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세계 오페라 무대의 슈퍼스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5년 3월 1일 9:00 오전

COVER STORY

 

세계 오페라 무대의 슈퍼스타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봄날, 독일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의 향연

 

 

그는 끊임없이 자신을 단련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찾았고, 해석을 정교하게 다듬은 뒤 관객에게 완벽한 ‘마법의 순간’을 선사해 왔다. 그러니 그에게 쏟아지는 끝없는 환호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요나스 카우프만이 선사할 ‘마법의 순간’이 다시 펼쳐진다. 각각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로 구성된 두 무대로 10년 만에 한국을 찾는 그의 무대는 또 한 번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류태형·유정우 진행 김강민 기자

 


 

INTERVIEW

 

지난 30년간 클래식 음악 공연 중 관객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던 공연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2015년 6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요나스 카우프만의 첫 내한 공연을 꼽고 싶다. 당시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의 대유행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공연장 방문을 주저하던 때였다. 그럼에도 수많은 청중이 불안과 우려를 뒤로하고 예술의전당 객석에 앉았다.

어둡고 고급스러운 포마이카 빛이 감도는 음성과 수려한 외모, 그리고 눈빛만으로도 많은 것을 전달하는 풍부한 감정선. 요헨 리더가 지휘봉을 잡고 유라시안 필하모닉이 연주한 이날 공연에서 카우프만은 2시간여의 공연을 마치고도 다섯 곡의 앙코르를 30분간 더 들려주었다. 실로 엄청난 환호가 쏟아졌고, 객석을 울리는 함성의 데시벨은 그 여느 때와 달랐다. 그 자신이 베르테르 배역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고, 아리아 ‘봄바람이여, 어째서 나를 깨우는가’(마스네 ‘베르테르’)가 끝나는 순간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존재만으로도 환호를 불러일으키는 몇 안 되는 성악가였다.

요나스 카우프만이 다시 한국을 찾는다. 2015년 첫 내한 공연 이후 10년 만이다. 원래 2022년 공연이 예정됐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아시아 투어가 취소되면서 많은 팬이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팬들에게 “취소가 아닌 연기”라고 밝히며 곧 다시 올 것임을 공언했던 그의 뜻이 3년 만에 이뤄졌다.

이번 내한에서는 카우프만의 음악 세계를 형성한 가곡과 오페라를 나란히 감상할 수 있는 두 개의 공연이 마련됐다. 3월 4일에는 피아니스트 헬무트 도이치와 무대에 올라 독일 가곡을, 3월 7일에는 요헨 리더가 지휘하는 수원시립교향악단과 함께 그의 대표적인 오페라 명곡들을 들려줄 예정이다. 내한을 앞둔 요나스 카우프만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약 10년 만에 한국에서 성사된 공연이기에, 한국 팬들이 이번 공연을 정말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15년 첫 내한 공연에서 30회가 넘는 커튼콜과 5번의 앙코르가 이어졌죠. 한국을 다시 찾는 소감이 궁금합니다.

그때 한국 관객들이 보여주었던 열정은 매우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번 공연도 정말 기대됩니다.

“가곡은 내면의 성찰과 영혼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명상과도 같은 존재”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독일 가곡이 예술 세계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독일 가곡 레퍼토리는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리스트, R. 슈트라우스와 같은 위대한 작곡가와 괴테, 하이네, 아이헨도르프 같은 중요한 시인의 작품이 이상적으로 결합해 있습니다. 그렇기에 음악계에서 정말 특별한 지위를 갖고 있죠.

 

리트의 정수를 찾아서

3월 4일의 가곡 리사이틀에서 그는 슈만·리스트·브람스·R. 슈트라우스의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인다. 슈만의 ‘헌정(Widmung)’과 R. 슈트라우스의 ‘헌정(Zueignung)’을 비롯해, 리스트의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브람스의 ‘8개의 가곡과 로망스’ 중 ‘동경’ 등을 들려줄 예정이다. 슈만과 브람스로 대표되는 독일 낭만주의부터 이를 확장한 리스트의 가곡, 그리고 후기 낭만주의를 마무리하는 R. 슈트라우스에 이르기까지, 독일 낭만주의 리트의 계보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이다.

