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제에서 만난 정경화

열정으로 일군 행복한 순간!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9월 1일 12:00 오전

베르비에 페스티벌 개막연주와 리사이틀 무대에 선 정경화와의 인터뷰


▲ ⓒAline Paley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의 마지막 만남은 15년 전이었다. 당시 정경화는 비발디 ‘사계’를 두 장의 음반으로 녹음하고 있었다. 그는 ‘사계’에 대해 낭송할 텍스트를 썼고, 스튜디오에서 더빙 녹음을 작업하는 동안 음악감독 역할도 했다. 그가 이번 여름 베르비에 페스티벌 무대에 섰다. 그는 개막 연주회에서 브람스 협주곡을 연주했고, 또 이틀 뒤에는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포레·프로코피예프·프랑크의 작품을 가지고 리사이틀을 선보였다. 오랜 시간을 지나 페스티벌에서 7월 24일 그를 다시 만났다.

연주 도중 청중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당신의 웃음은 청중에게 전염되기까지 했다. 연주회 도중 그렇게 여러 차례 환하고 크게 웃은 의미가 있었는지, 그렇게 웃을 때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환하게 웃은 뒤 잠시 침묵)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이렇게 무대에 다시 서서 연주를 한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 연주를 하는 동안에도 종종 이게 현실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바로 현실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느꼈던 행복감은 정말 너무나 컸다. 그래서 연주회 도중 종종 큰 웃음을 지었던 것 같다. 내가 무대 생활을 오래 하다가, 한동안 완전히 중단하지 않았나. 그래서 마음이 한번 비워졌던 것 같다. 무엇인가를 완전히 놓았을 때 생기는 그런 마음 말이다. 다시 무대에 돌아온 지금은 전에 연주 생활을 하던 때와는 조금 다른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계속해서 연주자로서 경력을 쌓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연주자로서 누렸고 누리고 있는 축복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돌려줄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뿐 아니라 연주자로서도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무대에 서는 것이 더 즐거운 것 같다. 무대에서 청중들과 교감을 나누는 것이 정말로 새삼스러우면서도 행복하게 느껴진다. 연주자는 작곡가들이 남겨놓은 악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그것을 청중에게 전달하는 메신저일 뿐이다. 내가 연습을 통해 이러한 연주를 준비했으니 들으라고 하는 것은 좋은 자세가 아니다. 그렇기에 연주자는 매번의 연주에 창작을 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손가락 통증으로 5년의 공백기가 있었는데, 그 시기를 어떻게 보냈는가?

우선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학생들을 지도했다. 그리고 너무나 사랑스러운 강아지 두 마리, 요하네스와 클라라를 길렀다. 내가 브람스를 무척 좋아해 요하네스라고 이름 붙였다. 지금도 매우 보고 싶다.

요즘 무슨 생각을 주로 하는가?

(긴 침묵) 최근 한국인에 대해 영어로 쓰인 기사를 하나 읽었다. 한국 사람들이 정말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스스로도 자주 하는데, 그 글의 내용 또한 한국인의 뛰어남에 대한 것이었다. 글의 요지는 한국인들은 어떤 극한의 상황도 이겨낼 수 있는 사람들이자 각각 개성이 강하고, 무엇보다도 세상에서(매우 강조) 가장 성미가 급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머리가 좋고, 뛰어난 예술성을 지녔다고 언급했다. 정말 그렇지 않은가.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음악가들이 이제는 정말로 많지 않은가 말이다. 기사를 읽으며 이 뛰어난 한국인들이 하는 ‘예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예술은 평생 동안 자기 내면을 닦고, 그것을 표현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인내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세자르 프랑크의 소나타를 연주했다. 이 곡을 처음 연주한 지는 몇 십 년이 지났지만 그것에 만족한 적은 정말로 드물었다. 하지만 오랜 인내는 분명히 거기에 따른 희열과 만족을 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예술을 하는 데 중요한 것이 있는데, 바로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다. 한번은 앨버트홀에서 연주회를 했는데, 연주회가 끝난 뒤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피아니스트 친구가 나에게 와서 “너, 오늘 저녁 안무가 아주 뛰어났다”고 지적했다. 그 친구가 너무 적나라하게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았기에 순간적으로 정말 많이 화가 났다. 그 친구는 당시 내면적 빈곤을 외적인 과장으로 숨기려 했던 나의 연주를 꿰뚫어보았다. 나도 요즘 세대의 연주자들에게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요즘 젊은 연주자들은 정말로 높은 수준의 기량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연주를 듣다 보면 연주자 자신은 부재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런 후배들에게는 자기 자신을 음악 속에 투영하고, 음악이 흐르는 방향을 좀 더 분명하고 뚜렷하게 보라는 이야기를 한다. 한국인들은 정말로 많은 발전을 이루었고,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쌓은 것들을 서로 공유하고 더욱 인내하는 것이다. 인내가 우리를 예술적으로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가줄 수 있다.

