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2020년 창단 55주년을 맞는 KCO 김 민 음악감독이 말하는 모차르트 교향곡의 모든 것
철학자 칼릴 지브란은 자신의 저서 ‘예언자’에서 슬픔과 기쁨에 대해 ‘그대의 기쁨이란 가면을 벗은 그대의 슬픔’이라고 말한다. 내면에 존재하는 기쁨과 슬픔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작곡가 중 인간의 다면적인 예술세계를 가장 잘 드러낸 음악가는 모차르트다. 그는 밝은 선율 속에 깊은 상심과 슬픔의 메시지를 담아내면서 웃음 속에 숨겨진 진지한 세상을 읽어냈다.
내년이면 창단 55주년을 맞는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KCO)는 2019년 12월 28일부터 소년같은, 그러나 성숙했던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고뇌와 성찰이 담긴 교향곡 46 전곡 연주 시리즈 무대를 시작하며 새로운 이정표를 남긴다. 초청지휘는 랄프 고토니, 바이올린 윤소영, 프리데만 아이히혼, 비올라 알렉시아 아이히혼, 피아노 손정범, 플루트 칼 하인츠 슛츠가 무대를 함께 빛낼 예정이다. 창단 55주년과 함께 내년이면 KCO 음악감독 취임 40년을 맞는 김 민 음악감독에게 이번 한국 최초 모차르트 교향곡 46 전곡 연주 시리즈의 새로운 음악적 도전의 의미는 남달랐다.
“모차르트의 교향곡이 만들어진 시기가 1765년부터 1788년인데, 하이든이 런던 교향곡을 작곡한 시기가 1790년 정도이고, 베토벤 교향곡이 1800년에 시작되는 걸 보면 모차르트 교향곡이 이후 많은 작곡가들의 교향곡 작품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지요. 사람들은 모차르트를 타고난 천재라고 하지요. 물론 엄청난 재능을 갖고 태어난 것은 맞는 것 같지만 결국 어린 시절부터 철저한 교육과 해외 연주 여행을 통해 성장하면서 자신의 음악적인 역량을 넓혀간 천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2015년 서울바로크합주단에서 KCO로 이름을 바꿔 시작된 당시 항해의 목표는 해외 무대에서의 활발한 연주와 본 고장에서 받는 음악성에 대한 인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KCO의 항해는 무척 고무적이다. 2015년 빈 무지크페라인에서 KCO 창단 50주년 기념 유럽 3대 도시 투어를 시작으로 그들은 한국연주단체 최초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체임버홀 공연, 핀란드 난탈리 페스티벌, 독일 라인가우페스티벌, 에스토니아 모차르트 페스티벌, 폴란드 베토벤 페스티벌, 독일 슈파이어, 이탈리아 아스꼴리 피체노 페스티벌, 루마니아 에네스쿠 페스티벌 등 세계 곳곳에서 200회가 넘는 해외초청 공연을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챔버 오케스트라로서 인정받아 왔다. 2018년 5월 에켄하우제너 음악축제 무대에서의 연주를 듣고 평론가 도리스 빌레펠트는 KCO를 한국에서 온 세계적인 수준의 앙상블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무엇보다 현 중심의 앙상블이 목관, 금관 등 다양한 악기가 더해져 관현악챔버오케스트라로서 연주들이 많아지고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 의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주커만과 벤게로프와 함께 작업하면서 좋을 결실들이 있었고, 바로크음악부터 현대음악까지 레퍼토리를 확장할 수 있었지요. 대단한 과제들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단원들의 열정과 노력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챔버오케스트라로 세계적인 가장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와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이 예술고문인 KCO가 2020년 창단 55주년을 맞으며 기획한 모차르트 교향곡 46 전곡 연주 시리즈는 우리나라에서 단 한번도 도전하지 못했던 레퍼토리다. 2019년 12월 28일 교향곡 1번·11번·21번·31번과 윤소영의 협연으로 바이올린 협주곡 3번 연주를 시작하면서 그 서막을 연다.
이후 2020년 1월 2일, 3월 15일, 17일, 6월 19일, 21일, 9월 9일, 11일, 12월 20일, 22일까지 10회에 걸쳐 피아니스트 손정범(피아노 협주곡 20번, 9번, 14번),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바이올린 협주곡 3번, 5번), 바이올리니스트 프리데만 아이히혼(바이올린 협주곡 1번), 플루티스트 칼 하인츠 슛츠(플루트 협주곡 2번)가 연주한다.
“모차르트 교향곡 전곡 연주는 모차르트가 걸어온 길을 걸으며 그 흔적을 남긴다는 의미와 함께 KCO가 걸어온 길, 앞으로 걸어갈 길을 제시하고 밝히는 의미가 있어 이번 도전은 우리에게도 큰 모험이자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KCO의 연주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랄프 고토니가 초청 지휘를 허락해 이번 연주에 대한 기대가 우리 단원들 역시 무척 큽니다. 12월 공연에서는 플루트 칼 하인츠 슛츠와 2020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수상자가 함께 다채로운 모차르트 무대를 빛내줄 것입니다.”
순수 예술 꾸준히 지원하는 국가 시스템 절실
김 민은 서울예고, 서울대 음대,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악원을 졸업하고 함부르크 N.D.R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에서 활약했다. 이후 귀국해 국립교향악단 악장에 이어 1981년부터 1994년까지 KBS교향악단 악장으로 활동했다. 1980년에는 서울바로크합주단을 재조직, 재창단하여 오늘날 한국 실내악단의 대명사로 이끌었다. 2020년이면 그가 KCO와 인연을 맺은 지 40년이다. 실내악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실내악 토양을 가꾸고 씨앗을 뿌려 가꿔 이뤄낸 소중한 유산이다.
