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향 조용석의 바순과 콘트라바순 특강

묵직한 변덕쟁이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6월 1일 12:00 오전

2001년부터 수원시립교향악단의 바순 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조용석은 바순 외에도 콘트라바순을 ‘전문적’으로 맡고 있다. 많은 이들은 오케스트라의 오보에 주자가 잉글리시호른을 연주하고 플루트 주자가 피콜로를 연주하듯, 혹은 클라리넷 주자가 소프라노클라리넷이나 베이스클라리넷을 자연스레 오고 가듯 바순 주자 또한 콘트라바순을 자연스레 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콘트라바순은 전공하다시피 따로 배워야 하는 악기입니다.”

그의 말대로 서로 다른 생김새지만 ‘저음’을 담당한다는 공통점으로 두 악기를 묶어서는 곤란하다.

조용석이 바순을 처음 잡았던 것은 고등학생 시절이고, 콘트라바순과 만난 것은 대학 시절이었다. 바순 전공생으로 대학에 입학한 그는 현재 한양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김충배 교수와 인천시향에 재직 중인 오유찬의 권유로 콘트라바순을 잡기 시작했다. 사실 그가 공부하던 1990년대에는 바순의 부품 유통도 원활하지 않던 때였다. 그런 상황에서 바순보다도 그 중요성이 덜 인지되던 콘트라바순은 악기도 부품도 그리고 전문연주자도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고.

“대학 시절부터 콘트라바순을 들고 오케스트라의 객원단원으로 활동했어요. 사실 처음에는 오케스트라의 구색을 맞추는 ‘비디오 단원’이었습니다. 연주는 안 하고 악기만 들고 있었죠. 이후 차츰차츰 이 악기로 저의 자리를 찾으며 열심히 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저를 불러주더라고요. 당시 바순 전공생 중에 콘트라바순을 전문적으로 공부했던 이는 몇 없었을 거예요. 박은성 선생님이 수원시향을 이끌 때였어요. ‘조선생! ‘도’를 불어봐!’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도’를 불었죠. 그랬더니 ‘다음은 레!’라고 해서 ‘레’를 불었어요. 그 다음도 지시하는 소리를 하나하나 냈죠. 그랬더니 그 자리에서 놀라시는 거예요. 예전에는 지휘자가 소리를 내보라고 하면 주자들이 틀린 음을 내고 악기가 고장 났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요(웃음). 즉 악기가 갖춰져도 전문적인 연주자가 없었고, 불어도 음정이 안 맞는 경우가 많았죠.”

콘트라바순은 ‘콘트라’와 ‘바순’이라는 뭔지 모를 묵직함의 대명사가 주는 느낌과 달리 예민하고 까칠한 악기라고 한다.

“정식 포지션을 잡고도 한 음 이상 음정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미’를 낼 거라 했는데 ‘도’가 나는 거죠. 호른과 같이 연주하기 어려운 배음악기라고 봐도 좋아요.”

바순족(族)은 이처럼 듬직한 생김새와 달리 예민하고 까칠하다. 그럼 이제 조용석의 손에 들린 바순, 그리고 콘트라바순의 그 사춘기 소녀 같은 성격을 알아보자.

바순에 꽂힌 마법의 빨대

단순한 쇠꼬챙이처럼 보인다. 한편으로는 후크 선장의 갈고리 같기도 하다. 보컬은 음정과 음색을 좌우하는 예민한 부품이다. 연결 부위를 조금씩 늘리고 줄여 음정을 맞추는 클라리넷이나 오보에, 플루트와 달리 바순은 보컬로 음정과 음색을 결정한다.

“여기 보이세요? 보컬에 새겨진 ‘2’라는 숫자는 음정에 연관된 거고, ‘CC’는 음색을 뜻합니다. ‘00’ ‘0’ ‘2’ 3’ 등의 번호대별로 피치가 정해져 있고, ‘C’ ‘CC’ ‘CE’ ‘CCE’ ‘VC’ ‘VCC’ 등 여러 표기가 음색을 달리 합니다.”

