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향 유럽 투어 동행 취재

‘먼 길’을 향한 첫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3월 1일 12:00 오전


▲ 유럽 4개 도시 투어의 시작점이이었던 빈 무지크페라인의 황금홀

고된 일정으로부터 체력을 보호하고, 낯선 공연장의 음향에 적응하기 위해 순발력을 발휘하고,
모든 무대에서 최선의 연주를 선보이려 노력했던 100인의 ‘직업예술가’들과 떠난 값진 여정.
그 끝에서 들려온 그들의 진짜 사운드

여러 해외 취재를 다녀봤지만 오케스트라의 ‘투어’를 쫓은 건 처음이었다. 유럽 도착 후 전세버스를 타고 도시와 나라의 경계를 넘나들며 하루 걸러 무대에 오르는 여행.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어 전 세계 음악 도시들에서 연주를 선보이고 싶다는 ‘로망’은 현실이 됐다. 유난히 좁고 딱딱한 버스 의자 위에서, 전혀 다른 의미의 ‘현실’….
김대진이 이끄는 수원시립교향악단이 삼성전자의 후원으로 지난 2월 빈·부다페스트·프라하·뮌헨, 유럽 4개 도시 투어에 올랐다. 도시의 낭만을 받아낼 감성만큼이나 이동·리허설·공연으로 가열차게 이어지는 스케줄을 따라잡기 위한 체력이 요구된 여정이다. 그 시작점은 오스트리아 빈의 무지크페라인이었다.
빈 도착 바로 다음 날인 2월 7일 오전부터 리허설이 시작됐다. 100여 명 단원들과 그들의 악기를 고이고이 실은 여러 대의 버스들은 일찍이 숙소를 떠났다. 기자는 리허설 시간에 맞춰, 20여 분을 걸어 무지크페라인에 도착했다. 관람객이 드나드는 ‘대문’은 예상대로 굳게 닫혀 있었다. 마침 건물 뒤쪽에서 대형 악기를 실은 컨테이너가 화물전용 엘리베이터에 오르기 위해 대기 중이었다. 그렇게 악기들과 함께 뒷문으로, 아무도 없고 아무 소리도 없는 무지크페라인 안으로 입성했다.
공연이 열릴 1,700여 석 규모의 황금홀로 직행하는 대신, 나는 엉뚱한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클래식 음악의 주무대이자 랜드마크, 또한 증인이었던 이 역사적인 공간을 전세 낸 듯 홀로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1870년 개관 이후 수많은 작곡가와 지휘자, 연주자들이 거쳐간 무지크페라인은 빈 필 신년음악회의 장소로서 매년 1월 1일 전 세계 음악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빈 필이 상주하는 공간이니 빈 필 사무실도 무지크페라인에 위치했다. 발길 따라 우연히 닿은 어느 작고 조촐한 사무 공간. 그 게시판에 붙은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어마어마한 일정표가 이곳이 빈 필 사무실임을 알려줄 뿐이다.

