으면 한다.
정통 클래식 외에 월드뮤직·영화음악·국악·크로스오버 등 다양한 음악들이 매 프로그램마다 선곡되는데, 유독 현대음악은 잘 소개되지 않는다.
그간 현대음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제대로 감상하기 위한 기획코너나 특집방송이 있었다. ‘KBS음악실’(11~12:00)이나 ‘FM실황음악’(20~21:00) 등의 프로그램에서도 부족하나마 꾸준히 다루려고 노력한다. 클래식FM은 청취자와 함께 만드는 방송이다. 전문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늘 고민하며 방향을 찾아가려 한다.
청취 방송 외 ‘KBS음악실’의 ‘보는 라디오’와 같은 시청각 서비스, ‘여름 음악학교’ 같은 공개방송을 선보이기도 한다.
모두 청취자들을 위한 서비스이다. 스튜디오에서 연주하는 소리를 듣기만 하는 것과 ‘보는 라디오’를 통해 보고 듣는 것은 몰입도 면에서 차이가 크다. 공연이나 TV중계에서 볼 수 없었던 연주자의 자연스러운 모습도 ‘보는 라디오’만의 매력이다. 또 요즘은 동영상 콘텐츠에 대한 요구도 높지 않은가. 이런 영상이 쌓여 한국음악계의 훌륭한 자료가 될 거라 생각한다. ‘여름 음악학교’는 청소년들이 클래식을 좀 더 친숙히 접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에 나온 것이다. 아이들이 클래식을 수업시간에 듣는 따분한 음악이 아니라, 재밌는 이야기와 익숙한 선율로 기억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10대에 접한 클래식에 대한 기억은 2~30대가 되었을 때 직접 공연장을 찾아가게 하는 문화적 감수성이 된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클래식 음악계 저변 확대를 위해서. 또 클래식FM의 새로운 청취층 확보를 위해서. 글 송현민(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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