조용석은 오케스트라와 콘체르토 연주 시 각기 다른 규격의 보컬을 사용한다. 오케스트라의 수석주자는 대부분 ‘1’을 사용하고, 제2·3주자는 그보다는 낮은 듯한 음색으로 뒷받침해야 하기에 ‘2’를 사용한다고.


▲ 왼쪽부터 콘트라바순, 바순

보컬

보컬은 악기와 주자의 호흡을 연결하는 중요한 부속이다. 보컬 또한 많은 바수니스트들이 헤켈 사의 제품을 선호한다고. 바순과 콘트라바순의 보컬은 크기부터 확연히 차이 난다.

“어느 회사의 제품을 쓰든 보컬만은 헤켈 사의 제품을 써야 한다는 데에 모두들 찬성할 거예요. 헤켈 사의 악기는 일 년에 국내에 한 대 들어올까 말까 하는 반면, 보컬은 국내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보통 10~30개를 실험 삼아 불어보고 사는데, 그중 자신에게 맞는 것을 고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콘트라바순의 엔드핀

 “세상에 그 어떤 콘트라바순도 서서 연주할 수는 없어요.”

콘트라바순의 무게는 만만치 않기에 앉아야만 연주가 가능하다. 그래서 첼로나 더블베이스에 부착된 엔드핀은 콘트라바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 콘트라바순의 엔드핀

거짓말쟁이 벨

“보통 금관악기의 벨처럼 모든 음이 이곳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B플랫만 그렇고 나머지는 손가락으로 막는 구멍에서 나옵니다. 콘트라바순의 벨은 진짜 나팔처럼 생겨서 모든 소리가 다 이곳으로 나올 거라 생각하지만 마찬가지로 실제로 나오는 음은 한 음밖에 없습니다.”


▲ 바순

▲ 콘트라바순

바순의 명품, 독일의 헤켈(HECKEL)

유럽을 중심으로 제작되던 바순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생산되고 있는 추세다. 중국에서도 저가의 보급용 악기가 생산된다. 조용석의 바순은 오랜 기다림 끝에 독일 헤켈 사에서 구입한 것이다.

“악기의 재질은 단풍나무예요. 제가 이 악기를 주문하러 갔는데 8년을 기다리라고 하더라고요. 헤켈은 보통 15년 동안 나무를 오일에 묵혀둬요. 그래서 일 년에 60여 대 정도 만드나? 헤켈은 한 마디로 바순 제작의 지존입니다. 지금 수원시향의 단원들도 모두 헤켈 의 바순을 사용합니다.”

기온차가 심하면 나무가 갈라지는 클라리넷이나 오보에와 달리 바순은 그 생김새처럼 튼튼한 ‘장군감’이라 주위 온도에 강하다고.

“바순은 환경의 온도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요. 경험상 영하 15도나 영상 40도 이상도 끄떡없더군요.”

 
대부분의 목관악기는 관을 타고 흘러내린 침이 발 아래로 뚝뚝 떨어져 고인다. 하지만 바순은 무지개처럼 생긴 파이프로 침이 고일 뿐이다. 악기를 닦을 때는 무게추가 달린 부드러운 헝겊을 집어넣어 천천히 당기면서 수분을 제거한다. 호른처럼 관이 꼬여 있는 콘트라바순은 침을 제거하지 않는다고.

바쁜 엄지손가락 

바순만의 독특한 운지법을 보여달라고 하자 조용석은 ‘1대 9로 맞짱’ 떠야 하는 엄지손가락을 꼽는다.

“왼손의 엄지는 아홉 개의 키를 담당합니다. 모두 둥글게 생겼지만 손가락이 빙글빙글 돌아다니며 연주하다 보면 마찰로 인해 단단한 굳은살이 생겨요. 현악 주자처럼요.”