무엇보다 그의 오랜 파트너인 헬무트 도이치가 피아노를 맡아 기대를 모은다. 두 사람은 낭만 시대의 작품을 담은 음반 ‘축복의 시간’(2020), 리스트 가곡집 ‘기쁨과 슬픔’(2021) 등 여러 작업을 함께해왔다. 특히 헬무트 도이치는 가사의 섬세한 뉘앙스를 잘 살리는 피아니스트로 정평이 나 있어, 세계적인 성악가와 솔리스트들이 함께 연주하기를 손꼽는 1순위 피아니스트로도 잘 알려져 있다.

 

요나스 카우프만과 피아니스트 헬무트 도이치 ©Lena Wunderlich/Sony Classical

독일어가 모국어인 만큼, 독일 가곡의 가사를 그 누구보다 생생하게 이해하고 표현할 것 같습니다.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음악 활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요?

물론 저는 독일어 문화권에서 성장했으니, 그렇지 않은 성악가들보다 시의 색채와 뉘앙스를 이해하고 노래로 풀어내는 것이 훨씬 수월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일 출신의 가수가 그 노래와 시에 자동으로 더 강한 정서적 유대감을 갖게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독일 가곡을 사랑하고 훌륭하게 해석한 유명한 비독일어권 가수들도 많아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경험을 했고, 누가 그 문을 열어주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헬무트 도이치가 가곡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는 뮌헨 국립음대에서 저의 가곡 스승이었는데, 오랜 시간 함께하며 스승과 제자에서 멋진 파트너로 발전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작업한 지도 벌써 30년이 넘었네요.

리사이틀 공연이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요?

오페라에서 한 인물로 변신해 무대를 꾸미는 것을 매우 좋아하지만, 가곡 리사이틀이야말로 노래의 정수라고 생각합니다. 피아니스트와 함께 전체 공연을 책임지니까요. 프로그램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도 온전히 우리에게 있고, 결과에 대해 다른 사람을 탓할 수도 없으니 공연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빈 슈타츠오퍼 ‘오텔로’(2023) ©Michael Poehn

오페라 같은 다른 성악 장르와 비교할 때 가곡만이 지닌 특별함이 있다면요?

가곡 리사이틀은 오페라보다 도전적인 요소가 더 많습니다. 3~4분마다 새로운 상황과 감정을 전달해야 하고, 다른 인물이 되어야 하죠. 가곡은 다른 어떤 성악 분야보다도 훨씬 더 세밀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더 많은 색채와 뉘앙스, 미묘하게 차별화된 다이내믹, 음악과 언어를 다루는 정교한 해석을 해내야 하거든요. 그리고 이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어우러질 때, 청중에게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리스트의 가곡 중에서는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가 특히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곡은 ‘사랑의 꿈’의 세 번째 곡으로도 유명하죠. 리스트의 곡을 즐겨 부르는 이유가 있나요?

리스트는 오랫동안 가곡 작곡가로서 과소평가 되었습니다. 헬무트 도이치는 리스트의 가곡을 무척 사랑했고, 저도 학생 시절 아주 일찍부터 그 영향을 받았어요. 우리가 가장 먼저 반복해서 연습했던 곡이 바로 ‘페트라르카의 3개의 소네트’였고 이후 리스트의 가곡 레퍼토리를 넓혀갔습니다. 수년간 ‘리스트 음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팬데믹 기간에 이를 실현할 수 있었죠.

R. 슈트라우스의 가곡은 마치 오페라 아리아 같다는 인상을 줍니다. 특히 어두운 색채의 목소리와 잘 어울리고요. 그의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점은 무엇인가요?

가장 놀라운 점은 R. 슈트라우스처럼 전형적인 부르주아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 ‘살로메’와 ‘엘렉트라’와 같은 강렬한 전위적인 음악을 작곡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다가도 ‘장미의 기사’의 왈츠곡이나, ‘낙소스섬의 아리아드네’처럼 세련되고 우아한 실내악적인 작품으로 전환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웅장한 교향곡 사운드와 극적인 오페라뿐만 아니라 섬세하고 감미로운 가곡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의 가곡은 마치 작은 오페라와 같아서, 가장 섬세한 뉘앙스부터 강렬하고 드라마틱한 표현까지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아리아로 전하는 강렬한 감정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운명의 힘’(2014) ©W.Hoesl

