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티스트 최나경 & 클라리네티스트 로맹 귀요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0월 1일 12:00 오전

지난여름, 학생을 가르치다 정말 백 가지 방법으로 설명을 해봐도 연주가 도저히 자연스럽지 않아 답답해한 적이 있다. 그러다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친구에게 그 학생의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보여주며 ‘무엇 때문에 이상한 것 같은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예상 밖의 답을 내놓았다.

“전체적으로 몸에 리듬이 너무 없는데? 왜 이리 가만히 서서 연주해?”

어찌 보면 단순하고 유치한 대답 같지만,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 온몸의 신경과 감각을 모두 이용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시킨 이야기였다. 이튿날 그 학생에게 온몸으로 리듬을 느끼면서 그 감각을 활에 집중해보라고 말하니 신기하게도 비브라토가 살짝 풀리며 프레이징이 자연스러워졌다.

머리와 몸을 적절히 이용해 음악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숨’도 큰 역할을 한다. 활을 쓰면서 들숨과 날숨을 사용하는 것은 프레이징의 완급 조절을 할 때 아주 효과적이고, 프레이즈를 길게 끝까지 쌓아 올리고 싶은 순간에는 숨을 크게 내쉬는 것조차 음악적 선의 흐름에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숨’의 조절을 더욱 치밀하게, 그리고 직업적으로 해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관악기 연주자들이다.

오는 11월 6년 만에 국내에서 리사이틀을 갖는 플루티스트 최나경과 지난해 창단한 로맹 앙상블을 이끌고 있는 클라리네티스트 로맹 귀요를 만나 관악 연주의 기본, 말 그대로 음악에 ‘숨’을 불어넣는 과정에 대해 물었다. 우리 모두 연주 활동과 교육 활동을 병행하고 있기에 공통된 대화 주제가 많았고, 두 음악가 각자가 지닌 색깔이 흥미로워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를 나누며 궁금한 점을 마음껏 물어볼 수 있었다.

수련의 진화 _소리를 만들며 느끼는 기쁨

초등학교 음악 수업에서 리코더나 우쿨렐레, 혹은 멜로디언 같은 간단한 악기를 재미있게 연주하는 학생들을 보면 음악의 원초적 시초가 소리를 만들며 느끼는 인간 특유의 만족감과 기쁨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나 또한 초등학생 시절 음악을 유난히 좋아하시던 담임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리코더를 마치 목숨이라도 건 것처럼 열심히 연습한 기억이 있으니까. 그 시절 나는 이미 바이올린을 꽤 진지하게 생각하던 터라 음악을 직업처럼 느끼고 있었지만, 리코더를 부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즐거워 미친 듯이 악보를 모으고, 아직 저학년인 동생에게 리코더를 배울 것을 강요하곤 했다.

최나경과 로맹 귀요 또한 둘 다 리코더로 음악을 접한 경우였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악기를 다루는 가족들 덕에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처음으로 소리를 내는 기쁨을 알게 된 것은 리코더를 가지고 놀면서였다. 음악에 끌리는 아이들이 어떤 악기를 잡게 되는지는 우연의 힘이 크다. 최나경은 플루트를 전공하던 이웃집 대학생이 매개체 역할을 했고, 로맹 귀요는 피아노를 하고 싶었지만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악기를 택하라는 어머니의 권유로 별 생각 없이 클라리넷을 잡았다. 동네 학원에 색소폰을 가르치는 마음씨 좋은 선생님이 있었고, 첫 레슨에서 클라리넷으로 소리를 내자 무척 좋아하던 선생님이 ‘나이스’했기 때문이다. 최나경은 혼자서 끙끙대며 리코더를 연주하다가, 어느 날 플루트에서 그 많은 음을 다 발견하게 되자 그때부터는 연주를 멈출 수 없었다.

“가족들이 모두 현악기나 피아노를 다뤘는데, 나는 악기를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세 살 때부터 악기를 만지기 시작했고 피아노와 바이올린 레슨을 받기도 했지만, 한 번도 음악에 애착을 가진 적이 없지. 그러다 혼자 초보자 악보를 보고 리코더를 불면서 답답한 마음에 훨씬 더 많은 음을 연주할 수 있는 플루트를 하게 되었지. 이 악기로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기억이 나. 그냥 너무 재밌었던 거지. 아빠가 ‘너무 많이 연습하면 귀신이 잡아간다’고 농담을 하실 정도로 계속해서 연습을 했어!”

반면 앞니 두 개가 빠져 악기에서 소리가 나지 않아 좌절했던 로맹 귀요의 어두운 일곱 살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는 무척 깔깔대고 웃었다.

