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랑포룸 빈 대표 피터 폴 카인라트, 당신을 변하게 하는 음악이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5월 6일 8:00 오전

VIVID

 

클랑포룸 빈 대표 피터 폴 카인라트

당신을 변하게 하는 음악이란?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새 음악이 강타하는 감각’을 선사한, 화제의 현대음악 앙상블

 

 

통영국제음악제(TIMF)가 한창이었던 4월, 오스트리아 빈의 현대음악 앙상블 클랑포룸 빈(Klangforum Wien)이 음악제의 일환으로 경상남도 끝자락을 방문했다. 3일과 5일 두 번의 공연을 마친 6일 아침, 클랑포룸 빈의 대표 피터 폴 카인라트를 만났다. 그는 커피를 마시며 안부처럼 “어젯밤의 공연은 어땠나요?”라 물었는데, 전날의 전율이 가시지 않은 기자는 호들갑스럽게 ‘좋음’을 전했다. 그는 은은하게 웃으며, “그렇다면 다행이군요”라고 간단하게 답했다.

내년에 40주년을 맞는 이 단체는 작곡가 베아트 푸러(1954~)가 창단하여, 24명의 단원으로 구성되었다. 모두 현대음악에 뜨거운 열정을 가진 이들이다. 악단은 수많은 작곡가·지휘자·연출가와 연을 맺어왔다. 그중 몇 명을 꼽자면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의 상주작곡가이자, 얼마 전 우리 곁을 떠난 페테르 외트뵈시(1944~2024), 함부르크 오페라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켄트 나가노(1951~), 파격적인 연출로 이름을 알린 피터 셀라스(1957~)가 있다.

카인라트 대표는 전날 공연에 대한 기자의 반응에 “그 감각을 기억하세요”를 덧붙였고, 기자가 느낀 그 ‘좋음’의 가치가 무엇인지 인터뷰로 답했다.

 

전문 피아니스트로 음악가의 길을 시작했는데, 현대음악에는 언제 관심을 가지게 됐고, 이를 ‘연주해야 한다’라고 생각했나?

피아노 공부를 하면서 항상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느꼈다. 작곡가가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더 생생하고 선명한 이해가 악보 속 음표를 넘어 존재하는데, 이를 직접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심지어 작곡가가 당신과 같은 시간대에 살아있는 작품도 있는데 말이다! 그렇게 작곡가와 함께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프로젝트로 나의 고향인 이탈리아 볼차노(부소니 콩쿠르 개최 지역)에 살고 있는 17명의 작곡가를 찾아가서, 각자에게 하나씩 피아노 작품을 의뢰했다. 그 작은 지역에서도 ‘작곡’으로 할 수 있는 온갖 다양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이 쓴 17곡을 녹음하고, 그들과 인터뷰하여 하나의 책을 만들었다. 1997년, 새로운 음악에 대한 나만의 시작점은 이 프로젝트였다.

부소니 피아노 콩쿠르를 주관하는 부소니-말러 재단의 예술감독으로서, “한국 아티스트의 높은 수준을 눈여겨보고 있다”라고 전한 바있다. 현대음악을 높은 수준으로 연주하는 음악가를 길러내려면 한국은 어떤 환경이 필요할까?

국제 콩쿠르 우승자 명단의 한국인 비율을 보면, 좋은 연주자를 길러내는 힘은 여지없이 세계 최고라 느껴진다. 하지만 아쉬움이 있다면 레퍼토리의 다양성인데, 이는 대학 교육의 영역이다. 한국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도, 다른 나라도 모두 마찬가지다. 커리큘럼에서 18~20세기 레퍼토리가 21세기 레퍼토리와 굉장히 분리된 편이다. 이를 타파하고자 클랑포룸 빈은 오스트리아 그라츠 음대와 협력하여 강의를 만들기도 하는데, 이러한 제도가 한국에도 실행되면 좋겠다. 이론으로만 배워 온 학생에게 현대음악 앙상블이 직접 찾아가서 몇십 년간 익힌 비법을 전수해 주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나겠는가.

실제로 클랑포룸 빈은 2022년 TIMF 아카데미의 상주 단체로서, 선발된 29명의 교육생과 작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유럽의 시벨리우스 아카데미를 비롯하여 몇몇 단체와 유사한 작업을 했는데, 무엇보다 제대로 중요한 의미를 선사하고자 한다면 정기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적어도 3년간, 1년에 두어 차례만 직접 만나고, 나머지는 온라인으로 진행하더라도 말이다. 한국이 진심으로 음악의 지평을 넓히고 싶다면,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 이를 해석하고, 어떻게 연주하는지 지식을 전파하는 데에 투자해야 한다.

