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제이미 라레도&첼리스트 샤론 로빈슨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7월 1일 12:00 오전

긍정과 겸손 ‘좋은 음악’의 유산

나의 두 스승, 제이미 라레도와 폴 켄터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점심시간이면 학생들이 가는 저렴한 학교 앞 카페에서 식사를 (그것도 아주 맛있게!) 하신다는 것. 둘째, 학교와 콘서트장을 막론하고 집을 나서는 순간, 언제나 아내의 손을 꼭 붙잡고 다니시는 것. 특히 제이미가 아내 샤론 로빈슨을 보는 그 눈빛은, 하트가 뿜어져 나올 것만 같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들까지 ‘심쿵’할 지경이다. 시크한 샤론은 정작 눈 하나 깜짝 안하지만!

바이올리니스트 제이미 라레도(Jaime Laredo)와 첼리스트 샤론 로빈슨(Sharon Robinson). 두 사람을 만난 이후로, ‘좋은 음악가’에 대한 정의가 바뀌어가는 걸 느낀다. 각자의 연주 활동, 그리고 피아니스트 요세프 칼리슈테인(Joseph Kalichstein)과의 수많은 트리오 레코딩 등 미국 음악계에서 수많은 발자취를 남겼음에도, 이들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연주와 후학 양성을 병행하며 바쁘게 활동 중이다. 뿐만 아니라 작곡가들에게 수시로 새로운 곡을 위촉하고, 악기가 없는 학생들에게 빌려줄 악기를 직접 구입하러 다니기도 한다. 스튜디오를 위한 저녁 식사 모임을 직접 마련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의 경계를 저절로 풀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몇 년간 두 사람 곁에 있으면서 알아갈수록 ‘좋은 음악가’는 음악의 울타리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제이미와 샤론은 기본적인 사항만 갖춰진다면 언제든 연주를 부탁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학생들의 졸업 연주에 실내악을 먼저 제안하고, 팔팔한 20대인 우리가 3시간의 리허설을 하며 나가떨어질 때, 두 사람은 종일 레슨한 후 리허설에 참석했음에도 불 같은 사운드와 살아있는 손 끝은 물론, 더욱 치밀한 타이밍 계산을 위해 리허설을 연장시키며 무한 체력을 자랑한다. 제이미(1941년생)와 샤론(1949년생)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비슷한 연배 교수님들의 행동 반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일 것이다.

수련의 진화 _완벽한 손가락과 강인한 정신력 사이

말하기 시작한 무렵부터 바이올린 이외에 다른 선택이 주어지지 않은 천부적 재능의 제이미와 부모님을 비롯해 모든 가족이 음악가였음에도, 그 자신은 공원을 관리하는 경비원이 되고 싶었다는 샤론.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열성적이고 희생적임에도 음악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아이와 엄마 뱃속부터 음악을 듣고 자란 아이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고백하건데, 나는 음악을 가업으로 이어가는 많은 또래 연주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곤 한다. 누군가는 ‘인맥과 태생의 승리’라며 클래식 음악계를 제국에 비유하지만, 내게는 그들의 인맥보다도 DNA에 새겨진 듯한 자연스러운 예술적 에너지, 그리고 정신세계를 유아기부터 예술적으로 가다듬을 수 있는 집안 분위기와 환경이 가장 부럽고 샘나는 대상이었다. 똑같이 공부를 잘 하더라도, 배우고 토론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학자 집안에서 자란 아이와 그런 문화적 배경이 없는 집에서 태어난 아이는 극복해야 하는 것이며, 배우는 과정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때문에 음악가로서 부모와 예술적인 세계관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건 분명 크나큰 특권이다.

