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키드’의 아주 사적인 ‘강남타령’ 경기소리꾼 이희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2월 14일 9:00 오전

NEW PRODUCTION

‘강남 키드’의 아주 사적인 ‘강남타령’

경기소리꾼 이희문

유년 시절을 담아낸 신작 ‘강남오아시스’ 초연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사실. 이희문(1976~)은 강남 토박이다. 강남에서 태어나 평생을 화려한 도심에서 자랐다. 지금도 강남에 살고, 집에서 도보 3분 거리에 개인 사무실도 있다. 괴짜 소리꾼의 이미지를 덧씌워도 비집고 나오던 세련미의 이유가, 유행을 선도하는 동시대적 감각의 원천이, 이 땅에 살고 있었기 때문인가?

“쭉 강남에 살았어요. 어릴 때는 제 세상의 전부였죠. 어린아이가 강북을 넘어갈 일이 없잖아요. 어쩌다 백화점 갈 때 정도…?”

종종 주변인들에게 “진짜 강남 사람” 같다는 소리를 듣는다는데, 정작 자신은 영문을 모르겠다고. 여하튼 그가 태어난 1970년대, 강남도 환골탈태를 시작했다. 논밭은 고층 아파트와 고급 상가로 바뀌었다. 소위 ‘강남 8학군’으로 불리는 명문고교도 이때 강남으로 이전했다. 허허벌판에서 초고속 성장한 가장 현대적인 이 공간에서 이희문은 가장 한국적인 민요를 접하며 자랐다. 이번엔 누구나 아는 출생의 비밀(?), 그의 모친은 경기민요 고주랑(1947~) 명창이다. 어린 희문은 바쁜 엄마가 보고 싶을 때면 민요 LP판을 꺼내어 엄마 목소리와 노래했다. 그렇다면 그때 아버지는? 과거 인터뷰에서 이희문은 여러 차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유년 시절 부재와 결핍의 경험은 소리꾼이 된 이희문에겐 오아시스다. 마르지 않는 창작의 샘. 당장 우리가 아는 무대 위 이희문의 모습, 그러니까 갓 대신 가발 쓰고, 도포 자락 대신 치마저고리 휘날리며 간드러지게 노래 한 곡조 뽑아내는 그의 중성적인 매력은 “아버지를 곁에 두지 않은 어린 시절”의 한 조각이다. 소릿길로 접어든 지 20년이 된 올해, 이희문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로 한 이유다.

“민요를 하기 전 저의 이야기에요. 그 시절의 나를 이야기해야, 소리꾼으로 걸어온 20년이 뒷받침된다고 생각했어요. 유년기·소년기·청년기를 다룬 자전적인 레퍼토리 ‘강남’을 3년 동안 시리즈로 만들어갈 거예요. 자기 삶을 생긴 대로 노래했던 민요(토속민요)의 순기능을 되찾는 작업이기도 해요.”

그의 새로운 레퍼토리 ‘강남’은 지금의 이희문을 만든, 우리가 모르는 이희문을 들려준다. 첫 번째 편 ‘강남오아시스’ (2.18~20/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초연을 앞두고 이희문의 사무실을 찾았다. 블랙 앤 화이트톤의 정갈한 공간은 손수 꾸민 것이라 했다.

 

‘강남오아시스’에서는 초등학생 때까지 유년기를 다룬다.

태어나서 열세 살 무렵까지 자아가 형성된다더라. 그 시절 내 삶의 주제는 아버지의 부재였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일곱 살 때까지가 전부다. 그마저도 사업차 일본을 오가셔서 같이 보낸 시간이 별로 없다. 작품을 통해 그를 이야기하려고, 그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그런데 떠오르는 기억이 정말 없어도 너무 없더라.

그럼 어떻게 작품을 만들었나?

하는 수 없지, 사실대로 얘기하는 수밖에. 그래서 세 가지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화자가 어머니한테서 들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 화자가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그건 아버지에 대한 원망일 수도, 바라던 아버지상(象)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은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아버지가 전하는 이야기다.

처음으로 작사·작곡에 도전했다.

내 이야기, 그것도 민요를 하기 전의 이야기를 하려니, 기존 민요로는 해결이 안 되더라. 가사도 새롭게 쓰고 창작곡도 만들었다. 지금까지는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 민요 가사가 워낙 좋기도 하고. 판소리가 소설이라면 민요 가사는 시적이다. 이 시라는 게 참 묘해서, 같은 ‘청춘가’의 가사인데도 10년 전과 작년, 지금 부를 때 다 다르게 다가온다. 그래서 더 가사를 쓸 엄두가 안 났다. 이번 작업도 시인에게 맡겨야 하나 고민했는데, 어느 날 자려고 누우니 하고 싶은 얘기들이 막 떠오르는 거다. 생각나는 대로 적으니 일차원적이긴 해도 내 마음을 다 표현한 글귀였다.

