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남정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3월 15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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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남정호

결 핍 의  긴 장 감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남정호

때로는 즐기고, 때로는 반발하면서,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걸 해낸다는 것

남정호(1952~)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남 몰래 춤을 추었다”고 한다. 아무도 없는 빈방에서, 엄마의 화장대 거울 앞에서, 그리고 인적이 없는 골목길에서. 춤을 출 때는 안에 숨어 있던 다른 이가 나와서 한 번도 가지 못한 곳으로 그를 데려갔다.

늘 새로운 곳으로 이끌었던 춤은 그를 프랑스행 비행기에 오르도록 했다. 이화여대 졸업 후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현대무용 전공생들이 대개 미국을 유학지로 택하던 시기였다. 귀국 후에는 부산 경성대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교수로 위촉됐다. 이후 2018년 퇴임까지 현대무용 인재를 발굴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리고 2020년 2월, 남 몰래 춤추던 소녀는 어느덧 국립현대무용단을 이끄는 예술감독이 됐다.

남정호는 언젠가 말했다. 훌륭한 무용가들은 대부분 마지막 순간에 어떻게 자기 몸을 가누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무엇이 그를 국립현대무용단으로 이끌었을까.

‘남 몰래 추는 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문제는 혼자서 남 몰래 추던 춤은 그 당시가 지나가면 기억할 수 없는 춤이었다는 점이다. (…) 하여 남 몰래 추는 춤은 비밀 서랍 속에 넣어두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춤을 염두에 두고 연습을 했다. – 남정호 ‘남 몰래 추는 춤 나도 몰래 추는 춤’ 중

벨기에 루뱅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럽 무용에 관심을 가졌다고 들었다. 집안 분위기가 어떠했기에 삼남매 모두 예술가로 성장했나?(*동생 남긍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남영호는 현대무용가로 활동 중이다.) 어린 시절, 집에는 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베토벤의 ‘운명’을 들으며 아침에 눈을 뜨곤 했다. 금전적으로 넉넉하진 않았지만 아버지는 집에 돈 냄새가 나는 걸 부끄러워하셨다. 검소함을 중요한 미덕이라 배우며 성장했다. 무엇보다 남녀차별이 없는 집안 분위기여서 하고 싶은 말은 다 할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무용은 다른 예술에 비해 어르신들(?)의 반대가 심했을 텐데. 아버지가 반대하셨다. 아버지에게 월사금만 내달라고 조르며 무용을 배웠다. 결핍의 긴장감을 가지며 자란 것 같다.

귀국 후 부산에서 현대무용단 줌을 창단했다. 당시 “기존 틀에서 벗어난 (남정호의) 춤은 미국 스타일 위주였던 한국 현대무용에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평을 받았다. 실제 우리나라 현대무용은 미국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이러한 흐름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봤나? 미국식 현대무용이 국내 대학에 뿌리를 내리며 기교 위주의 무용으로 방향이 틀어졌다. 프랑스에서는 테크닉을 익혀서 수행하는 것이 무용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인간이 몸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 어느 무용가의 움직임을 따라 하지 않더라도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귀국 후 ‘유럽에서 유학한 최초의 무용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남모르는 부담감이 있었을 것 같다. 내가 하는 건 다 ‘유럽의…’ ‘프랑스의…’ 이런 수식어가 붙더라. 선입견을 깨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느 정도는 그 상황을 즐기기도, 때로는 반발하기도 하면서,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걸 해내고자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의 창작과 설립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다. 교육자는 많은데 전문 안무가는 배출되지 않는 상황이 오래도록 지속됐다. 연장자가 안무를 하다 보니 무용계에는 수직적 위계질서가 잡혔다. 더 이상 무용계가 성장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무용원이 설립된다기에 ‘창작과’가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주위 편견에 힘들기도 했다. 왜 학부 1학년에게 안무를 시키느냐 지적을 받았으니까. 나의 20년은 내외부적으로 많은 조율을 하며 보내야 했다.