제이미 라레도에게 재능은 축복이기도, 불행이기도 했다. 그의 부모는 아무것도 모르는 여섯 살짜리 아들의 분명하고도 놀라운 음악적 소질만을 믿고 볼리비아에서 미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에 대한 책임과 무게는 오롯이 성장기 제이미의 몫이었다. 반면, 부모 입장에선 스케일이 뭔지 모르는 채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만 8세에 협연하는 아이를,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어떻게 다르게 키울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았을까 싶다. 제이미의 동료 연주자들에게 그에 대한 목격담을 듣다 보면 ‘신동’이라는 단어조차 무색해질 정도이니 말이다. “나의 게으름으로 아이의 재능이 꽃 피우지 못할까 두려웠다”는 김연아 선수 어머니의 심정이 제이미의 부모에게도 비슷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에튀드도, 연주곡도 너무나 쉽게 읽어오는 제이미에게 반복적인 수련을 시키기 위해 그의 스승인 이반 갈라미안(Ivan Galamian)은 스케일과 에튀드를 매주 외워오도록 했다. 악보를 완벽하게 읽을 수 있더라도, 완벽하게 외우기 위해서는 반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갈라미안은 각기 다른 제자마다 필요한 수련방법을 ‘맞춤 제작’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 방법은 과도한(?) 재능을 지닌 어린 제이미에게 최고의 처방전이었다. 당시 반복했던 연습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에게 습관으로 남아, 매일 아침마다 모든 장조와 단조의 스케일을 1시간 동안 연습하고 나서야 그날 연주할 곡을 집어 든다.

반대로 샤론 로빈슨은 서서히 피어난 꽃이었다. 때는 1960~1970년대,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큰 기대를 받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던 시기였다. 좋은 교육을 받는 것과 별개로, 커리어 대신 결혼과 자녀 양육을 당연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성장기 그녀에게 수련과 음악적 발전을 강하게 채근하는 스승은 없었다. 때문에 샤론은 언제나 스스로 채찍질했고, 홀로 일어섰다. 그 모든 것의 동력은 음악에 대한 사랑이었으리라.

수련이 ‘해야만 하는 것’이었던 제이미와 달리, 샤론은 자유로운 10대, 20대를 보내며 사색했고, 개방적으로 연습했다. 그렇게 완벽한 손가락 대신 얻어낸 강인한 정신력은 오래도록 음악에 대한 열꽃을 피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동반자인 제이미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들이 슬럼프 한 번 없이, 지치지 않고 음악을 할 수 있는 것도 서로의 에너지를 보완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행동과 관념의 수련 _매일 정성을 다해 닦는 어여쁜 차돌처럼

과거를 잊고 현재를 즐기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유연하고 객관적인 관점을 갖추는 것은 음악가에게 가장 큰 미덕이다. “항상 발전하고 있어요”라고 억지 부리기는 쉽지만 자신의 자리가 현재 어디인지, 스스로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인지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오는 동안 긴장이 풀려 힘이 든다는 것, 그리고 평생 산을 오르기만 할 수는 없다는 걸 누구나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지 못하는 건, 인생에 대한 관점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던진 다소 무거운 주제에 관해 제이미는 특유의 웃음어린 말투로 유쾌하게 이야기를 건넸다.

“점점 나아지는 것을 아직도 꿈꾸지. 우리는 언제나 변화하고 있으니 말이야. 잠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은 바뀌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잖니? 머물지 않는다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야. 난 어제 들리지 않았던 것이 오늘 들리는 순간 짜릿함을 느끼곤 해. 발전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가장 만족스러운 감정이니까. 아직까지는 무대에서 내 나이를 들키고 싶지 않고, 그래서 더욱 열심히 연습하고, 배우는 중이란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커리어의 끝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지. 갈수록 모든 무대의 의미가 더욱 커지고,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하루 종일 연습하는 것조차 정말 행복하단다.”

언제나 좋은 향기와 함께 말끔한 옷 매무새를 갖추고, 공연장에 3시간 먼저 도착해 꼼꼼하게 손을 푸는 그들은 음악계에서 모두가 좋아하는, 보기 드문 연주자이다. 지난 50년 동안 커리어를 유지하고, 모두에게 사랑 받아온 그들만의 비법은 무엇일까. 이 물음에 큰 웃음을 지으면서 “뻔뻔함”이라 답하는 그의 농담에서 외부의 질타, 그리고 내면의 부정적인 작은 목소리들까지도 가볍게 쳐내는 강인한 힘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수련과 반복에 강한 신념을 지닌 샤론이 무대를 대하는 태도는 아주 낙천적이다.

