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과 환경 보호, 음악가·환경운동가·국내 관계자들의 이야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4월 5일 9:00 오전

SPECIAL 1
환경을 위한 예술의 책임

 

클래식 음악과 환경보호

환경을 지킬 책임은 모두에게 있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당신에게도

 

​코로나19의 여파로부터 자유로워지면, 해외 아티스트나 악단을 전처럼 자주 볼 수 있을까? 글쎄, 그때쯤이면 우리는 또 다른 전 지구적 재앙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

483kg. 한 사람이 대서양을 횡단하는 비행으로 지구상에 남기는 이산화탄소의 양이다. 해외 유수 악단의 내한 공연 시, 이동해야 하는 사람 수는 최소 50여 명. 수십개의 거대한 악기들이 연주자들과 동반한다는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지구의 희생을 눈감아온 셈이다.

더 이상 모를 수도,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시대가 됐다. 오랫동안 ‘월드 투어’가 악단이나 아티스트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클래식 음악계에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를 일찍부터 인지하고 변화를 촉구해온 인물들이 있다. 50여 년전부터 환경 파괴의 위험을 제기한 과학자들처럼.

바이올리니스트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는 연주 여행의 폭을 유럽대륙으로 좁히고 기차로만 이동할 것을 선언했고, 피아니스트·작곡가 루도비코 에이나우디는 환경단체 그린피스와 함께 캠페인 활동을 해오고 있다. 2006년 설립된 영국의 비영리단체 ‘줄리의 자전거(Julie’s Bicycle)’는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연극·무용 등 영국 예술계 전반에 적용하기 위한 ‘친환경 운영안’을 연구한다.

이들에게 멀게만 느껴지는 환경문제에 대해 클래식 음악계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한국의 대표 악단, 공연장, 음악축제에 어느 정도 환경문제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의견을 구했다.​

‘객석’과 이야기를 나눈 인터뷰이 모두가 강조한 것이 있다. ‘관객’이 동참할 때, 비로소 단체의 노력이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 환경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나 있다. 예술가, 기획자, 관객이 함께 행동할 때, 지구는 더 오랫동안 음악이 흐르는 무대로 자리할 것이다

글 박찬미 기자

 

 

PART1 · FROM ARTISTS ·
지구의 환경을 고민하는 음악가들

 

바이올리니스트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

 

#1. 첫 기후 콘서트에 참가하다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일들이 과연 효율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는지도요. 하지만 아무것도 안할 수는 없습니다.”

코파친스카야가 움직이기 시작한 건 2012년. 환경에 대한 뜻을 공유하던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몇몇 음악가들이 창단한 ‘변화의 오케스트라’의 ‘기후 콘서트’에 참여하면서부터다. ‘기후 콘서트’는 환경문제에 관한 의식을 제고하고 공연 수익금을 동유럽의 생태보전 프로젝트에 기부하기 위해 기획됐다. 기후학자이자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의 설립자인 한스 요하임 슈넬후버가 자문위원으로 함께해 예술적 움직임에 힘을 실었다.

 

#2. 세상은 진노할 것이다 이후로도 코파친스카야는 ‘변화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기후 변화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선보여왔다. 2019년에는 직접 기획한 ‘진노의 날(Dies Irae)’ 프로젝트를 열었다. 인간의 파괴적인 내면을 표현한 하인리히 비버·쿠르탁·갈리나 우스볼스카야 등의 작품을 지나, 세상의 종말을 경고하는 그레고리안 성가 ‘진노의 날’로 막을 내리는 콘서트 프로그램이다. 2017년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이래로 베를린 슈타츠오퍼, 드레스덴 페스티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등에 오르며 더 많은 관객에 소개됐다.

“한 악단이 다른 나라로 비행해 가서 브람스나 말러와 같이 이미 잘 알려진 곡을 평범하게 연주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봅니다. 이것은 로컬 악단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죠. 환경문제에 대해 음악가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가 ‘진노의 날’ 프로젝트입니다. 전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제 ‘언어’죠.”

