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을 거리의 예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9월 27일 9:00 오전

ON THE STREET

아틀리에 시수(Atlier SISU)의 ‘Evanescent’

2023 발트뷔네 ©Holger Kettner

올가을, 거리의 예술

선선한 날씨, 신나는 공연!

 

산책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계절이 돌아왔다. 만약 공연을 좋아한다면 조금 더 시간을 들여 나들이를 가보는 게 어떨까?

이 계절에만 즐길 수 있는 야외 공연으로! 가을의 초입에 만난 공연과, 가을이 짙어지는 10월에 찾아 올 공연을 만나 보았다.

총괄 이의정 기자

 

REVIEW 서울시오페라단 야외오페라 ‘카르멘’

PREVIEW 서울문화재단 야외공연 & 소프라노 박혜상

EVENT 심포니 송 ‘더 윙’

 

 

 

 


REVIEW

 

서울시오페라단 야외오페라 ‘카르멘’(9.8-9)

광장, 시민을 위한 극장이 되다

시민 예술단의 참여, 다양한 볼거리로 야외 공연에서 성공을 거두다

본디 ‘광장’은 도시 형성의 중심에 있다. 현재 유럽에 남아 있는 다수의 광장은 중세 시대 교회를 지으며 생겼다. 건축 작업장 주변으로는 시장이 형성됐고, 완공 이후 교류의 장으로 사용됐다. 여전히 유럽의 광장은 여가를 즐기는 여유로운 시민의 공간이다.

이에 반해 우리의 광장은 활용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적절히 앉아 무언가를 여유롭게 즐기기에는, 광장은 늘 ‘뜨거운 집회’로 가득 차 있다. 그 또한 시민의 적극적인 광장 활용법이긴 했으나,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2020년,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을 발표하며 광장을 도심 속 휴식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쪽의 차로를 없애고 광장의 폭을 늘렸으며, 다양한 수경 시설과 휴식 공간이 증가했다.

세종문화회관은 올여름, 변해가는 이 광장의 분위기에 박차를 가했다. 8월 11일부터 9월 9일까지 진행된 ‘세종썸머페스티벌’은 야외에서 무료로 만나는 무용·음악·오페라 공연으로 구성됐다.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한 서울시오페라단의 야외 오페라 ‘카르멘’(예술감독 박혜진, 연출 장재호, 메조소프라노 송윤진·백재은(카르멘), 테너 정의근·이승묵(돈 호세), 바리톤 한규원·유동직(에스카미요) 외)은 문화 공간으로서의 광화문광장을 증명하는 자리기도 했다. 장르 특성상 사방으로 뚫려 있는 광장의 음향 구현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서울시오페라단은 시민 참여, 다양한 볼거리, 적절한 음향 시스템 활용 등으로 성공적인 공연을 선보였다.

설치미술가이자 건축가 한원석이 카르멘의 소재인 부채를 형상화한 무대 위에는, 100여 명의 시민예술단이 합창단, 무용단으로 참여했다. 한 달 전부터 모집돼 배역을 배정받고 무대에 오른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열정적으로 오페라의 일원이 된 모습이 뜻깊었다. 70분 분량의 하이라이트 공연으로 구성된 공연에서는 서곡과 간주곡에 폴댄스 아트, 파이어 퍼포먼스가 시민 관객의 눈길을 끌었다. 기존의 오페라에 없던 대중 친화적 볼거리를 활용한 현명한 선택이었다. 광장의 오페라로 ‘카르멘’을 선택한 것도 적절했다. ‘하바네라’나 ‘투우사의 노래’ 등 대중의 귀를 한 번에 사로잡는 매력적인 멜로디는 마이크를 잘 활용한 성악가들로 인해 설득력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오케스트라는 녹음된 음원을 활용했는데, 이 또한 야외 오페라에의 음향에 적절한 구현 방식이었다. 다만 2중창이나 합창 등 소리의 잔향이 섞여 효과를 자아내야 하는 구간에서는 기존의 오페라와 같은 음악적 만족을 얻기 어려웠다. 복잡한 구성을 가진 오페라보다는, 마치 뮤지컬처럼 아리아 중심의 감상이 가능한 오페라가 광화문의 오페라에는 적합했다.

