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 더 완벽할 수는 없다!

2014 바덴바덴 페스티벌 취재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6월 1일 12:00 오전

잘츠부르크를 떠나 지난해부터 바덴바덴 페스티벌 파트너로 나선 래틀과 베를린 필. 이들과 함께 무대에서 놀라움을선사한 첼리스트 솔 가베타와 소프라노 에바 마리아 베스트브룩은 이번 페스티벌에서 잊지 못할 주역들이다

잘츠부르크를 떠나 지난해부터 바덴바덴 페스티벌 파트너로 나선 래틀과 베를린 필. 이들과 함께 무대에서 놀라움을선사한 첼리스트 솔 가베타와 소프라노 에바 마리아 베스트브룩은 이번 페스티벌에서 잊지 못할 주역들이다


▲ 여성적인 프레이징과 디테일에 충실한 표현력이 돋보인 솔 가베타의 무대 ©Festspielhaus Baden Baden


지난 4월 12일부터 21일까지 독일 바덴바덴 페스티벌이 열렸다.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주관 아래 안네 조피 무터와 솔 가베타의 협연, 푸치니의 오페라 ‘마농 레스코’, 피터 셀라스 연출의 바흐 ‘요한 수난곡’ 하이라이트 콘서트, 베를린 필하모닉 솔리스트들이 펼치는 실내악의 밤, 그리고 어린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인 ‘리틀 마농’까지 풍성한 공연이 마련되었다.

물의 도시로 불리는 바덴바덴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멀지 않은 휴양 도시다. 부자들이 모인다는 카지노 때문에도 유명하지만 거대한 공원과 집들이 가득한, 나지막한 언덕을 끼고 형성된 아름다운 도시로 예로부터 예술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사이먼 래틀이 1967년부터 참가해온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떠나 지난해부터 바덴바덴 페스티벌의 파트너로 나타난 것은 파격이었다. 래틀이 잘츠부르크보다 바덴바덴에 더 끌린 이유는 단 2회 공연에 그치는 잘츠부르크에 비해 두 배 가량의 공연을 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가 평소 욕심을 보이는 교육 프로그램까지 있으니 금상첨화일 터. 올해 어린이 오페라로 만들어진 ‘리틀 마농’이 바로 그 예다.

지난해 기자회견 당시 사이먼 래틀은 “이 페스티벌에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 매우 궁금하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97유로에서 310유로 사이를 오가는 오페라 공연의 비싼 입장료를 풍자한 것이었다. 다행히 ‘리틀 마농’은 실용적인 마케팅을 적용해 20~30유로라는 현실적인 가격을 내놓았다. 덧붙이자면 바덴바덴 페스티벌의 구심점인 페스티벌극장은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다음으로 유럽에서 가장 큰 극장으로, 100퍼센트 민간 자본으로 운영되는 곳이다.

 


▲ 이날 무터는 개성도카리스마도 모두 증발된 무미건조한 연주를 선보였다 ©Festspielhaus Baden Baden

무미건조한 연주를 선보인 안네 조피 무터

4월 19일과 20일 연주는 리게티의 ‘아트모스페르’와 바그너의 ‘로엔그린’ 1막 전주곡,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으로 구성됐으며 협연자만 달랐다. 19일에는 안네 조피 무터가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20일에는 솔 가베타가 엘가 첼로 협주곡을 선보였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삽입곡으로 유명해진 ‘아트모스페르’는 귀로 들어야 할 뿐만 아니라 눈으로도 봐야 하는 작품이다. 목관과 금관악기, 현악기들은 피아니시시모에서 포르티시시모에 이르는 독립적이면서도 미세하게 연합된 음의 무리를 연주해내는데, 우리 귀로 들을 수 있는 양극의 한계를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트모스페르’이다.

특히 사이먼 래틀이 소음과 침묵을 지휘하는 듯한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마이크에도 잡히지 않는 음들을 연주해내는 바이올린 파트와 털 달린 솔로 현을 쓰다듬는 피아노 파트의 연주를 보고 있으면 우리 귀로는 식별이 불가능한 음향 체험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어진 ‘로엔그린’ 1막 전주곡은 마치 ‘아트모스페르’의 연속선상에 있는 듯했다. 래틀은 지휘를 쉬지 않고 바로 ‘로엔그린’으로 들어갔는데, 음량과 화성의 밸런스가 완벽했다. 바그너의 작품이라고 해서 꼭 물량적인 압도감을 연출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피아니시모의 첫 도입부부터 바그너가 동경한 황홀경을 자아내는 시공간으로 청중을 초대했다.