 

#3. 불편한 5시간이 세상을 바꾼다 보다 실질적인 실천 방안도 세웠다. 비행 횟수를 최소화하고, 기차로 이동이 가능한 유럽 내로 연주 여행의 범위를 좁힌 것. 비행으로 1시간이면 도착할 거리에 기차로 5시간을 들이는 것은 당장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그 계산법에는 여러 가지가 간과돼 있다. 비행으로 야기된 오염을 복구시키기 위한 미래의 사회적 비용도 그중 하나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공항으로 이동해 복잡한 탑승 절차를 거쳐 짐을 찾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까지 고려한다면, 기차는 비행에 대항할 만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훨씬 넓은 공간에서 편하게 먹고 일하거나, 수면실에서 편히 잠을 잘 수도 있죠. 내 음악적 동료인 브리튼 신포니아, 카메라타 베른은 기차 이동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브리튼 신포니아와의 지난 영국 투어도 모두 기차로 이뤄졌고요.” 공연에 따른 탄소배출량의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요소는 ‘관객’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공연기획자인 렌더 호타키 박사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의 연구 결과가 이를 보여준다. 많게는 1,000여 개 좌석을 채울 관객 대부분이 자가용으로 이동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다. 코파친스카야는 관객을 포섭할 수 있는 방안의 필요성도 강조한다.

“제가 거주하고 있는 스위스 베른의 오케스트라는 관객에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을 강력히 권장합니다. 심지어 셔틀버스를 운영해 인근 마을에서 사람들을 태우고 오기도 합니다.”

 

#4. 서울까지 일주일이 걸리더라도 악기의 미세한 떨림, 곡에 담긴 미묘한 감정을 포착하는 클래식 음악은 특히 라이브 연주에 대한 청중의 갈망이 큰 장르다. 그렇다면 친환경 연료로 비행기가 운행되는 그날까지, 한국에서는 코파친스카야의 연주를 만나기 어려운 걸까?

“민스트럴은 걸어서 유럽을 횡단했고, 모차르트와 파가니니는 마차로 여행했어요. 전 8~9일이 걸리더라도 기차를 타고 베른에서 서울까지 이동할 의향이 있습니다. 가장 비현실적인 것은 따로 있어요. 바로 현재의 방식을 계속 유지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피아니스트·작곡가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1. 위기에 놓인 존재를 위한 노래 북아메리카 북동부 대서양과 북극 사이에 있는 세계 최대의 섬 그린란드에 전례 없는 빙하 유실이 기록됐다. 세계기상기구는 ‘2020 글로벌 기후 현황 보고서’를 통해 그린란드에서 유실된 빙하의 양이 지난 40년 관측 사상 최고치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빙하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윈도우 바탕화면으로 쓰일 법한 장대한 자연 경관만이 아니다. 많은 생명이 삶의 터전을 잃는다. 무너진 먹이사슬은 야생동물을, 높아진 해수면은 인근 지역 주민들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존재들을 그리며, 루도비코 에이나우디는 애가를 지었다. 그리고 직접 노르웨이 인근의 북극해를 찾아, 녹아내리고 있는 빙하 옆에서 작품을 연주했다. 쏟아져 내리는 듯한 하향 패시지가 반복될 때, 저 멀리 빙하가 무겁게 내려앉는다. 해빙(解氷)이 살갗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2016년,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캠페인 프로젝트 ‘북극을 지켜라(Save the Arctic)’의 일환으로 제작된 이 영상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유튜브에서는 1,500만이 훌쩍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

“전 세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북극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은 차라리 기이한 일에 가까웠거든요. 그 가운데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람들에게 분명히 전달됐습니다. 이런 시적인 메시지는 ‘말’보다 훨씬 강력해요. 바로 심장으로 파고들기 때문입니다.”

 

#2. 곧 마주하게 될지도 모를 위험 ‘북극을 지켜라’ 프로젝트가 사람들에 가닿기까지 여러 난관이 있었다. 노르웨이 인근 북극해로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옮기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빙하를 닮은 플랫폼을 특별 제작해 바다에 띄우고 그 위에 피아노를 옮겼다. 에이나우디가 악기 앞에 앉은 순간 근처에서 빙하가 무너졌다. 그로 형성된 엄청난 파도가 아찔한 순간을 만들기도 했다. 해빙이 지속된다면 우리에게 닥칠 위기를 보여주듯.