무대의 우측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는 지나가던 시민들이 걸음을 멈추고 오페라를 감상하기 위해 모여 앉았다. 단차가 있는 계단은 다수의 시민이 오페라를 맛볼 수 있는 훌륭한 객석이 됐다. 그러나 광장이 극장으로 탈바꿈하기에는 무대 좌측으로 여전히 차로가 열려 있어 완전한 몰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선선한 여름밤에 찾아온 광장의 낭만을 한껏 끌어올리는 데에는, “사랑은 자유로운 새”라며 노래하는 매력적인 카르멘의 향기가 제법 적합한 도구였다. 이제 앞으로, 우리의 광장의 온도가 가끔은 뜨겁고, 또 가끔은 이렇듯 여유로운, 다채로운 광장이 되길 기대해 본다.

허서현 기자 사진 세종문화회관

 


PREVIEW

 

서울문화재단 서울거리예술축제(9.29-10.1)

한가위를 밝히는 도심 속 거리예술

서울광장과 거리에서 만나는 예술의 향연

서울거리예술축제 스토커씨어터 ‘프로스페로- 확장하는’(2022)

서울거리예술축제 컴퍼니 퀴담 ‘허버트의 꿈’(2022)

가을의 한가운데, 도시를 밝히는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르며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광장에서 일상과 예술의 벽을 허무는 거리예술은 ‘일상의 소소한 서사’를 써 내려가는 시민들을 축제로 불러낸다. 올해 서울거리예술축제의 주제는 ‘원’이다. 기원, 근원, 원(Circle), 원(1)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 ‘원’ 안에서 거리로 나온 예술이 축제의 기원을 탐색한다.

축제는 이희문, 천하제일탈공작소×프로젝트날다, 멜랑콜리댄스컴퍼니·LDP, 코드세시·류성국, 프로젝트루미너리의 공연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지는 개막식 공연 ‘Full Moon’으로 문을 연다. 축제 기간에는 전통연희와 공중곡예, 그리고 설치미술을 결합한 천하제일탈공작소×프로젝트날다의 ‘별 게 없다’를 포함해 국내외 다양한 규모의 작품 30여 개를 만나볼 수 있다.

서울광장과 청계광장을 잇는 도심 곳곳에서는 시각예술 작품 전시도 찾아볼 수 있다. 호주 시드니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틀리에 시수(Atlier SISU)의 ‘순간적인 것(Evanescent)’는 거대한 풍선을 오브제로 활용해 자연의 우아함을 표현하고, 미디어아티스트 금민정의 ‘걸어가는 일상, 걸어가는 역사’는 예술과 디지털의 경계를 미디어에 담아낸다. 올 한가위에는 일상의 수고와 노동을 멈추고, 거리로 나와 서울 도심의 광장과 빌딩을 배경으로 색다른 달맞이를 경험해 보자.

홍예원 기자 사진 서울문화재단 


한강노들섬발레 ‘백조의 호수’(10.14-15)

그야말로 물 위의 백조!

발레단들이 서울의 강에 수놓을 군무

유니버설발레단 ‘백조의 호수’(2023)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차이콥스키의 유명한 음악이 더해진 발레 ‘백조의 호수’는 음악의 친숙도만큼 대중에게 잘 알려진 고전 중의 고전이다. 19세기 말 초연이 이루어진 지 10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전 세계에서 꾸준한 사랑을 받는 이유는 분명 뛰어난 작품성 덕분일 것이다. 새하얀 발레 의상을 입고 군무를 추는 이 작품의 핵심 장면이 자동으로 연상된다.

물 위를 떠다니는 백조의 안무와 아름다운 의상 덕분에 ‘백조의 호수’(총감독 문훈숙, 연출 유병헌, 강민선·한상이(오데트), 홍향기·엘리자베타 체프라소바(오딜), 이현준·드미트리 디아츠코프(지크프리트) 외)는 한강변에서 설치되는 이번 무대와 잘 어울린다. 어둠 속 물가에서 새하얀 군무를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이번 공연에는 유니버설발레단·서울발레시어터·와이즈발레단이 함께한다.

‘백조의 호수’는 저주에 걸린 오데트 공주와 지크프리트 왕자의 신비로운 사랑 이야기이다. 저주를 건 악마 로트바르트가 오데트와 똑같이 생긴 자신의 딸 오딜을 시켜 이 둘의 사랑을 방해하지만, 그 결말이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연출가에게 달려있다. 이날 펼쳐질 한강 무대의 한 쌍은 과연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지 직접 만나러 가보자.

이의정 기자 사진 서울문화재단


한강노들섬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10.21-22)

다시 한번 돌아온 섬 위의 오페라

물결처럼 퍼져나갈 강변의 아리아

한강노들섬오페라 ‘마술피리’(2022)

수변에서 이루어지는 음악 무대라 하면 자연스레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오페라 무대가 떠오른다. 어두운 밤 물가에 반사되는 화려한 조명, 그 위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 선선한 바람과 함께 두런두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감상하는 오페라 무대는 상상만으로도 낭만이 가득하다.

