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SSAY
영화로 만나는 세상과 사람
부자 지휘자 사이의 갈등 그린 ‘마에스트로’
마음의 소리, 소리의 마음
감독 브뤼노 시슈
출연 이반 아탈, 피에르 아르디티, 미우 미우,
카롤린 앙글라드, 파스칼 아르비요, 닐스 오테닌
“정말 그걸 말로 해야 알아?”라고 되묻지만, 정말 어떤 진심은 말이든 행동이든 또렷하게 보여줘야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반대로 어떤 마음은 드러낼수록 그 의미가 퇴색되기도 한다. 굳이 말로 해서 마음이 상하는 일도 있다. 그래서 마음을 나누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애를 많이 써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를 가장 잘 안다고 믿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엔 소홀한 것 같다. 이미 다 알고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의 우상, 아버지
차세대 거장으로 인정받는 지휘자 드니 뒤마르(이반 아탈)와 이미 거장인 프랑수아 뒤마르(피에르 아르디티)는 부자 관계다. 프랑수아는 모두의 존경을 받는 지휘자이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정상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과 함께, 자신의 위치로 재빠르게 솟아오르는 아들에게 묘한 경쟁심을 느낀다.
브뤼노 시슈(1966~) 감독의 영화 ‘마에스트로’는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빅투아르상을 수상하는 드니 뒤마르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드니는 수상 소감을 통해 가족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만, 아버지의 자리는 비어있다. 그는 아버지가 참석했다면 이 자리가 더 빛났을 거라고 말하지만, 아버지의 공백은 영화의 다음 이야기를 암시한다.
같은 직업을 가진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은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기보다는 줄곧 어색하고 불편해 보인다. 두 사람의 모습은 어색하게 마음이 멀어진 여느 부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들은 서로에게 묘한 긴장감을 느끼지만, 날을 세우며 생채기를 내는 사이는 아니다. 균열이 생긴 마음과 멀어진 몸의 거리가 미묘하고 복잡하다.
부자의 갈등은 프랑수아가 받은 한 통의 전화 때문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가 평생 꿈꿔오던 라 스칼라 극장의 지휘자 자리를 제안하는 전화였다. 스스로 노쇠해졌다고 생각하며 늘어져 있던 그는 들뜬 마음으로 삶의 활력을 찾아가지만, 사실 라 스칼라 극장에 섭외된 것은 아들 드니였다. 담당자의 실수로 전화가 잘못 전해진 것이었다.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기뻐하고 자랑해야 할 일이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드니는 마냥 기뻐할 수가 없다.
드니에게 아버지는 평생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이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고, 애써 노력했는지 전부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버지는 극복할 수 없는 그의 열등감이기도 했다. 드디어 아버지를 뛰어넘을 기회를 잡았지만, 아버지가 평생 바라던 꿈을 빼앗아 버린 것 같은 죄의식과 연민 앞에서 드니는 갈등한다.
영화 ‘마에스트로’는 2011년 제64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이스라엘 영화 ‘꼬장꼬장 슈콜닉 교수의 남모를 비밀’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원작의 설정을 교수에서 지휘자로 바꿔 가족음악영화가 되었다. 원작이 신랄하고 풍자적인 내용을 담았다면, ‘마에스트로’는 음악과 함께 조금 더 순한 마음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그의 라이벌, 아들
영화 ‘마에스트로’는 부자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직접 서술하지 않는다. 마치 오케스트라 음악처럼 주변 인물이 구성하고, 만들어 내는 이야기를 조화롭게 어루만지며 부자의 이야기를 화음처럼 쌓아간다. 브뤼노 시슈 감독은 프랑수아의 아내이자 드니의 엄마, 드니의 아들, 드니의 전 부인과 현 애인 등 주변 인물들을 통해 부자의 캐릭터를 쌓아가며 두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게 만든다.
우회적으로 부자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영화의 구성 덕분에 자칫 신파에 빠지기 쉬운 가족의 이야기가 제법 담백하게 보인다. 더불어 드니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이유이자 프랑수아의 고집스러운 외길 인생 곁에서 늘 응원하고 지지하며 함께한 가족들의 모습까지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가족의 이야기로 그 층위를 다양하게 넓히며 부자의 갈등이 단지 두 사람의 소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의 마음을 이해하고, 결정을 함께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꽤 설득력이 있다. 영화는 첨예하게 갈등하고,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는 가족이 아닌, 조화롭게 서로를 아끼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며 흡사 오케스트라의 각 파트처럼 화음을 위해서는 조화와 조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갈등의 깊이가 조금 약하고, 부자간의 갈등이 너무 쉽게 희석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뻔하지 않다.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앞서 이룬 아들에 대한 복잡한 마음을 재촉하지 않는 잔잔한 연출 덕분이다. 지휘자가 주인공인 영화답게 친숙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며 드니와 프랑수아 그리고 가족들의 마음을 엮고 풀고 이어간다. 미처 하지 못한 말과 읽지 못한 마음 사이를 음악이 채워준다.
최근 지휘자가 주인공이었던 영화에서 음악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마에스트로’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귀를 충분히 만족시킬 곡으로 가득하다. 영화의 이야기처럼 익숙하고 친숙해서 편해지는 음악이다. 브람스·모차르트·베토벤·슈베르트·라흐마니노프의 명곡을 거쳐, 라 스칼라 극장에서 흐르는 엔딩 곡은 마음이 울컥할 만큼 아름답다.
열등감과 미움은 조화 속 불협화음을 만든다. ‘이해’라는 마음의 지휘자가 뾰족해진 마음의 음표를 다듬어 주면 복잡한 갈등도 조화로워진다. 영화는 ‘너는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진심과 삶 자체를 오롯이 긍정하고 존중하는 아들의 마음, 어긋한 시간을 재촉하거나 거스르는 대신 서로를 존중하고 마음을 인정하는 시간, 그 진심을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을 보여준다.
| | | 마에스트로 Vendome Records | 플로렌시아 디 콘실리오
플로렌시아 디 콘실리오(1979~)가 작곡한 오리지널 사운드트랙과 함께 니콜라스 기로가 지휘하는 멜팅 팝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리니스트 안 그라부앵(1965~)이 연주한 클래식 음악들이 담겨있다. 침묵과 침묵 사이, 마음과 마음 사이의 빈 곳을 채워줬던 영화 속 음악은 발매된 음원을 통해 다시 들을 수 있다.
| | | 트랙 리스트
01 Beethoven Symphony No.9 Op.125 – II. Scherzo
02 Nouvelle 03 Tu es belle 04 Brahms Intermezzo Op.76 No.7
05 Quid pro quo 06 Père et fils 07 Vérités
08 Rachmaninoff 14 Romances Op.34-14 Vocalise 09 Le pont
10 Mozart ‘Laudate Dominum’ 11 Souvenir 12 Schubert Serenade D957
13 Orson 14 La scène 15 Mozart ‘Le nozze di Figaro’ Overture
글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등단하였다.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영화에세이집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