의미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나 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동시에 ‘의식’은 사라진 시대라고 생각한다. 한 예로 과거 나는 듣고 싶은 작품의 연주가 녹음된 LP 한 장을 사기 위해 끼니를 건너뛴 적도 있다. 그렇게 구입한 음반을 가슴에 품고 집에 돌아와 방의 불을 끄고 음악을 듣곤 했다. 이러한 종류의 의식이 사라졌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가?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러한 의식은 이미 무너졌고, 또 무너져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럴수록 내 주변만큼은 최소한의 시스템이 유지되고 작동될 수 있도록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제도를 살펴보면, 정말로 한 분야에 재능 있는 학생들은 그곳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아이들을 여러 학원에 보내지 않는가. 모든 것을 다 배운다는 것은 결국에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위 이러한 극성 때문에 기술적인 면이 매우 수준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내가 어릴 때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와 발전은 정말로 엄청나다. 하지만 이제는 예술적인 르네상스를 생각해야 하는 때다.

젊은 연주자들에게 보내는 행복의 언어

올해 베르비에 페스티벌의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선발된 젊은 연주자들 가운데 한국인 음악가가 다수 존재한다. 또 젊은 솔리스트들에게 가르침과 연주 기회를 주는 베르비에 아카데미에도 여러 한국인이 있다. 또한 당신의 연주회에 이 젊은 한국 음악가들이 청중으로 온 것을 보았다. 한국의 크기와 인구수를 생각하면 무척 놀라운 현상이다.

한국의 발전 속도는 정말로 세계적인 것이지만, 특히 음악에서의 발전 속도는 지구상에서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 이화여대 석좌 교수로 몸담고 있는데, 가르치는 일은 정말로 거기에만 몰두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그래서 학교에서 하는 일은 실내악 레슨을 하는 것과 학생들에게 약간의 조언을 주는 정도에 그친다. 레슨 때 학생들에게 “너희들이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을 하곤 한다. 대부분의 학생은 마치 사랑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어보는 것처럼 놀라거나 당황스러워한다. 음악을 하는 궁극적인 바탕은 음악에 대한 사랑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정말로 거기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내가 음악을 배울 때는 음악에 대한 사랑을 늘 말하고 상기하곤 했다. 미국에서조차 말이다. 1960년대 이야기지만 나도 밤에 혼자서 설레는 마음으로 음악을 듣곤 했다. 이렇게 음악을 들을 때, 그러니까 자기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때 얼마만큼 스스로 깊은 관계를 맺느냐 하는 것은 예술가로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중요한 것을 지적했다고 본다. 음악가는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의 밀도와 깊이에 따라 청중과 맺는 관계의 그것도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종종 음악 교육이 간과하는 부분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렇다. 비록 한정된 시간이지만, 학생들을 지도하는 방법이 과거와는 달라졌다. 실내악을 가르치면서도 예전에는 세부적인 것에 집중하고 그것을 뜯어고치는 일이 많았는데, 이제 더는 그러한 방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는다. 이제는 음악적 교감을 늘 상기시킨다. 그리고 음악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애쓴다. 나아가 여러 연주회장의 음향에 적응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친다. 연주회장의 크기와 음향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어떻게 음악적 아이디어를 청중에게 전달하는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해석과 음향 등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 방법을 터득한 뒤에는 자유로워질 것을 강조한다. 한편 학생들에게 준비를 많이 할수록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해주면 벌써 다음번 레슨 때 준비해 오는 것이 크게 달라진다. 이것은 학생들이 한 단계 발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한 단계를 뛰어넘은 학생들에게 지속적인 발전은 거의 보장된 것이다. 음악에는 다른 학문과는 달리 이러한 방식의 도약이 가능한 마술적 순간들이 있다. 나는 이 순간이 다음 단계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연결 고리 역할을 할 뿐이다.

완벽주의자인 당신은 과거보다 현재 음악가로서 더 행복한 시기를 살고 있는가?

나는 과거나 지금이나 늘 행복하다. (침묵) 음악은 언제나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것을 완벽주의라고 칭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나이가 들수록 아무리 연습을 많이 하더라도 완벽한 기교를 선보이는 것은 더 어려워지고, 멀어진다. 그리고 이제는 과거처럼 연습을 많이 할 수도 없다. 이번에 베르비에에서 연주를 하기 위해 손에 주사를 맞아야 했다. 정말 훌륭한 의사를 한국에서 만났고, 그분이 나의 손을 매우 잘 관리해주고 있다. 예전에는 연주를 하다가 기술적으로 흔들리면 속으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흔들림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하루하루 노력하고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내가 과거보다 더 행복한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냥 하루하루가 정말로 행복하고 당신과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자체도 너무나 행복하다.(웃음)

15년 전 서울의 한 스튜디오에서 비발디 ‘사계’ 녹음을 마친 정경화와 헤어지던 순간이 떠올랐다. 승용차 뒷좌석에 올라탄 정경화는 차가 출발하자 창문을 완전히 내리고 바깥으로 몸을 내밀면서 나와, 함께 있던 일행을 향해 오랫동안 손을 흔들었다.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지 않았어도 누구에게나 스승이 있다. 음악평론을 시작하기 전에 나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던 음악가들은 모두가 나의 스승이다. 정경화도 그 스승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15년 만에 만난 그는 나에게 또 다른 가르침을 주었다.

사진 Verbier 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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