“거의 모든 무대에서 ‘내가 과연 이 무대에 설 만한 사람일까.’ 생각한단다. 동시에 나보다 못한 사람들도 많은 무대에 서 있는 걸 떠올리면서 ‘나라고 안 될 건 뭐야’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나쁜 리뷰는 항상 있기 마련이고 생각 없는 비난 또한 마찬가지지만, 연습해서 좋아지지 않는 것은 없고, 계속 돌아가는 세상에서 반복되는 연습은 나의 세계를 지키는 유일무이한 패턴이 되거든. 이 일을 오래 하려면 부정적인 말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곁을 내주지 않고, 자신만의 균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호흡을 가다듬고, 차근차근 연습을 하는 그들에게 수련이라는 건, 어쩌면 매일 같이 정성을 다해 닦는 어여쁜 차돌이 아닐까. 처음부터 빛나는 보석이 아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빛을 발하는 나만의 보물처럼 말이다.

마지막 수련 _따뜻하고 정직한 마음이 스며든 음악

대중에게 미국에 대한 보편적인 시각이 있듯, 클래식 음악계에도 미국에 대한 전반적인 편견들이 존재한다. ‘가볍다’ ‘옷차림이 엉성하다’ ‘문화적으로 세련되지 못하다’… 어쩌면 그런 생각이 사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경험 상, 깊이 없는 사람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아시아 등 세계 전역에 골고루 퍼져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도시와 지역의 경계가 사라지는 시대적인 흐름처럼, 이제 음악가 또한 특정 문화가 빚어낸 피조물로 여기기보다 각기 다른 개별적인 존재로 바라봐야 하는 때가 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사람들에게 종종 전형적인 미국 음악가로 분류되는 제이미와 샤론은 내 마음속에선 그저 국적불문, 이상적인 음악가일 뿐이다. 곁에서 지켜본 그들은 구색을 갖추는 것에 관심이 없다. 그저 몸과 마음의 균형을 지키고, ‘좋은 음악’을 꿈꾸며 더 많은 것을 다음 세대에게 베풀고 물려주고 싶어한다. 그들의 모습은 젊은 연주자들이 닮아 갈 수 있는 완벽한 본보기다. 그들이 지닌 후배와 음악에 대한 태도, 변함없는 겸손과 자상함은 나로 하여금 언제나 신선도가 높은 음악을 꿈꿀 것을 상기시킨다.

“악기의 소리를 사랑하면 반복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말을 들려줄 수 있는 직업의식, 그리고 나이·배경·인종 그 무엇도 따지지 않고 사람을 대하는 마음의 그릇, 단순하고 긍정적인 태도가 ‘미국적’인 것이라면, 나는 전혀 망설이지 않고 미국적인 음악인이 되겠다.

스스로를 명확하게 파악하면서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갖고, 모든 기회와 모든 무대,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며 감사해 하는 연주자가 되길 다짐한다. 따뜻하고 정직한 마음은 음악에 스며들어 모두에게 전달될 테니까.

글 조진주 사진 정윤진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는 한국에서 태어나 예원학교를 수석 입학, 재학 중 인생의 멘토인 폴 켄터를 만나 미국 클리블랜드로 유학을 떠났다. 커티스 음악원을 거쳐 다시 폴 켄터의 문하로 돌아가 클리블랜드 음악원 학사 학위를 마쳤다. 제이미 라레도 교수와 동 학교에서 석사·전문사 과정을 마쳤고, 2014년 세계 3대 콩쿠르인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1위를 했다.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해 거리 공연 프로젝트 ‘클래시컬 레볼루션 코리아’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동물을 사랑하고, 아이폰 중독자이며, 자연을 사랑하지만 가끔은 TV 보는 것을 음악보다 좋아한다

제이미 라레도&샤론 로빈슨

볼리비아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제이미 라레도는 1959년 18세 나이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 후 모든 협주곡의 데뷔 무대를 메이저 오케스트라와 함께 가지면서 예후디 메뉴인과 아이작 스턴의 뒤를 이을 연주자로 알려지면서 음악계에 신성으로 떠올랐다. 미국 텍사스주에서 태어난 첼리스트 샤론 로빈슨은 남편 제이미 라레도와 피아니스트 요세프 칼릭슈타인과 트리오를 이루었으며, 수많은 곡을 함께 녹음하고 위촉하였다. 제이미 라레도는 스카치 위스키를 즐겨 마시고 샤론 로빈슨은 레드 와인을 마신다. 라레도는 버몬트 심포니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으며, 현재 두 사람은 클리블랜드 음대 교수로 세계에서 가장 존경 받는 음악가 커플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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