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인큐베이팅 뉴월드 심포니·메트 오페라·카네기홀 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12월 29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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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큐베이팅

뉴월드 심포니·메트 오페라·카네기홀 외

음악가의 길을 걷기 위한 든든한 발판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리치먼드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오보에 수석으로 정지혜(Victoria Chung, 1995~)가 선발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60여 명의 지원자와 3일에 걸쳐 진행되는 블라인드 오디션을 통과한 결과였다. 이미 한국계의 수많은 현악기 연주자들이 미국 내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관악기 연주자의 경우는 흔하지 않다.
플루티스트 최나경이 신시내티 심포니와 빈 심포니 단원으로 발탁되었고, 손유빈이 뉴욕 필 플루트 정단원이 되었지만, 연간 38주의 시즌을 소화하는 중견 오케스트라의 오보에 수석으로 한국인이 발탁된 것은 정지혜가 최초이다. 그의 음악적 뿌리는 어머니와 할아버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머니는 오보이스트인 배경미이고, 그의 할아버지 또한 KBS교향악단에 수십 년 몸담았던 한국의 1세대 바이올리니스트인 고 배병호 선생이다.

경험과 시간이 빚는 오케스트라 단원

(c) New World Symphony

줄리아드 음악원을 졸업한 직후 정지혜의 첫걸음이 향한 곳은 뉴월드 심포니였다. 마이클 틸슨 토마스가 설립한 뉴월드 심포니는 올해로 34년을 맞은 오케스트라 아카데미로,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할 예비 단원을 길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아카데미의 남은 기간과 관계없이, 다른 오케스트라에 입단할 경우, 언제든지 이곳을 떠날 수 있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심장부에 2011년 개관한 750석 규모의 전용 홀을 가진 뉴월드 심포니는 기성 프로 오케스트라와 동일한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단원은 최대 3년간 활동할 수 있고, 예술감독 마이클 틸슨 토마스를 비롯해 세계적 명성의 지휘자와 연주하고, 매달 유수 오케스트라의 베테랑 수석 주자들을 초청해 악기별 지도와 마스터클래스, 그리고 모의 오디션을 진행하는 등 다각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뉴월드 심포니는 참가자에게 아낌없는 재정적 지원을 한다. 가구 일체가 완비된 개별 숙소와 생활비를 지원하고, 별도로 외부 레슨이 필요한 경우, 악단에서 레슨비용을 제공하기도 한다. 만약 섭외가 어려운 아티스트인 경우, 직접 연결을 돕기도 한다. 뉴월드를 거쳐 간 1,000여 명이 넘는 참가자들은 미국 전역의 오케스트라에서 활약 중이다.
시카고 심포니의 산하단체로 운영되는 시카고 시빅 오케스트라(Civic Orchestra of Chicago) 역시 뉴월드 심포니처럼 트레이닝 오케스트라이다. 2013년부터 3년 동안 시빅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한 바 있는 플루티스트 유정화는 시카고 심포니의 날개 아래 있다는 점을 시빅 오케스트라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시카고 심포니의 전용 홀인 2,500석 규모의 심포니 센터를 함께 사용하고, 정기적으로 단원들로부터 지도를 받는다. 시카고 심포니라는 탄탄한 재단과 검증된 시스템 위에 음악감독 리카르도 무티와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고, 악단을 거쳐 가는 수많은 객원 아티스트들과 함께 무대를 만들어가는 전통은 시빅 오케스트라의 핵심 자산이다.
뉴월드 심포니가 전문 오케스트라 연주자 양성에 포커스를 뒀다면, 100년 전통의 시빅 오케스트라는 박물관·미술관·양로원·쇼핑센터 그리고 길거리에서의 작은 음악회를 통해 커뮤니티와의 접촉점을 최대한 넓혀 지역과 함께 호흡하는 음악가의 책임을 강조한다. 시빅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참가한 퀴니 에드워즈의 이야기처럼 시빅 오케스트라는 연습실에만 갇혀있던 젊은 음악가들의 고민이 커뮤니티로 확장될 수 있도록 동기와 장을 제공하는 곳이다.

