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심포니 라이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3월 8일 9:00 오전

GAEKSUK EYE

from AMERICA

시애틀 심포니

다종다양해지는 온라인 연주회

 

겨울 날씨처럼 잔뜩 웅크린 미국 내 연주단체들이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다. 아직 대면 연주가 허용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몇몇 메이저 악단이 온라인 콘텐츠를 제작하며 비대면 연주 흐름에 가세하고 있다.

토크쇼부터 ‘깜깜이 연주회’까지

지난 2월 초, 구스타보 두다멜/LA 필은 할리우드볼 무대에서 펼친 ‘영감의 아이콘(Icons on Inspiration)’이라는 제목의 특별 콘서트를 공개했다. 영화배우 나탈리 포트만과 피아니스트 유자 왕을 비롯해 각 예술 분야의 상징적인 인물이 영감을 주제로 음악감독 두다멜과 나눈 대화를 악단의 연주와 교차해 1시간 분량으로 엮어냈다. 차이콥스키와 말러의 교향곡부터, 아프리카계 젊은 여성 작곡가인 제시 몽고메리(1981~)와 베네수엘라의 대표적인 작곡가 알데마로 로메로(1928~2007), 그리고 미국 재즈 음악의 상징 듀크 엘링턴(1899~1974)의 작품까지 시대와 세대를 아우르는 종합선물로 구성됐다. 오는 3월 17일까지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다. 일찌감치 온라인 연주회 시리즈를 시작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지휘자와 독주자, 그리고 작곡가의 인터뷰를 대화 형식이 아닌, 관객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모양새로 갖췄다. 영상과 음향 수준은 여타 연주단체들과 비교해 단연 돋보인다. 출연한 예술가에 대한 정보와 리허설 실황, 그리고 작품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디지털 로비’를 만들어 관객의 수요를 충분히 만족시키고 있다. 연주할 작품을 미리 발표하지 않는 파격을 벌이기도 한다. 지난 2월 초 시애틀 심포니가 열었던 온라인 연주회 ‘희망과 조화(Hope & Harmony)’는 일정과 지휘자 이름 정도만 공개하고, 곡목은 연주회에서 확인하게 하는 전략을 시도했다. 베일에 가려졌던 이날의 선곡은 멘델스존의 ‘고요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 서곡과 본 윌리엄스(1872~1958)의 ‘종달새의 비상’, 그리고 두 남미 작곡가의 작품으로 꾸며졌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깜깜이’ 형식을 통해 노렸던 것이 무엇인지 불명확했다. 묻지마식의 연주는 정교한 디자인이 생명이다. 그렇지 않으면 득보다 실이 크다.

구스타보 두다멜 ©2021 Los Angeles Philharmonic Association

‘영감의 아이콘(Icons on Inspiration)’ ©2021 Los Angeles Philharmonic Association

시애틀 심포니 라이브

시애틀 심포니는 ‘시애틀 심포니 라이브’ 시리즈를 통해 온라인 연주회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공연 중 제마 뉴(1986~)가 지휘봉을 잡은 공연(1.28)이 눈길을 끌었다. 뉴질랜드 출신의 제마 뉴는 세계 주요 악단의 러브콜을 받기 시작한 젊은 여성 지휘자이다. 캐나다 토론토 인근의 해밀턴 필하모닉의 음악감독과 댈러스 심포니의 수석객원지휘자로 재직하고 있다. 수년 전 그가 뉴욕의 한 오케스트라에서 음악감독직을 맡았던 당시 악단에서 활동했던 한 바이올리니스트는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진 인물”이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제마 뉴는 특히 젊은 연주자들 사이에서 평가가 후한 지휘자로도 알려졌다. 동료 음악가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제공한다는 것은 지휘자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다. 터키 출신의 수석 첼리스트 에페 발타지길의 하이든 첼로 협주곡 1번에 이어,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1번이 이어졌다. 수준 있는 악단이 자신들의 역량을 극명하게 보여줄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영리한 선택이다. 이 곡에서 제마 뉴는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움을 마음껏 뽐냈다. 잘게 쪼개 구조를 보여주며 통제하는 친절한 지휘 대신, 큰 비트를 짚어가며 전체 그림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곡을 풀어갔다. 시애틀 심포니는 연주가 진행되는 내내 인상적인 짜임새를 보였다. 미시적 통제 대신 적극적 신뢰를 선택한 제마의 선택은 옳았다. 첫 곡으로 연주된 젊은 작곡가 세라 깁슨의 ‘날실과 씨실(warp & weft)’은 2019년 1월 LA 체임버 오케스트라에 의해 초연된 14분 길이의 곡이다. 목관 연주자들이 종이를 찢는 연주를 하기도 하고, 어울리지 않는 화성의 조합을 켜켜이 쌓고 허물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소리의 레이어를 연결해 흐름을 이어가는 중간중간 커다란 붓으로 어디서 본 것 같은 익숙한 그림을 그려 넣은 듯했다. 바로 그 익숙한 사운드가 일반 청중이 긴장감을 잃지 않고 곡을 따라가는 동력을 제공했다.

