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의 탄생

황덕호의 JAZZ RECORDING HISTORY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8월 1일 12:00 오전

마음껏 즉흥연주를 펼쳐라

셸락 재질의 직경 7인치 원반이 1분당 78회전하면서 기록된 소리를 대략 3~4분 동안 재생하는 음반의 표준은 1925년에 이르러 정립되었다. SP(standard-playing records)라 불리던 이 음반은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한때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20년 넘게 음반 포맷의 표준을 결코 뺏기지 않았다.

하지만 78회전 음반은 처음 출현했을 때부터 그 한계가 아주 분명했다. 아무리 마이크에 의한 전기 녹음 방식이 개발되었다 하더라도 78회전 음반에서 재생되는 소리는 실제 소리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음량은 너무 작았고 음색에는 윤기가 없었다. 당시의 녹음과 재생은 실제 소리를 기록(record)할 뿐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78회전 음반의 또 하나 문제는 수록·재생 시간이 너무 짧다는 점이었다. 음반 한 면당 3~4분밖에 되지 않는 수록 시간은 음악의 흐름을 매번 끊어놓았다. 이러한 음반의 단점들을 고려할 때, 78회전 음반에 가장 맞지 않은 음악은 역시 긴 연주 시간 동안 감상해야 하는 고전음악이었다. 장시간의 교향곡과 오페라를 음반에 담고 싶었던 음반 제작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이 한계를 극복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사실 녹음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은 녹음이 시작되었던 시기부터 계속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말하면 ‘소리의 주파수를 어느 범위까지 담을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이 숙제는 1930년대부터 급속한 발전을 이뤘고, 1945년 영국의 데카 레코드는 ‘전 주파수 대역 녹음’(FFRR: Full Frequency Range Recording)이란 용어를 음반 재킷에 표기해 홍보하기 시작했다. 녹음이 시작된 지 거의 반세기 만에 그야말로 비약적 발전을 이루게 된 것이다. 패망한 독일이 주로 사용하고 있던 마그네틱테이프가 신속히 보급되면서 이 기술은 3~4년 뒤 거의 모든 녹음에 적용될 준비를 갖추었다.

이제 문제는 ‘생생한 소리를 어떻게 장시간 동안 음반에서 재생할 수 있는가’만이 남았다. CBS 레코드의 엔지니어 페터 골트마르크는 어느 날 토스카니니가 지휘한 NBC 교향악단과 호로비츠가 협연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경쟁사 RCA의 78회전 음반으로 들으면서 수시로 악흥을 깨고 음반을 뒤집어야 하는 번잡함을 해결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3년 뒤, 1인치에 85줄 들어가던 소리골을 300줄로 촘촘히 늘리고 음반의 직경도 7인치에서 12인치로 늘리되 재질을 셸락에서 플라스틱 비닐로 바꿔 음반 무게를 줄이고, 동시에 깨지지 않되 연성이 된 음반 표면을 위해 턴테이블의 암의 무게를 1/100 수준으로 줄여 새로운 음반을 틀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음반은 분당 33과 1/3회전하면서 음반 한 면당 25분간 재생할 수 있었는데, 여기에 초점을 맞춰 CBS는 이 새 음반에 LP(long-playing record)라는 이름을 붙였다. CBS는 1948년 브루노 발터가 지휘한 뉴욕 필하모닉과 나탄 밀스타인이 협연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첫 LP로 제작했고, 2년 뒤 경쟁사 RCA도 대세를 인정하고 LP 생산에 들어갔다. 몇 년 후 증명되었듯이 음향의 비약적인 발전, 수록 시간의 확장으로 음반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며 특히 클래식 음반 시장의 성장은 두드러졌다. CBS 레코드의 클래식 레이블인 ‘마스터워크스’의 책임자 고더드 리버슨은 LP의 성공으로 CBS 레코드 전체 대표로 승진했다.

하지만 LP의 등장을 단지 클래식 음악인들만 환영했던 것은 아니다. 평소 자신들의 즉흥연주보다 턱없이 짧게 녹음해야 했던 기존 녹음 관행이 이제야 깨졌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던 사람들은 바로 재즈 음악인들이었다. 아울러 LP의 탄생으로 클래식 음반 시장에서 가능성을 확인한 CBS는 이 새로운 매체로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음악으로 재즈를 주목하게 되었다. 그래서 CBS 산하 레이블인 컬럼비아는 1950년대에 유독 재즈에 적극적인 유일한 메이저 음반사였다.

