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즐기는 교향악축제를 위하여! 지휘자 홍석원,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6월 5일 9:00 오전

ISSUE & TALK

지휘자 홍석원 &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

함께 즐기는 교향악축제를 위하여

 

젊은 피가 수혈되고,

교향악 현주소를 변화시키는 교향악축제.

올해로 35회를 맞는 교향악축제에 출연하는

두 음악가가 나눈 속 깊은 대화

홍석원(1982~) 광주시향의 예술감독.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주립극장 수석지휘자를 역임했다. 서울대·베를린 음대를 졸업하고 스위스 베른 오페라·독일 마인츠 등 다수의 오페라 극장에서 데뷔했다. 요한 슈트라우스 ‘박쥐’로 호평받았으며, 평창올림픽기념 오페라 ‘동백꽃 아가씨’, 국립오페라단 ‘마농’ 등을 국내에서 선보이며 활약한 바 있다.

조인혁(1983~) 한국예술종합학교, 파리고등음악원에서 공부했다. 스위스 무직콜레기움 빈터투어, 바젤 심포니 수석을 역임했으며, 뉴욕 메트 오페라 오케스트라에 한국인 최초의 수석으로 활동한 바 있다. 알마 목관 5중주단 창단 멤버이며, 현재 한양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양성의 시대다. 올해를 시작하며 ‘트렌드코리아 2023’에서는 ‘평균’이라는 개념 자체가 실종될 것이라고까지 예측했다. 다변화, 더 나아가 양극화에 이른 개인은 더 굳건한 자신만의 성을 짓는다.

이 시대상에 비춰 교향악의 형태에 대해 생각해 보자. 사실 교향악 연주는 영 ‘트렌디’하지 못하다. 평균 6~70여 명의 대규모 인원이 한 장소에 모여야 하고, 지휘자의 손끝에 맞춰 취향까지 통일되어야 한다. 게다가 지휘자와 단원만큼이나 그 입장이 양극화되어 있는 관계가 또 있을까. 지휘자는 음표 너머의 큰 그림을 그리며 손을 휘젓지만, 단원들은 당장 눈앞에 닥친 음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교향악의 묘미는 이 대척점에서 시작한 여정이 하나의 목적지를 향한다는 데에 있다. 성공적인 목적지 도착을 위해, 지휘자도 오케스트라 단원도 모두 “체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조직’된 집단의 ‘통일’된 취향을 위해 ‘체계’를 갖춰야 한다니. 너무 고루한 가치들을 모은 문장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선입견을 잠시 내려놓고, 음악당 앞에 자세를 잡은 두 남자의 이야기에 집중해 보자. 오페라까지 섭렵한 오케스트라 전문가들의 대화는 예상보다 흥미로우니!

 

오페라 연주로 다져진 실력, 이제 교향악 무대로!

홍석원과 조인혁의 공통점은 ‘오페라’다. 대표적인 이력으로 홍석원은 5년간 인스브루크 주립극장의 수석지휘자로 활동했고, 조인혁은 메트 오페라의 한국인 관악 주자 최초 종신 수석이었다. 현재 광주시향 상임지휘자인 홍석원은 올해 교향악축제의 개막 공연(6.1)을 맡았고, 한양대 교수로 재직 중인 조인혁은 여자경/대전시향(6.16)의 협연자로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개막 공연의 레퍼토리가 전부 ‘1번’입니다.(말러 교향곡·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우연인지 폐막 공연(최수열/부산시향)에서 말러 교향곡 9번이 연주되어 개·폐막이 짝을 이뤘습니다.

홍석원 짝을 이룬 것이 우연인지 아닌지는 판단에 맡겨드리겠지만, 참고로 저는 최수열 지휘자와 무척 친합니다.(웃음) 사실 광주시향의 연주력은 쇼스타코비치에서 그 색채가 잘 드러나는데요, 올해는 조금 다른 색깔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 축제 개막에 맞는 보편성을 고려해 말러의 작품을 골랐습니다.

두 분 모두 오페라와 인연이 깊습니다. 오페라는 음악과 극 등이 모두 결합한 ‘종합예술’이죠. 이에 대한 깊은 이해가 교향악 접근에 영향을 미치는 점도 있나요?