빈 필 상주공연장, 무지크페라인에 입성하다
대리석 계단과 미로 같은 복도를 오가며 한참을 떠돌다 황금홀의 로비에 다다랐다. 무겁게 닫힌 문에는 동그라미며 네모며 작고 귀여운 창이 나 있다. 창을 통해 바라본 홀 안에서 김대진은 무언가를 차분히 설명하고, 악기 세팅을 막 마친 듯한 단원들은 그 말을 경청했다. 이날의 프로그램은 최성환의 ‘아리랑’, 손열음 협연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으로 구성됐다. 김대진은 손열음과의 리허설 대부분을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호흡을 맞추는 데 할애했다. 사제지간이 지휘자와 협연자로 만나자 서로를 향해 허리를 굽히고 또 세우는 모습이었다. 제자를 향해 한껏 몸을 기울인 김대진은 각 악장의 런스루가 끝날 때마다 손열음에게 특정 패시지를 독주로 연주하게 하고, 특정 파트의 단원에게 이를 경청하도록 했다. 그렇게 호흡을 맞추고 또 맞추며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카오스 행진’이 점차 완성되어갔다. 복잡다단한 화성과 리듬의 여러 덩어리들, 그러나 이 카오스들이 마치 행진하듯 일정하게 발맞춰 어디론가 향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순간의 전율. 관객이 프로코피예프 협주곡에 빠져드는 이유가 거기 있다.
손열음의 팬이라면 그녀의 프로코피예프 협주곡으로 2번을 떠올리기 쉬우리라. 2번은 손열음에게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준우승을 안겨줬다. 자신의 리허설이 끝난 후 객석에 자리한 손열음에게 그녀의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3번은 처음 듣는다며 언제 익혔는지를 묻자 “어려서는(?) 꽤 자주 공연했어요”라고 짧게 답했다. “정말 좋은 곡이죠?” “네. 정말 좋죠.” 부연설명이 필요 없는 이 명곡을 손열음의 연주로 한국에서 들을 날은 언제일까.
한편 손열음과 ‘합’을 맞추는 데 주력했던 수원시향은 차이콥스키 교향곡 리허설 순서가 되자 낯선 공연장의 음향 조건을 느끼고 또 적응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수원시향 부지휘자 정주영은 객석 이곳저곳을 오가며 음향을 꼼꼼히 살피고, 연주가 잠깐이라도 멈추면 그 틈에 지휘자에게 다가가 음향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홀 자체를 하나의 악기라 했을 때,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은 해상도가 높고 그 자체의 볼륨이 크다. 베를린 필이 무지크페라인에서 연주할 때는 평소 볼륨의 반으로, 반대로 빈 필이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연주할 때는 평소 볼륨의 두 배로 연주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예술의전당·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스스로의 소리를 모니터링하며 정돈해온 수원시향의 소리는 전에 없이 크고 명징했다. 특히 현악기 군은 황금홀이라는 제2의 악기를 어렵지 않게 다루는 모습이었다.
드디어 본 공연이 시작됐다. 현지 관객들로 꽉 찬 객석엔 백발이 성성했다. 유럽의 공연장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다. 수원시향이 첫 곡으로 선보인 최성환의 ‘아리랑’은 약간의 변주를 삽입했을 뿐 아리랑의 선율을 그대로 살린, 말 그대로 ‘관현악 아리랑’이었다. 현지 관객의 반응은 다소 덤덤했다. 이어진 손열음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몸에 붙는 빨간 드레스에 갈색 단발머리를 찰랑이는 젊은 피아니스트. 덤덤히 객석을 지키던 어르신들이 눈을 크게 뜨고 허리를 세워 정좌했다.
손열음의 프로코피예프는 구조적이다. 쌓아 올리는 과정이 한눈에 보인다. 눈에 보이고 귀에 잡히니 그녀가 이끄는 대로 그렇게 따라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피아노의 타악기화’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대신 조밀한 단위로 쪼개진 스케일과 옥타브의 그룹들은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느냐” 묻고 싶을 만큼 하염없지만 흥미로운 행진이었다. 3악장의 대미를 앞둔 양손 스케일의 군집에서 손열음 특유의 ‘고무손’이 등장했다. 마치 뼈가 없는 듯 활처럼 휜 손가락은 건반에 착 밀착됐다. 눈앞에 놓인 피아노에서는 스케일 연주가 아닌 하프의 글리산도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연주가 끝나기 무섭게 빈의 점잖은 청중이 “와아아!” 화끈한 환호로 답했다.
중간 휴식 후 이어진 수원시향의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도 프로코피예프 못지않은 강렬함을 선사하며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뿌연 막을 거둬낸 듯, ‘쨍’하면서도 두꺼운 사운드가 우선 귀를 사로잡았다. 굵은 심지가 박힌, 옹골찬 현이었다. 현악기 군이 유니슨으로 연주할 때면, 심지어 트레몰로에서조차 한 악기처럼 들렸다. 오늘날 수원시향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 이 탄탄한 합주력이다.
금관의 선전도 눈에 띄었다. 지난달 인터뷰에서 “우리 금관주자들은 아주 젊다. 시기가 잘 맞아 좋은 주자들을 영입할 수 있었다”라던 김대진의 말처럼, 젊음과 과감함이 객석에까지 전달됐다. 그러나 여전히 크게는 현과 관, 작게는 목관과 금관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수원시향의 젊은 금관주자들의 패기와 열정이 요구되는 건 사실이다.