“정말이지 힘든 시간이었다니까! 연습하는 걸 정말 좋아했거든. 내겐 연습이 가장 재밌는 게임 같은 것이었어. 처음 배웠던 초보자 책의 맨 마지막에 있는 ‘까만 악보’(음표가 많아서 하얀 부분보다 까만 부분이 많은)를 빨리 연주하고 싶어 안달 났지. 선생님이 5번까지 연습해 오라고 하면 10번까지 연습해 가곤 했어. 음감이 처음부터 뛰어나진 않았지만 박자를 갖고 노는 게 재밌어서 복잡한 리듬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서 풀기도 하고, 동네 합창단에서 노래하면서 다른 파트를 듣고, 가사를 읽으면서 음까지 맞히는 그 과정이 정말 즐거웠어. 앞니가 다 나고는 그 전보다 더 미친 듯 클라리넷을 불었지!”

관념과 행동의 수련 _감상의 즐거움에 스며든 음악

앞서 말한 대로 소리를 내는 즐거움은 음악의 가장 원초적인 기쁨이다. 그런데 음악에는 사실 두 가지 즐거움이 있다. 바로 소리를 내면서 느끼는 행위의 즐거움과 소리를 들으며 느끼는 감상의 즐거움이 그것이다. 레슨을 하다 보면 가끔 아이들이 소리를 내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아는데 소리를 듣는 즐거움은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정적의 시간’을 주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금은 지루하고 느리게 내버려둬야 정적을 즐기고, 그 정적 가운데 모든 소리를 세심하게 들으며 더욱 새롭고 재밌는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 아닐까? 재미를 추구하는 욕구는 그 무엇보다 강하니 말이다.

소리를 내는 즐거움에 비해, 소리를 듣는 즐거움은 본능적으로 발현되기보다 살아가면서 익히는 경우가 많다. 대개 자신이 말하는 즐거움보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를 늦게 깨우치듯 말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사회를 자연스럽게 집약적으로 따라가는 만큼,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으려고 하는 지금의 현실에서 아이들이 음악을 잘 듣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로맹 귀요는 듣는 즐거움, 그것에 담긴 힘에 관해 힘주어 이야기했다.

“음악을 처음 접할 때부터 본능적으로 음악이 지닌 힘을 강하게 느꼈어. 이론이나 갖추어진 지식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음악이 지니고 있는 섬세함, 떨림, 감정, 언어, 그리고 다양한 색채에 대한 느낌은 정말 강렬했지. 언젠가는 오디오를 아주 크게 틀어놓고 소리의 떨림을 느끼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곤 했어. 무척 강렬해서 정말이지 미칠 것만 같았어. 열 살 무렵 나 혼자 정원에서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 음반을 들으면서 ‘이것이 내게 일어난 일 중 가장 환상적인 일이야’라고 생각했어. 그때 프로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 같아.”

듣는 즐거움의 중요성에 관해 함께 이야기하던 최나경은 어떤 학생들의 경우, 악기를 연주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잘못 설정되어 있다고 꼬집었다.

“간혹 보면, 아이들이 악기를 계속하려는 이유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음악으로 도대체 무엇을 성취하려는지 모르겠지만, 명예나 위치, 혹은 생존을 위해서라면 그에게서 좋은 음악이 나오기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해.”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프레이징을 위해 숨 쉬는 것까지 포기하면서 음악을 하는 것일까. 도대체 왜,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음악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인터뷰를 하다 보면 사람들이 종종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쉬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시나요?’ 솔직히 내게 음악을 위해 보내지 않는 시간은 가끔 텔레비전을 시청할 때 빼고는 없다. 아니,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쉬는 시간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내가 행복한 이유는 음악을 위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이렇게 많은 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직업인데 그로 인해 행복할 수 있다니 말이다. 어떻게 하면 음악이 외면의 매개체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일부가 될 수 있는지에 관해 로맹 귀요, 최나경과 나눈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다.

“어릴 때 좋아하는 음악이 있으면 정말 백 번, 천 번씩 듣곤 했어. 그건 내 혈관에 음악을 이식하는 일이었던 것 같아. 오랫동안 많은 매개체를 이용해 음악이 나의 일부가 되도록 한 거지. 아무리 많이 배워도, 들은 것이 적으면 새로운 음악을 들어도 피가 끓지 않아. 그렇기 때문에 듣는 것을 훈련하지 않은 채 음악을 만드는 행위만 반복하면서 좋은 음악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에겐 정말이지 미스터리야. 최대한 섬세하게 귀 기울이고, 깊은 심연 가운데 집중해서 음악을 많이 듣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

로맹 귀요는 자신의 모든 음악적 경험이 일찍이 그의 피 속으로 스며들어가 자신의 연주에 새어나온 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와 최나경은 음악의 떨림, 그리고 음악의 ‘숨’을 누구보다 더 진하게 발산하고 있었다.

