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무용수 조연재, 춤으로 지은 감정의 이름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1월 13일 9:00 오전

IN DANCE

 

춤으로 지은 감정의 이름들

발레 무용수 조연재

 

빠른 승급 뒤에 숨은 성실한 노력, 국립발레단의 명작에는 그녀의 땀방울이 있다

 

 

왕자를 사랑해 뭍으로 올라온 인어공주는 시종일관 불안하다. 어색한 그 심리가 토슈즈를 신은 채 흔들거리는 무용수의 몸짓에서 전달된다. 왕자의 마음을 얻지 못한 인어공주는 네 살배기 아이처럼 바닥에 앉아 옷을 찢어 벗는다. 휠체어에 올라탄 채 사랑의 처연한 좌절을 겪는 인어공주. 이어지는 그의 독무는 처절함 그 자체다. 지난해, 국립발레단의 화제작이었던 ‘인어공주’(안무 존 노이마이어)에서 조연재가 보여준 인어공주는, 흔히 다른 발레 작품에서 만나보지 못한 감정적 동요를 일으켰다.

“조연재는 인어공주의 중층적인 감정적 혼란을 세계 초연에 관여한 무용수처럼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 ‘인생작’을 만난 환희가 조연재의 일거수일투족에 함께 했다.” (2024년 6월 호 ‘객석’ 발췌)

국립발레단 하반기 대표작에서도 조연재의 활약은 이어졌다. ‘라 바야데르’에서 사랑으로부터 버림받은 무희 ‘니키아’와 그 사랑을 가로채는 ‘감자티’ 역을 모두 소화한 조연재에게 “극 중 몰입력으로 독창적인 캐릭터를 창조해내, 2024년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무용수”라는 호평이 뒤따랐다.

조연재의 상승세는 2년 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2022년 12월 한국발레협회로부터 ‘프리마 발레리나 상’을 받고, 2023년에는 ‘고집쟁이 딸’ ‘호두까기 인형’으로 무대에 올랐으며, 그해에 ‘돈키호테’(키트리 역), ‘지젤’(지젤 역)의 주역으로 데뷔했다. 올해는 ‘백조의 호수’로 시작해 앞서 언급한 두 작품, ‘인어공주’ ‘라 바야데르’에서 활약했다.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라며 연속된 주역 발탁의 비결을 겸손하게 전한 조연재는, “다만 그 운으로 오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각 작품이 요구하는 것을 채우고, 그 과정에서 얻게 된 좋은 가르침을 내 것으로 만드려는 욕구는 강한 편이다”라고 덧붙였다. 2024년의 끝자락, ‘호두까기 인형’의 마리로 연말을 보내고 있는 그녀와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한창 ‘호두까기 인형’을 위한 일상을 보내는 때입니다. 해마다 오르는 이 작품에서 새롭게 느끼고 있는 것이 있다면?

올해는 처음부터 마지막 막이 닫힐 때까지를 생각해요. 마리라는 역할, 그리고 파트너와의 호흡, 춤을 그려나가는 방향을 맞추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립발레단 공연들이 관객의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단원으로서 실감했나요?

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따뜻한 호응과 박수로 늘 느껴왔지만, 요즘은 티켓팅 단계부터 느껴져요. 공연 티켓 구매 대기가 몇천 명이나 되더라고요. 제 가족들의 티켓조차 구하기 힘들고요.(웃음)

 

몰입의 바닷속에서 만난 표현의 자유

여러 공연 중, ‘인어공주’에서의 활약이 눈에 띄었습니다. 작품 준비 과정은 어땠나요?

인어공주가 괴로움을 많이 겪는 역할이어서, 심적으로 힘들긴 했죠. 그러나 그런 감정을 느끼고, 또 그 큰 무대에서 마음껏 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게 무척 즐거웠어요.

세계적인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의 춤을 익히면서 새롭게 얻은 영감 같은 것이 있었다면요?

역할과 극을 100% 이해할 때까지 계속 이야기하고, 설명해 주셨어요.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레 역할에 몰입하게 되고 또 감정이 올라오더라고요. 그 감정을 주어진 동작 안에서, 역할에 푹 빠져 자유롭게 표현하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늘 작품 속 인물을 잘 연기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인어공주’같이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은 처음이라 인상 깊었죠.

뛰어난 몰입력과 감정 표현력에 대한 호평이 많았어요. 평소 이 부분을 위해 노력하는 점이 있나요?

사실 제가 연기를 전공한 건 아니라, 연기력에 자신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는 없는데…. 그래도 작품을 만들고, 역할에 이입하는 과정을 배우면서 그 표현법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역할을 분석하면 그 성격이나 특성을 알 수 있게 되는데, 그걸 제 춤에 어떻게 녹여내야 하는지를 많이 연구하는 편입니다.

 

각별한 사랑의 여정

2018년, 국립발레단 준단원으로 입단한 조연재의 승급은 빠른 편이다. 2019년 정단원, 2021년 코르 드 발레, 2022년에 드미 솔리스트로 승급한 그는 2023년부터 솔리스트로 활동하며, 국립발레단의 차세대 대표 주자로 자리를 잡았다. 10대 초중반에 주요 성장을 이루는 발레계의 커리큘럼과 비교하면, 조연재는 대기만성형에 가깝다. 어린 시절부터 발레를 배웠지만, 공부하기를 권유하는 부모님 뜻에 따라 전공으로 택하진 못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 부모님을 다시 설득해 대학 입시를 보며 자신의 꿈을 이어올 만큼, 발레에 대한 그의 사랑은 각별했다.

발레의 어떤 점이, 어린 시절의 나를 매료했던 것 같아요?

몸으로 표현하는 걸 정말 좋아했고, 발레를 정말 사랑했어요.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이 좋았죠. 수학 공식을 배우고 나면, 문제를 풀 때 공식을 응용해서 답을 맞힐 수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선생님께 배운 동작을 지키면서 더 발전시키고 연구할수록 동작의 완성도가 높아지고, 또 몸의 선이 예뻐지는 것이 느껴졌죠. 그런 순간을 경험하면서,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빛나는, 승승장구하는 무용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이면의 힘든 점이 있겠죠. 요즘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무엇인가요?

저는 늘 어제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주는, 발전하는 무용수가 되는 게 목표인데 부상이나 컨디션 저하로 이걸 이루는 게 힘들 때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방법을 알기 위해 노력해요. 늘 최상의 컨디션을 가지기 위한 관리법을 연구하는 요즘입니다.

마지막으로, 무용수로서 가장 욕심내고 있는 역할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역을 추는 게 꿈이에요. 가장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면서 춤을 추는 순간은, 생각만 해도 행복하고 벅찹니다!

허서현 기자 사진 국립발레단

 

조연재(1995~) 국립발레단의 솔리스트로, 2018년에 입단했다. 동아무용콩쿠르 금상·서울국제무용콩쿠르 1위 등을 수상했으며, 2022년 한국발레협회 프리마 발레리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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