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토 무통 로칠드의 아트레이블

예술을 담은 와인 한 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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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월 1일 12:00 오전

화가와 와인. 이 둘이 만난 영감의 산물은 1945년부터 매해
샤토 무통 로칠드의 레이블에 기록되고 있다

글 박성희(KTX 매거진 편집장) 사진 아영FBC

피카소, 샤갈, 앤디 워홀, 키스 해링, 살바도르 달리, 프랜시스 베이컨, 제프 쿤스.

이 아티스트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현대미술의 거장이라는 점과 더불어 이들이 갖는 또 하나의 공통분모는 바로 프랑스 보르도의 일등급 와이너리 샤토 무통 로칠드(Château Mouton Rothschild)의 레이블 작업에 참여한 작가라는 점이다. 보르도 지역의 일등급 와인 중 하나인 샤토 무통 로칠드는 1945년부터 매년 유명작가들의 오리지널 작품으로 라벨을 제작해왔다. 오늘날 시도되는 다양한 아트레이블의 시초이자 가장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당대의 작가들이 무통 로칠드의 레이블 작업을 하면서 돈 한 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돈 대신 와인으로 받게 되는데, 자신이 작업한 해의 무통 로칠드 다섯 케이스와 다른 빈티지의 무통 로칠드 다섯 케이스, 이렇게 총 열 케이스의 와인이 작업의 대가이다. 와인 한 케이스에는 12병의 와인이 들어가므로 120병의 무통 로칠드 와인이 작품비를 대신한다. 신기하게도 지금껏 단 한 사람의 작가도 이 거래조건을 거부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화가와 무통 소유자와의 우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이 거래는 상호 독자성을 존중하고 인정했다는 것도 특징이다. 모든 화가는 와인, 와인을 마시는 즐거움, 그리고 무통 로칠드 가문의 문장인 양을 주제로 자신의 영감에 따라 자유로이 작업을 한다. 무통의 소유자는 이러한 작업이 무통의 와인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예술적 판단에 입각해 완성된 그림을 거부할 권리를 갖는다고 한다.

 

와인병에 누드 크로키가?

무통 로칠드에 1973년은 특별한 해다. 1855년 보르도 특급와인 등급에서 2등급 판정을 받은 무통 로칠드가 오랜 기다림과 노력 끝에 마침내 1등급으로 승격하게 된 해이기 때문이다. 1855년에 정해진 보르도의 등급체계는 오늘날까지 그대로 지켜지고 있는데, 오직 단 한 번 예외적으로 등급이 변경됐다. 바로 1973년 무통 로칠드의 1등급 승격이었다. 이 뜻 깊은 해의 레이블은 피카소의 작품이 장식하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1973년은 피카소가 세상을 떠난 해이기도 하다. 때문에 1973년 피카소의 작품이 그려진 레이블 위에는 “피카소를 추모한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1993년에는 아트레이블로 인한 한바탕 소동이 빚어지게 된다. 발튀스가 그린 소녀의 누드 크로키 레이블이 문제가 되어 미국에서 판매 금지처분이 내려진 것이다. 와이너리 측에서는 즉시 미국에 수출된 1993년 빈티지를 모두 수거해 아무 그림도 없는 레이블을 붙여 보냈는데, 오늘날 그림이 없는 1993년 무통 로칠드는 와인 애호가의 주요 수집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이유는 다르지만 1978년 빈티지도 두 종류의 레이블을 사용한 해다. 캐나다 화가 장 폴 리오펠이 두 가지 그림을 그려 보여줬는데 와이너리 소유주인 필리프 남작이 둘 다 마음에 들어 했다. 이에 따라 그해 생산량을 반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두 개의 레이블에 나누어 담았다고 한다.

21세기를 여는 2000년. 무통 로칠드는 이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기 위해 다른 해와 차별화된 독특한 병을 만들었다. 레이블을 붙이지 않고 가문을 상징하는 아우크스부르크의 양 모양을 병에 새겨 넣어 병 자체를 예술품으로 만들었던 해다. 창립 150주년을 맞이한 2003년 레이블 역시 아티스트를 영입하는 대신 샤토 매입 당시 계약서를 바탕으로 그 위에 창립자인 나다니엘 남작의 초상화를 넣어 150주년의 의미를 더했다. 2004년에는 영불 수교 100주년을 기념해 영국의 찰스 왕세자가 레이블을 그리기도 했다.

 

중국 미술가 쉬레이, 라벨 위에 올라서다

무통 로칠드는 2008년 산 와인의 레이블 디자이너로 중국의 화가 쉬레이를 선정했다. 성장하는 중국 시장의 중요성을 염두에 둔 선택으로 보이다. 이 작가는 양쪽으로 나눠진 달과 포도나무 사이에 무통 로칠드의 상징인 새끼양의 이미지를 재해석해 새롭게 표현했다. 이는 인간과 문화를 이어주는 위대한 와인의 역할을 의미한다고 한다. 2010년 레이블은 미국 작가 제프 쿤스에 의해 이루어졌다.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의 풍선 꽃, 풍선 강아지 작품으로 잘 알려진 제프 쿤스는 이탈리아 폼페이의 프레스코 벽화 중 ‘비너스의 탄생’을 바탕에 깔고 그 위에 가는 선으로 돛단배와 태양 등을 그려넣었다. 이어 2011년 작가로 선정된 프랑스의 화가이자 조각가 기 드 루주몽은 포도나무 가지의 성장과 와인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이처럼 선정한 작가들의 면면을 보면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들을 고루 등용했으며, 화가뿐 아니라 설치작가·조각가 등 예술의 분야에도 경계를 두지 않는다.

오랜 시간 샤토 무통 로칠드가 이뤄낸 아트레이블의 궤적은 현대미술의 전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해 여름 무통 로칠드 와이너리 내에는 아트레이블 전용 갤러리가 개관했다. 무통 로칠드는 1981년부터 전 세계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아트레이블 전시회를 진행해왔다. 이번 전용 갤러리 개관은 아트레이블의 역사와 예술성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겠다는 의도다. 전용 갤러리 개관과는 별도로 세계 각국을 순회하는 아트레이블 전시는 계속해서 진행할 것이라고 한다.

와인 양조 후 2년의 숙성 기간을 거쳐 세상에 나오는 무통 로칠드의 와인은 올해 2012년 와인을 출시하게 된다. 이 새로운 빈티지의 레이블 작가로는 과연 누가 선정될까? 매년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에 의해 새 옷을 갈아입는 무통 로칠드의 아트레이블은 많은 와인 애호가들이 무통 로칠드의 새로운 빈티지를 설레며 기다리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다.


▲ 1993년 발튀스


▲ 1978년 장 폴 리오펠


▲ 2008년 쉬레이


▲ 2010년 제프 쿤스


▲ 2011년 기 드 루주몽이 디자인 한 레이블

박성희는 ‘KTX매거진’ 편집장이다. 와인 전문지 ‘와이니즈’ 수석기자와 ‘와인앤시티’
편집장을 역임하며 전 세계 1백여 개 와이너리를 방문,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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