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이 함께한 대한민국 공연예술사 30년 2009

우리 베이스의 존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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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3월 1일 12:00 오전

2009
우리 베이스의 존재감

연광철이 ‘객석’의 표지에 등장한 2009년, 그는 서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됐고,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로 정명훈과 리사이틀을 열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연광철은 바그너 ‘파르지팔’ 국내 초연 무대에 올랐다

1996년 한국에서 ‘코시 판 투테’를 공연했고, 요즘은 ‘피가로의 결혼’ 준비에 여념 없어 보입니다. 매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참가하지만 바그너가 아닌 모차르트 오페라를 선호하나요? (1999년 12월호, 첫 내한 독창회 앞두고)
1999년 베이스 바리톤의 수명은 보통 65세 정도라고 해요. 저처럼 나이 마흔도 안 된 젊은 베이스를 독일에서는 ‘아기 베이스’라고 부르지요. 아직 젊으니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거쳐야 할 곳도 많습니다. 지금 제 나이에는 가벼운 음색의 모차르트가 적격이지요.
2014년 지금도 바이로이트에는 참여하고 있습니다. 모차르트·베르디·바그너 작품들도 여전히 부르고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나이가 쉰이 다 되어가니 젊은이들의 몫으로 맡기지만, 제게는 여전히 벨 칸토 작품들을 포함한 이탈리아 오페라들이 공연 스케줄에 잡혀 있습니다. 바그너 작품 또한 바이로이트를 중심으로 빈·베를린·뮌헨·뉴욕 등지에서 공연하고 있어요. 또한 오페라에만 치중하지 않고 독창회나 콘서트에도 여전히 많은 비중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과거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바그너를 가끔은 부르겠지만 정통 바그네리안이 될 생각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혹시 생각이 바뀌지 않았는지요? (2002년 11월호 베를린 현지 인터뷰에서)
2002년 그렇지 않습니다. 앞으로 노래하고 싶은 바그너 레퍼토리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탈리아 벨 칸토 레퍼토리에 대한 욕구도 크거든요. 바그너 오페라만을 부르는 성악가들이 있긴 하지만 저의 경우 너무 그쪽에 몰입하다 보면 벨 칸토만의 섬세하고 깨끗한 발성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2014년 위의 글로 답변이 될 것입니다.

오페라극장이라고 해서 그저 ‘예술적인’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거대하고 복잡한 조직 속에서 15년 넘게 노래를 불러왔는데, 오페라 가수로서의 삶이 지겹지는 않은가요? (2009년 12월호 커버 스토리에서)
2009년 어떤 가수들처럼 ‘바그너만 한다’ ‘모차르트만 한다’ 했으면 지겨워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경우에는 무척 다양한 작품을 하기 때문에 아직 지겹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가족이 이곳에 있다는 이유로 한국으로 시선을 돌릴 때도 있지만, 제가 있어야 할 곳이 무대 위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2014년 지금은 대학교수라는 ‘직’을 함께 하고 있지만, 무대에 서는 일은 여전히 저의 ‘업’이라고 생각합니다.

30년 전 연광철은 어떤 사람이었으며,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그때 성악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30년 음악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과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30년 전인 1984년을 기점으로 보자면 그로부터 10년 후인 1994년 베를린 슈타츠오퍼, 또 10년 후인 2004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를 했습니다. 지금은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작품을 올리고 있는데, 그동안 많은 오페라극장들을 다니면서 공연들을 했습니다. 가장 힘든 시간은 여전히 동양인으로서 서양의 오페라 작품들을 해나갈 때 발생하는 문제들과 부딪힐 때였습니다. 베이스이기 때문에 왕·제사장과 같은 역할들을 맡게 되는데, 외국 관객들에게 지나치게 낮선 모습이라는 것이 어려운 점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들을 음악적으로 해결해낼 때, 그런 어려운 점들이 갈채로 바뀔 때 기쁨을 느낍니다.
1987년 청주에서 오페라를 하기는 했지만 1994년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의 데뷔가 오페라 가수로서의 출발이라면, 10년의 준비 기간과 20년의 활동으로 지난 30년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20년 더 노래한다고 생각하면 활동하게 될 시간이 한참 남아있습니다. 지난 시간들의 경험을 토대로 더욱 발전된 무대에서 저의 본업에 충실할 생각입니다.

그해의 화제와 인물

유튜브가 2008년 12월, 온라인 오케스트라 프로젝트인 유튜브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연주자들이 자신의 연주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는 방식으로 오디션에 지원했으며 최종 합격자들은 이듬해 4월 카네기홀 무대에 올랐다.


▲ 명동 국립극장으로 쓰였던 건물이 복원되어 연극 전문 공연장인 명동예술극장으로 개관했다. 초대 극장장으로 구자흥이 임명됐다.

신종플루가 확산되면서 각종 문화예술행사가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가을을 앞두고 준비 중이던 고양호수예술축제·전주세계소리축제·거창국제연극제 외 266건의 지방자치단체의 축제·행사가 취소됐다.


▲ 첼리스트 장한나가 9월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장한나의 앱솔루트 클래식’을 통해 지휘자로 무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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