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 ‘겨울 나그네’

예술에서 발견한 한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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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2월 3일 9:00 오전

PROLOGUE _글 권하영 기자


한 청년이 추운 겨울 연인의 집 앞에서 이별을 고하고 방랑의 길을 떠난다. 눈과 얼음으로 가득한 추운 들판을 헤매는 그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허덕이고, 까마귀·환상·도깨비불·백발과 같은 죽음에 대한 상념이 마음속에 자리하게 된다. 마을 어귀에서 손풍금을 연주하는 늙은 악사에게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하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총 24개의 노래로 이루어진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의 대표적인 연가곡으로, 독일의 낭만 시인 빌헬름 뮐러의 시에 곡을 붙였다. 역시 뮐러의 시에 곡을 붙인 슈베르트의 가곡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가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그린 작품이었다면, ‘겨울 나그네’는 음울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가득한 비극적인 노래다. 이 노래를 작곡할 무렵 30세였던 슈베르트는 다가올 죽음을 예감한 듯 고독한 삶을 살고 있었고, 곡을 완성한 이듬해 가난과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24개의 곡 중에서 5번째 곡인 ‘보리수’는 폭풍의 효과와 나뭇잎의 움직임을 묘사한 피아노 연주가 돋보이는 민요풍의 노래다. 아름답던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극 전체를 관통하는 음울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찰나의 행복을 선사한다.

‘겨울 나그네’를 노래했던 베이스 연광철은 “보통 청년이 1곡에서 작별을 고하고 난 뒤 24곡에 이르기까지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해석하지만, 1곡에서 작별을 고한 주인공이 실제로는 사랑하는 이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23곡까지 그 집 곁을 맴돌다가 24곡 ‘거리의 악사’에서 비로소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게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별도 세레머니라고 했던가. 아름답게 이별할 줄 아는 이의 음성은 깊어가는 겨울의 정취와 어우러져 한참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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