홍석원 길고 복잡한 작품에 대한 겁이 없어지죠. 한 번은 6시간짜리 바그너 오페라의 어시스턴트를 마쳤을 때인데요,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전 악장을 지휘하고도 서곡 하나 끝낸 것 같은 체감이 들더군요.

조인혁 오페라 공연 시 오케스트라 피트에 들어가 있어 무대가 보이지 않아요. 언제쯤 성악가의 페르마타가 끝날지 오로지 귀로 예측할 수 있는 감각이 발달하죠. 메트 오페라는 한 시즌에 딱 세 번 카네기홀에서 교향곡을 연주하는데요, 그때가 되면 놀러 가는 것처럼 신나요. 무대 위 성악가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약속한 대로 흘러가는 교향곡 무대가 편하게 느껴지는 거죠.

여자경/대전시향의 공연에서 오페라 작품으로 익숙한 베버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고른 것도, 오페라와의 연관성이 있을까요?

조인혁 작곡가가 가진 오페라적 특징에 주목한 것은 사실입니다. 1번 협주곡보다는 조금 더 극적 표현이 두드러진 2번 협주곡을 고른 이유기도 하죠. 게다가 베버는 오페라는 물론, 목관 협주곡 발전에도 크게 기여한 작곡가입니다. 당시 베버 옆에는 하인리히 베어만이라는 클라리넷 명인이 있었는데, 이 연주자가 가지고 있던 기교적 특징도 이 협주곡에 잘 녹아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에 필요한 ‘체계’란?

올해 교향악축제는 조금 더 짙어진 녹음의 계절 6월에 열린다. 짙어진 녹음만큼이나 축제의 전통과 역사도 그 의미를 더해가고 있다. 예술의전당 개관 후, 음악당을 더 풍성하게 채워나가기 위해 1989년 시작한 교향악축제는 올해로 35회를 맞았다. 자국의 오케스트라로 20여 일의 공연을 채우는 축제는 국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교향악축제는 지방 교향악단들에게 전열을 가다듬을 기회가 되고, 악단의 실력 증명 자리가 되기도 한다. 더불어 지역의 교향악단들이 이 자리를 ‘큰 기회’로 인식하고 참여의 의지가 높았기에 축제의 존속도 가능했다. 그동안 수도권 중심의 발전이 문화예술에 영향을 끼쳤다는 일례이기도 하다.

전국 각지의 오케스트라가 다 모여 오케스트라 축제를 이루는 형태를 해외에서 경험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홍석원 큰 규모의 축제에 국제적인 오케스트라들이 여럿 참여하는 형태는 있지만, 한 나라의 오케스트라가 모이는 경우는 잘 없죠. 독일에는 주마다 오케스트라가 있으니 가능할 것도 같은데, 아마 안 될 거예요. 각 오케스트라의 자아가 무척 강해서, 주최 지역을 정하기 어렵겠죠. “왜 우리가 가야 하나. 너희가 우리 지역으로 와라”는 식으로요.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으니, 서울에 모이는 게 가능한 것 같아요.

수십 년간 이어오다 보니, 이제 하나의 전통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국내 오케스트라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을 테고요. 그러나 우리나라 음악가들이 지닌 뛰어난 기량에 비할 때 국내 오케스트라의 발전 속도는 더디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좋은 연주자가 이렇게 많은데, 그만큼 좋은 오케스트라가 많은가 하는 질문이죠.

조인혁 저는 여러 오케스트라를 경험하면서, 좋은 오케스트라일수록 체계가 잘 잡혀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지휘자는 명확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를 악장과 소통하죠. 그래서 저는 수석의 자리에 있을 때 지휘자만큼이나 악장도 자주 보는 편이었습니다. 수석의 소통이 그다음 단원에게까지 전달됩니다. 일방적인 이 소통의 방향을 ‘체계’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체계의 유무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실력 차이가 크더군요.