마지막 수련 _다양한 감정을 살리는 유연성

두 음악가는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많은 조언을 내놓았다. 좋은 소리를 만들고 프레이징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음악이 원하는 모든 감정과 표현을 ‘나 자신’이라는 악기를 가지고 구현해낼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관악기를 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프로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고자 무던히 노력하지. 계속해서 오디션을 보고 정말 열심히 연습하는 걸 보곤 해. 그런데 막상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면 음악보다는 리허설 시간에 자신을 맞추고 그다음 프로그램을 실수 없이 준비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지. 심지어 요즘 모든 오케스트라가 비슷비슷한 소리를 내잖아. 모두가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이후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심지어 자신이 과연 지금 음악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할 때도 있지. 작품이 진정으로 원하는 소리가 무엇인지, 작곡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심사숙고하는 것이 오디션을 보는 것보다 더 우선돼야 할 것 같아.”

최나경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로맹이 그 뒤를 이어받는다.

“인생이 항상 아름답지 않은 것처럼, 작곡가가 어두움과 추악함을 표현하고자 했을 때는 아름답지 않은 소리도 낼 수 있어야 해. 모든 감정을 빚어내고, 다양한 색채를 살릴 수 있는 유연성을 항상 지녀야 하지. 틀리지 않기 위해 연주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야.”

정말 기본적인 ‘숨’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두 사람을 만나 음악의 존재 이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은, 그들이 왜 매일 빠뜨리지 않고 45분의 롱톤 연습과 스케일, 크로매틱 스케일 등 기본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지에 대한 답을 듣는 것과 같았다. 요즘 들어 나의 직업은 음악이라는 잡히지 않는 존재를 내 몸 안에 집어넣어 현실화 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려운 부분은 온갖 연습 방법을 동원해 손가락에 입력시키고, 활의 각도를 손의 감각으로 익혀 마치 내 팔의 일부인 것처럼 만들고, 목소리의 떨림을 정확하게 비브라토에 이입하면서 말이다. 이 모든 것을 감수하는 이유는 음악이라는 것이 나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기분이 좋을 수 있는, 커다랗고 강력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이 소리와 함께 태어나듯, 음악은 생명과 동의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거대한 존재인 음악을 위해 매번 연주를 준비하고, 부담감을 견디고, 날마다 같은 훈련을 반복할 수 있는 힘은 바로 그 소리를 만들고 듣는 즐거움, 그것에서 나오는 것 아니던가. 때로 힘겨운 음악 인생이지만 결국 만들고 듣는 그 재미 덕분에 기쁨 가득한 생을 살아 가고 있는 셈이다. 많이 듣고, 많이 즐기자. 피가 끓을 때까지.

플루티스트 최나경
한국인으로는 처음 신시내티 심포니 부수석을 거쳐,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첫 한국인이자 여성 수석 주자로 활동한 실력파 음악가. 현재 파보 예르비가 이끄는 페르누 페스티벌과 링컨센터의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있으며, 매년 오스트리아 브레겐츠에서 그녀만의 마스터 클래스를 열고 있다. 오는 11월 5·8·9일 대전·부산·서울에서 프랑스 레퍼토리로 6년 만의 리사이틀을 갖는다

클라리네티스트 로맹 귀요
1991년부터 10년 넘게 바스티유 오케스트라에서 클리리넷 수석을 지냈고, 이후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에서 클라리넷 수석연주자로 활동했다. 2008년부터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2015년 로망 앙상블을 창단해 바로크부터 현대, 대중음악에 이르는 다양한 레퍼토리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현재 스위스 제네바 대학(HEM)과 서울대 교수로 후학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중이다

글 조진주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는 한국에서 태어나 예원학교를 수석 입학, 재학 중 인생의 멘토 폴 켄터를 만나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미국 클리블랜드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커티스 음악원을 거쳐 다시 폴 켄터의 문하로 돌아가 클리블랜드 음악원 학사 학위를 마쳤다. 제이미 라레도 교수와 동 학교에서 석사, 전문사 과정을 마쳤으며 2014년 세계 3대 콩쿠르인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 1위를 수상했다.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해 거리 공연 프로젝트 ‘클래시컬 레볼루션 코리아’의 음악감독을 맡고 있으며, 2016년 여름 음악 캠프인 앙코르 체임버 뮤직(www.encorechambermusic.org) 음악감독을 맡았다. 동물을 사랑하고, 아이폰 중독자이며, 자연을 사랑하지만 가끔은 TV 보는 것을 음악보다 좋아한다

사진 김성환(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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