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IS NOW
테너 백석종
노래라는 기적
테너로의 뒤늦은 전향.
그럼에도 로열 오페라와 메트 오페라 등의 러브콜을 받기까지
클라이브 길린슨은 카네기홀 대표로 부임하던 2005년, 미국 내 오케스트라의 한 해 고용 수가 150명뿐이라는 통계를 소개했다. 이는 직업 음악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치열한 경쟁인지를 보여준다. 2022년 5월,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삼손과 델릴라’(생상스)의 삼손 역으로 데뷔하며 화제의 중심이 된 백석종. 이 화려한 성취 전엔 그 역시 직업 성악가의 길을 걷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 중 하나였다. 크고 작은 성공과 좌절을 반복하던 성악가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한 이야기다.
궁핍함에서 피워낸 성장의 꽃
맨해튼 음대 진학을 위해 백석종은 누나와 함께 월세 700달러 단칸방을 찾았다. 5천 달러로 시작된 장학금이 학기마다 조금씩 올라가긴 했지만, 2학년을 마치자 학교에 갚아야 할 학자금은 2만 달러로 늘어났다. 공부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던 중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머니 때문에 귀국했지만, 장례를 마치고 군악대에 입대했다. 현실 도피였다.
제대 후 맨해튼 음대에 복학하여 다시 2년을 버텼다. 졸업을 앞둔 4학년, 여전히 1만 달러의 학비가 남아 있었다. 대학원 진학을 하려면 쌓인 학자금을 청산해야 했다. 앞이 깜깜했지만, 학교에서 학자금을 탕감해 줬고, 대학원 학비도 전액 면제 혜택을 받게 되었다.
바리톤에서 테너로 전향하기까지
바리톤 중에도 고음이 잘 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가 그런 성악가에 속했다. 군 복무 중에도 늘 고음역의 노래를 불러 자신감도 있었다. 이런 경험이 쌓여갈수록 목소리 정체성에 대해 조금씩 의심하게 했다. 반면 지도교수는 단호하게 “너의 길은 바리톤이다”라고 늘 강조했다. 석사 재학 시절 마스터클래스에서 만난 토마스 햄슨 역시 “너는 고음을 쉽게 잘 낼 뿐이지 리릭 바리톤이다.”라고 못 박아 말했다. 이젠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었다. 맨해튼 음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후 캔자스시티 오페라와 샌프란시스코 오페라 영아티스트로 선발되어 바리톤으로서 경험을 쌓게 되었다. 모든 화살표는 바리톤으로 향하고 있었고,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이 ‘바리톤 백석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샌프란시스코로 극장을 옮겨야 할 즈음이었다. 백석종이 만난 사람은 테너 이용훈이었다. 소리를 들어본 그는 “테너를 해야 할 것 같은데…”라며 조심스레 제안했다. 이용훈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테너로의 전향이 쉽지 않은 길이며, 최소 2~3년 정도는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이용훈의 조언이 그를 흔들었다.
샌프란시스코 극장에서의 계약이 끝나자, 코로나가 터지며 세계는 팬데믹이라는 진공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자신을 향한 조언도, 도움도, 방해도 사라졌고, 오직 노래만 남았다. 세상이 멈춰 섰던 이 시간이 백석종에게는 신의 선물과 같았다. 그의 일상은 소리 연습과 작품 연구, 그리고 기도였다. 1년 반의 매일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그는 불안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에만 오롯이 집중했다.
세상이 다시 열리자 찾아온 기회
대면 활동이 재개된 이후, 그가 시도한 첫 도전은 2021년 LA에서 열린 로렌 자카리 오페라 콩쿠르였다. 50년 역사를 가진 큰 대회였다. 연달아 출전했던 이탈리아 빈체로 콩쿠르와 스페인 비냐스 콩쿠르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뒀다.
유럽에서의 두 대회를 통해 알게 된 캐스팅 디렉터의 소개로 런던 로열 오페라의 음악감독 안토니오 파파노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노래를 들은 파파노는 ‘삼손과 델릴라’의 삼손 커버 배역을 제안했다. 얼마 후 삼손을 노래하기로 되어있던 성악가가 다리를 다쳤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기회는 그에게 찾아왔다. 상대역 델릴라는 최고의 메조소프라노로 평가받는 엘리나 가랑차(1976~)였다. 같은 기간에 이탈리아 남부 팔레르모 극장에서 토스카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삼손과 델릴라’는 삼손의 역할이 70% 이상 차지하는 삼손 중심의 작품이다. 프랑스 작품이라 언어적인 부담도 컸다. 그가 지금까지 섰던 오페라는 모두 바리톤으로서였다. 그러나 지금부터 서게 될 무대는 테너, 즉 처음 해보는 배역이라는 의미이다. 공연은 대성공이었고, 30여 개의 리뷰 기사가 쏟아졌다. ‘가디언’은 그를 가리켜 새로운 스타가 탄생했다고 평했다.
