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자라섬 페스티벌의 빗속 공연

폭우를 이겨낸 음악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3월 1일 12:00 오전

파란 하늘과 초록의 잔디, 따스한 햇살을 벗 삼아 음악을 감상하는 것은 진정 매력적인 일이다. 야외에서의 공연은 해를 더할수록 잦아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한결같은 물음으로 기획자들의 기대와 구상을 방해하곤 한다. “비가 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야외 공연의 성공 여부는 하늘이 명령하는 날씨가 가늠하고 있다. 야외에 무대를 설치하는 것은 악천후를 극복하고, 어떤 조건에서도 공연이 가능할 수 있게끔 하는 특수한 목적과 당위를 지니고 있다. 이 목적과 당위를 채우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장애 요인이 바로 ‘비’와 ‘바람’이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 완벽한 준비 상태를 기했을지라도 공연 당일 찾아오는 불청객 ‘비’와 ‘바람’의 등장은 우리들의 열망과 노력을 순식간에 앗아버리기 때문이다.
2004년 9월, 제1회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은 비와 공연의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순간으로 기억된다. 사흘의 공연 기간 중 비의 방해를 받지 않고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첫째 날뿐이었다. 우리는 둘째 날 오전부터 세찬 빗줄기를 고스란히 맞고 버텨야만 했다. 무대 위에는 그랜드 피아노와 세 종류의 드럼 세트, 그리고 전기를 사용하는 악기 앰프, 마이크와 스피커, 조명 장치들이 쏟아지는 폭우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다. 물기와 습기를 안고서는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저항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악천후에 의한 취소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온몸이 젖은 채 관객들에게 공연 취소를 전하는 순간, 잔인한 하늘의 결정이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셋째 날 공연은 두 개의 무대 중 하나만 진행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밤새 내리던 비는 거짓말처럼 그쳤고, 오전에 있었던 이벤트까지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본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무심한 하늘은 또다시 비를 쏟아냈다. 이동식 천막으로 지붕은 만들었으나 이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줄기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각종 전기선이 무대 바닥에 연결되어 감전 사고까지 염려되는 상황이었다. 궁리 끝에 바닥 마감재를 뜯어내고 합판 사이에 구멍을 내 자연스런 물길을 만듦으로써 위험을 극복했다. 우여곡절 뒤 총 22팀의 출연진은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무사히 연주를 마칠 수 있었다. 잔인한 ‘비’와 이를 이겨낸 ‘음악’ 그리고 ‘관객의 환호’가 함께 있었던 밤이었다.
클래식 음악 공연을 위한 야외 무대는 보다 각별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물기와 습도뿐만 아니라 온도에도 민감한 오케스트라의 악기 때문에 맑은 날의 햇살도 불청객이다. 2011년 8월 15일, 임진각 평화콘서트에 대한 기억도 생생하다. 이날은 비와 폭염이 동시에 우리를 괴롭혔다.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전날의 실내 공연에서도 폭염의 날씨 때문에 정상적인 연주가 힘들다고 강력한 항의를 했다. 방송 녹화까지 더해진 국가적 행사였기에 공연 중단과 연기, 취소에 대한 부담이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모든 스태프들이 리허설 직전까지 빗물 고인 무대를 쓸어내리고, 한편으로는 냉풍기를 수배하여 야외 무대를 식히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번에는 하늘이 도왔다. 리허설 직전부터 빗줄기는 잦아들었고, 우리들의 성의와 눈빛을 읽었는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불평 없이 리허설과 공연에 임했다. 공연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경험이 거듭될수록 환경을 제어하는 무대기술은 발전하고 있다. 일주일의 제작 기간이 주어지면 폭우를 이기고 태풍에도 버틸 수 있는 무대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하늘을 이겨낼 수 없다. 다만 순응하는 지혜를 넓혀갈 뿐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해질 녘 노을 가득한 무대 위의 토미 이매뉴얼의 기타 소리, 비가 그친 잿빛 하늘 아래 울려 퍼지던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선율, 바람에 흩날리는 밤안개에 맞춰 움직이는 조명… 그 무엇보다도 폭우와 폭염 속에서도 함께 웃고, 애태우며 그렇게 뜨겁게 환호하는 청중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있기에 나는 하늘과 공연 사이에서 외줄을 타는 ‘줄꾼’으로 살고 있나 보다.

글 진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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