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YOUNG ARTISTS
빛나는 재능과 지적 호기심으로 가득한 이 시대의 비르투오소
2011 서울예술고등학교 수석 입학
2012 한국예술종합학교 입학
2013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입학
2014 예후디 메뉴인 콩쿠르 2위
보스턴 클래시컬 오케스트라 콩쿠르 1위
2015 파가니니 콩쿠르 1위
2018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최고연주자과정 예정
지난 5월, 양인모는 롯데콘서트홀에서 서울시향과 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앙코르로 밀스타인의 ‘파가니니아’를 연주했다. 그는 자신만의 색깔로 그려낸 비르투오소를 선보였고, 무대는 성공적이었다. 평단과 대중의 반응 역시 호평 일색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양인모가 로비에 등장하자, 팬들은 뜨거운 환호성과 함께 그를 둘러쌌다.
큰 키에 다부진 체격으로 ‘쾌남’의 분위기를 풍기는 양인모. 꾸미지 않아도 빛나고, 정제되지 않은 순수함을 지닌 반듯한 인상의 청년은 스스로를 “소심하고 내성적”이라고 정의한 것과는 달리 거침없는 답변으로 반전 매력을 선보였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가 더 궁금해졌다.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그야말로 물음표 같은 청년이었다.
젊은 비르투오소의 음악 인생은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화려한 방점을 찍고 비로소 출발선에 들어섰다.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 졸업을 앞둔 양인모는, 무대의 중심으로 향할 준비를 마치고 더 크게 도약하기 위해 먼 곳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양인모의 시작
음악 애호가인 아버지와 미술을 전공한 어머니 사이에서 자연스레 예술을 접하며 자랐습니다. 6세에 바이올린을 처음 잡았는데, 레슨을 해주던 대학생 누나에게 반해 정말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나요.(웃음) 음악을 전공하는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일반 중학교에 재학했고, 서울예고를 거쳐 한예종에서 김남윤 선생님과 공부했습니다. 이후 더 넓은 곳에서 많은 것들을 배워보고자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 미리암 프리드 선생님께 배우고 있습니다.
나의 스승, 미리암 프리드
선생님은 첫 레슨부터 단점을 마구 들춰내며 ‘촌철살인’이었어요. 처음엔 ‘내가 그렇게 못 하나?’ 싶어 주눅이 들고 의기소침해지곤 했는데, 막상 연주를 녹음해서 들어보니 선생님의 지적이 다 맞더라고요. 덕분에 제 음악을 돌아보며 잘못된 습관들을 고쳐나갈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 분야에 박식한 분이에요. 늘 ‘음악 안에만 갇혀있지 않도록 많은 것들을 보고 느껴야 한다’고 강조하시죠. 음악가와 정치인을 자녀로 두고 계셔서 그런지 정치와 사회 문제들에도 관심이 많고요. 화요일마다 제자들과 모여 연주하고 토론하는 ‘스튜디오 클래스’를 진행하는데, 최근 대두되고 있는 정치·사회·문화적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음악을 탄탄히 쌓아 올리기 위한 기반을 다지는 시간을 갖기도 한답니다.
중원을 달리는 바이올리니스트
연습실 안에서 스스로와의 싸움을 반복하다 보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고립되기 쉬운 것 같아요. 그래서 더욱 다른 분야의 사람과 어울리며 활동적으로 지내려 하죠. 부상에 대한 우려가 없는 건 아니지만, 보스턴에선 주말마다 축구를 하러 다녀요. 워낙 뛰어다니는 걸 좋아해서 포지션도 주로 미드필더를 맡고 있고요. 비록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지금까지 연락을 주고받는 중학교 동창들도 함께 축구하던 친구들일 정도예요. 최근 몇 달간은 EDM 음악에 빠져 살았어요. 클럽에 가는 것도 좋아하는데, 소심하고 내성적인 편이지만 속에 쌓여있던 것들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의외의 것들로 표출되나 봐요.(웃음) 듣다 보니 만들어보고 싶어서 작곡에도 도전했는데, 협주곡이나 소나타를 작곡할 때와는 또 다른 희열이 있더라고요. 참! 저 큐브도 잘 맞춰요. 한때는 20초 안에도 완성하고 그랬는데…. 저 되게 의외죠?
파가니니 콩쿠르
복잡한 걸 싫어하고 비르투오소적인 부분을 중시하는 면이 파가니니의 음악과 잘 통한 것 같아요. 1968년도 우승자인 프리드 선생님도 크게 기뻐하셨죠. 그 후, 레슨에 파가니니 악보를 들고 가면 “이제 파가니니는 혼자해도 되지 않겠어?”라며 농담을 던지시더라고요.(웃음) 우승도 그렇지만 현대음악상은 정말 의외의 결과였어요. 실은, 경연 2주 전까지도 곡을 암보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거든요. 우연히 콩쿠르 관련 책자를 읽다가 ‘암보하지 않을 시 감점’이라고 적혀있는 걸 보곤 부랴부랴 외우기 시작했는데, 현대음악에 대한 제 가능성을 알아볼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재미있는 건, 콩쿠르를 치르면서 기억에 남는 게 ‘쪽지’라는 거예요. 경연 전날, 호텔 방 문 아래로 ‘현대곡은 다 외우셨나요?’라고 적힌 쪽지가 들어왔거든요. 사실 1차 발표 때도 방문 밑으로 들어온 쪽지를 통해 결과를 확인했어요. 이게 실화인가 싶었습니다.(웃음) 그간 수많은 콩쿠르에 참가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스러우면서도 신기했어요.
도전해보고 싶은 음악
헬무트 라헨만의 작품을 꼭 한번 연주해보고 싶어요. 라헨만은 ‘확장 기법’이라 불리는 방식을 사용해 작곡하는데, ‘악기에서 이런 소리가 날 수 있어?’라고 생각될 만큼 평소에 듣기 어려운 소리를 사용하거든요. 낯선 음악이지만 베토벤의 곡을 들었을 때만큼이나 감정적으로 격양되었어요. 화성법에 의해 촘촘하게 짜인 음악은 아니나, 이러한 시도들도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현대음악은 앞으로 더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에요. 음악가로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양인모가 꿈꾸는 양인모
음악가는 스스로의 만족을 위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알면 알수록 ‘나’만을 위한 게 아니더라고요. 봉사활동을 겸해 공연장 밖에서 다양한 청중을 만나며 음악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됐습니다. 음악가들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고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선 ‘우리가 왜 사회에 필요한지, 또 어떤 일들을 해낼 수 있는 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쾌락만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더더욱 음악을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 여기며 매 무대에 진심을 다해 충실하게 연주하는 음악가가 되고 싶습니다. 제 연주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자극하고 고무시킬 수도 있으니까요.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
내년부터는 뉴잉글랜드 콘서바토리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밟을 예정입니다. 콩쿠르는 더 이상 나가지 않으려 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과 어울리고 음악 외의 것들을 살펴보며, 세상의 많은 이야기를 음악에 녹여내 보려고요. 제 역량이 된다면 언젠가 페스티벌을 기획해서 세계 각지의 훌륭한 아티스트들을 초청해 청중과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글 정원 기자 사진 박진호(studio B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