그러나 무대를 준비하는 쪽에서는 만만치 않다. 모든 악기와 전자기기가 습기에 민감하고, 도심 내의 소음도 차단이 불가하여 마이크를 사용하며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연주해야 한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야외 오페라 공연은 우리에게 특별한 추억과 경험을 남긴다.

그 경험을 얻을 기회가 서울에도 찾아왔다. 서울문화재단(대표이사 이창기)은 지난해부터 한강을 배경으로 하는 오페라를 기획·진행하고 있다. 올해 2회를 맞이하는 한강노들섬오페라는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지휘 김건, 연출 표현진, 소프라노 박혜상(로지나), 바리톤 안대현(피가로), 테너 김성현(알마비바 백작), 베이스 김경천(바르톨로), 베이스 김철준(돈 바질리오) 외)를 선보인다.

작년 ‘마술피리’를 공연했던 재단 측은 개선할 점을 찾아 올해 공연을 대폭 보완했다. 야외에 피크닉 온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도록 돗자리 석을 마련했고, 오페라 감상을 위한 입문작이 될 수 있도록 문화 소외계층을 우선하여 초대했다. 좌석수를 1.5배 확대했고, 시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형 LED 화면도 설치한다고 하니, 이번 가을 나들이는 10월의 한강으로 잡아보는 것이 어떨까?

이의정 기자 사진 서울문화재단


INTERVIEW

‘세비야의 이발사’ 출연 소프라노 박혜상

에너지부터 남다른 야외 무대에 오르며

이번 한강노들섬오페라가 자랑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캐스팅이다. 해외 오페라 극장에서 경력을 쌓은 테너 김성현, 소프라노 박혜상이 주연으로 참여하며, 국립오페라단 무대에서 활동하는 바리톤 안대현과 베이스 김경천도 함께 한다. 그중 오랜만에 국내 무대에 오르는 박혜상과 일문일답을 나누었다.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7년 만에 서는 국내 무대로 ‘세비야의 이발사’의 로지나 역을 맡게 됐다.

국내 오페라 무대에 선다면 내가 가장 편하고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레퍼토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전에도 몇 차례 오페라 출연 기회가 있었지만,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머뭇거렸던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오페라 작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돼서 기대된다.

본인이 선택하고 매료된 ‘세비야의 이발사’의 로지나 역을 설명한다면?

행복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행복하고자 한다면, 행복해진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에 달린 것이고, 로지나는 그렇게 본인의 결정으로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가는 인물이다. 로지나는 쓸데없는 걱정과 경계 따위는 본인에게 그리 큰 해가 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는 사랑을 아는 사람이고, 나는 그 담대함과 자신감을 좋아한다. 상황에 떠밀려 좌절하고 주저앉아 우는 것보다 고개를 들고 삶을 향해 달려가는 인물이다.

지난 4월 샌디에이고 공연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여러 야외무대를 경험했다. 야외무대와 실내 무대는 매우 다를 텐데, 어떤 차이를 느끼는가?

내 위로 하늘이 보이고, 저 멀리 풍선을 들고 달려가는 아이의 모습이 보이고, 산과 새소리가 들리는 무대에서 나는 마치 하나의 도구가 된 기분이 든다. 그 공간의 에너지가 더 빛나고 찬란하게 만드는 시너지 역할처럼 말이다.

야외무대는 날씨를 비롯하여 돌발 상황이 많다. 이번 공연에 우려되는 점이 있다면?

노들섬 옆에는 지하철도가 있어서 소음이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하더라. 나는 현대에 살아가고 있는 한 여성으로 로지나를 그리며 이같이 주어진 상황에 무너지지 않고 순간을 즐기는 마음으로 노래하고자 한다. 그렇게 한다면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또 다른 경험을 선물 받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반대로 야외무대만이 가진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

야외 오페라 티켓을 오픈하면 빠른 시간 내에 매진된다고 들었다. 그만큼 여러 관객이 오페라에 관해 잘 몰라도 찾아온다. 사람들이 오페라를 접할 기회가 잦아져서 작은 관심이 큰 사랑으로 이어지게 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나의 몫을 하며 좋은 무대를 만들어 나가겠다.

지난 7월 뉴욕에서도 야외 오페라 무대에 올랐다. ‘아시스와 갈라테아’(헨델)의 갈라테아로 분했는데, 어떻게 기억에 남아있나?