국립현대무용단 안성수 전임 단장은 “앞으로 국립현대무용단의 방향성은 안무가 양성에 있다”고 밝혔다. 국립현대무용단이 교육기관은 아니다. 안무가들이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라고 본다. 좋은 안무가가 나올 수 있는 터를 만들려면 무엇보다 사회 분위기, 즉 개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남 몰래 쓰던 글’을 엿보다

침묵은 가장 잔인한 위선이다. 자신의 불평을 삼켜버림으로써 상대방의 가치를 훼손한다. (…) 입안에서 맴돌다가 가슴에 묻어 놓은 말을 글을 통하여나마 쏟아 놓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 남정호 ‘남 몰래 추는 춤 나도 몰래 추는 춤’ 중

춤 에세이 ‘남 몰래 추는 춤 나도 몰래 추는 춤’을 발간했다. ‘객석’에도 꾸준히 칼럼을 게재했는데. 무용가가 아니었다면 작가가 됐을 것이다. 이야기꾼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어릴 때 일기를 쓰면 절반이 허구였다. 친구들은 주위에 모여 내 이야기를 들으려 했다. 마치 천일야화에 나오는 셰에라자드처럼. 그러던 중 중학교 때 춤바람이 났다. 역시, 춤바람이 제일 강력하다!

글을 쓰는 행위가 ‘현대무용가 남정호’에게 남긴 것은? 프랑스에서 귀국 후 아무것도 안 하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춤’지에 기고하며 시간을 보냈다. 원고료를 받을 때에는 사실 즐거운 마음도 들었다. 민간 무용단을 이끌며 늘 재정 문제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인지 소정의 원고료라도 수입이 생기면 해방감이 들었다.

현재 한국 무용계에는 80~90년대에 비해 비평, 비평가의 역할이 대폭 줄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경우도 작품에 대한 비평보다는, 관객 점유율과 같은 수치화된 자료로 작품 성공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비평가는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대중이 작품을 잘 이해하도록 안무가의 세계와 동시대 사회를 이해하는 식견을 지녀야 하는데, 이런 능력을 지닌 사람이 현대무용계에서 특히 부족한 것 같다. 최근 해외 무용단의 내한공연을 보면 금지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현대무용이 다양해지다 보니 모든 걸 다 읽어낼 만큼 전문적인 비평 인력이 안 나오는 듯하다. 그래서 객관적 수치만으로 작품을 이야기하는 경향이 생겼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수장이 되다

가끔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무용을 못하거나 안 하게 될 때가 되면 무엇을 할까 생각해본다. 그러면서 도대체 다른 무용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도 궁금해진다. – 남정호 ‘남 몰래 추는 춤 나도 몰래 추는 춤’ 중

11년 전, 국가 주도 현대무용단이 생긴다는 소식에 많은 무용인이 기뻐했다. 육완순 안무가를 비롯한 많은 현대무용가가 국립현대무용단을 주장했다. 여러 밑거름을 바탕으로 마침내 국립현대무용단이 탄생한 것이다. 기쁜 마음이었다. 초기 6년 동안 이사를 맡았는데, 초석을 다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당시 예술감독(홍승엽)을 잘 서포트하고자 했다.

외부자와 내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무용단. 좀 다른가? 프랑스에서 공부하던 당시 한 무용단이 오픈 클래스를 열면 그 지역 무용가들이 다 모여들었다. 나 역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참여했다. 국립현대무용단도 오픈 클래스를 열면 좋겠다 싶어 목소리를 높이곤 했는데, 이제 와 보니 여러 내부 문제 때문에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감독 취임 후 유례없는 팬데믹이 닥쳐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용단의 새로운 확장을 이뤄냈다. 댄스필름을 제작해 선보였고. 인공지능 안무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비욘드 블랙’을 올렸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온·오프라인 투 트랙으로 방향성을 잡아야 될 것 같다. 그렇지만 공연예술의 진수는 유지해야 한다. 프랑스의 한 안무가가 코로나 시대에 적합한 작품을 발표했다. 여러 명의 관객을 모을 수 없으니, 단 한 명씩 줄지어 입장해 개인마다 10분씩 춤을 감상하도록 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1시간의 경험보다 그 10분의 경험이 더 강렬할 수 있다.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한 시기다.

