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 바로크 음악센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3월 8일 9:00 오전

GAEKSUK EYE

온라인 전시회 ‘엑스포드카스트’ 첫 화면

from FRANCE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센터

온라인 속 루이 14세의 음악 보고(寶庫)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 센터(이하 CMBV/Centre de Musique Baroque de Versailles)가 엑스포드카스트(EXPODCAST/expodcast.cmbv.fr/en)를 발족했다. 시청각 요소를 아울러 베르사유궁의 교회음악과 음악가들을 살펴보는 온라인 전시회다. CMBV는 17~18세기 베르사유궁의 음악가들과 작품을 연구 및 고증하는 단체로, 음악회를 열고 서적을 출판한다. CMBV 회장 피에르 코페(1963~)는 통행금지령으로 인해 센터가 입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언급하며, 문화계와 청중 사이 관계를 재건하기 위해 온라인 전시를 꾸렸다고 밝혔다. 엑스포드카스트는 코로나바이러스로 모든 문화 공간이 문을 닫은 2020년 11월 출범했다. 베르사유와 루이 14세라고 하면, 화려한 축제와 륄리의 야외 오페라, 그리고 몰리에르의 코미디 발레를 떠올린다. 그러나 1710년, 23년 만에 완공된 왕실예배당(The Royal Chapel)이야말로 프랑스 바로크 음악의 산실이었다. 루이 14세는 이곳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당시 가장 뛰어난 음악가들을 고용했고, 그랑 모테트 등 보석 같은 작품들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그렇다면 이곳은 왜 루이 14세에게 중요했을까? 여기에서 활동한 음악가들은 누구였으며, 그들의 하루는 어떠했을까? 엑스포드카스트를 통해 살펴보자.

태양왕의 큰 그림

샤를르 부륀(1619~1690)이 그린 베르사유궁의 천장화에는, 하늘의 신이 땅으로 권위를 내리는 장면이 묘사돼 있다. 절대왕권을 주창하던 루이 14세였다. 수많은 후궁을 거느리며 음악과 춤을 즐기던 그였지만, 신 앞에서는 철저한 사역자임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의 생에 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건, 전시(戰時) 중 단 한 번뿐이었다. 왕실예배당은 루이 14세가 72세 때인 1710년 완공됐다. 1682년까지만 해도 왕실예배당의 음악 활동은 여러 곳에서 행해졌다. 베르사유궁이 공식적으로 왕궁으로 선포되기까지 40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루이 14세 궁정은 퐁텐블로, 생제르맹앙레, 샹보르, 마를리 등 여러 성(城)을 전전했다. 이때마다, 교회 음악가들을 포함한 궁정 전체는 군대의 보호를 받으며 10미터가 넘는 줄을 지어 마차로 이동했다. 그렇기에 왕실예배당의 완공은 루이 14세가 평생을 기다려온 기념비적인 사건이었다. 16명의 조각가와 수많은 장인이 흰 대리석 장식과 조각으로 공간을 꾸몄고, 루이 14세는 왕궁의 음악가들로 하여금 모테트를 부르게 해 공간의 어쿠스틱까지 검증했다. 총 200명의 음악가가 왕궁을 위해 일했다. 왕이 잠에서 깬 순간부터 침실에 드는 밤까지 이들은 왕의 행진과 만찬, 오페라 그리고 야외축제까지 음악이 필요한 모든 예식에 함께했다. 가장 아름다운 음성을 포섭하기 위해 ‘파즈’라고 부르는 어린이 합창단이 창단됐고 ‘상트르’라고 하는 남성 합창단이 함께했다. 음악가들을 총애한 왕이지만 아주 엄격해, 늦거나 결석한 음악인들은 보수 감액을 면치 못했다. 악장은 추기경이나 귀족 등 신분이 높은 이들이 담당했다. 그러나 부악장은 루이 14세가 신임하는 인물로,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음악인들이 맡았다. 그들은 교회 음악가들의 업무를 지시하고, 매일 미사나 종교 예식음악을 작곡하는 책임을 지니고 있었다. 바흐는 일주일에 칸타타 1곡을 작곡했지만, 이곳의 부악장들은 하루에 2~3개의 모테트를 썼다. 연주자들 역시 매일 아침 새로 작곡된 모테트 악보를 받고 그 자리에서 불러야 했다. 왕실예배당의 음악가들은 한해에 일한 일수에 따라 답례를 받았다. 하루에 1리브르(livre)를 받았고 일 년에 220일 정도 일했다. 한편, 예배당의 부악장은 일 년에 3,600리브르, 오르가니스트는 2,400리브 정도를 받았다. 그 당시 파리의 마차를 수용할 수 있는 고급 저택은 20,000리브르 정도였다. 이곳의 오르간은 프랑스 바로크 음악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눈부신 하늘에서 광명이 비치는 듯한 플렌 주(Plein Jeu/악보상 한 음에서 여러 파이프가 동시에 울리는 영역)가 특징적이다. 선적으로 디자인된 일반적인 모델에 비해, 예배당의 둥근 돔 아래 곡선으로 건립되었다. 모차르트도 이 악기를 연주한 적이 있어 더욱 감명 깊다는 것이 오늘날 오르가니스트들의 말이다. 왕실예배당의 르네상스를 위해 루이 14세는 1683년 프랑스 전역에 콩쿠르를 선포하기도 했다. 콩쿠르 과정은 ‘르 머큐리 갈랑(Le Mercure Galant)’이라는 문서에 자세히 기록됐다. 총 30여 명이 참여했고, 파스칼 콜라스(1649~1709), 귀욤 미노레(1650~1717?), 니콜라스 구피에(1650~1713)가 선정된 한편, 26세의 미셸리샤르 드랄랑드(1657~1726)는 루이 14세의 낙점을 받았다. 마르크 앙투안 샤르팡티에(1643~1704)도 응모했지만 선정되지 못했다.