일종의 ‘강남 키드’의 ‘강남타령’인 셈이다. 비주얼적으로는 센 화장을 벗었지만, 어찌 보면 창작적으로는 더 과감해졌다고 할 수 있다.

화장은… 이제 해볼 만큼 다 해본 거지.(웃음) 화장이란 게 내가 바라는 모습이 되기 위한 장치이지 않나. 20년 동안 해오면서 내 안에 축적된 것이 있어서인지 ‘이제 나는 그렇게까지 안 해도 돼’라는 마음이 생겼다.

자연스러운 변화인 것 같다.

나는 20대 후반에 뒤늦게 전통예술계에 들어와서 올곧게 전통을 하다가, 배운 것을 기반으로 컨템퍼러리한 작업을 했다. 그러다 궁금증이 생겼다. ‘전통을 꼭 옛것 그대로 해야 하나?’ 물어볼 데가 없으니 경기민요의 역사를 공부했다. 역사를 공부하고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전통’이란 게 고정된 것 같지만 실은 동시대적인 거다.

그 당시에는 ‘현재’였으니까.

그걸 알아가는 작업이 ‘깊은舍廊사랑’ 시리즈였다. 우리가 전통이라고 부르는 과거에도 현재가 있었다는 것. 경기민요가 머물러 있는 음악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창작에 대한 명분이 선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강남오아시스’라는 공연 제목처럼, 민요 제목에도 지명이 들어간 것이 많다.

민요는 토속민요와 통속민요로 나뉜다. 강원도의 ‘정선아리랑’처럼 지방 곳곳에 생긴 대로 남아 있는 민요를 토속민요라고 한다. 거기서 살던 사람들이 만들고 부른 노래라 그 지역문화를 알아야만 공감이 간다. 가사도 투박해서 직업 소리꾼이 부르던 통속민요가 갖는 대중성은 부족하다. 그러니까 강남에서 나고 자란 나도 지금의 토속민요를 하는 셈이다.

신작을 포함해 이제껏 선보인 레퍼토리가 ‘장소성’이란 맥락에서 상통한다. 궁에서 이뤄진 연희를 콘셉트로 하거나(‘황제, 희문을 듣다’), 극장과 클럽의 경계를 허물거나(‘탐’), 지금은 사라진 1970년대 경기소리 공간문화인 ‘깊은사랑’을 재현했다(‘깊은舍廊사랑’).

우리나라 소리 자체가 무대용 음악이 아니다. 특히 경기소리는 옛날에 ‘사랑방 소리’라고 해서 방 안에서 부르고 들었다. 그런 성격과 양식의 소리를 하다 보니 내 작업도 자연스레 공간과 결부되는 것 같다.

‘강남오아시스’는 1인 음악극 형식을 취한다. 흑인음악을 기반으로 즉흥적인 연주를 하는 밴드 까데호(기타·베이스·드럼)가 함께한다고. 또 협업하는 예술가가 있다면?

기존에는 내가 알음알음 무대를 만들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할 게 많아지다 보니, 전문가의 손길을 빌리기로 하여 여신동 씨가 무대 디자인을 맡았다. 주변에서 같이 해보면 어떻겠냐고 추천받아 그에게 먼저 제안했고, 그 역시 흔쾌히 좋다고 답했다.

사막의 땅속 깊은 곳에 있던 지하수가 밖으로 드러난 것이 오아시스다. ‘강남오아시스’는 예술가라는 정체성 깊숙이 자리하던 어린 시절에서 영감을 길러왔다는 점에서 잘 지은 제목 같다.

안은미 선생님이 지어주신 제목도 좋았다. ‘보이스 오브 빠빠’. 내가 선생님한테 “선생님, 저는 아버지 목소리가 기억이 안 나요” 그랬거든. 사람의 목소리가 기억이 안 나면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굉장히 희미해진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내 안에 결핍된 것도 많고, 못해본 것도 많고, 숨기고 싶었던 것도 많았다. 울어야 했던 날들을 누군가 들어준다면, 나는 드디어 치유될 것이다. 그곳이 내 오아시스다.

