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목 오케스트라의 긍지,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대표 미하엘 아디크를 만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5월 8일 9:00 오전

©MV Geoffroy Schied

BEHIND THE MUSIC SCENE 12

세계의 공연기획자를 만나다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대표

미하엘 아디크

미하엘 아디크(1969~)는 독일의 튀빙겐에서 법학·역사·미술과 극장학을 전공했고, 뮌헨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1999년부터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법률과 재정 업무를 맡았고, 2015년부터 대표직을 맡고 있다.

유목 오케스트라의 긍지

창단 25주년, 말러의 ‘하모니’ 철학을 완성하는 과정

Mahler Chamber Orchestra

 

 

 


 

연재 | 세계의 공연기획자를 만나다

01 아라벨라 아츠 대표 스테파나 아틀라스

02 브라보! 베일 뮤직 페스티벌 대표 케이틀린 머리

03 루체른 페스티벌 대표 미하엘 헤플리거

04 브레겐츠 페스티벌 대표 미하엘 디엠

05 엘프 필하모니 대표 크리스토프 리벤 조이터

06 콘세르트헤바우 대표 사이먼 레이닝크

07 에스플러네이드 대표 이본 텀

08 서구룡문화지구 대표 베티 펑

09 대만 국립가오슝아트센터 대표 치엔 웬핀

10 도쿄 산토리홀 대표 쓰쓰미 쓰요시

11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 대표 올리비에 레마리

12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대표 미하엘 아디크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Molinavisuals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이하 MCO)가 올해로 창단 25주년을 맞이했다. 1997년 당시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였던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를 멘토로 삼고, ‘자유롭고 국제적인 앙상블’이라는 비전 아래 창단해 고전부터 현대음악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재해석해 선보이는 오케스트라다.

MCO는 20개국 45명의 단원으로 구성되어 유럽을 비롯해 전 세계를 순회하는 음악 유목민집단이다. 2003년부터 대니얼 하딩(1975~)이 명예 지휘자(Conductor Laureate)라는 직함으로 악단을 이끌고 있다. 대니얼 하딩은 18세에 사이먼 래틀에게 발탁돼 버밍엄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데뷔, 아바도의 추천으로 최연소 베를린 필 지휘라는 영광어린 기록을 세운 장본인이기도 하다. MCO는 현재 지휘자 다니엘레 가티가 예술 고문을 맡고, 피아니스트 미츠코 우치다·레이프 오베 안스네스, 바이올리니스트 페타 쿠시스토 등이 예술파트너로 함께 호흡하고 있다.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퓌송,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 등 수많은 음악가와 함께해온 MCO는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루체른 페스티벌·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상주악단이기도 하다.

2021년 4월까지 31종의 음반을 발매한 이들은 2003년 발매한 첼리스트 고티에 카퓌송과의 하이든 첼로 협주곡을 담은 음반으로 디아파종상을 받았고, 도이치 그라모폰(DG)에서 발매한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으로 독일 음반 비평가상을 받았다.

 

창설부터 조금은 남달랐다

2009년부터는 MCO 아카데미를 설립, 적극적으로 음악 인재를 양성하고 있으며 2012년부터 ‘음악을 느껴라(Feel the Music)’를 통해 청각장애인들이 음악을 느낄 수 있는 공연과 행사를 꾸준히 선보이는 등 활동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2019년부터는 3D 음향 전문가 헨릭 오퍼만과 함께 음향의 한계에 도전하는 등 클래식 음악계에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올해 창단 25주년을 맞은 만큼 특별한 한 해를 보내고 있는 MCO는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와 함께 BBC프롬스에서 ‘모차르트 모멘텀’ 시리즈를 선보였으며, 미츠코 우치다와 유럽·미국 투어, 조지 벤저민이 작곡한 오페라 초연 등 MCO만의 특색을 한껏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준비 중이다.

대표인 미하엘 아디크는 변호사 출신이라는 특별한 이력을 지녔다. 그는 법조계에서의 경험이 악단을 이끄는데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왔고 뮌헨에서 변호사로 일할 때도 오페라계의 친구가 있어 종종 컨설팅을 해왔다”라며 “오케스트라 내의 행정과 절차를 논리적으로 분석해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한다”라고 이야기했다.