지난해 국립현대무용단은 남정호 예술감독의 신작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를 발표했다. 올해도 예술감독 안무작인 ‘빨래’로 시즌을 시작할 예정이다. ‘빨래’는 1993년 초연 후 많은 시간이 지난 작품인데. 1993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선보인 작품이다.(*1993년 초연 당시에는 ‘우물가의 여인들’이라는 제목으로 발표, 1994년 ‘빨래’로 개작) 당시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여성이자 엄마인 나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작품이 시작됐다. 나이듦과 연결되어 이 작품은 늘 나와 함께 있어왔다. 참 어려운 시기지 않은가. 빨래를 하면서 서로를 돌보는 역할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앞으로 해야 할 무수한 일들

나는 내가 아주 늙어버린 나중이라도 춤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 어쩌면 대부분의 선배 무용가들처럼 춤 현장에 머물러서, 때로는 후배들과 경쟁하며, 또 때로는 그들을 격려하면서 머무르다가, 종래에는 글쓰기나 농사짓기의 근처에도 못 가보고 생을 마칠지도 모르게 될까봐 겁이 난다. – 남정호 ‘남 몰래 추는 춤 나도 몰래 추는 춤’ 중

국립현대무용단이 꽤 오랜 시간 평단의 지적을 받은 건 ‘예술감독의 사유화’에 관해서다. 역량 있는 안무가들이 역대 예술감독이 됐고, 그런 예술감독의 안무작이 레퍼토리로 자주 오르다 보니, 그것이 과연 ‘국립’을 온전히 대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국립’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한다. 지난해에는 전임 감독이 구성한 프로그램을 존중했다. 코로나 때문에 못 올린 작품이 많지만 올해는 꼭 선보일 계획이다. (국립현대무용단 2021 시즌 프로그램 리플릿을 꺼내며) 우리 리플릿을 보면 다양한 안무가가 수평적으로 나열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1주년을 맞은 무용단에겐 새 과제가 놓여있다. 많은 노력 끝에 ‘현대무용의 대중화’에서 성과를 이뤄냈다. 반면 국제 교류에 있어선 다소 미흡하다는 의견이 있다. 국립현대무용단에서 만드는 작품은 대부분 스케일이 크기 때문에 해외로 가기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일반 프로모터가 감당하기엔 작품 규모가 크다. 현대무용 페스티벌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해전술’을 피한다. 무용수 1명이 오르더라도 100명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병정이 아니라 전사 같은 무용수로 작업해야 한다. 거창한 무대미술에 기대지 않고 말이다.

이번 시즌에는 스페인 안무가 랄리 아구아데가 참여하는 ‘그 후 1년’, 한국·싱가포르·일본 안무가가 함께하는 ‘우리가족출입금지’를 공연한다. 이 안무가, 혹은 이 국가를 선택한 이유는? 랄리 아구아데의 작품은 지난해 코로나 때문에 연기된 것이다. ‘우리가족출입금지’는 가족 이야기를 한국과 중국, 일본이 함께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일본의 안무가 시모지마 레이사는 대담함이 돋보인다. 국내 무용가들은 자신을 보이지 않는 틀 안에 가두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친구들에게 소개하고픈 안무가다. 싱가포르의 퀵쉬분은 인체의 무게를 다루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 이 안무가들과 교류하면 국내 무용가들도 좋은 영감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국립현대무용단도 유럽 주요 극장에 진출해야 할 시기이지 않나? 이를 위해 특별한 전략이 있는지. 일례로 국립무용단의 경우는 안무가 조세 몽탈보와 협업해 샤이오 국립극장에 ‘시간의 나이’를 올리기도 했다. 나 역시 프랑스와 일본에 커넥션이 있는 편이어서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코로나 때문에 진행할 수 없어서 아쉬움이 크다. 조세 몽탈보와 국립무용단의 협업은 한-불 수교 기념으로 이뤄졌다. 사실 홈그라운드에서 많은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하면 작품을 올릴 수 있는 방식이야 많다. 큰 잔치에 가서 박수받는 것보다는, 심플하면서도 콘셉트가 분명한 작품을 올리고 싶다. 병정 스무 명이 아니라 장군 다섯 명을 가지고도 승부 볼 수 있는 작품. 지난해에는 영상을 통해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다 보니 해외에서 여러 요청이 왔다. ‘비욘드 블랙’도 한-러 수교 기념해와 관련해 해외에서 작품을 올리기로 성사됐다.