 

음악의 수도 빈에서 소리(클랑)를 논(포룸)하다

 

클랑포룸 빈 ‘헛되이’(통영국제음악제) ©Sung Chan Kim

클랑포룸 빈의 대표 자리는 팬데믹의 어려움이 찾아온 2020년부터 맡았다. 앙상블 규모의 악단에 팬데믹은 고비였을 텐데, 그 시기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각자가 본인의 악기에 집중하여, 솔리스트로서 할 수 있는 작업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시기 덕에 지금의 클랑포룸 빈은 그 어떤 때보다 기량적으로 높은 수준에 올라와 있다. 레이싱 카 전체를 분해해서 부품 하나씩을 잘 정비했더니, 다시 조립했을 때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좋은 성능을 얻은 것과 같다.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 독일의 앙상블 모데안 등 다른 현대음악 앙상블과 비교할 때 클랑포룸 빈이 가진 개성은 무엇인가?

각각의 현대음악 앙상블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 악단을 설립한 작곡가, 그리고 그에 의해서 연결된 특정한 작곡가들이다. 베아트 푸러가 설립한 우리가 그렇고, 피에르 불레즈(1925~ 2016)가 설립한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도 그러하다. 탄생하며 부여된 DNA가 악단에 계속 흐른다. 작곡가가 우리를 위한 작품을 쓰기 때문에 그 연결은 더욱 강력해질 수밖에 없다. 클랑포룸 빈과 긴밀한 작곡가로는 푸러로 시작하여 조르주 아페르기스(1945~)·살바토레 샤리노(1947~)·베른하르트 랑(1957~)·레베카 손더스(1967~)·올가 노이비르트(1968~)가 있다. 이들 모두가 우리를 위한 작품을 썼고, 이러한 작품은 우리에게도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안겨주었다.

작품의 초연에는 작곡가가 직접 여러 지시를 내리는가?

물론이다. 우리를 위해 쓴 작품일 때, 작곡가는 모든 리허설에 참여하며, 악보를 현장에서 직접 고치는 일도 빈번하다. 그들도 본인이 상상한 소리의 실체를 처음 마주하기 때문이다. 초연은 항상 특별하다. 몇 달, 심지어 몇 년간 고민한 작품이 처음 음악이 되는, 작곡가들에게 아주 찬란한 순간이다.

초연곡을 비롯한 레퍼토리는 어떻게 결정하나?

우선 작품의 편성과 형식, 악기를 연주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클랑포룸 빈이 녹음했던 작품에서 찾는 경우도 많다. 어쨌든 항상 복잡한 음악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명심한다. 당연히 유난히 더 어려운 작품이 존재하고, 그 어떤 것보다 도전적인 음악이 있지만, 오랜 연습으로 이를 실연하면 시간 낭비라고 느껴진 작품은 단 한 번도 없다.

음반으로 녹음할 작품을 선별할 때도 다른 기준이 있겠다.

첫째, 지금 만들어지는 음악이 우선순이다. 우리의 연주가 첫 녹음인 작품들이다. 둘째, 과거의 작품이지만 녹음된 적이 없는 곡을 발굴한다. 작년에는 폴란드계 미국 작곡가인 루치아 들루고셰프스키(1925~2000)의 작품을 조명했다. 셋째, 기관과 협업하는 경우이다. 2년 전에 폴란드의 아담 미츠키에비치 협회와 협력하여 공모전을 열었고, 폴란드 작곡가들에게 70여 곡을 받았다. 그중 작곡가 4명을 선정하여 4개의 음반을 제작했다.

 

이들의 음악을 들어야 하는 이유

 

‘현대음악’이라는 말은 ‘어렵다’는 형용사와 떨어지지 않는다. 현대음악을 감상하는 좋은 전략이 있을까?

‘새로운 대상을 만난다’라는 조금은 숨 막히는 긴장감은 안고 있어야 한다. 새로운 옷을 사거나, 새로운 음식을 먹어보는 것처럼, 약간의 돈을 투자해 새로운 경험을 해 보는 것이다. 첫 음부터 마지막 음까지 전부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고, 새로운 음악이 당신을 강타하는 감각을 그저 느끼면 된다. 음색, 리듬, 그런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따라 듣고, ‘이런 소리를 스스로 얼마나 들어왔는지’ 자문하면서, 지금 들은 음악으로 앞으로의 음악 청취가 어떻게 변할지 생각해 보면 된다. 왜냐면 새로운 음악은 그전까지 들었던 음악에 대한 감상도 조금씩 흔들어 놓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을 연주하는 공연이든 직접 가야 한다는 의미겠다.

