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포사이스의 ‘블레이크 작품집Ⅰ’, 발레 언어의 현대적 의미를 고찰한 거장의 복귀

2019/2020 파리 오페라 발레 시즌 개막작으로 주목받은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스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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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1월 4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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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20 파리 오페라 발레의 시즌 개막은 일본 디자이너 히로시 스기모토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신작 ‘매의 우물에서(At the Hawk’s Well)’와 1949년생 미국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스의 ‘블레이크 작품집Ⅰ(Blake Works Ⅰ)’의 더블빌로 꾸려졌다. 9월 19일부터 10월 15일까지 가르니에극장 16회 공연의 대부분이 매진을 이뤘다. 평단의 관심은 개막 초반에는 스기모토 작품에 모아졌지만, 결국 2016년 파리 오페라 발레에서 초연한 ‘블레이크 작품집 Ⅰ’과 포사이스, 파리 오페라 발레의 상성을 돌아보는 흐름으로 회귀했다. 고희에 접어든 포사이스가 ‘클래식 발레’와 ‘파리 오페라’를 기회로 인생을 돌아보고 있다. 포사이스는 조프리 발레 학교를 거쳐 1973년 존 크랑코의 오디션을 통해 슈투트가르트 발레에 입단했고, 1976년 안무가로 전향했다. 1979년 출세작 ‘사랑 노래(Love Songs)’의 격렬함으로 유럽 주류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았고, 1980년대 후속작에선 날카로운 현대적 감각에 더해 발레 무용수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독특한 스타일로 당시 파리 오페라 발레 감독 루돌프 누레예프를 사로잡았다. 도미니크 바구에, 마기 마랭, 캐럴 아미타지와 함께 포사이스는 누레예프가 최만년에 주목한 마지막 세대 안무가에 해당한다. 1980년대 포사이스는 관능으로 발레리나의 신체를 바라보는 대신, 포인트 상태에서 물리적 극한에 몰린 발레리나의 힙과 팔, 다리에서 분사되는 예리한 각도의 직선을 강조했다. 이전부터 발란신의 신고전주의에 개방적인 파리 오페라 무용수들과 접합 가능성은 활짝 열려 있던 셈이다. 20세기 후반을 정리하는 컨템퍼러리 발레의 매니페스토와 다름없는 ‘상승의 한 가운데(In the Middle Somewhat Elevated, 1987년작)’ 역시 이런 토대에서 파리 오페라와의 협업으로 완성됐다. 1987년 발레단에 입단한 오렐리 뒤퐁의 눈에는 ‘상승의 한 가운데’를 두고 포사이스와 기옘·르그리·일레르가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이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미래의 한 갈래였다. 자신의 창작물로 시즌 라인업을 채웠던 뱅자맹 밀피예 전임 파리 오페라 발레 감독과 달리, 발레단에서 무용수로 입지를 완성한 뒤퐁 현 감독은 포사이스에게 지속적으로 손 내밀었다. 프랑스 태생이지만 미국적 감성의 밀피에를 대신해서, 미국 출신이지만 유러피언의 정서를 세공한 포사이스가 뒤퐁 시대의 파리 오페라 컨템퍼러리를 상징한다. 2019년의 뒤퐁은 감독으로 후대에 물려줄 발레단의 비전을 그동안 자신이 겪은 포사이드의 미덕에서 찾는다. 윌리엄 포사이스는 1984년부터 2004년까지 프랑크푸르트 발레, 2005년부터 2015년까지 포사이스 컴퍼니 감독으로 조직을 건사하던 책임에서 벗어나, 청년 시절처럼 다시 프리랜서가 됐다. 누레예프와 함께 클래스를 했던 세대들이 발레단 현역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시점에서, 홀가분한 신분의 포사이스는 뒤퐁을 대리해 파리 오페라 발레에서 ‘발레’의 현재적 의미를 묻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시절, ‘아티팩트(Artifact, 1984)’ ‘감동적인 차르(Impressing the Czar, 1988)’에 이르는 연작을 통해 포사이스 발레는 기존의 발레 애호가 뿐 아니라 컨템퍼러리 무용의 지지자들까지 포괄하는 궤적을 밟았다. 클래식 발레의 기본 어휘들을 재정의하는 질문과 답변들이 도발적이지만 지적으로 이어졌고, 포사이스의 답안은 후대 발레 안무가들의 참고서가 됐다. 포사이스는 프랑크푸르트 밖에선 환영받았지만 정작 본거지에선 사정이 달랐다. 시정부는 지속적으로 발레단의 폐쇄를 위협했고 예술적 성향과는 별개로 발레단원을 대규모로 가동해 대작을 생산해야 하는 관료주의에 시달렸다. 포사이스에겐 책임의 부담을 벗는 돌파구가 간간히 파리 오페라 발레, 샌프란시스코 발레, 뉴욕 시티 발레가 맡긴 신작 의뢰였다. 1990년대 샤틀레 극장에서 올라간 포사이스 작품에선 더 이상 발레의 테두리에 가둘 수 없는 범위로 신체의 비르투오시티를 확장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포사이스의 사유 범위는 단순한 신체를 넘어 공간과 시간으로 이어져 작품에 오브제와 건축이 개입되면서, 안무가를 넘어 크리에이터로서 정신의 비르투오시티를 추구했다. 그러나 신체를 다루는 방식으로 정신을 매만지는 작업은 포사이스 컴퍼니 시절 내내 순조롭지 않았다. 발레에선 뚜렷한 플롯이 없어도 무용수와의 교감을 통해 진부한 구조를 해체할 수 있지만, 설치물이 놓인 공간에 무용수들이 장기의 말처럼 좌충우돌해도, 주변의 관찰자들이 이를 초현실적 콘텍스트로 승화하긴 어려웠다.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2006)’의 2013년 성남아트센터 내한 공연을 본 무용평론가 장인주는 “포사이스의 천재성을 담아냈던 ‘표현’ ‘반복’ ‘혼미’의 법칙이 사라진 빈자리를 우연성에 기초한 컨템퍼러리 댄스가 대신한다”고 지적했다. 포사이스 컴퍼니의 10년은 단체의 지속을 위해, 안무가가 원치 않는 옷을 입은 채로 비틀거린 여정이었다.