“학창시절부터 실내악을 워낙 좋아했습니다. 정교하고 섬세한 연주로 청중들이 환호할 때 단원들과 함께 느끼는 기쁨과 자부심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지요. 실내악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을 때 실내악 연주를 통해 청중을 만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모두가 전쟁과 가난으로 삶 자체가 각박했지만 예술을 사랑했던 많은 음악 선배들이 교육기관을 만들고 음악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고, 다양한 음악단체를 만들며 그야말로 한 사람 한 사람의 헌신으로 우리 음악계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개인의 힘 만으로는 우리 클래식 음악계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하기는 힘든 시대입니다. 국가와 사회 지원 시스템과 지원이 꾸준히 있어야 우리 음악계가 더욱 성장하고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이룬 훌륭한 음악적인 결실들이 문화 정책에 잘 반영되어 문화 예술 분야가 더 균형있고 조화를 이루며 성장할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그것은 비단 클래식 음악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김 민 교수는 기술과 혁신의 중심을 움직이고 세상을 좀더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가치는 인문학·종교·철학을 비롯해 수학·과학 같은 순수 학문의 발전을 통해 가능하다며 인문 사회 과학과 예술이 함께 어우러질 때 사회 구성원들의 사고가 깊고 넓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신을 고양할 수 있는 학문을 연구하고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하겠지요. 순수 학문은 가시적인 효과가 금세 나타나는 학문이 아니고 경제적인 효과와 바로 연결되는 실용성도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현재 불균형한 가치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은 결국 교육이 균형을 찾아야 해결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조화와 균형. 그것은 클래식 음악이 추구하는 가치이면서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이기도 하다. 우리 음악계 역시 예전에 비해서는 훨씬 다양해진 장르와 단체들이 활동하면서 그 깊이와 넓이의 폭이 확장되었다.
“솔리스트 역시 실내악 활동이 연주에 비타민과 같은 역할을 할 만큼 중요하지요. 다른 연주자의 소리에 집중하면서 자신의 소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섬세함과 정교함을 추구하는 음악적 가치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래서 음악 교육과정에서 실내악 수업은 무척 중요합니다.”
모차르트 음악으로 보여줄 KCO의 미래
“실내악을 좋아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하지만 KCO가 맺은 결실들은 많은 음악 선배님들의 도움과 헌신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훌륭한 제자, 후배들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저에게는 행운이었죠. 고전 음악 속에서 우리는 늘 새로운 것들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고전의 아름다움은 인류의 양식이며 앞으로 후세의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영향을 미치겠지요. 다만 이 길을 걸으면서 스스로 다짐한 것이 있다면 너무 빨리 가려고만 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거북이처럼 부족한 것들은 노력으로 채우면서 천천히 가자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무대에서 좋은 연주를 들려주기 위해 젊은 친구들과 함께 치열하게 아이디어를 의논하고 고민하면서 다양한 기획 공연들을 선보여 왔습니다.”
지난 6월 40회를 맞은 북유럽 최고의 축제 난탈리 페스티벌과 세계 거장들이 주목하고 참가한 크론베르크 아카데미 콘서트에서 KCO는 한국 실내악 음악의 위상을 세우며 유럽 현지 관객들에게 기립박수를 받으며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제는 세계적인 무대와 페스티벌에서 연주 초청도 쇄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해외 초청 공연이 140여회 되고 어디를 가든지 연주력에서 인정받았기 때문에 이제 KCO 존재 자체로 자랑스럽고 흐믓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길을 걸으면서 우리가 가야 할 길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지요. 이번에 그 길을 밝혀줄 음악이 모차르트 작품이어서 기쁘고 기대가 큽니다.”
어린 아이와 같은 천진한 마음에서 나온 천상의 소리.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음악가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모차르트 작품은 물 위를 걷는 것처럼 기댈 곳이 없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맑고 투명한 물 빛 아래 인생의 깊은 상념과 슬픔이 가라 앉아 흐른다. 김 민 교수는 모차르트 음악은 마치 하얀 백지에 그린 검정 먹물 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천재였던 그의 음악 속에는 그의 순탄치 않았던 삶의 파편들이 스며있습니다. 맑고 정교한 음악 속에 묻어나는 인생의 강한 페이소스. 기쁨과 슬픔이 함께 서려 있는 모차르트의 노래가 어렸을 때보다 시간이 지난 지금 더 마음에 와 닿는 것 같습니다.”
55년을 달려온 길의 끝에서 다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지금. 그는 이번 모차르트 교향곡 전곡 연주 시리즈가 음악의 가치를 전하고 KCO의 미래를 보여주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번 무대는 우리나라 클래식 음악사의 중요한 역사로 기록되는 시간으로 그야말로 음악가 김 민의 모든 음악 생명을 건 도전이 될 것이다.
“우리의 연주가 다음 세대를 위해 자랑스러운 유산이 되길, 인간을 움직이는 음악의 힘을 전하는, KCO의 새로운 출발이길 바랍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바이올린 케이스를 정리하는 그에게 음악이 마지막으로 전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사람의 마음을 더 행복하고 풍요롭게 하려는 메시지 아닐까요? 거꾸로 묻고 싶네요. 만약 음악이 없는 세상이라면 우리 삶은 어떨까? 하고요.”
글 국지연 기자 사진 박진호(Studio BoB)
랄프 고코니/KCO
(협연 윤소영·손정범·프리데만 아이히혼·알렉시아 아이히혼·칼 하인츠 슛츠)
모차르트 심포니 46 전곡 연주시리즈 1~10
2019년 12월 28일, 2020년 1월 2일, 3월 15일, 3월 17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6월 19일, 9월 9일, 12월 20일, 12월 2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