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태 개인전 ‘말과 글 : 그림으로 그림을 그리다’

그림으로 채우고, 글로 비우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7월 1일 12:00 오전


▲ 1 말과 글 – 아틀리에 풍경2 2013


▲ 2 말과 글2 2012


▲ 3 빛 속에서 2013

스쳐가는 사물, 지나쳤던 세계가 눈 안에 들어온다. 실체 그 너머의 상징과 은유는 작품 속에서 새로운 언어가 되어 다른 세상을 열어준다.

흘러가는 시간이 프레임에 담겼다. 유선태의 작품에서 일상은 상징과 은유가 된다. 작가의 눈에, 손에 붙잡힌 소재들은 개인적 경험에 의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는다. 작가의 자화상이자 내면을 비추는 거울 같은 작품들은 그것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인생들에게도 자연스레 동일한 가치를 전달한다.
사과·하늘을 날아다니는 책·자전거·우표…. 일상의 소재를 가지고 초현실적인 세계를 표현해온 유선태의 작품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사물들이다. ‘말과 글’이라는 주제 아래 다양한 오브제를 함축적으로 표현해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상상력으로 창조해낸 공간들과 명상의 한 자락을 회화와 조각들로 선보인다.
‘말과 글’ 시리즈를 통해 작가는 인생을 살아오며 마주한 것들, 삶의 크고 작은 화두들을 다양한 오브제에 담아 상징과 은유로 드러냈다.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으로, 퍼즐처럼 때로는 숨은 그림 찾기처럼 그 세계 안에 보이고 숨겨진 것들을 발견하노라면 복잡하게 엉킨 삶의 실타래가 단순하게 풀어지는 인상을 받게 된다.
청록 빛 하늘을 배경으로 삼은 거대한 사과가 한 눈에 들어오는 ‘말과 글 2’. 작품의 여백을 채우고 있는, 균열인 듯 무늬인 듯 느껴지는 지점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작가가 손수 써내려간 글자의 집합임을 발견하게 된다. “그림 그리는 일은 마음을 채우는 일, 글쓰기는 그 마음을 비우는 일”이라고 말하는 유선태는 내면에 떠오르고 가라앉는 심상을 작품 속에 담았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일상 가운데에 멈춰 서서 깊은 곳까지 떠올린 심연의 조각들을 글자 하나하나에 담아 그리듯 써내려갔다. 여기에 선악을 가르는 지표이자 중력을 통한 존재성을 상징하는 사과의 위 아래에 자리 잡은 남자의 모습은, 서로 다른 인생의 층위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떠올리게 한다.
유선태가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말과 글-아틀리에 풍경’ 연작은 그만의 유토피아를 한데 모아놓은 듯한 느낌이다. 작가는 흑백이 교차되는 바닥에 몇 년 전 선보인 자신의 작품 ‘말과 글-정물’을 중심에 두었다. 여기에 공중에 떠다니는 축음기와 소파, 한 그루 나무가 심겨진 책, 여기에 서로 다른 문 밖에 또는 문 안에 펼쳐진 자연의 풍경을 놓아 쉼과 이상향에 대한 단상들을 새롭게 발전시켰다.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남자의 모습이 인상적인 ‘빛 속에서’ 안에는 작가의 자아가 깊이 투영되어 있다. 어린 시절 자전거 여행을 좋아해 산과 들을 다니며 낯설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왔다는 작가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작품 안에 담은 듯보인다. 자신의 힘으로 힘겹게 밟아야 나갈 수 있는 자전거를 타고 있는 남자는 노란색의 좁은 길을 지나 넓은 길에 들어섰다. 그가 지나온 길에는 존재와 꿈, 인생을 살아오며 그가 떠올린 다양한 생각과 가치들이 다양한 오브제 속에 담겨 길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과학적이면서도 원시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자전거는 자신의 한계를 그대로 끌어안은 채, 길의 끝을 향해 달려간다.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 끊임없이 페달을 밟으며 살아가는 각각의 인생처럼. 그래서일까. “예술이라는 오른발과 삶이라는 왼발 중 어느 쪽을 먼저 내딛을 것인가?”라는 작가의 사유는 곧 오늘, 우리의 고민이기도 하다. 7월 13일까지, 문 화인아츠·가나아트 부산 두 곳에서 동시 전시.

글 김선영 기자(sykim@) 사진 문 화인아츠·가나아트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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