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티스트 최나경이 만난 세계의 음악인 ⑤
소프라노 조수미
세계무대 데뷔 35주년, 노래는 계속된다
조수미의 열성 팬인 부모님 덕분에 그의 공연과 음반을 끊임없이 접하며 자랐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플루트라는 악기에 막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을 무렵 출간되었던 그의 첫 자서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1997)는 내게 음악가로서의 꿈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이후에도 삶의 곳곳에서 마주한 그의 음악은 끊임없이 큰 위로와 희망이 되어 주었다.
그중 한 기억을 꺼내어 본다. 외로웠던 20대 중반, 음악가들은 세상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한창 슬럼프에 빠졌던 시절이 있었다. 마음을 달래려 조수미의 음반을 듣던 어느 날 문득, 무슨 일이 있어도 그가 노래를 계속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누군가도 최나경이 음악을 계속하길 바라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마음을 추스르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삶의 눈물겨운 순간순간마다 그는 참 고마운 역할을 했다.
그래서였을까. 8년 전 빈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함께 공연하게 되었을 때, 그와 첫인사를 하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경험을 했다. 나의 우상 조수미가 실제로 풍기는 압도적인 아우라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조수미의 노래는 곡이나 장르를 불문하고 귀에 착착 감기고 흡입력이 엄청나다. 또랑또랑 생동감이 넘치고 즐겁다가도 가장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감수성을 자극하며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노래가 너무 매력적이다.
이무지치와 앨범 녹음을 마치고 로마 자택에 머물고 있는 조수미를 설레는 마음으로 만나 보았다. (*전체 인터뷰 영상은 QR코드 ① 참조)
나를 돌아보는 시간
세계무대 데뷔 35주년을 축하드린다! 올 한해 이를 기념하는 여러 가지 프로젝트가 준비되어있을 것 같은데. 이무지치와 함께한 데뷔 35주년 기념 앨범을 발매하고, 내 삶의 이야기를 담은 오디오북을 발매한다. 파리·빈·뒤셀도르프·바르샤바 등에서 계획 중인 독창회를 비롯해 호주 투어도 준비 중이다. 유럽 여러 도시에서 마스터클래스를 개최하고, 홍콩 성악 콩쿠르 심사를 통해 젊은 성악가들과 만날 예정이다.
이중에서도 오디오북 발매가 눈길을 끈다.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 35년을 3시간으로 압축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다시 한번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 의미가 깊었다. 나를 위해, 팬들을 위해, 그리고 내 뒤를 잇는 젊은 음악인들이 내가 했던 고생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오디오북을 내놓게 되었다. 직접 낭독한 한국어와 영어로 나올 예정이다.(QR 코드 ② 참조)
자서전의 저자 이전에 독서량도 대단할 것 같다.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을 가져다준 책이 있다면? 호기심이 많아 이 책 저 책 들추는 것을 좋아하고, 읽다가 덮은 책도 많다. 하지만 마리아 칼라스의 인생을 담은 책 다섯 종류는 다 읽었다. 요즘은 아무래도 나이가 들다 보니 건강에 관한 책도 많이 찾게 된다. 바쁜 연주 여행을 소화하려면 체력이 받쳐주어야 하기도하고. 최근 읽었던 책 중에는 이병률의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좋았다. 가슴이 촉촉해지더라. 지금은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이라는 두꺼운 책을 읽고 있는데, 읽다가 졸음이 쏟아질 만큼 어렵지만 놓지 않고 있다.