“극단의 기후 조건 속에서 피아노가 음정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했어요. 그러나 촬영이 진행된 48시간 동안 버텨주더군요! 넘어야 할 산은 제 자신이었습니다. 기온이 무척 낮아, 10분마다 촬영을 멈추고 손을 녹여야 했죠.”

악조건 속에서도 에이나우디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미리 작곡해간 ‘북극을 위한 애가(Elegy for the Arctic)’에 실제로 보고 경험한 북극을 덧댔다. 자연은 늘 그에게 영감이 됐다. 십 대부터 환경에 관한 깊은 관심을 보인 그는 자연을 소재로 여러 작품들을 남겨왔다. 알프스에서의 지각 경험을 음악으로 치환한 ‘더 세븐 데이즈(The Seven Days)’ 시리즈도 하나의 예다.

“자연은 늘 모두에게 감동을 줍니다. 자연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고요. ‘더 세븐 데이즈’는 자연 속을 거닐 때 찾아오는 명상적인 마음 상태를 반영한 작품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주변 환경에 대해 더 사려 깊어지죠.”

그는 지난해 6월 그린피스가 개최한 온라인 ‘홈 콘서트’에서도 ‘더 세븐 데이즈’의 일부를 선보였다. 맑고 가벼운 기운의 작품들을 선별해 연주했다. 사람들을 덮친 ‘코로나 블루’의 무거움을 덜어내면서도, 환경문제를 다시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다.

“코로나19는 환경에 관한 더 높은 관심을 촉발한 계기이기도 합니다. 그간 세계가 비정상적으로 빠르게 움직여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지구에 덜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방법으로 삶과 일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사실도요.”

 

#3. 음악가, 그리고 지구촌 시민으로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건 공연장과 악단도 마찬가지다. 안타깝게도, 에이나우디는 아직 친환경 운영방식을 적용하거나 관객에 행동을 촉구하는 단체를 만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사실 코파친스카야가 언급한 스위스 베른의 긍정적 사례는 극히 드물다. 스위스는 평균 기온이 미국의 여러 지방보다도 높은 제네바에 1980년대부터 특별 허가 없이는 에어컨을 설치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를 시행한 나라다. 더욱 놀라운 건 사람들이 에어컨 없이 사는 법을 익혔다는 것. 이처럼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미 자리 잡은 특수한 곳이기에, 예술계의 적용도 빨랐던 것으로 보인다.

캠페인을 통해 더 많은 사람과 대형 조직의 참여를 촉구하는 것 외에도, 한 명의 음악가로서 실천해야 하는 것들은 많다. 여기엔 일회용품, 화석연료 사용 줄이기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들도 포함돼 있다.

“음악가라고 해야 할 일이 크게 다른 것은 아닙니다. 작은 실천을 일상에 흡수시켜야 하지요.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일 비행의 대안을 고민해 연주여행에 적용시키는 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일 겁니다.”

 

 

PART2 · FROM JULIE’S BICYCLE ·

©Julie’s Bicycle

 

줄리의 자전거 설립자·CEO

앨리슨 티켈

 

2013년,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는 ‘친환경’을 경영목표 중 하나로 세웠다. 그 이래로 영국의 문화예술계 구조에 맞는 지속가능한 운영 정책과 가이드를 마련하는 데 앞장서왔다. 위원회의 발걸음에 함께하는 조직이 있다. 영국의 비영리단체 ‘줄리의 자전거(Julie’s Bicycle)’다.

앨리슨 티켈이 2006년 설립한 ‘줄리의 자전거’는 문화예술계가 기후위기에 대응할 방법을 연구하고 소개한다. 각종 연구 자료를 나누는 ‘정보 은행’이자, 문화예술계와 환경계를 연결하는 ‘교차로’, 그리고 창의적인 기후행동 리더들을 양성하는 ‘태반’으로 역할 한다.