앞선 두 작품에 비해 목관과 금관이 축소 편성된 베를린 필이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위해 무대에 올랐다. 오케스트라가 제1주제를 연주하는 사이 무터의 바이올린은 2주제를 구성하는 화음을 아르페지오로 연주한다. 이어서 상승하는 멜로디를 되받는 순간, 음정 불안이 일어났다. 평소 무터에게 이 정도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으나, 안타까운 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흔히 협주곡을 두고 오케스트라와 솔리스트의 듀오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듀오라는 개념에 충실한 경우는 드물다. 오케스트라 볼륨에 솔리스트의 연주가 종종 묻히기 때문이다.

이번 무대에서 1악장의 경우 전반적인 느낌은 베를린 필의 파워풀한 음량에 무터의 연주가 묻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의 바이올린은 오케스트라의 음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볼륨상의 문제라기보다는 솔리스트로서의 카리스마에 대한 문제였다. 카덴차에서 역시 테크닉적으로는 완주에 성공했지만 여신으로 군림하는 데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2악장의 느리고 아름다운 멜로디에서도 무터는 개성도, 카리스마도 모두 증발된 무미건조함에 지루한 연주를 선보였다. 베를린 필은 이런 그녀의 연주를 100퍼센트 받쳐주기 위해 보기 드문 관심과 인내로 임했다. 특히 래틀의 제스처 아래 얼음 위를 걷는 듯한 조심스러움이 가득했다. 그야말로 저혈압에 시달리는 것 같은 무터의 바이올린을 위해 베를린 필이 희생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 2악장 후반에서 서로 간의 듀오가 돋보이는 밸런스를 찾았지만, 3악장에서 이내 기계적인 연주를 선보였다. 그녀는 바흐의 파르티타 2번 중 지그를 앙코르로 선보였는데, 보잉에 문제가 있었는지 악보에 없는 음들이 종종 튀어나왔다. 전반적으로 이날 무터의 음악은 영혼이 부재한 듯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일종의 슬럼프였을까? 이유야 어찌됐건 공연 말미 그녀는 거대한 꽃다발을 팔에 들고 여유롭게 답례를 보냈다. 하지만 이날 무터의 연주에 실망한 관객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중 무터의 어떤 팬은 그녀의 연주가 평소 같지 않다며 몹시 노여워했다. 그 관객의 심정도 이해가 되는 것이 이날 공연의 A석 입장료는 210유로(한화 약 29만 4천 원)였다.

 


▲ 돈과 사랑 사이에서 혼란에 빠진 마농을 탁월하게 연기한 베스트브룩

디테일에 충실했던 가베타, 놀라운 경지 선보인 래틀과 베를린 필

4월 20일 솔 가베타의 엘가 첼로 협주곡은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가냘프고 청초한 외모의 솔 가베타는 재클린 뒤 프레만큼이나 요즘 주목 받고 있는 여성 첼리스트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나탈리야 구트만상을 받은 그녀는 현재 스위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1759년 제작된 과다니니로 연주한 그녀의 이번 무대는 여성적인 프레이징과 디테일에 충실한 표현력이 돋보였다. 1악장의 교향곡 같은 주제를 명징한 보잉으로 리드하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4악장에서는 격정적이지만 서정적인 주제 템포를 자신의 기호에 맞춰 루바토를 써가며 오케스트라를 리드해갔다.

이날 공연의 압권은 ‘봄의 제전(1947년 개정판)’이었다. 이 작품은 래틀과 베를린 필에 의해 전혀 다른 버전으로 선보였다. 아지랑이처럼 나른한 바순의 멜로디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바순에 이어 클라리넷과 플루트의 트레몰로가 저마다 날개를 펴는 새들처럼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이어 조직적인 획일성이 드러나는 가운데 래틀은 부동의 자세로 지휘를 멈추고 각 솔리스트들에게 스스로의 리듬에 따라 연주를 하도록 맡겨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은 매 초마다 청중을 놀람과 전율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것은 단지 1부 마지막 ‘대지의 춤’과 2부 마지막 ‘희생의 춤’에서 작열하는 리듬 효과나 투티의 강도 때문만은 아니다. 순수하게 살아있는 음들을 관객이 만날 수 있었기에,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지휘자의 역할임을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베를린 필 단원들의 기량이었다. 인간으로서 이런 경지의 기술을 갖고 조화롭게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 언제부터 나치가 죄수를 미국으로 유배했던가?