글 박서정 기자 사진 이원아트팩토리

이희문(1976~)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이수자. 일본에서 영상을 전공하고 뮤직비디오 조감독으로 일하다가 27세에 뒤늦게 소릿길에 뛰어들었다. 이춘희를 사사했다. 제16회 전국민요경창대회 종합부문 대통령상(2010), KBS 국악대상 민요상(2014), 국립국악원 국악 발전 유공자 포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2021)을 수상했고, ‘이희문컴퍼니’ 대표·예술감독, 프로젝트 그룹 ‘한국남자’ ‘오방신과(OBSG)’에서 활동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강남오아시스’

2월 18~20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이희문(소리)/이태훈(기타)/김재호(베이스)/김다빈(드럼)

 

이희문 레퍼토리 톺아보기

‘경기소리 프로젝트 시리즈’(2010)부터 신작 ‘강남’(2022)까지

경기소리 프로젝트 시리즈

일회적으로 소비되던 전통성악을 공연의 중심으로 끌어왔다. 경기소리의 고유성을 지키는 동시에 관객의 흥미를 끌어낼 수 있는 요소를 접목했다. ‘황제, 희문을 듣다’(2010)는 고종황제의 총애를 받은 경기명창 박춘재를 모티브로 경기소리 100년사를 재조명했다. 관객이 황제가 되고, 이희문 자신이 박춘재가 되어 궁중연희를 연행한다는 콘셉트의 공연이다. ‘거침없이 얼씨구’(2012)는 ‘집에서 밥하다 나온 어머니들과 함께 무대를 만들면 어떨까’라는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전승되던 경기민요를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친숙하게 재해석했다.

오더메이드 레퍼토리 시리즈

진부한 전통공연을 ‘기성복’으로 명명하고, 전통음악에 변화를 입힌 프로젝트다. ‘잡(雜)’(2013)은 오늘날 박제된 잡가의 본래 특성을 되살린 공연이다. 잡가는 조선 시대에 직업 소리꾼이 불렀던 대중가요였다. 이희문은 현대적인 무용·음악·무대연출을 결합하여 낯설고도 아름다운 ‘12잡가’를 구현했다. ‘쾌(快)’(2014)는 굿의 양식을 빌어 ‘쾌’라는 글자에서 떠오르는 ‘유쾌’ ‘상쾌’ ‘통쾌’, 심지어 ‘불쾌’까지 다양한 이미지를 담아냈다. 재담이 현대적 어법과 만났다는 점, 그리고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점이 특징이다. ‘잡’ ‘쾌’는 현대무용가 안은미 연출, 이희문 기획. ‘탐(貪)’(2016)은 한국적 전통소리와 서구적 클럽 문화의 융합을 탐색한 공연이다. 전통소리와 테크노, 극장과 클럽, 관객과 클러버(clubber)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시도였다.

깊은舍廊사랑 시리즈

잊힌 경기민요의 역사와 문화를 경기민요·잡가와 함께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보여준 3부작 공연(협업 미술작가 오재우). ‘깊은사랑’은 과거, 명창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무대이자, 귀명창들이 소리꾼을 불러 소리를 청해 들으며 마음을 달랬던 공간이다. 1부 ‘깊은사랑’(2016)에서는 지금은 사라진 경기민요의 전통문화인 1970년대의 ‘깊은사랑’을 재현했다. 이희문이 어떻게 소리꾼이 되었는지에 관한 자전적인 이야기도 담았다. 2부 ‘사계축(四契軸)’(2017)은 ‘잡가’를 기반으로 한다. 남성 소리꾼으로서 이희문이 조선 말기 잡가류의 노래를 부르던 민간예인집단 ‘사계축’의 뿌리를 이어받아, 남성 소리꾼의 삶을 그려본다는 주제의 공연이다. 3부 ‘민요삼천리(民謠三千里)’(2018)는 과거와 달리 여성화된 경기민요의 뿌리와 역사를 되짚은 공연이다. 남성 소리꾼으로서 이희문이 걸어온 여정과 그 바탕에 자리 잡은 여성 소리꾼들의 삶을 그린다. 2019년에는 3부작 시리즈를 한데 모아 공연했다.

이희문 프로젝트 날(陧)

‘날’(2019)은 ‘나를 (위한 것)’의 준말이자 ‘날 것’의 줄임말이다. 퍼포머로서 그동안의 이미지를 떨쳐버리고 소리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한 프로젝트다. 스스로를 정제하고 새로이 정의하고자 하는 이희문의 의지를 담았다. 선율악기를 과감히 배제하고 오롯이 목소리로 공연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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