갈라테아 역은 최근에 해서 기억에 진하게 남아있다. 감정을 흘려보냄으로써 영혼이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다. 아프고 답답한 가슴이 갈라테아의 견고함으로 해독되는 느낌이었다. 그는 가야 할 삶의 목적과 무게를 이해하고 있고, 정신적인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아는 인물이다. 정말 많이 배운 무대이다.

최근 국내 무대는 주로 가곡 리사이틀이었다. 해외 무대를 포함하여 항상 한국 가곡을 프로그램에 넣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언제부터 한국 가곡 사랑이 시작됐나?

줄리아드 음악원 시절부터 한 번도 빼놓지 않고 한국 가곡을 불러왔다. 특별히 사랑해서라기보다 그게 ‘나 자신’이기 때문에 부른다. 한국인인 나의 노래는 한국 가곡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내 ‘뿌리’를 아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여러 성악 장르 중에서도 가곡에 대한 애정을 표한 바 있다.

가곡을 부를 때면 자유로움을 느낀다. 정석대로 완벽한 발성과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부담에서 해방되는 기분일까? 소리의 색도, 다이내믹도, 가사 전달도 온전히 자신과 깊은 대화를 하며 만들어 가는 데서 큰 매력을 느낀다.

이후 국내의 다른 오페라에서도 다시 만날 날이 벌써 기대가 된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무엇일까?

현재 주어진 것에 충실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욕심이 생기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항상 주의하려고 한다. 물론 음악가로서 많은 사람과 함께 그것의 아름다움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많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다.

이의정 기자

 

박혜상(1988~)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줄리아드 음악원 석사과정과 전문연주자과정을 전액 장학금으로 마쳤다. 201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5위, 2015년 몬트리올 콩쿠르와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했다. 2020년 5월 DG와 전속 계약을 맺었으며, 2021년 음반 ‘I am Hera’를 발매했다.

 


EVENT

심포니 송 더  윙(9.1)

거대한 트럭 무대에서 쏟아지는 ‘음악’

심포니 송의 예술감독·지휘자 함신익. 민간 오케스트라가 가진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다

귀신같이 기온이 낮아진 9월의 첫날 오후 6시를 조금 앞둔 시각, 서울 보라매병원 건너편, 전문건설회관 앞에 커다란 보랏빛 트럭이 들어서 있다. 그 앞에 놓인 수십 개의 플라스틱 의자에는 유모차부터 지팡이까지 다양한 손잡이를 손에 쥔 시민들이 앉아 있다. 일찍 온 관객들은 주최 측이 제공한 간식을 나눠 먹으며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웠다. 공연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지만 이미 분위기는 정겨웠다.

오후 6시가 되자 보랏빛 트럭에 관한 설명과 새 단장에 대한 기념식이 이어졌다. ‘더 윙(The Wing).’ 길이 11미터, 높이 5미터 트럭의 양쪽 벽면이 날개같이 열려, 그 이름을 실감했다. 새 단장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심포니 송의 ‘더 윙’은 이달에 처음 시작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공연이 끝난 며칠 후 그날의 공연을 회상하며, 예술감독인 함신익과 ‘더 윙’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더 윙’을 구상했던 시작을 짚어주었다.

“구상은 정말 예전부터 했습니다. 심포니 송 오케스트라도 오랜 구상을 통해 실현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것도 마찬가지예요. 2000년 무렵부터 생각했는데, 2015년 3월에 첫 시작을 하게 됐습니다. 언제나 오케스트라에는 그들의 전용 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국내에서 시립 오케스트라에게도 쉽게 주어지지 않는 전용 홀을 민간 오케스트라가 갖기는 어렵죠. 그러다가 선거철이 되어서 돌아다니는 트럭을 보았는데, 그 조그만 1톤 트럭 위에서도 정말 별것을 다 하잖아요. 몇 번의 단계를 거쳐 9톤 트럭을 개조하는데까지 도달하게 된 거죠.”

2015년의 ‘더 윙’은 조금 더 소형에서 출발하였다. 당시에도 트럭은 열리지만 평평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 현악기와 관악기의 단차가 없었고, 음향 장비를 싣을 수 없어 바닥에 따로 설치했다. 조명도 있었지만, 지금처럼 밝진 않았다. 현재는 트럭 안에서 단차를 조절하는 스위치를 통해 3단 무대가 가능하다. 덕분에 트럭 아래에서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들도 뒷열에 위치한 연주자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음향 장비는 천장에 달 수 있고, 배터리를 사용하는 방식이기에 전선 연결로 인한 잡음이 나지 않는다.

가득 찬 관객과 함께, 시작!