콘트라바순 또한 왼손의 엄지로 일곱 개의 키를 바쁘게 돌아가며 누른다.


▲ 바순

▲ 콘트라바순

정확히 반만 막아야 한다!
 “구멍을 잘못 막은 게 아니에요. 바순의 이 키는 절반만 막는 게 정식 포지션입니다. 구멍을 덮을 듯 말 듯한 손끝의 감이 굉장히 중요해요.”


핸드리셋 

“핸드리셋은 손과 악기 사이의 공간을 메우는 역할을 하는 부속품이에요. 한마디로 악기가 손에 착 달라붙게 하는 역할을 하죠.”

손가락이 긴 사람은 핸드리셋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 밖으로 더 튀어나오게 하고, 작은 사람은 그 반대로 돌려서 손에 맞게 조절한다.

숨은 속살, 패드 
구멍을 막는 키의 안쪽에는 패드가 부착되어 있다. 종이, 가죽, 플라스틱 등 여러 가지 재질이 사용된다.

“저는 가죽 재질의 패드를 써요. 종이 패드보다는 오래가지만 종이보다는 민감한 맛이 떨어집니다.”

맞춤형의 키

 “헤켈에 가면 여러 가지 옵션을 고를 수 있는 카탈로그를 보여줘요. 손가락의 길이와 움직이는 습관에 맞춰 키를 더 부착하거나 옮겨 달기도 해요. 키에 부착된 검정색 부분 보이세요? 다른 키를 누르기 위해 손가락이 미끄러질 때 그 편의를 돕기 위한 겁니다. 보통 ‘도르래’라고 해요. 별 것 아닌 것 같죠? 옵션으로 달 때 가격이 엄청나요.”

‘기술’을 정복해야 ‘예술’이 나온다.
리드와 손질 도구
 “이것들을 매번 들고 다니는 건 아닙니다. ‘객석’의 독자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루 전에 부지런히 챙겨놓은 것들이에요.”

수리공의 연장통 안에 든 연장들을 끄집어 정돈한 것 같다. 하지만 이 도구들은 악기만큼 중요한 리드 손질 도구들이다. 바순 주자나 오보에 주자는 리드를 직접 제작·손질하여 “자신만의 리드”를 만든다.

“리드는 악기 소리의 70퍼센트를 좌우해요. 홀의 조건과 날씨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해요. 지휘자가 현악 파트만 부분 연습을 시키면 바순 주자와 오보에 주자는 고개를 푹 숙여요. 리드를 계속 손질하면서 소리를 찾고 있는 거죠. 속된 말로 리드 케이스 속에 베스트 리드 세 장만 있으면 카라얀이 와도 두렵지 않다고 해요.”

바순의 리드와 콘트라바순의 리드는 크기는 다르지만 손질의 방법은 같다.

1 모양 잡기

“셰이퍼에 대나무를 놓고 자르면 리드의 일차 모양이 됩니다. 보통 이렇게 깎인 대나무를 구매해서 깎기 시작해요. 대나무는 보통 프랑스나 이탈리아 산을 씁니다.”

2 갓 난 리드에서 겹리드로 탄생

셰이퍼를 통과한 리드를 반으로 접는다. 아래에는 철사와 색실로 단단히 동여맨다. 그리고 절단기에 넣고 윗부분을 절삭하면 끝부분이 잘려나가면서 공기가 들어가는 구멍(팁)이 생긴다. 이로써 리드는 제 몸을 서로 맞대어 겹리드로 탄생하는 것이다.