핵심어는 ‘새로운 음악을 마주하는 것’이다. 매일 듣는 베토벤, 바흐도 물론 아름다운 음악이지만, 그 청취 경험이 당신에게 주는 변화는 미미하다. ‘이해’에 집착하지 마라. 작품이 몇 마디인지, 어디가 발전부인지, 화성은 어떻고… 이런 ‘이해’는 음악을 마주하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람들은 새로운 음악이 “이해가 안 돼요”라고 호소할 때가 있는데, 베토벤·쇼팽도 똑같이 어렵지만, 그걸 몇 번씩 반복해 들어서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을 놓치곤 한다.

대화를 나누며 궁금했는데, ‘현대음악(contemporary music)’이라는 용어를 안 쓰고 ‘새로운 음악(new music)’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나?

아주 명확히 있다. 현대음악이라는 단어는 매번 ‘현대’란 무엇인지, 그 정의를 요구한다. 현대음악이란 용어는 청자에게 ‘현대음악이란 분야가 존재하고, 그건 소규모 지식인의 몫으로 돌리면 돼요’처럼 작용하지만, ‘새로운 음악’은 ‘신곡이 나왔다’라는 그 이상의 논의를 하지 않아도 된다. 어떤 어휘로 소통하는가는 중요하다. 홍보팀이나 기관의 CEO들과 소통할 때, ‘현대음악’이라는 용어가 주는 인상은 ‘음악을 잘 아는 소수의 전유물’처럼 전달되니 말이다. 우리가 전해야 하는 부분은 작품의 시대 분류가 아니라, 작품이 난 바로 그 순간은 그 곡이 아주 생생한 세상을 맞이하고 있는 황홀한 시기라는 것이다.

‘새로운 음악’의 입문을 망설이는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음악에 ‘생(生)’이라는 단어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새로운 음악이다. 새로운 작품이 없다면, 음악은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생동하는 것이 아니며, 멸종한 존재의 화석을 박물관에서 관람하는 것이 된다. 당신과 새로운 음악의 접촉이 멈추지 않기를!

이의정 기자 사진 AMWB

 

피터 폴 카인라트(1964~) 1992부터 2015년까지 볼차노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 음악원에서 피아노 교수로 재직했다. 2007년부터 부소니-말러 재단의 예술감독으로 있으며, 부소니 피아노 콩쿠르를 비롯하여, 미술·영화 등 다양한 분야와 협력하고 있다. 2020년 1월, 클랑포룸 빈의 예술감독이자 CEO로 선임됐다.

 


 

REVIEW

 

‘새로운 음악’을 듣고난 뒤

4월 5일 오후 11시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Sung Chan Kim

오후 11시, 보통 공연이 끝나고 귀가하는 시간. 한국 초연작인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하스(1953~)의 ‘헛되이(in vain)’ 단 한 곡을 듣기 위해 심야에 관객이 모였다. 이 작품의 연주시간은 70분가량. 관객 수는 통영국제음악제의 공연 중 적은 편이었지만 기자가 관람한 5개의 공연 중 가장 많은 기립박수가 나왔다.

작품의 기초 아이디어는 음이 가진 배음과 주파수(Hz)라는 본질을 활용하는 스펙트럼 음악으로 분류할 수 있다. 바스 비허르스(지휘)와 클랑포룸 빈은 보통 불편한 소리로 분류하는 음과 음 사이의 ‘미분음’을 우리가 잘 아는 익숙한 소리에서 찾아 들려주었다. A음을 조율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듯, 같은 음이라고 취급해 오던 미세한 차이의 여러 주파수가 동시에 울린다. 서로 다른 조율법이 동시에 울려, 작은 주파수 차가 만들어 내는 묘한 진동을 감상할 수 있다. 악단이 2004년에 발매한 음반으로도 감상할 수 있다. 기자는 공연 전에 이 음반을 들어봤지만, 24대의 악기가 만들어 내는 울렁거리는 주파수의 진동, 살결이 떨릴 정도로 실제 공기가 울리는 현장감은 실황으로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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