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STIVAL
롯데콘서트홀 ‘BBC 프롬스 코리아’
런던과 서울 사이에 축제가 놓이다
영국 클래식 음악을 견인하는 축제. 총감독(피카드), 작곡가(신동훈)에게 듣는 그 힘의 비결
데이비드 피카드(1960~) 2015년부터 BBC 프롬스의 총감독으로 재직했다. 1993년부터 2001년까지 계몽주의 시대 오케스트라의 최고경영자로 활동했으며, 2001년부터 2015년까지 글라인드본 페스티벌의 총감독을 역임했다.
신동훈(1983~)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 영국 킹스 칼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조지 벤저민, 페테르 외트뵈시, 진은숙 등을 사사했다. 아시아 최초로 베를린 필하모닉의 클라우디오 아바도 작곡상을 받았으며, 베를린필, LA필, 런던 심포니,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등의 위촉을 받아 협업하고 있다.
클래식 음악 애호가가 여름에 유럽 여행을 예약하면 주변인은 곧바로 질문한다. ‘어떤 축제를 보러 가느냐?’라고. 이때의 답변으로는 축제의 명칭을 댈 필요 없이, 도시 이름으로도 충분하다. 만약 당신이 ‘런던’이라고 답한다면, 질문자는 당신이 BBC 프롬스(이하 프롬스)에 간다는 것을 바로 눈치챌 것이다. 프롬스는 말 그대로 런던 클래식 음악 축제의 대명사이다.
12월 초, 이 축제의 일부분을 서울에서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마련됐다. 롯데문화재단(대표 김형태)과 프롬스가 협업하여 한국에서 최초로 ‘BBC 프롬스 코리아’를 선보이는 것. 프롬스는 2002년부터 다른 국가와의 협업을 통해 프롬스의 일부를 해외에서 개최해 왔으며, 2022년 도쿄에 이어 올해 서울 상륙을 예고한 바 있다.
프롬스의 총감독 데이비드 피카드는 해외에서 개최하는 프롬스의 주안점에 관해 “프롬스 고유의 요소와 현지의 시각을 결합하는 것”이라 설명했으며, 이를 위해 작곡가 신동훈의 첼로 협주곡 ‘밤의 귀의(Nachtergebung)’를 아시아 초연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BBC 프롬스 코리아를 깊게 살펴보기 위해 총감독인 피카드와 작곡가 신동훈과 서면 인터뷰를 나누었다.
데이비드 피카드, 창립의 정신을 잇다
축제의 라인업이 눈에 띈다. BBC 스코티시 오케스트라와 KBS교향악단이 함께하며, 국내외의 아티스트를 고루 선정하였다.
피카드 롯데콘서트홀과의 협업으로 이뤄낸 결과이다. 첼리스트 한재민의 경우, 올해 롯데콘서트홀의 상주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기에, BBC 스코티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비롯하여 실내악 공연에도 함께하게 되었다. 또한 프롬스에서 매우 중요한 폐막공연 ‘라스트 나이트(Last Night)’에 바리톤 김태한과 우리 시대의 귀중한 바이올리니스트인 힐러리 한이 함께 오르도록 조정했다.
‘라스트 나이트’는 프롬스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가?
피카드 프롬스는 1895년, 창립자 헨리 우드가 시작한 정신을 따르고 있다. 축제의 분위기를 대변하는 공연이 프롬스의 ‘라스트 나이트’이며, 이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이 축제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동시에 가장 어렵다. 영국에서 프롬스는 국가적 행사이기에, 현장의 관객은 물론 라디오·TV·아티스트까지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마무리를 준비해야 한다.
그 외에도 창립 정신을 따르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피카드 현대음악을 반드시 포함하는 것. 20세기 초반부터 프롬스는 시벨리우스, R. 슈트라우스, 라흐마니노프, 쇤베르크, 말러 등의 동시대 작곡가의 작품을 연주했다. 이번 BBC 프롬스 코리아에서는 작곡가 신동훈의 ‘밤의 귀의’를 아시아 초연한다. 이 작품은 올해 영국에서 런던 심포니의 연주로도 연주된 바 있으며, 신동훈 작곡가는 영국이 사랑하는 현대 작곡가이다. 프롬스에서 그의 작품을 연주할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이루게 되어 뜻깊게 여기고 있다.
최근 프롬스는 여성 지휘자와 작곡가를 활발하게 소개하고 있다. 2024년 프롬스 공연의 3분의 2를 여성 연주자나 지휘자에게 할애했으며, 전체 73회의 공연 중 3분의 1의 공연이 최소 한 작품 이상의 여성 작곡가의 곡을 포함하도록 했다. 혹자는 ‘성별 할당제’가 오히려 다양성을 무너뜨리지 않느냐고 주장하는데?