“‘기후위기’라는 말이 흔치 않던 시절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가족 구성원 중 기후 과학자가 있었거든요. 자연스럽게 환경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죠. 첼리스트로 성장했지만, 정작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은 음악 그 자체라기보다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음악의 힘’에 있었습니다. 이 힘으로 환경문제를 타개해나가는 것이 ‘줄리의 자전거’의 미션입니다.”

 

행동해야 한다는 증거

‘줄리의 자전거’가 설립과 동시에 한 일은 ‘문제 파악’이었다. 옥스퍼드 대학 환경 변화 연구소(ECI)와 100여 개 음악 회사의 협업을 이끌어내, 영국 음악업계의 탄소발자국을 측정했다. 이로써 큰 지도가 완성됐다. 업계의 특수한 구조에 따른 에너지 소비의 흐름이 그려졌다. 이를 바탕으로 변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개발하며 업계 인식을 높여 갔다. 모든 자료는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됐다. 모두가 문제를 인식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할 중 하나는 단체가 환경문제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떠한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 소개하는 것입니다. 각 단체의 운영 구조와 정책을 파악하고, 그것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일이 선제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구축된 데이터가 처음 빛을 본 것은 2009년이다. 문화예술단체가 가장 편리하고 정확하게 탄소배출량을 측정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그린 툴(ig-tools.com)’이 개발됐다. 공연장과 악단, 축제 등이 각 분야의 운영방식에 맞추어 에너지 사용량과 이로부터 발생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할 수 있다.

2011년에는 영국 오케스트라 연합회의 의뢰로 ‘그린 오케스트라 가이드’가 제작됐다. 가이드는 공연장 운영과 연주 투어, 음반 녹음과 마케팅 시에 적용할 수 있는 저탄소 운영법을 제시하고,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제언을 담았다.

가이드에서 크게 할애하는 영역은 ‘오케스트라 투어’다. ‘줄리의 자전거’의 조사에 따르면 한 대형 오케스트라의 1년치 탄소배출량의 절반이 ‘블록버스터 해외 투어’ 10회에서 비롯됐다. 단순 회의, 공연장 확인과 같은 준비과정에서부터 악단이 무대에 오르고 고국에 돌아가기까지 수백 명이 비행에 수반됐기 때문이다.

‘그린 오케스트라 가이드’는 이에 관해 “국내나 유럽대륙 내 이동 시 비행을 기차로 대체하고, 도심 내 이동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한 차량으로 최대한 많은 인원이 이동할 수 있도록 하라”고 권장한다. 또한 “투어에 함께하는 지휘자·협연자·단원 모두에게 이 투어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하라”고 덧붙인다.

이 가이드는 영국의 여러 악단과 공연장에 적용되어왔다. 2019년 내한한 바 있는 계몽주의 오케스트라(The Orchestra of the Age of Enlightenment) 역시, 지난해 폴란드와 헝가리 투어를 기차로 진행할 것을 선언했다.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적용해 얻은 결과는 놀랍다. ‘줄리의 자전거’의 파트너 단체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2012/13~2016/17 시즌 동안 평균 22%의 에너지 사용 감소를 이뤄냈고, 이에 따라 매해 5%씩 탄소 배출을 줄였으며, 총 약 173억 원을 절감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 환경을 위한 행동으로 빚어지는 손실은 없을 겁니다. 첫째로, 우리가 증명한 것과 같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의 평판은 물론, 근무자들의 자부심까지 높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옳은 일에 동참한다는 데서 높은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를 통해 우리는 더욱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 있는 거고요.”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위 메이크 투모로우’ 워크숍 현장

‘줄리의 자전거’는 단체들의 지속적인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한다. 저탄소 경영법을 실천하는 단체에게 ‘증명서’를 발급하고, 매해 독보적으로 환경보호 실천에 앞장서거나, 창의적인 방법을 개발한 단체에 ‘크리에이티브 그린 어워드’를 수여한다.