홍석원 ‘체계’라는 말이 정말 공감 가네요. 저는 그간 이 개념을 ‘앙상블’이라는 단어로 자주 표현해 왔는데요, 오케스트라 내에서 자기 역할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죠. 뛰어난 독주자들의 수에 비해,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의 발전이 더딘 것은 단원들의 처우, 클래식 음악 관객 저변 확보 등 여러 요소가 작용하겠지만, 지나치게 입시에만 치중해 다른 사람의 연주를 어떻게 들어야 할지 배우지 못한 것도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조인혁 저는 대학 교육의 방식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오케스트라 수업 시간이 있지만 학기 내에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게 전부죠. 어떤 작품을 연주하느냐보다는 오케스트라가 구체적으로 어떤 체계를 거쳐 소통하는지 배우고, 그 안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를 아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결국 좋은 오케스트라가 되기 위해선 좋은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말이군요.

홍석원 사실, 조인혁 선생이 참여하고 있는 고잉홈프로젝트의 작년 공연을 보고 꽤 놀랐어요. 지휘자 없이 변박자가 많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해내다니! 좋은 오케스트라는 결론적으로 지휘자가 없어도 되는 오케스트라죠.

조인혁 고잉홈프로젝트가 정확히 그 ‘체계’가 작용한 프로젝트였어요.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가 리드하고, 수석들이 이를 따랐으며, 단원들이 합세했죠. 물론 고생은 했지만, 리허설 일주일 만에 그 연주가 가능했던 것은 오케스트라의 체계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홍석원 이런 체계가 완성된 오케스트라라면, 지휘자는 더 마음껏 음악적 이상을 펼칠 수가 있게 됩니다. 지휘자를 향해 “너만의 색깔을 보여줘. 우린 체계가 있으니 잘 따라갈게”라는 눈빛을 보내는 거죠. 지나치게 지휘자에 의존하는 현상은 좋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조인혁 선생처럼 체계를 갖춘 오케스트라를 경험하는 우리나라 연주자들이 더 많아지고 있으니, 앞으로는 더 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음악의 본질은 즐거움

같은 작품을 연주해도 지휘자와 단원의 입장에서는 괴로울 때도, 즐거울 때도 서로 다를 것 같아요.

홍석원 지휘자는 첫 리허설 때 가장 긴장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최종 리허설을 통해 음악을 완성하고 나면, 본 무대는 ‘즐기자!’ 하는 마음이 큰데요. 단원들은 아무래도 본 무대에 대한 긴장감이 점점 더 커지더라고요.

단원 입장에서 지휘자를 가장 의지할 때는 언제인가요?

조인혁 사고를 같이 수습했을 때죠.(웃음) 예를 들어 현악 파트의 트레몰로(활을 빠르게 움직여 한 음을 떨리게 표현하는 주법)가 엉켜있는데, 지휘자의 대지를 가르는 사인을 보고 모든 수석 파트들이 혼돈스러운 상황에서도 잘 맞춰 들어오면 ‘아, 역시!’하는 감탄사가 내심 나옵니다.

우리나라 오케스트라 발전을 위해 바라고 있는 점이 있다면요.

조인혁 앞서 좋은 연주를 위한 오케스트라 체계에 대해 많이 말했는데요, 이에 못지않게 선진 오케스트라 운영 체계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해외의 사례를 더 많이 참고해 운영한다면 양질의 연주자들도 국내에 더 많이 머물 것으로 생각합니다.

홍석원 저는 공연을 즐기면서 연주하고 감상하는 사람들이 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제가 인스브루크에 있을 때, 오페라는 그곳의 당연한 일상이었어요. 가끔은 갑자기 성악가가 교체되기도 하고, 그래서 심지어 공연이 멈추기도 해요. 하지만 관객들은 이런 부분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공연 그 자체를 그냥 즐기는 것이죠. 물론 연주자들은 완벽한 준비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너무 사소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 공연 전체를 즐기지 못하는 관객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날 것 그대로의 음악을 웃으면서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늘어나길!

이번 교향악축제를 기대하는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공연을 꼽는다면? 단 본인이 출연하는 날은 안 됩니다.(웃음)

홍석원 전 당연히 폐막 공연이겠죠?(웃음) 무엇보다 말러의 교향곡 9번이 국내에서 자주 연주되지 않으니, 실황을 감상할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조인혁 저는 성기선/전주시향(6.14) 공연이요.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라흐마니노프의 작품만 연주하는데, 피아노 협주곡 3번, 교향곡 2번 모두 클라리넷 수석 입장에서는 거의 ‘협연’이라고 느껴질 만큼 솔로 비중이 돋보이거든요.

허서현 기자 사진 황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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