베스트브룩과 베를린 필의 연주력이 빛난 ‘마농 레스코’

4월 21일은 ‘마농 레스코’의 마지막 공연이 있던 날이었다. 푸치니의 세 번째 오페라인 이 작품은 마스네의 ‘마농’에 비해 주인공 자체, 즉 마농과 그녀의 연인 데 그리외의 캐릭터와 심리 상태에 초점이 맞춰진 작품이다. 이번 무대는 메트 오페라와 바덴바덴 페스티벌의 공동제작으로, 이번에 연출을 맡은 영국 출신 연출가 리처드 에어는 1943~1945년 독일에 의해 점령 중인 프랑스를 배경으로 설정했다. 최근 오페라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소프라노 에바 마리아 베스트브룩이 마농으로 분한 이번 프로덕션은 래틀과 베를린 필의 명성만큼이나 모든 것이 최고의 수준이었다.

1막 무대 중앙 오른편으로 비틀어진 아미앵 기차역이 보이고, 위로는 거대한 기둥으로 만들어진 아치가 보인다. 그 뒤로 기차가 오가는 플랫폼이 설정됐는데, 이 정도 규모면 페스티벌극장 무대 높이의 최고치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거대한 세트였다. 챙이 큰 모자를 쓴 마농이 역의 계단을 내려오고, 카페 앞을 서성거리던 그리외는 첫눈에 그녀에게 반한다. 비서를 거느린 채 근사한 캐시미어 옷을 차려입고 기차에서 내린 제롱트는 마농과 함께 호텔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그녀는 그리외와 함께 파리로 떠난다. 그리외 역을 맡은 마시모 조르다노는 출중한 외모와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고음으로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2막은 파리에 있는 제롱트의 집을 배경으로 시작됐다. 1막의 아미앵 기차역 세트가 열리면서 마농의 침실로 바뀐다. 그 뒤로는 에로틱한 모습이 조각된 장식들이 거대한 벽에 줄지어 새겨져 있다. 술과 돈, 섹스에 빠져 사는 제롱트와 마농의 삶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보초를 선 독일군 병사들로 보아 제롱트는 나치에게 협력한 반역자로 설정된 듯했다. 마농은 할리우드 배우마냥 반짝거리는 은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고, 제롱트가 작곡한 마드리갈을 부르는 가수로 남장을 한 메조소프라노 막달레나 코제나가 등장해 익살스러움을 더했다.

마농은 제롱트가 오기 전 그리외와 도주를 시도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보석을 손에 쥔 채 이리저리 시간을 소모한다. 베스트브룩은 돈과 사랑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마농을 잘 보여줬다. 결국 두 사람은 제롱트에 의해 고발당해 독일군에게 잡혀간다.

연출은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하는 전쟁이란 거대한 힘 앞에 아무도 저항할 수 없고, 오로지 남은 것은 섹스와 죽음뿐이라는 메시지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3막이 문제였다. 거대한 뱃머리가 보이는 부두가 등장한 무대에는 창살이 쳐진 부두 감옥으로 여자 죄수들이 도착한다. 모두 창녀의 옷차림인데, 그중 남루한 죄수복을 입은 여자가 마농이다. 그녀는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유배를 가는 중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나치가 죄수를 미국으로 유배했던가?

4막은 미국의 황량한 사막이다. 무대는 폐허가 된 마농의 방을 보여준다. 1막에 등장했던 아미앵 기차역의 거대한 계단들은 뒤집혀 바닥에 뒹굴고 조명은 어둡다. 사막보다는 대대적인 폭격을 받은 드레스덴이나 베를린의 폐허에 더 가까운 풍경이었다. 마농과 그리외는 살아남기 위해 황량한 사막을 전전하지만 마농은 끝내 죽는다.

이번 무대에서 베스트브룩은 명성에 걸 맞는 연기로 큰 감동을 선사했다. 나이가 어린 마농 역에 비해 그녀의 음색은 너무 무르익은 듯했지만, 무대 위 엄청난 카리스마와 음악성으로 큰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이날 래틀과 베를린 필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형용사를 다 사용해도 부족할 정도의 연주를 보여줬다. 이를 두고 어느 프랑스 비평가는 “쾌락주의자적 음악의 유희”라고 말했다. 오보에와 클라리넷 주자들의 연주 또한 빛났다. 마지막 아리아에서 약간 텁텁하고도 노스탤지어에 찬 베스트브룩의 음색과도 환상적인 궁합을 보였다. 게다가 마농이 배를 타기 직전 합창에 이어 연주된 오케스트라의 종결구는 마치 바그너의 ‘파르지팔’을 듣는 것 같은 종교적인 경건함마저 느끼게 해 눈과 귀가 모두 황홀한 경험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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