한국과는 2006년 10월에 내한으로 첫 인연을 맺은 바 있는 그를 화상채팅으로 만났다. 영상 속 그는 반짝이는 금테 안경 아래 살짝 붉게 상기된 얼굴로 인사를 청했다. 그의 뒤편에 쌓인 파일 더미들이 상당한 업무량과 바쁜 투어 일정을 짐작케 했다.

 

먼저 창단 25주년을 축하한다. 지금은 곁에 없지만, 창설자인 클라우디오 아바도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그는 여전히 우리의 정신적 지주다. 우리만의 음색을 만드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사람이다. 서로의 소리를 들으며 조화를 추구해가는 과정은 그가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면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조금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이게 바로 음악의 힘이고 우리가 25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MCO는 20여 개국 45명의 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를 가진 단원들이 모일 때의 장점은 무엇인가?

다양한 국가의 단원들은 오케스트라를 통해 하나가 된다. 각자가 가진 문화적·개인적 정체성이 모두 잘 융화되었기에 오케스트라가 더욱 풍부한 음색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출신 국가가 다르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마다 한곳에 모이는 것 자체가 큰 일이다. 모든 연주자의 여행스케줄을 관리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다.(웃음)

MCO는 상임지휘자가 없다. 그 이유가 궁금한데.

상임지휘자 여부를 떠나 우리는 최대한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해오고 있다. 즉 단원 간 합의를 통해 중요한 의사결정들이 이뤄진다. 음악적인 부분을 결정하는 것에서부터 이사회 선출, 사무국 단원 채용까지 모두 단원 간 소통을 통해 이뤄지고 이에 대한 책임도 오케스트라 전체가 진다.

말러의 이름을 앞세운 만큼, 악단의 철학이 말러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말러의 철학은 ‘하모니’로 집약된다.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서로 잘 어우러지는 것. 이 부분에 있어 아바도의 해석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말러 작품을 연주하려면 서로의 음색을 잘 듣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아바도도 이를 오케스트라에 단단하게 심어놓았다.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슈베르트의 교향곡 9번 ‘미완성’으로 꼽았다. 말러 작품이 아닌 것이 내심 아쉽다. 왜 슈베르트의 교향곡인가?

슈베르트 교향곡은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던 나의 ‘애착음악’이다. 물론 말러, 베토벤과 같은 다른 작곡가들의 곡도 좋아한다.(웃음)

 

악단을 이끄는 또 다른 예술가들

현재 지휘자 다니엘레 가티가 예술고문으로 함께하고 있는데, 그와의 협업은 어떤지 궁금하다.

관현악 레퍼토리가 전반적으로 확장되었다. 특히 베토벤과 슈만 교향곡 사이클을 진행하면서 오케스트라의 음색이 더욱 풍성해졌다는 평을 듣고 있다.

2003년부터 대니얼 하딩이 악단을 이끌고 있다. 아바도가 그에게 바통을 넘기기 이전, 악단과는 어떠한 인연이 있었는가?

25년 전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에서 아바도가 하딩에게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를 지휘하도록 한 것이 본격적인 인연의 시작이라 볼 수 있다. 아바도와 하딩은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 사실 하딩은 MCO와 함께 성장해온 지휘자라는 점에서 우리 오케스트라와 그에게 모두 의미가 있다.

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 미츠코 우치다와 5년간의 파트너십을 맺었다. 여러 음악가와 파트너십을 맺는 이유가 궁금하다.

그들은 같은 음악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해석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미츠코 우치다의 경우 이미 알려진 것처럼 모차르트를 해석하는데 탁월하다. 안스네스와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베토벤 여행(Beethoven Journey)’ 시리즈를 함께 진행하면서 5개의 피아노 협주곡을 녹음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그와 ‘모차르트 모멘텀(Mozart Momentum)’ 시리즈를 진행할 때는 1785~1786년에 작곡된 모차르트 후기 작품을 음반으로 발매했다. 음악사에서도 중요한 시기였던 만큼 함께 앨범을 만든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음악은 국경 없는 언어

일반적인 오케스트라들은 상주 공연장에서 정기 연주회를 갖고 1년에 2~3회 투어를 떠나지만, MCO는 정착이 아닌 투어를 선택한 오케스트라이다.