베르사유궁 왕실예배당

권력의 그랑 모테트

대규모 합창단이 동반되는 그랑 모테트는 아주 프랑스적인 형식이다. 이 형식은 예배당에 재직한 적은 없으나 궁정의 음악 활동을 총괄하던 륄리의 ‘그랑 모테트’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으로, 두 명의 부악장 앙리 듀몽(1610~1684)과 피에르 로베르(1622?~1699)의 수년간의 작업 가운데 무르익었다. 륄리의 ‘테 데움’도 이 형식을 극대화한 것이다. 그랑 모테트는 음악적으로 5성부 합창과 교향곡 형식이 결합한 대편성이다. 그랑 모테트는 루이 14세의 절대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 이곳 말고는 프랑스 어느 곳에서도 그랑 모테트를 연주할 만큼 충분한 음악가들을 지닌 곳이 없었다. 사실, 작품 규모 때문에 어린이 합창단원의 숫자도 늘려야 했다. 카스트라토 음성을 위해 루이 14세는 구설에 오르면서까지 여성들을 고용했다. 기독교 왕으로서 루이 14세의 권위는 성경의 다비드 왕의 그것에 비교되었다. 다비드는 훌륭한 음악인이자 전사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루이 14세와 닮았다. 이들은 음악과 시를 통해 신과 직접 소통했다. 시편이나 성경의 상징의 많은 부분이 음악에 활용됐다. 루이 14세를 신성한 텍스트의 인물로 그리며 그의 이름을 드높였다. 왕실예배당에서 정립된 모테트는 영국의 헨리 퍼셀에게도 영향을 주는 등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혁명을 겪으며 1789년 왕실예배당과 베르사유는 문을 닫았고, 78년간 지속해온 왕권과 종교음악의 전통은 막을 내렸다. 13년 후인 1792년, 왕실예배당의 음악은 파리의 튈르리 공원에서 대중음악회 시리즈인 콩세르 스피리튜얼에 의해 다시 연주된다. 이 계기로 드랄랑드의 모테트는 프랑스 전역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예배당의 음악 체제는 1730년 7월 혁명과 함께 완전히 해체된다. 그로부터 거의 1세기 반 동안 이곳의 방대한 레퍼토리는 잊혀 있다가, 1990년 CMBV가 왕실예배당의 자필 원본을 발굴·연구하며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루이 14세 시대 음악 유산은 CMBV의 어린이합창단과 남성합창단으로 구성된 보컬앙상블에 의해 재현되고 있다. 오늘날 베르사유궁이 박물관이라면, CMBV는 연주자와 음악학자들이 공부하고 일하는 삶의 장소다. 루이 14세 당시 왕실예배당이 그러했던 것처럼. 70여 분간 이어지는 엑스포드카스트는 우리가 몰랐던 베르사유궁 왕실예배당의 진면목을 흥미롭게 들려준다. 프랑스어와 영어로 제공되는 서비스를 한국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 글 배윤미(파리 통신원) 사진 파리 필하모니

18세기 초 왕실예배당의 모습


왼쪽부터 모차르테움 재단 과학연구부장 울리히 라이징거, 모차르트 주간 음악감독 롤란도 비야손, 피아니스트 조성진, 모차르테움 재단 대표이사 요하네스 엘렌부르크 ©ISM-WLienbacher

from AUSTRIA

2021 모차르트 주간

조성진이 만난 새로운 모차르트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지난 1월 27일부터 31일까지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제65회 모차르트 주간에서 하나의 중요한 역사를 썼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개막연주회를 장식한 것. 모차르트 주간은 1756년 1월 27일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작곡가 모차르트의 생일을 맞아 1956년부터 해마다 열리는 유서 깊은 음악제다. 이 자리에서 조성진은 이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모차르트의 미발표곡 알레그로 D장조 K626b/16을 초연했다. 팬데믹이라는 특수성 아래 올해 모차르트 주간은 역사상 처음으로 비대면 축제로 개최되어, 전 세계에 중계됐다. 전야제 연주는 오스트리아 국영방송(ORF)이 중계했고, 1월 27일부터 31일까지의 본 프로그램은 유료 클래식 음악 채널인 피델리오와 메디치TV, 도이치 그라모폰의 온라인 플랫폼인 ‘DG 스테이지’에서 무료로 방영했다. 한국에서는 LG유플러스가 앞으로 1년간 무료로 제공한다.