피카드 우리 사회의 구성을 우리의 공연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은 프롬스에서 자신들의 다양성을 보고자 한다.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노력해야 하며, 때로는 목표를 명확히 설정해야만 이를 달성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프롬스를 처음 접하는 한국 관객에게 인사를 전해달라.
피카드 영국 어린이들에게 프롬스는 클래식 음악을 처음 접하는 자리이다. 나 역시 프롬스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만났다. 한국 관객에게도 이번 BBC 프롬스 코리아가 귀중한 경험이 되기를 바란다.
작곡가 신동훈, 이해보단 감상
베를린필의 위촉으로 2022년 초연됐던 첼로 협주곡 ‘밤의 귀의’를 드디어 한국에서 선보이게 됐다.
신동훈 BBC 프롬스 코리아 첫 개최에 이를 선보일 수 있어 더욱 기쁘게 생각한다. 특히 첼리스트 한재민의 협연을 기대 중이다.
‘밤의 귀의’는 게오르크 트라클(1887~1914)의 시에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총 5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곡 전체의 내러티브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신동훈 각 악장은 트라클의 시 ‘쇠락’ ‘트럼펫’ ‘겨울의 황혼’ ‘밤’ ‘밤의 귀의’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암울하고 광기에 찬 시대상과, 그로 인한 절망과 패배를 시에 담았다. 나는 이를 첼로로 표현하고자 했으며, 오케스트라라는 세상을 향해 첼로가 투쟁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4악장에서 첼로는 결국 ‘밤’에 미쳐버리며, 마지막 악장에서 이에 굴복하여 ‘귀의’하고 만다.
이 작품을 “처음으로, 순도 높게 완성된 개인적인 음악”이라고 평했다. 본인에게 ‘밤의 귀의’는 어떤 의미인가?
신동훈 언제나 조성을 현대적으로 활용하여 낭만주의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을 쓰고자 했다. 이 곡은 그 방향으로 한 발짝 더 내딛게 해준 작품이며, 이 작품의 경험 덕에 2025년 1월 베를린필 초연으로 새로운 비올라 협주곡을 선보이게 됐다.
현대 작품을 어렵다고 여기는 청중에게 조언을 나눈다면?
신동훈 ‘이해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내려놓아야 한다. 애초에 완전한 이해는 불가한 일이다. 또한 많은 이들이 조성음악으로 쓰인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고 이를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이해가 허상은 아닌지 묻고 싶다. 최근 런던에서 차이콥스키 협주곡 1번을 감상했는데, 나는 언제나 이 작품의 구조적 난해성 때문에 이해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기쁘게 즐겼다. 음악 감상에는 이해를 넘어선 사랑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에서 온 팔방미인, 위걸즈워스
총감독인 데이비드 피카드와 작곡가 신동훈 외에도 축제의 주역인 BBC 스코티시 심포니와 2022년부터 이 악단을 이끌어 온 상임지휘자 라이언 위걸즈워스(1979~)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피카드는 그를 “지휘자·피아니스트·작곡가로서 모두 능력이 있는 팔방미인”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말마따나 위걸즈워스의 이력에서는 오르간 연구, 음악극 연구,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와 같은 학자의 면모와 함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작곡가까지 음악의 전방위적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영국 내셔널 오페라(ENO)의 상주작곡가로 활동하며 오페라 ‘겨울 이야기(The Winter’s Tale)’를 발표했고,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을 오스트리아 그라페네크 페스티벌에서 직접 협연하기도 했다.
BBC 스코티시 오케스트라는 그가 상임지휘를 맡은 첫 악단이다. 자국의 공연 리뷰에서는 그의 현대작품을 해석하는 능력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 지난 7월의 프롬스 공연에서 그는 첼리스트 라우라 반 데르 헤이든(1997~)과 세릴 프랜시스 호드(1980~)의 첼로 협주곡 ‘대지, 대양, 대기’, 그리고 엘가 교향곡 2번을 선보였는데, “놀라울 정도의 균형과 풍부한 상상력의 사려 깊고 시적인 결론”이라는 현지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이번 BBC 프롬스 코리아에서는 개막공연과 폐막공연에서 그의 지휘를, 한재민과 함께하는 실내악 공연에서 피아노 연주를 만날 수 있다. 특히 개막공연은 진은숙의 ‘수비토 콘 포르차’, 신동훈의 첼로 협주곡 ‘밤의 귀의’처럼 현대곡이 포진해 있어, 그의 능력을 알고 싶다면 가장 주목해야 할 무대이다. 지구 정반대에서 날아온 ‘BBC 프롬스’가 들려줄 ‘코리아’ 작곡가의 음악을 만나볼 시간이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롯데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