설득력 갖춘 현대음악

한국의 한 중견 작곡가는 현대음악이 나아갈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 중 하나는 재즈 음악이라고 말했다. 화성을 쌓는 체계도 일반 클래식 음악과 구분되는 부분이 있고, 즉흥적 요소에서 오는 연주의 자유로움 또한 전통의 습관과는 다르다. 이런 측면에서 세라 깁슨의 작품에 등장하는 재즈 음악 코드는 현대음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좋은 모델인 셈이다. 작곡가의 초기 작품을 초연한 적이 있는 필자는 오래간만에 그의 최근 작품을 다시 접할 수 있었다. 곡의 막바지 긴 음가를 뚜걱뚜걱 이어 붙인 덩어리들의 내면에서 휘젓듯 움직이는 리듬은 마치 브리튼(1913~1976)의 문법을 연상시켰다. 언뜻 듣기에는 느리고 여유 있지만, 리듬을 돕는 지휘자는 무척 바쁘게 움직였다. 만일 현대음악이 ‘새로움’이라는 목적지만을 지향한다면, 그 끝은 뻔하다. 클래식 음악 악기로 구현할 수 있는 특수 효과나 새로운 연주법은 이미 모두 시도되었기 때문이다. 신선한 접근은 고갈되고, 수백 년 동안 이어온 새로운 모험은 존 케이지(1912~1992)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그렇다고 이것이 심각한 문제나 위기라는 뜻은 아니다. 역사가 순환하듯 결국 예술도 정해진 틀 안에서 어디론가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아이러니는, 새로움은 대중의 잣대에 냉정하게 심판당하며 저항에 부딪힌다는 점이다. 쇤베르크(1874~1951)의 등장처럼 음악사에 변곡점이 될만한 사건이 모두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앙드레 지드의 말처럼, 그것이 전혀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시도된 것들이 설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 김동민(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작곡가 세라 깁슨

제마 뉴 ©Fred Stucker

시애틀 심포니 라이브

시애틀 심포니 라이브


 

from UNITED KINGDOM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

영국과 유럽연합의 새 협정

 

지난해 말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과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브렉시트 이후 무역 및 협력 협정에 서명했다. 그로 인해 그동안 자유롭게 왕래가 가능했던 그레이트브리튼 섬(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의 총칭)과 유럽 대륙 간 이동에 많은 절차가 추가될 예정이다. 영국인이 90일 이상 유럽국가에 체류할 경우,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영국의 음악인들 또한 예외는 아니다. 이는 유럽 땅에서 공연하는 영국 음악가는 고가의 악기에 대한 통관 서류도 준비해야 하고, 수백 파운드에 달하는 건강 보험도 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EU 회원국 각각의 상황에 따라 취업 허가가 필요할 수도 있다. 당연히 비자 발급 과정에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일부 월드 스타 음악가와 런던 심포니 같은 대형 오케스트라에게 이 과정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프리랜서 음악가와 소규모 앙상블은 음악적 경력을 쌓아가는 데 암초를 만나게 됐다.

미르가 그라지니테 틸라

사이먼 래틀 ©warner classics

영국 음악인들의 엑소더스와 위기

영국 음악계는 연이어 두 명의 스타 지휘자를 잃었다. 두 사람 모두 시티 오브 버밍엄 심포니(CBSO)와 깊은 관련이 있다. 예전에 지역에서나 알려졌던 CBSO를 1980년부터 맡아 18년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사이먼 래틀(1955~)과 2016년부터 CBSO를 이끌며 명성을 얻은 미르가 그라지니테 틸라(1986~)가 영국인들 가슴에 큰 구멍을 냈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를 2017년부터 맡은 래틀은 2023/24 시즌부터 독일 뮌헨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합창단을 맡기로 했고, 틸라는 2021/22 시즌을 마치면 CBSO의 상임지휘자 자리에서 내려와서 2022/23 시즌에 수석객원지휘자로만 임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LSO를 맡아 베를린 필에서 금의환향했던 래틀은 당시에 자신의 선택을 “인생 마지막 빅딜”이라고 했고, 틸라도 CBSO에 대한 진한 애정을 보였다. 그들은 결별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두고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이라고 밝혔다. 틸라는 브렉시트 이후 잘츠부르크의 집과 버밍엄을 오가는 것이 힘들 것으로 예상돼 버밍엄을 떠난다고 한 언론에서 밝힌 바 있다. 래틀도 코로나로 인해 강제로 휴식하게 된 지난 1년 동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느꼈기에, 독일행을 결정했다고 한다. 래틀이 오래전부터 공개적으로 브렉시트를 반대해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브렉시트가 “(영국) 스스로 만들어낸 문화 감옥”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여기에 래틀이 독일 국적을 취득 중이라는 것과 그가 영국 국적을 유지하면서 독일 이중 국적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영국의 음악비평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주간지 ‘스펙테이터’에 기고한 글에서 “이는 상처에 모욕까지 준 격”이라고 허탈해했다. 영국에서 가장 성공한 지휘자로 기사 작위까지 받은 래틀이 독일 국적 취득을 “필요한 일”이라고 항변하면서 그가 독일행을 선택한 일은 영국 음악계에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영국 정부와 EU는 협의를 끌어내지 못한 부분에 서로의 탓만 하며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다. 협정 이후 즉시 영국 음악인들은 서명운동에 나섰지만, 독일 내 여론은 “EU는 아쉬운 것이 없다”가 주를 이루고 있다. 영국 ‘가디언’ 지는 공연 및 음악 축제는 2019년 경제에 ‘58억 파운드를 기여한 산업’이라고 보도하면서 새로운 협정은 음악가뿐 아니라, 음향·조명 엔지니어 등 광범위한 산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영국 음악인들 중 44%가 수입의 많은 부분을 유럽 땅에서 올리고 있는 상황. 팬데믹이 끝난 후 젊은 음악가들이 돌아갈 일자리가 사라질까 노심초사하는 영국이다. 글 오주영(독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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