지난해 ‘크리에이티브 그린 어워드’를 수상한 영국 국립청소년극단 유니콘 시어터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100% 친환경 방법으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하고, 프로덕션에 쓰인 세트나 소품, 의상을 높은 비율로 재활용하여 쓰레기 매립률 0%를 달성하는 결과를 도출한 것. 환경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시즌 프로그램으로 선보이며 캠페인 활동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극단의 예시이긴 하지만, 클래식 음악 단체에도 모두 적용할 수 있는 실천 방안들이다.

문화예술계의 기후행동으로 어떠한 긍정적 효과를 거두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성취를 이루기까지 어떤 고충이 있었는지 공유하는 자리도 필요하다. ‘크리에이티브 기후 리더십’ 프로그램이 그런 목적으로 운영된다.

“공무원·정책입안자·아티스트·투어매니저·제작자 등 문화예술계에서 다른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때 모두가 ‘리더’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기후문제에 관해서는 과학자나 환경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모두가 주체적으로 움직여야하기 때문입니다.”

‘줄리의 자전거’는 기후위기에 관한 목소리가 특정 계층에 의해 지배되어왔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기후 정의(Climate Justice)’의 실현도 추구한다. 모두가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장으로서 워크숍·팟캐스트를 활발히 운영 중이다.

“자연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역사적으로 제3세계 천연자원을 약탈하고 땅을 점거하며, 원주민과 로컬 환경 간 관계를 단절시켰던 계층에 의해 여전히 묵살되고 있습니다. 이런 고질적인 불균형을 우선 해소해야 합니다. 그로써 자연을 되찾을 가장 윤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줄리의 자전거’가 운영 중인 프로그램들은 세계 50여 개국 3,000여 개 단체에 의해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 업계와는 아직 물리적·심리적 거리감이 먼 것이 사실이다. ‘줄리의 자전거’는 아시아의 문화예술계와 보다 밀접하게 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갈 미래를 고대하고 있다.

“대만·인도네시아·싱가포르·홍콩 등의 아티스트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아시아 단체들과 장기 정책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계획을 추진 중이죠. 기후위기에 있어서 국경은 무의미합니다. 예술문화계가 힘을 합해야 더욱 빠르게 해결책을 논할 수 있을 겁니다.”

 

 

PART3 · FROM CEOs ·
국내 단체들은 가능할까

 

한국의 클래식 음악계는 기후위기에 대응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취재한 해외 사례가 과연 국내에 현실적으로 적용가능할 지 타진해보고자 교향악단, 공연장, 축제 관계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오케스트라

코리안심포니 대표이사 박선희

 

환경위기에 관한 관심도는?

문제의식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됐으나, 공연계의 대응은 더디다. ‘환경’을 주제로 한 단발성 음악회가 열리고는 있지만, 더욱 본격적으로 화두 삼아야한다.

 

코리안심포니의 실천은?

작년 12월, 연습실 전구를 고효율 LED로 전면 교체했다. 반영구로 사용할 수 있는 데다, 전기료도 절감된다. 빛이 굉장히 밝아서 악보를 보는 데 좋다는 의외의 피드백도 있었다. 또한, 단체 내외로 숱하게 진행되는 계약을 전자 시스템으로 전환해 종이 사용량을 줄였다. 한편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공연 횟수가 늘었다. 대면 공연보다는 에너지 사용과 탄소 배출이 훨씬 적다. 여전히 더 나은 방안을 생각해야겠지만.

 

코리안심포니의 과제는? 그간 공연계에는 ‘부족한 것보단 남는 게 낫다’는 인식하에 홍보물을 넉넉히 준비하는 관례가 있었다. 최근 50~60대도 스마트폰과 온라인 매체를 적극 활용한다. 종이 대신 스마트폰으로 프로그램북을 볼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실물 프로그램북을 소장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사후 제작 서비스도 가능할 것이다. 한편 악단의 순회공연을 비행 없이 육로(기차)로만 진행하는 것이 과연 지속가능한지는 의문이 든다. 더 좋은 대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관객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은? 코로나19 이전에 주차하느라 공연에 늦는 관객이 꽤 많았다. 대중교통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티켓 할인 제도 등을 시행할 수 있을 것 같다. ‘환경을 위해 불편을 감수할 만하다’는 좋은 인식도 점차 자리를 잡고 있다. 이러한 자세와 의지를 마케팅화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든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단체라는 점이 이러한 움직임에 윤활유 역할을 하는지. 국가기관 영향력 평가 요소에 ‘윤리 경영’ ‘책임 경영’ 등이 포함된다. 이에 따라 기관들은 친환경 전략을 적용하려는 노력하고 있는데, 문화예술계 구조에 따른 구체적인 사항은 마련된 게 없다. 풀어야 할 숙제다.