요즘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음악인들이 많지만, 처음 데뷔했을 당시엔 유럽인들에게 생소한 한국인이었을 것 같다.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을 때가 1983년이었다. 한국으로 전화를 걸기 위해 버스를 타고 30~40분을 나가야 했다.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돌아오는 길, 낯선 외국어가 들려오는 버스 안에서 많이 울었다. 당시 이탈리아인에게 ‘동양인 여자’의 비주얼은 생소했고, 서양음악을 노래하는 성악가라는 사실에 더 의아해했다. 동양인이 많이 없었던 시절이다 보니 가까이 와서 머리카락도 만져보고, 인형인 것처럼 과자도 주고 귀엽게 생각했던 것 같다. 88올림픽도 하기 전이라 한국에 대해 잘 모르던 시기였다. 나라가 잘되고 힘이 있어야 외국에 나와 있는 사람들에게도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덩달아 애국심도 커졌다. 내 나라에 대한 색깔과 엄청난 사랑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글로벌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무대에서 내려온 조수미의 모습은 어떤지 궁금하다. 무대에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신경 쓴다. 무대조명, 같이 공연하는 사람들 의상, 프로그램 순서 등. 한번은 향기 나는 음악회를 하고 싶어 장미꽃 3천 송이를 사서 뿌린 적도 있다. 이렇듯 관객과 함께 소중한 순간을 만들어가는 경험은 좋아하지만, 무대조명이 꺼지고 난 후의 리셉션은 절대 가지 않는다. 곧바로 숙소에 돌아와서 메이크업을 지우고 그날의 공연을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다음날에도 새벽 일찍 일어나 하루를 계획하고, 반려견 두 마리와 산책을 하며 직접 장을 보러 간다. 마트에 가서 일일이 따져가며 좋은 재료를 사는 것을 좋아한다.
누구에게나 역경은 있다
지난 2020년을 돌아볼 때 기억나는 일이 있는가? 전 세계적으로 참 어려운 시간이었는데. 늘 바쁘게 다니던 삶에 익숙했던 터라 갑자기 집에 머무는 것 자체가 처음엔 이상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봉쇄령 이후 갑갑해진 사람들이 저녁이 되면 발코니에서 노래를 불렀다. 성악가라는 직업을 가진 내가 매일 창밖으로 이웃들의 퍼포먼스를 지켜보고 있는 광경이 아이러니했다. 가까운 친구(작곡가 페데리코 파치오티의 어머니 파트리치아)가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나면서 충격이 컸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음악이라는 생각에 ‘삶은 기적(Life is a Miracle)’이라는 싱글 음반을 냈다(QR 코드 ③ 참조). 힘든 때일수록 음악이 얼마나 빛이 될 수 있는지 깨달았다.
한국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자가격리까지 감수하며 다녀갔다고. 어머니가 폐렴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지금 못 뵈면 언제 다시 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자가격리를 마치고 나서도 거리두기 방침으로 인해 병원에서 가족 면회가 불가하다더라. 다시 로마로 돌아가는 날 마침, 기적적으로 5분간 면회가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머니를 잠시나마 뵐 수 있어 너무나 감사했다.
오랜 기간 무대에 오르며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을 테다. 시련을 극복해온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는가? 조 바이든 차기 미국 대통령의 말을 빌리자면, 역경이 닥쳤을 때 “Why me?”가 아니라 “Why not?”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누구나 힘든 일을 겪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이 인생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 반은 온 것이다. 처음 이탈리아에 도착한 날, 비를 맞으며 베네치아 광장을 거닐고 돌아와 일기장에 몇 가지 원칙을 적었는데, 그것이 항상 나에게 힘이 되었다. 아무도 나 대신 노래를 불러줄 수 없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 정 급할 때는 우주와 통화를 해라. ‘도와주세요, 잘 할 수 있겠죠?’ 하고.
마지막으로, 월간객석의 애독자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코로나19로 정말 힘든 시간이지만, 그런 매서운 추위가 있기에 앞으로 다가올 봄이 더 찬란할 거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진실을 믿고 계속 용기를 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오래전 나의 바람대로, 조수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계속되는 그의 노래, 그리고 삶의 이야기 덕분에 우리에겐 더욱 뜻깊은 새해가 될 듯하다. 삶의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는 그녀에게 끝없는 응원과 경탄의 박수를 보낸다.
글 최나경
예원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예고 1학년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커티스 음악원·줄리아드 음악원을 졸업했다. 신시내티 심포니 부수석, 빈 심포니 수석을 역임했으며, 현재 오스트리아 브레겐츠에 머물며 솔리스트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유튜브 채널 ‘플루트 최나경’를 비롯해 다양한 SNS 채널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소프라노 조수미(1962-)는 1986년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베르디 극장에서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세계무대에 데뷔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게오르그 솔티, 주빈 메타 등의 지휘자들과 주옥같은 명반을 남겼으며, 1993년에는 솔티와 녹음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앨범으로 그래미상을 받았다. 40여 장의 정규앨범을 비롯해 싱글앨범·라이브 앨범·베스트 앨범, 그리고 영화음악·뮤지컬·가요로 참여한 음반까지 누적 판매량 100만 장을 기록하며 꾸준히 사랑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