78회전 음반에 자신의 음악을 온전히 담지 못해 1943년부터 매해 카네기홀에서 연주회를 가졌던 듀크 엘링턴과 재즈에 관심을 보인 CBS의 만남은 그래서 필연적이었다. 발터와 밀스타인의 멘델스존 협주곡을 첫 번째 LP로 녹음한 CBS 마스터워크스는 418번째 LP로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녹음했고, 여기에는 이미 엘링턴이 1930년대에 발표한 4개의 작품이 8~15분의 긴 길이로 다시 연주되었다. 사운드는 종전의 녹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화려했고, 독주자들은 자신의 유려한 기량을 마음껏 뽐냈다.
대표적인 재즈 독립 레이블 블루노트도 1951년부터 LP를 생산했다. 단지 당시까지 LP의 사이즈가 통일되어 있지 않아 블루노트는 CBS보다 2인치 작은 10인치 LP를 생산하면서 과거 1940년대 녹음했던 모던재즈의 명곡들을 아티스트별로 LP에 담았다. 과거 78회전 음반 4장을 모아야 들을 수 있었던 곡들이 LP 한 장으로 해결되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 LP의 혁신을 실감할 수 있었던 곡은 패츠 나바로 추모 앨범에 담긴 하워드 맥기 섹스텟의 1948년 녹음 ‘Double Talk’였다. 이전에 78회전 시절에는 도중에 음악이 멈춰지고 음반을 뒤집어 ‘김새게’ 들어야 했던 것과는 달리 LP는 맥기와 나바로가 펼치는 숨 막히는 트럼펫 배틀을 5분 32초 동안 끊임없이 생생하게 전달해주었다. 이후 블루노트는 1953년부터 12인치 LP를 위한 본격적인 녹음을 시작했다.

CBS에서 듀크 엘링턴이 LP 녹음을 남기자 그 사실을 가장 부러워한 인물은 아직 신인에 불과하던 마일스 데이비스였다. 그는 자신이 속한 재즈 독립 음반사 프레스티지의 밥 웨인스톡을 끈질기게 설득해 1951년 혁신적인 LP 녹음을 남길 수 있었다. 디지 길레스피와 찰리 파커 이래 3분의 벽에 늘 갇혀 있던 비밥은 마일스의 이 녹음을 통해 자신의 본 모습을 제대로 기록할 수 있었다. 종종 간과되지만 이 점은 마일스 데이비스의 혁신의 중요한 일면이었다.

이달의 추천 재즈음반

<a href="#" data-lightbox="image-1" title="듀크 엘링턴 ‘Masterpieces By Ellington’
RCA/66607-2|1941년 4월 녹음|
CBS Masterworks/ML 4418|1950년 12월 녹음
듀크 엘링턴(피아노·지휘·편곡)/빌리 스트레이혼(피아노, 편곡)/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
▲ 듀크 엘링턴 ‘Masterpieces By Ellington’
RCA/66607-2|1941년 4월 녹음|
CBS Masterworks/ML 4418|1950년 12월 녹음
듀크 엘링턴(피아노·지휘·편곡)/빌리 스트레이혼(피아노, 편곡)/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

<a href="#" data-lightbox="image-1" title="패츠 나바로 ‘Memorial Album’
Blue Note/LP 5004|1947~1949년 녹음
패츠 나바로·하워드 맥기(트럼펫)/하워드 맥기 섹스텟/태드 데머런 섹스텟/버드 파월스 모더니스츠 외”>
▲ 패츠 나바로 ‘Memorial Album’
Blue Note/LP 5004|1947~1949년 녹음
패츠 나바로·하워드 맥기(트럼펫)/하워드 맥기 섹스텟/태드 데머런 섹스텟/버드 파월스 모더니스츠 외

<a href="#" data-lightbox="image-1" title="마일스 데이비스 ‘Dig’
Prestige/LP 7012|1951년 10월 녹음
마일스 데이비스(트럼펫)/소니 롤린스(테너 색소폰)/월터 비숍 주니어(피아노)/아트 블레이키(드럼) 외”>
▲ 마일스 데이비스 ‘Dig’
Prestige/LP 7012|1951년 10월 녹음
마일스 데이비스(트럼펫)/소니 롤린스(테너 색소폰)/월터 비숍 주니어(피아노)/아트 블레이키(드럼) 외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