“보통 대체 가수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는 비슷한 급을 섭외하는데, 저는 테너로서의 경험도 없는 신인이나 마찬가지였거든요. 지명도 없는 가수였던 제게 어떻게 기회가 왔는지 저도 궁금해요. 제가 하게 되었던 ‘삼손과 델릴라’가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올리는 공연이었어요. 평소라면 2~3주 정도 리허설 시간이 있었을 텐데, 5주간 리허설이 진행되어서 충분히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총 8회 공연 중 마지막 3회를 남겨둔 시점에 극장의 호출을 받았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출연 예정이었던 요나스 카우프만이 코로나 양성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었고, 백석종에게 대신 역할을 맡아 줄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삼손에 이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역시 그에게는 새로운 작품이었다. 첫 리허설까지 남은 시간은 단 1주일. ‘삼손과 델릴라’ 연습은 진행되고 있었지만, 하루에 4시간씩 코칭을 받으며 작품을 익혔다. 첫 리허설에는 극도의 긴장감으로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었지만, 3일을 그렇게 고생하니 동선도 지켜가며 편하게 노래가 나왔다.
“연이어 관객과 극장의 호평을 받은 것도 기뻤지만, 이 작품이 저와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마친 후, 감사하게도 극장에서 예정에도 없던 ‘아이다’의 라다메스 역을 제안해왔어요. 원래 그 역을 맡은 성악가가 있었는데, 일부러 스케줄을 조정해 주어서 5회 공연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기회는 또 다른 기회로
런던에서 ‘삼손과 델릴라’를 공연하기 직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오디션 초청을 받았다. 노래는 잘했지만, 이후 극장으로부터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그런데 메트 오페라 캐스팅 디렉터가 런던으로 날아와 그가 노래한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아이다’를 직접 보고 뉴욕으로 돌아갔다. 이후 메트 오페라와 전격 계약이 성사되었다. 굳건히 닫혀있던 뉴욕의 문이 열린 셈이다.
메트 오페라에서는 올가을과 겨울에 걸쳐 ‘나부코’를 무대에 올린다. 내년 봄에는 ‘투란도트’에 출연한다. 12월에는 이탈리아 나폴리의 산 카를로 극장에서 ‘투란도트’를, 내년 2월에는 파파노/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베르디 ‘레퀴엠’을 연주한다. 4월과 7월에는 다시 런던으로 돌아와 로열 오페라에서 ‘나비부인’에 출연한다. 지금은 공개하기 어렵지만, 그의 공연 일정은 이미 2027년까지 확정되었다.
“첫 유학으로 토론토에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뉴욕으로 와서 음악을 공부했죠. 졸업 후 극장 생활과 코로나 시기를 보냈던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시간에 이르기까지, 긴 배움의 시기 동안 한순간도 힘들지 않았던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인지 이 시기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노래 연습에만 매달리는 막내아들 대하듯 챙겨주시던 부모님 같은 많은 분의 응원과 도움이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긴 호흡으로 걷는다
그는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에서 공연을 가진 적이 있다. 신호탄과 같았던 두 번의 유럽 콩쿠르 바로 직전이었다. 극장이 위치한 곳은 호흡을 잘 고르지 않으면 몇 걸음만 걸어도 숨이 가빠질 수 있는 고지대였다. 산소 부족증세로 극장 입구에서 쓰러진 동료 성악가는 공연 직전까지 주최 측이 준비한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숨을 고른 후 겨우 공연했을 정도였다. 해발 3,700미터의 극장에서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불렀다. 파바로티의 노래를 듣고 성악가의 길을 결심하게 했던 바로 그 곡이었다. 바리톤으로서 그때는 부를 수 없던 곡이었지만, 이젠 가장 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되었다.
누구든 원하는 곳에 닿기 위해 노력을 쏟는다. 모두가 그 열매를 거두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은 냉혹하다. 그래서일까, 그는 ‘마침내 성공한 것’이라고 섣불리 말하지 않았다.
“저는 노래를 오래 하고 싶어요. 성과와 업적을 단기간에 이루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결국은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주변 친구 중에 다양한 이유로 음악 여정을 멈추는 경우를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책임감도 더 느끼고요. 답을 찾으려고 음악을 하면 한없이 어려워지는데,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즐거워지는 것이 음악이기도 한 것 같아요.”
글 김동민(뉴욕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사진 로열 오페라 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