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말러와 우주

교향곡 3번에 담긴 구스타프 말러의 우주론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월 1일 12:00 오전

오랜 세월 물리화학 분야를 연구해온 박승철 교수에게 일찍이 19세기 말
우주와 인류와 물질을 노래한 말러 교향곡 3번은 그야말로 ‘연구대상’이다

서울시향과 KBS교향악단, 그리고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까지 신년을 모두 말러 교향곡으로 맞이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특히 서울시향은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지휘로 올해 말러 2번·5번을 기획하고 있다. KBS교향악단의 새 음악감독 요엘 레비는 애틀랜타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말러 전곡을 녹음한 상당한 역량의 소유자로, 신년은 새로운 말러의 연주가 기대되는 한 해이기도 하다. 말러에 대해서는 애호가와 비애호가 사이 극단적인 평이 엇갈리긴 하지만, 필자도 40여 년 이상 말러의 교향곡을 즐겨온 말러 애호가 중 한 명이다.

필자가 자주 즐겨 듣는 말러의 교향곡 중 하나가 3번이다. 이 교향곡은 말러의 우주론적·존재론적인 곡이라 말하고 싶다. 학자는 논문으로서 자신의 학설을 설파하고, 판사는 판결문으로서 자신의 판결을 정당화하듯, 작곡가는 자신의 음악으로 자아를 표현할 수 있다. 말러 자신이 이 교향곡 3번에 대해 자신의 우주론·존재론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단지 이 교향곡에만 6개 악장 모두 의미 있는 표제를 붙였다. 필자가 교향곡 3번에 각별한 흥미를 갖는 이유는 이 곡에서 자연과학도로서 우주의 생성과 진화의 과정을 들을 수 있고, 궁극에는 존재의 문제와 구원의 길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목신 판이 깨어나고, 여름이 행진해오다’, 1악장의 호른으로 시작된 팡파르는 우주의 창조를 알리는 서막이라 할 수 있다. 이어지는 고요한 적막은 우주의 대폭발을 암시하는 암흑이라 할 수 있다.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는 우주 생성의 대폭발이 일어나며 혼돈의 세계가 전개된다. 이러한 엄청난 대폭발을 연주하는 대규모 편성의 오케스트라는 이제까지 존재치 않던 새로운 음악이고 말러 이외의 어느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음악의 새로운 영역이다. 대폭발 후 전개되는 소립자간의 결합, 베이스 드럼으로 표현되는 진동과 요동은 원자의 생성, 분자로의 진화를 암시한다. 1악장 후반부는 질서 정연한 행진곡으로 표현된다. 이는 전반부의 혼돈에서 질서로 안정화되어가는 과정이다. 이는 디오니소스적인 혼돈에서 아폴론적인 구조로 변환하는 것이다. 분자에서 거대분자로 진화하고 무생물의 표상인 바위로까지 전개된다. 이러한 분자는 DNA, 그리고 RNA의 결합으로 전개되며 궁극적으로 생명을 잉태한다.

‘초원의 꽃들이 내게 이야기하는 것’, 2악장에서 목관과 현의 앙상블은 무생물에서 식물로 그리고 꽃으로 진화함을 들려준다. 자연의 충만함, 주기적으로 보여주는 자연의 아름다운 질서, 자연의 진화 과정을 표현한다. ‘숲 속의 짐승들이 내게 이야기하는 것’, 3악장에서 조류가 출연하고, 뻐꾸기와 나이팅게일의 죽음을 애도하는 선이 표현된다. 이들의 죽음 뒤에 나타날 악, 동물의 야수성, 약육강식의 혼돈과 무질서의 새로운 진화 과정을 보여준다. 포스트 혼으로 예시되는 인간의 출연이 숙연함을 불러일으키지만 이내 문명의 도래를 예측하는 광풍으로 3악장을 종결한다.

‘인류가 내게 이야기하는 것’, 4악장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두 개의 노래를 가사로 사용했다. “오 인간이여! 주목하라! 깊은 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나는 잠들었고 이제 그 깊은 잠에서 깨었고. 세상은 깊다, 밝은 대낮이 기억하는 것보다 더 깊다. 오, 인간이여! 잘 들어보라! 밤의 고통(고뇌)은 깊다. 그러나 기쁨은 고통보다도 더 깊다! 고통은 말한다: 사라져라! 모든 기쁨은 영원을 원한다, 깊고도 깊은 영원을 원한다.” 자연의 단계에서 인간의 단계로, 그리고 물질에서 영혼으로 진화하고 있다. 존재의 깊이와 휴머니티를 노래한다.

‘천사들이 내게 이야기하는 것’, 5악장은 인간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죄의 사함을 받아야 하는데 말러는 이를 천사의 노래와 베드로의 회계를 통해 보여준다.

‘사랑이 내게 이야기하는 것’, 6악장은 바이올린의 G선을 주요 주제로 구원을 향한 기도로 시작된다. 이어서 갈등·고통·혼돈이 다시 표현되다. 이를 극복하는 우주적 사랑, 아가페적 사랑만이 구원과 영생으로 가는 길로 클라이맥스의 대단원을 마감한다.

대다수 음악학자들은 이 3번 교향곡을 말러에게 커다란 영향을 준 쇼펜하우어의 ‘전체적 의지’와 연관 지어 전 악장을 일관되게 해석하고 있다. 19세기 말, 빅뱅이론도 없었고 양자역학도 아직 태동되지 않아 원자·분자의 개념도 모호하던 시절이다. 이 교향곡은 우주의 생성과 진화의 과정, 궁극에는 존재의 문제와 구원의 길을, 시공을 초월하여 영생으로 통하는 우주의 서사시라 할 수 있다.


▲ 박승철 – 현 학교법인 경기학원·경기대학교 이사장, 성균관대학교 화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의 IIT에서 물리화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케임브리지 ·에모리 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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