 

국가적 제도가 마련된다면 가속도가 붙을까?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제도는 실제 사례와 다양한 이해 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해 정착되어야 한다. 지난한 과정이지만 그래야 부작용이 덜하다.

 

문화예술계의 역할은? 내게 환경문제에 대해 처음 경각심을 일깨운 건 영화 ‘부시맨’(1980)이었다. 편리함을 위해 자연의 질서를 거스른 문명사회가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문화예술은 환경보호를 위해 감수하는 잠깐의 불편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는지 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공연장

고양문화재단 대표이사 정재왈

 

환경위기에 관한 관심도는?

공연장 업계에서 잘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의 문제인 만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주제다.

 

재단에서 운영 중인 고양아람누리의 실천은?

작년부터 사무실과 공연장 로비의 전구를 LED로 교체해 에너지 절약을 도모하고 있다. 백스테이지에 각 홀을 연결하는 통로는 사람을 인식할 때만 켜지는 센서등을 사용한다. 한국전력과의 협력으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해 에너지를 얻고 있는데, 아직 생활 전기 수준으로 공연장 전체 가동에는 무리가 있다.

 

고양아람누리의 과제는?

공연장은 두 가지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다. 공연장의 하드웨어를 작동시키는 데 드는 에너지를 줄이는 것. 다른 하나는 이곳에 모이는 예술가와 관객이 기후행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두 가지를 조화롭게 이루어야 최대의 효과를 이룰 수 있을 테다.

 

변화를 위해 필요한 변화는?

공연장만의 외침으로는 힘들다. 포럼 등의 자리를 마련해 관계자 모두가 문제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또한, 한국문화예술연합회 등 문화예술계의 공적 조직에서 이런 움직임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지켜지지 않는 것에 대한 제재보다 실천에 대한 혜택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당장 모든 것을 친환경적으로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변화를 도모할 때 유의해야 할 지점이 있다면.

당장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 돈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변화를 통해 우리가 궁극적으로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무엇인지 전략적으로 계산해볼 필요가 있다.

 

 

축제

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이사 이용민

 

환경위기에 관한 관심도는?

지금까지 공연업계의 관심도는 ‘평균 이하’였다고 본다. 환경문제로부터 비켜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코로나19의 근본적 원인은 균형을 잃은 생태계에 있다. 공연예술계 역시 사회의 일원으로서 각자의 역할을 모색해 나가야 하는 때다.

 

통영국제음악재단의 실천은?

지난 1월 재단 대표로 취임하면서 ‘공기관으로서 사회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엔 당연히 기후행동도 포함된다. 당장은 공연장과 축제(통영국제음악제)에서 발생하는 인쇄물을 줄이고 있다. 그 일환으로 그간 발간하던 책자형 저널을 없애기로 했다. 전기자동차 충전소도 준비 중이며, 이외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발굴하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재단의 과제는?

환경을 주제로 한 독립적인 음악축제를 구상하고 있다. 또, 통영국제음악재단은 통영시가 세계 여덟 번째로 가입한 UN지속가능발전교육재단의 운영위원회에서 활동해왔다. 최근 ‘지속가능한 실천협의회’에도 참여하며 정보를 나누고 있다. 제일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은 환경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고, 이를 위해 올바른 정보와 연대가 필요하다. 통영은 청정지역이고 바다를 끼고 있어,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 등 환경 이상 징후에 예민한 편이다. 인류와 예술을 지키기 위해 환경에 대한 숙고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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