가능한 많은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함이다. 일단 MCO는 상주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공연 기간에만 모여 연주한다. 일상적이지 않다 보니 연주자들이 늘 긴장감을 갖고 집중해 연주할 수 있고, 더 좋은 공연을 선보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전 세계 공연장을 찾다 보면, 연주자들의 다양한 문화적 배경이 도움이 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이런 부분들이 음악적인 깊이를 더해주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현지의 음악학도들을 만나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는 등 가능한 다양한 방식으로 현지에서 음악으로 소통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투어의 장소가 곧 악단이 머물 ‘집’이 되는 것이라면, 투어를 기획할 때 도시, 공연장, 레퍼토리 등 중요하게 생각하는 환경적인 요인이 있을 것 같다.

모든 결정은 민주적인 의사소통 과정을 거친다. 사무국·단원·지휘자가 어느 도시에서 공연할지 함께 결정하고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투어가 진행되는 편이다.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주간, 루체른 페스티벌뿐만 아니라 카네기홀, 사우스뱅크, 베를린 필하모니, 엘프 필하모니, 쾰른 필하모니 등에서도 정기적으로 연주하고 있는데, 유럽 내에서 투어를 진행할 때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비행기가 아닌 기차로 이동하려고 한다.

투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1998년, 아바도 지휘 아래 이탈리아에서 베르디 ‘팔스타프’를 연주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무국 직원이 3명뿐이던 시절, 나의 첫 투어이자 세계적인 지휘자와의 첫 만남이기도 했다. 아바도는 모든 것을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눈빛과 손짓으로, 음악을 통해 표현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아있다. 2021년 코로나가 한창일 때 BBC프롬스에 초청받았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바쁜 투어 일정을 마치고 여가 시간에는 무엇을 하는가?

투어를 하는 동안 세계 각국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실은 집에서 한가롭게 직접 요리하며 먹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또, 자전거를 타면서 자연을 즐기는 시간도 좋아하는 편이다.

 

음악을 감상의 장에서 느끼는 장으로!

‘음악을 느껴라’ 프로젝트 ©MCO

청각 장애를 가진 아동들을 위한 ‘음악을 느껴라’라는 제목의 프로젝트가 참 인상적이다.

베토벤도 청각 장애가 있었지만, 불후의 명곡을 남겼던 것처럼, 음악은 사실 단순히 듣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임을 알려주고 싶었다. 팀파니스트나 더블베이시스트가 연주하는 동안 악기의 진동을 직접 느끼고, 목관악기의 리드를 불어 보는 등 듣기 외 다른 방식으로도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이러한 시간을 통해 아이들에게도 음악을 충분히 느끼고 또 음악에 종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단원들 역시 아이들과 음악을 순수하게 느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으로 여기고 있다.

‘미래의 존재’ 프로젝트 ©MCO

예술 파트너로 3D음향 전문가와도 협력한다. 어떤 프로젝트들이 진행되는가?

2020년 두다멜과 MCO의 협업으로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나 이미 2019년 음향 전문가 헨릭 오퍼만과 함께 이머시브(관객 몰입형) 오디오 체험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3D음향 기술은 기존 스테레오 타입을 넘어 360도 각도에서 음악을 듣는 기술이다. VR(가상현실) 장치를 착용하고 지휘자 자리에 서면, 지휘자가 듣는 오케스트라 음향을 체험할 수 있다. 2021년부터 진행한 ‘미래의 존재(Future Presences)’ 프로젝트를 통해 모차르트 현악 4중주, 찰스 아이브스의 ‘대답 없는 질문’,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차례대로 선보였다.

올해는 창단 25주년을 맞는 만큼 색다른 공연과 프로젝트들을 진행한다고 들었다.

5월에는 MCO 아카데미를 통해 실내악 연주법과 21세기에 창의적인 음악가로 살아가는 방법을 제안할 예정이다. 작곡가 조지 벤저민(1960~)이 직접 오페라를 지휘하며 아카데미 학생들이 참여할 기회를 얻는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6월에는 ‘운명(FATE)’을 주제로 지휘자 안드레아스 넬슨스와 피아니스트 랑랑의 협연이 예정되어 있고, 7월에는 엑상프로방스 페스티벌에서 조지 벤저민이 MCO만을 위해 작곡한 오페라 ‘Picture a Day Like This’를 초연할 예정이다. 25년 전 아바도와 하딩이 처음 함께 지휘한 곳도 엑상프로방스로, 여러모로 엑상프로방스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지역이 될 운명인가 보다.

박선민(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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