 

발레에서 기쁨을 찾는 자리

2015년 파리 오페라 발레의 상주 안무가에 임명된 이후 포사이스는 ‘스탭/부분(Pas/Parts, 1999)’, ‘정밀함의 아찔한 흥분(The Vertiginous Thrill of Exactitude, 1999)’, ‘아티팩트 모음곡(Artifact Suite, 2006)’처럼, 간헐적으로 파리 오페라 발레와 살폈던 과거 작품을 대상으로 발레 마스터로서 파리 오페라 발레 무용수들과 어울렸다. 리허설 동안 발레단 무용수들의 특성을 파악한 포사이스는 2016/2017 시즌 개막을 앞두고 영국의 일렉트릭 뮤지션, 제임스 블레이크의 음악을 사용하기로 했다. 당대 음악을 차용하는 결정은 1979년 ‘사랑 노래’에 아레사 프랭클린의 음악을 쓰던 시절과 같다. 결국 예나 지금이나 발레단의 젊은이들과 호흡해야 포사이스로부터 신선한 결과물이 나온다. 발레단 은퇴를 앞둔 노장들은 2016년과 올해 ‘블레이크 작품집 Ⅰ’에서 빠졌다. 블레이크의 앨범 ‘The Color in Anything’에 수록된 7개의 트랙들이 파드되(2인무), 파드트루아(3인무), 파트캬트르(4인무)로 나뉘었다. 캐스팅 대부분이 에콜 드 당스 출신의 저연차 단원들이었고, 그들의 몸에 밴 파리 오페라 발레의 습속과 블레이크의 발라드 사이에서 포사이스는 내러티브의 동기화를 꾀했다. 포사이스는 결국 시대의 변화상에 맞춰 음악을 바꾼 2010년대 후반식 ‘상승의 한 가운데’를 구현했다. 30년 전, 젊은 길렘만이 가능했던 애크러배틱은, 에투알에 올랐지만 아직 존재감이 미미한 레오노르 볼락에게 부여됐다. 끼가 넘치면서 의외성을 동시에 갖춘 에투알에 볼락 이외에 엘레오노라 아바냐토가 있지만 1978년생에 로마 오페라 발레단장을 겸하는 아바냐토는 애초에 ‘포사이스의 젊음’과 거리가 멀었다. 위고 마샹, 플로랑 멜락 모두 포사이스에선 물 만난 고기였다. 볼락·마샹·멜락은 명백히 누레예프 세대와 거리가 멀다. 밀피에가 편애한 무용수들을 대상으로 포사이스는 파리 오페라의 전통이 이어지는 방편을 제임스 블레이크를 매개로 찾았다. 댄서들의 풋워크를 유심히 살피면, 부상이 염려될 정도로 급격한 관절의 뒤틀림을 동반하는 오프 밸런스가 발란신의 ‘발레 임페리얼’을 흡사 2배속으로 빠르게 추는 양태다. 다만 가슴에 부양감을 넣고, 둔부를 상하 좌우로 신속히 움직이는 과정이 성행위를 연상시킬 수위로 노골적인 얼굴을 드러낸 점에서 과거, 움직임을 냉철하게 주시하던 청년 포사이스와는 작품 간에도 세대차가 감지됐다. 2019년의 ‘블레이크 작품집 Ⅰ’은 ‘상승의 한 가운데’처럼 놀랍진 않지만 발레 언어의 현대적 의미를 고찰한 거장의 복귀란 면에서 반가운 작품이다. 빠른 속도로 전개되지만 섬세하게 처리해야 하는 포사이드식 포드부라와 에폴르망의 근원은 루이 황제 시절부터 내려온 프랑스 궁정이다. 저스틴 펙, 크리스토프 휠든의 컨템퍼러리에선 느낄 수 없는 프랑스만의 테크닉이다. ‘블레이크 작품집’에서 하늘색 레오타드를 입은 앳된 무용수들은 에콜 드 당스의 재학생들이 교복 차림으로 벌이는 댄스파티와 다름없다. 결국 칠순의 안무가는 갤러리에서 오브제를 놓고 좌고우면하던 시절을 지나 아디다스 트레이닝차림의 발레 마스터로 발레에서 기쁨을 찾는 자리로 돌아왔다. 가르니에 공연을 마치고, 커튼콜에서 자신을 불러내는 젊은이들에게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포사이스는 앞으로도 보스턴 발레와 파리 오페라 발레를 오가며 최신 음악과 컨템퍼러리를 버무릴 것이다. 네덜란드 댄스시어터에서 남긴 작품을 차례로 폐기 중인 이르지 킬리안과 자신의 작품을 오마주해서 이를 옴니버스로 펼치는 존 노이마이어 사이에서 포사이스의 행보는 더욱 진솔해 보인다.

글 한정호(무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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