“장마 때 리드가 습기를 먹으면 부풀어 올라요. 물론 육안으로는 확인되지 않지요. 그때 팁도 많이 벌어지는데 그럴 때는 피아노나 피아니시모를 연주하기가 힘듭니다. 지금 수원시향으로 오기 전에 근무했던 다른 오케스트라에 있었던 때였어요. 오보에와 바순 그리고 콘트라바순이 함께 나가는 대목이 있는데, 리드는 부풀어 불기 힘든데 정말 미세하고 작은 소리를 지휘자가 요청하더라고요. 너무 힘들어 부는 시늉만 했어요. 그런데 정말 잘했다며 칭찬을 하더라고요(웃음).”

3 깎는다, 섬세하고 미세하고 정밀하게

“이제 팁 머신으로 리드를 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팁 머신을 사용하면 리드가 완성된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일차 작업입니다. 그 뒤에 더 많은 정교한 작업들이 진행돼요.”

사진을 보면 뾰족한 부분과 리드의 벌어진 부분(팁)이 맞닿아 있다.

4 확인과 점검, 그리고 또 확인

“어느 정도 가공됐는지 육안으로는 가늠되지 않아요. 리드 제작은 끊임없는 확인의 반복입니다. 게이지는 리드의 두께를 미세하게 잴 때 쓰는 겁니다.”

5 변덕쟁이 리드

“끌이나 칼, 사포 등으로 리드를 정밀하게 깎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리드는 정말 예민해요. 완성이다 싶어 마무리하고 다음 날 불어보면 다시 두꺼워져 있어요. 불어볼 때마다 침 속의 이물질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다시 불어나는 거죠. 그래서 불어보고 깎는 걸 일주일 정도 지속합니다.”

바순에는 컵이 달려 있다

바순 하단의 ‘컵’을 벗기면 악기 번호와 침이 고이는 부분이 나온다.

“들은 이야기인데, 러시아의 바순 주자들은 연습 끝나고 이 컵에 보드카를 한 잔씩들 마시고 집으로 갔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밸브

 “콘트라바순은 바순과 달리 5분이면 많은 양의 침이 밸브에 고여요. 이 밸브는 호른이나 트럼펫에 달린 것과 비슷하게 생겼죠? 조립할 때 그 길이를 조정하여 음정을 조절하기도 해요.”

리드와의 연애. 소리의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

 “리드는 한마디로 정답이 없어요. 베를린 필의 주자나 수원시향의 주자 모두 깎는 방식이 다릅니다. 어떤 도구로 어떻게 깎든지 간에 가장 좋은 리드는 소리가 잘 나는 리드입니다.”

바순이나 콘트라바순의 리드를 완성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보통 일주일 정도다. 그렇게 손에 쥔 리드는 평균적으로 한 달이면 소모된다고 한다. 물론 레퍼토리 별로 소모량 또한 다르다.

바순과 콘트라바순의 레퍼토리

“바순 콘체르토로는 비발디나 모차르트 그리고 칼 마리아 폰 베버의 Op.75를 꼽아요.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1악장에서도 바순 솔로의 인상적인 대목이 나와요. 이에 준하는 콘트라바순 솔로는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의 초반부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외에 말러나 R.슈트라우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7·10번과 같은 대편성 곡에 콘트라바순의 활약이 숨어 있어요.”

6월에 만날 수 있는 조용석의 바순과 콘트라바순

김대진(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이 이끄는 수원시향은 소프라노 신영옥과 홍혜경, 첼리스트 지안 왕 등 저명 연주가와 함께 2014 수원화성국제음악제의 여러 무대를 장식한다. 그곳에 가면 조용석의 바순과 콘트라바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또한 조용석을 포함한 5명의 바순 주자로 구성된 해피바순앙상블의 무대에서도 그의 연주를 접할 수 있다.

2014 수원화성국제음악제 개막콘서트(6월 14일, 수원제1야외음악당)

2014 수원화성국제음악제 ‘수원시립교향악단+JIAN WANG’(6월 18일,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

2014 수원화성국제음악제 폐막콘서트(6월 21일, 수원제1야외음악당)

해피바순앙상블 제9회 정기연주회(6월 28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사진 이은비(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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