든든한 지원 아래 육성되는 오페라 가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 오페라)에는 새로운 가수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린데만 영 아티스트 육성 프로그램(이하 린데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제공되는 지원의 질과 범위가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린데만 프로그램은 1980년 발족한 이후 전폭적인 지원을 이어가고 있는 조지 린데만 부부의 이름에서 명명되었다. 선정된 젊은 성악가들은 프로그램 동안 메트 오페라의 전·현직 아티스트와 국제적 명성의 강사진을 포함한 세계 최고 인재풀의 혜택을 받는다.
실제 공연 무대에 오르기까지 가수들과 가장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일하는 사람은 이들을 가르치는 코치이다. 코치는 피아노를 연주하며 성악가의 음정과 발음을 듣고 교정해준다. 오페라에 있어서 성악가만큼이나 역량 있는 코치의 역할이 절대적인

이유이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오페라 지휘자들은 코치 경력을 가졌는데, 린데만 프로그램에서는 코치들에게 보조 지휘자로 훈련받을 기회를 제공한다.
린데만 프로그램을 거친 한국 성악가 가운데 소프라노 박혜상은 2017년 루살카에서 첫째 나무 요정으로 데뷔한 이후, 지난해 ‘마술피리’의 파미나로 메트 오페라에 금의환향했고, 2018년 몬트리올 콩쿠르에서 최고상을 받은 테너 박승주는 마스네의 ‘마농’으로 메트 오페라에 데뷔했다. 2019년 설리번 재단의 그랜트 수상자인 바리톤 최기돈은 메트 오페라에서 돈 카를로·나비부인·오텔로에 출연했다. 린데만 프로그램 출신 코치인 이근아는 현재 시카고 리릭 오페라 코치와 디트로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전속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메트 오페라 이외에도 미국 내 주요 오페라 극장마다 젊은 성악 학도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다. 샌프란시스코 오페라의 ‘아들러 펠로우’,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의 ‘영 아티스트 보컬 아카데미’, 시카고 리릭 오페라의 ‘라이언 오페라 센터 아티스트 트레이닝’, 워싱턴 내셔널 오페라의 ‘카프리츠 영 아티스트’ 등이 있다. 플라시도 도밍고가 2006년 창설한 LA 오페라 영 아티스트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기부자의 이름을 기념하며 프로그램명이 정해졌다.

음악과 사회를 잇는 앙상블 커넥트

카네기홀의 대표이자 예술감독인 클라이브 길린슨은 “통계에 따르면 미국 내 연간 음악대학 졸업생 수가 1만 5천 명에 달하지만,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단원은 150명밖에 고용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한 바 있다. 그가 카네기홀에 부임한 후 ‘앙상블 커넥트’ 프로그램을 개설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앙상블 커넥트는 줄리아드 음악원, 와일 뮤직 인스티튜트(Weill Music Institute), 그리고 뉴욕시 교육부와 함께 운영하는 카네기홀 공식 산하단체이다. 재능 있는 음대 졸업생을 선발해 콘서트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뉴욕시 인근 20여 개의 국공립학교의 음악 교육을 도우며, 음악을 통한 사회공헌의 중요성을 부각하며 총체적 음악가로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전문 개발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있다.
2007년에 출범한 이후 현재까지 앙상블 커넥트를 거친 음악가는 130여 명으로, 한국계 연주자로는 플루티스트 손유빈(뉴욕 필하모닉 단원), 클라리네티스트 김윤아(CAG우승), 베이시스트 정하영(뉴저지 심포니 수석) 등이 있다.
2년 과정에 선발된 젊은 음악가들에게는 매년 3천만 원 정도를 지급하고 프로그램과 관련 없는 기타 개인 연주 활동도 보장한다. 앙상블 커넥트 출신 연주자 중 17%가 관련 비영리단체나 독립 프로젝트를 직접 출범했다. 한국계 바이올리니스트 김시우는 동료 앙상블 커넥트 동료인 비올리스트 존 스툴즈와 함께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비보 페스티벌’을 출범해 올해로 일곱 번째 시즌을 맞았다.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전공한 카엘리 스미스는 음악 교육의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 레슨의 공급과 수요를 온라인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플랫폼인 ‘뮤직 캘리’를 작년에 처음 선보였고, 최근 하버드 교육대학원으로 진학하여 관련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 캐나디언 브라스의 트럼피터 브랜던 라이든노어는 앙팡블 커넥트 출신 동료 3명과 함께 5인조 퓨전 재즈 그룹 ‘파운더스’를 시작해 투어와 음반을 출시해 활동하고 있다. 앙상블 커넥트는 단순히 다양한 연주 기회 보장을 뛰어넘어, 국공립학교 음악교육 지원, 지역사회 공헌, 그리고 이 분야의 리더를 양성할 수 있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성공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글 김동민(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박혜상

이근아

김윤아

손유빈

김시우

정하영

박승주 (c) Mario Bahg

정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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