248년 전 미발표곡

작년에 100주년을 맞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뒤이어 시작된 모차르트 주간은 1967년 시작된 부활절 페스티벌, 1973년 시작된 오순절 페스티벌과 함께 세계에 널리 알려진 신년 음악축제이다. 1880년 창립한 모차르테움 재단이 주최하고 있다.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1966~)에 이어 2019년부터 모차르트 주간 음악감독이 된 테너 롤란도 비야손(1972~)은 모차르트에 대한 순수함과 새로움을 찾아내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그는 전통과 새로움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음악제를 꾸려왔다. 1773년, 모차르트가 17세에 작곡한 알레그로 D장조를 발견한 것은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다. 94초 길이의 짧은 피아노 소품으로, 모차르트가 제3차 이탈리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작곡하였거나 잘츠부르크로 갓 돌아와서 작곡한 것으로 추정된다. 모차르트가 손으로 쓴 원본을 네덜란드계 프랑스인이 개인 소장하고 있다가 모차르테움 재단에 판매 의사를 알려왔다. 전문가들은 두 장으로 된 악보 원본에 약 20만 유로(2억6천만원)의 가치를 매겼다. 재단은 알레그로 D장조에 대해 각 방면으로 진위검증을 마친 끝에 진품으로 판정했으며, 초연을 통해 전 세계에 알리기로 했다.

모차르테움 그레이트홀

체칠리아 바르톨리 ©KristianSchuller/Decca

새로운 모차르트

예술감독 롤란도 비야손은 올해 모차르트 주간의 표제를 ‘새로운 모차르트’로 삼았다. 그는 1월 21일 전야제 행사에 모차르테움 재단의 과학연구부장 울리히 라이징거와 함께 대담자로 나와 강연과 질의응답을 통해 알레그로 D장조를 해설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두 사람은 1월 27일 모차르테움 그레이트홀에서 열린 조성진의 개막연주회에서도 대담 형식으로 작품을 해설했다. 조성진의 독주회는 모차르트 작품 4개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곡은 소나타 12번. 조성진 앨범(Deutsche Grammophon 4835522)에도 수록된 작품으로 명연주였다. 또 다른 레퍼토리인 알레그로 C장조는 모차르트가 1766년 스위스 취리히 연주 여행 중 작곡한 것이다. 짧은 피아노 소품 ‘핌피넬라’ K33b는 연주회에 재미를 더했다. 이 곡은 유명한 영화 ‘아마데우스’(1984)에서 어린 모차르트가 연주한 곡으로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조성진은 마지막 순서로 문제의 알레그로 D장조를 연주했다. 1분 34초간의 짧은 곡이지만, 사려 깊게 시작한 그의 연주는 점점 생기가 솟구치더니 생명의 활기로 살아나는 감동을 만끽하게 했다. 그동안 묻혀 있던 천재의 작품이 경쾌한 걸음으로 세상에 다시 탄생하는 기쁨을 안겨주었다. 모차르테움 재단은 새로 발견된 알레그로 D장조 악보를 기념품으로 제작하여 판매하고 있다.

조성진의 모차르트 알레그로 D장조 ©도이치그라모폰 유튜브

풍성한 모차르트 잔치

롤란도 비야손 예술감독은 올해 축제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공연 시간과 양식을 예년보다 많이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전야제와 본 주간 연주를 합해 언급할 가치가 있는 것만 10여 개가 넘는다. 토마스 헹엘브로크가 지휘한 발타자르 노이만 앙상블과 소프라노 카타리나 콘라디의 모차르트 아리아 협연(1.28)은 주목할 만했다. 모차르트 교향곡 1번과 모차르트 아리아 3개로 진행되었다. 콘라디는 수잔나(‘피가로의 결혼’), 파미나(‘마술피리’), 체를리나(‘돈 조반니’)의 아리아를 불렀다.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바렌보임과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네 손을 위한 피아노(1.28)도 뛰어났다. 모차르티아데(1.30)는 독특한 형식의 모차르트 가곡 공연이었다. 메조소프라노 막달레나 코제나와 소프라노 실비아 슈와르츠, 테너 마우러 페터, 피아니스트 엘레나 바쉬키로바가 출연한 이 프로그램은 가수들이 가곡을 노래하는 동안 막달레나 코제나가 낭독하는 듯한 레치타티보로 해설을 더하면서 무용단의 연기가 합류하는 형식이었다. 모차르트 가곡 ‘클로에에게’ ‘꿈속의 그림’ 등 9개 작품을 선보였다. 바렌보임은 폐막무대(1.31)에서 빈 필을 지휘하며 전 모차르트 주간 예술감독이었던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와 협연했다. 바르톨리는 첫 순서로 등장하여 모차르트의 콘서트 아리아 ‘내가 그대를 잊었다고? 아냐, 두려워 말아요(Ch’io mi scordi di te?…Non temer, amato bene)’를 불렀다. 이어서 바렌보임/빈 필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4번과 교향곡 38번 ‘프라하’를 연주했다. 글 김운하 (재 ‘새로운 한국’ 발행인·‘재오한인’ 편집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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