국립현대무용단도 이제는 예술성이 높은 작업물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 아닐까 싶다. 현대무용의 ‘예술성’은 무엇으로 판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예술성은 안무가의 콘셉트에 달렸다. 현대무용의 주류는 피나 바우슈 혹은 머스 커닝햄 적인 것으로 나뉠 수 있다. 각각은 삶의 일상을 춤에 끌어들여 고찰했고, 무용의 움직임 자체를 강조했다. 자신의 철학에 대해 소신 있는 발언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은 임기 동안 국립현대무용단을 위해 이뤄내고 싶은 것은? 섬 같은 무용단이 아니라 항구 같은 단체가 되길. 국내 많은 무용가가 ‘국립현대무용단이 있어서 다행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이 나를 더욱 성장시킨다’는 느낌을 받도록 이끌고 싶다.

마지막 질문이다. 객석 창간일이 3월 2일이라, 매해 3월호는 ‘객석’ 창간기념호로 발간된다. 기억 속 ‘객석’은 어떤 책으로 남아 있는가? 경제가 꽃을 피우던 시기에 혜성처럼 등장한 멋진 잡지! 당시 다른 잡지는 각 장르만 다뤘는데, ‘객석’은 공연예술을 아울러서 인상 깊었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게 기적 같은 일이다. ‘객석’을 통해 우리나라 문화 전반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여전히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글 장혜선 기자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남 몰래 추는 춤 나도 몰래 추는 춤

남정호 | 늘봄출판사 | 2011 

남정호의 책을 읽다 보면 ‘무용이란 무엇이지?’하는 본질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유년시절 남 몰래 춤추던 자신을 반추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2부에서는 사과·아침 풍경·컴퓨터·요가 등 사물과 일상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춤의 모습을 펼쳐놓는다. 마지막 3부에서는 가족이 자신의 춤에 끼친 영향을 풀어놓으며 글을 맺는다.

아직도 깊은 불신

오늘날의 무용평론 현실에 대한 책임은 평론가뿐만 아니라 무용가에게도 있다. 좋은 작품으로 평론가를 유인하지 못한, 또한 이 책임은 그 평문을 활자화시키는 일을 맡고 있는 사람, 즉 편집자에게도 있다고 말하고 싶다.

편집자는 자기 회사가 주최로 하는 무용공연평을 긍정적으로 써줄 수 있는 평론가를 찾으면서 보이지 않게 평론가들을 통제하고 있다. 그래서 편집자의 말을 잘듣는 단골 평론가들의 글만이 지면을 통해 대중에게 읽히게 된다.

양식을 가진 관객은 사실과 맞지 않는 그 평에 놀라고 그러한 글을 쓴 평론가를 경멸하고, 또 그 글을 실은 편집자 또한 불신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당연하게 관객을 무용공연으로부터 더욱더 멀어지게 하는 주요 원인이 된다.

무용평론가를 포함한 모든 무용인들은 지금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개혁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지…. 이제는 도덕적 불감증이나 냉소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용가·평론가·편집자가 서로 얽혀 안주하면서 몸을 가누기 힘들었던 사슬을 풀고 자유롭게 각자 자기의 영역에서 진짜 전문인이 되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풍토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좋은 작품은 좋은 작품들 사이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그러므로 좋은 평 역시 좋은 작품을 만날 때 쓰여질 것이다. 무용가들은 좋은 작품 만드는 데 혼신을 다해 평론가들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자.글 남정호(‘객석’ 1993년 6월호에서 발췌)

 

국립현대무용단 2021 시즌 프로그램

빨래 3.19~21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안무 남정호

그 후 1년 6.4~6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안무 권령은·김보라·랄리 아구아데

스텝업 7.3~4/7.9~11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안무 이인수·임지애·황수현

Hip 合 8.20~22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안무 김보람·김설진·이경은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 10.22~24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안무 남정호

우리가족출입금지 11.19~21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안무 이민경·시모지마 레이사·퀵쉬분

겨울 나그네 12.3~5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안무 김원·안영준·차진엽

구두점의 나라에서 12.10~12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안무 정영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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