약 10분간 진행된 기념식 이후에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됐다. ‘헝가리 무곡’, 비제 오페라 ‘카르멘’의 아리아, 로시니 오페라 ‘윌리엄 텔’의 서곡으로 이어지는 공연은 음악을 낯설어하는 관객들의 시선을 끌기에 적합했다. 작품 사이사이에는 예술감독이 마이크를 잡고 시민과 인사하는 겸 여러 가지 퀴즈를 내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관객석은 이미 웃음바다였다. 이런 분위기는 심포니 송이 ‘더 윙’을 시작하게 된 이유였다.

“심포니 송을 거쳐 갔던 단원들을 가끔 만날 때면, 가장 기억에 남은 공연으로 ‘더 윙’을 꼽습니다. 공연하면서 본인들이 치유 받는 기분이라고 전해요. 한번은 폐교 직전의 학교에서 공연한 적이 있는데, 한 단원이 돌아가는 버스에 오르지 않고 있었습니다. 왜 그러냐 물었더니 ‘이 순간을 즐기고 싶다’라고 하더군요. 자신이 가진 재능을 나눌 수 있고, 생전 처음 음악을 듣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자신이 왜 음악을 하는지 알겠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정통 클래식 음악을 전해야 한다는 신념도 놓지 않았다. 바로 이어지는 작품은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협연 송지원)으로 공연 진행상 한 악장만 연주하였다. 익숙한 노래 뒤로 낯선 노래가 나오자 관객들은 잠시 주춤했다가도 심포니 송 오케스트라의 악장인 그의 기교에 감탄을 자아냈다. 난도 높은 클래식 음악을 했으니 이제 다시 익숙한 작품으로. 다음에 이어지는 곡은 BTS의 ‘다이너마이트’였다. 예술감독이 춤을 출 아이들은 앞으로 나오라 하니, 몇 명의 아이들이 자청해서 무대 앞으로 나와 오케스트라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몇 곡 뒤에는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맘보’를 연주하며 어른들도 나와 춤을 추자고 했다. 처음에는 조용하던 성인 관객 사이에도 나와서 춤을 추는 사람이 생겼다.

‘더 윙’은 아이들을 찾아가는 일도, 어른들을 찾아가는 일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2015년의 첫 시작도 초등학교 운동장이었다. 함 예술감독에게 영감을 주었던 것도 이 학교에서 생긴 경험 때문이었다. “강원도 태백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제 제자가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는데, 그 소리가 그대로 앞산을 울리며 퍼졌어요. 그때 ‘자연의 음향’이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죠. 좋은 홀은 좋은 나무를 베서 세우거나 바닥에 깔죠. 홀을 자연에 가깝게 만들려고요. 그래서 저는 자연으로 찾아가는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더 윙’은 학교·보호소·교도소·군부대 등 서울의 빌딩 숲을 나와 진정한 숲을 찾아다녔다. “프로그램을 항상 어린이들에게는 교육이 되게, 어른들에게는 흥미롭게, 그러면서도 클래식 음악과 거리를 두지 않게 구성합니다.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가려고 합니다. 경상북도 산속도 갔고, 고흥군의 소록도도 갔습니다. 탈북자가 머무는 곳에서도 연주했고, 천안의 교도소도 갔었죠.”

이날 협연으로 참여한 테너 윤정수는 오페라 ‘토스카’의 ‘별은 빛나건만(E luceven le Stelle)’과 ‘투란도트’의 ‘아무도 잠들지 말라(Nessun Dorma)’를 불렀다. 사람들이 가장 큰 박수를 친 것은 ‘아무도 잠들지 말라’의 마지막 가사, “빈체로(Vincerò)!”가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함신익은 협연자에 관한 회상도 풀어주었다. “‘더 윙’을 함께 했던 여러 협연자 분은 자신을 다시 불러달라고 자주 말씀하십니다. 본인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욱 큰 행복감을 느낀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날의 앙코르는 관객이 공연을 즐겼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었다. 지휘자는 모든 관객에게 일어나라 요청한 뒤,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에 맞추어 율동과 노래를 하라 했다. 그리고 정말 모든 관객이 이를 따라 했다! 야외 공연에서 클래식 음악을 모르는 관객들이 그 음악에 몸을 맡기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80여 분. 더 거대해진 트럭과 함께 그들이 떠날 여정이 기대된다.

이의정 기자 사진 함신익과 심포니 송

함신익(1957~) 미국 라이스 대학교에서 석사를, 이스트만 음대 지휘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5년부터 예일대 지휘과 교수로 23년간 재직했으며, 2001년부터 6년간 대전시립교향악단을, 2010년부터 2년간 KBS교향악단을 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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