▲ 무지크페라인 외경


▲ 부다페스트 이탈리아 문화원

빈·부다페스트·프라하·뮌헨, ‘직업예술가’의 삶에 동승하다
빈에서의 성공적인 연주를 마친 수원시향은 바로 이튿날인 8일 오전, 다음 연주 도시인 부다페스트로 향했다. 내겐 기내용 작은 트렁크와 노트북 가방이 전부였지만, 푼 지 얼마 되지 않은 짐을 다시 싸는 내내 푸념이 새어 나왔다. 호텔 로비에 내려와보니 수원시향 단원들의 양손엔 7박 8일 일정을 책임질 일상복과 연주복이 담긴 커다란 트렁크, 목숨처럼 아끼는 악기가 들려 있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는 고속도로를 달려 4시간 정도가 소요됐다. 체코 국적의 전세버스는 그 의자가 어째 우리나라 시내버스의 것보다도 작고 딱딱했다. 빈 시내를 벗어나자 버스 안의 작은 모니터에서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 ‘글루미 선데이’가 상영됐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바이올린의 그 유명한 선율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아!” “왜 하필!”, 탄식이 터져 나왔다. 기자가 동승한 버스에는 마침 현악 주자들이 타고 있었다. 음악을 넘어선 ‘직업의 세계’, 그 일면이었다. 글 쓰는 게 업인, 게다가 한창 마감 중인 기자에게 누군가가 소설책을 읽어보라며 권한다면 “아, 왜 하필 지금”이란 소리가 절로 나왔으리라.
공교롭게도 부다페스트에서의 첫 식사를 위해 단원들이 찾아간 식당에서, 이번엔 집시 현악 앙상블이 기다리고 있었다. 피곤한 기색으로 도착한 식당 손님들이 오케스트라 단원이란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집시 밴드의 연주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식당에 들어설 때만 해도 ‘왜 하필’이란 표정이던 단원들은 하나 둘 몸을 틀고 의자를 돌려 집시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에 빠져들었다. 신이 난 바이올리니스트가 ‘모태’ 비르투오시티를 뽐내고, 단원들은 혀를 내두르며 환호를 보냈다. 연주가 끝난 후에도 기자와 같은 식탁에 앉았던 바이올린 단원들은 ‘악기’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 악기, 소리가 참 좋네.” “나 아는 분이 유학 시절에 100만 원을 주고 집시에게 바이올린을 샀는데, 그 악기도 소리가 정말 좋더라.” 그들의 화제는 쉬이 음악으로 귀결됐다.
부다페스트의 숙소에 다시 짐을 풀고 또 이튿날, 빈에서와 마찬가지로 리허설과 본 공연 일정이 이어졌다. 수원시향은 이번 투어를 위해 1,200석 규모의 리스트 음악원 홀을 대관하려 했으나 마침 내부 공사 막바지에 날짜가 걸려 계약을 하지 못했다. 대신 택한 이탈리아 문화원은 전문 콘서트홀이 아닌 대형 강당이었다. 다소 어수선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김대진과 수원시향 단원들은 무지크페라인에서와 마찬가지로 합주에 완성을 더하고 음향을 손보는 꼼꼼한 리허설을 이어갔다.
“뮌헨까지, 마지막 무대까지 최선의 연주를 선보여야 합니다.” 리허설의 순간순간, 김대진이 단원들의 눈과 마음을 다잡았다.
리허설 중 잠시 주어진 쉬는 시간에 부다페스트 이탈리아 문화원의 고풍스런 실내 장식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복도 저쪽에서 굵직한 비올라 소리가 들려왔다. 객원수석 자격으로 이번 투어에 함께 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한국계 비올리스트 마빈 문이 텅 빈 복도를 천천히 걸으며 제 소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이후 문화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귀 기울여보니, 그 짧은 휴식 시간에도 악기를 놓지 않는 수원시향 단원들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오케스트라’가 단순한 직장이라면, ‘오케스트라 단원’이 단순한 직업이라면 한 명 한 명의 존재감은 평균 100분의 1 정도일 것이다. 그러나 텅 빈 공간을 찾아 빈 벽을 마주하고 악기를 매만지는 단원들의 손길은 분명 ‘직업’ 그 이상의, 음악가의 것이었다. 단 하나의 완성된 존재감이었다.
고된 일정으로부터 체력을 보호하고, 매일 다른 공연장의 음향에 적응하기 위해 집중력과 순발력을 발휘하고, 모든 무대에서 최선의 연주를 선보이려 노력했던 100인 ‘직업예술가’들과의 여정. 부다페스트에서의 성공적인 본 공연을 끝으로, 나는 그들과 작별을 고했다. 수원시향은 빈·부다페스트에 이어 프라하·뮌헨으로의 멋진 여행을 이어갔다.

글 박용완 기자(spirate@gaeksuk.com) 사진 수원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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