지난 시즌 요나스 카우프만은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에서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세계에서 가장 바쁜 성악가’로서의 행보를 이어갔다.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에서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스’와 푸치니의 ‘서부의 아가씨’에 출연하고, 빈 슈타츠오퍼에서는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와 베르디의 ‘아이다’ 무대에 올랐다. 밀라노 스칼라 극장과 나폴리 산 카를로 극장에서 바그너의 ‘발퀴레’를, 취리히 오페라 극장에서는 푸치니의 ‘토스카’,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는 마스네의 ‘베르테르’ 등으로 관객을 만났다. 이뿐 아니라 그의 오랜 염원이었던 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벌에서 탄호이저 역으로 데뷔했으며,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 100주년 기념 공연에 초청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3월 4일 독일 가곡 리사이틀 후 7일에는 오페라의 대표 아리아를 통해 극적인 감동을 선사하는 ‘오페라 콘서트’(지휘 요헨 리더) 무대를 준비했다. 푸치니의 ‘토스카’ 중 ‘오묘한 조화’, ‘투란도트’ 중 ‘공주는 잠 못 이루고’, 비제의 ‘카르멘’ 중 ‘그대가 던진 이 꽃’ 등의 익숙한 아리아를 연주하며, 3년 전 내한 공연이 취소되어 오랜 시간 그를 기다려온 팬들에게 더욱 진한 여운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오페라와 리사이틀은 무대에 오를 때 각기 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가곡과 비교해, 오페라에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오페라에서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내려면 훨씬 더 많은 요소가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오페라는 주역 성악가뿐만 아니라 무대 세트, 조명, 연출, 오케스트라, 지휘자, 동료 가수, 합창단까지, 수많은 요소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에요.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그런 특별한 순간은 실제로 종종 우리를 찾아오고,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입니다.

오페라만이 지닌 특별함이 있다면요?

오페라는 현존하는 예술 장르 중 가장 복합적인 형식입니다. 한 번의 공연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협업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죠. 그리고 오페라가 최고의 경지에 이르면,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힘을 갖습니다. 오페라는 가장 강렬히 응축된 형태의 감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적은 사람이라도, 오페라 아리아 선율을 듣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을 거예요. ‘투란도트’의 ‘아무도 잠들지 말라’가 여전히 강렬한 감동을 주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이처럼 오페라 가수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손에 쥐고 있습니다. 음악과 감정을 통해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어요. 이러한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이 오페라라는 예술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켜나가야 합니다.

모차르트부터 바그너까지 광범위한 오페라 레퍼토리를 소화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새로운 배역과 장르에 도전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이 모든 음악 장르는 감정을 전달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결국 저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음악에 대한 열정과 노래하고 공연하는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죠. 공연을 앞두고 있을 때면 마치 출발선 앞에 선 경주마처럼 빨리 무대에 오르고 싶어집니다. 제가 다양한 레퍼토리를 탐구하는 이유는, 다양한 레퍼토리가 유연성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성악적인 측면뿐만이 아니라 딕션과 음악적인 스타일 면에서도 그렇습니다. 단 5~6개의 배역만 가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공연하는 것은 저로서는 너무 지루한 일일 거예요. 그래서 가장 감미로운 자장가부터 ‘오텔로’의 광기 어린 절규까지, 목소리를 여러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성이야말로 장기적으로 제가 활동하고 경력을 쌓는 중요한 요소라고 확신합니다.

대중음악과 영화 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겠네요. 2023년에는 영화 음악을 담은 음반 ‘더 사운드 오브 무비’를 발매했죠.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저는 열렬한 영화 팬이자 성악가로서,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영화 음악에 자연스럽게 끌리게 되었습니다. 아주 초창기에는, 영화의 성공이 성악가들의 활약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베를린에서는 테너 리하르트 타우버(1891~1948)와 요제프 슈미트(1904~1942), 얀 키에푸라(1902~1966)가, 할리우드에서는 소프라노 재닛 맥도널드(1903~1965)와 바리톤 넬슨 에디(1901~1967) 듀오가 그러한 역할을 했죠. 테너 마리오 란자(1921~1959)가 ‘위대한 카루소’(1951)라는 영화로 새로운 세대에게 오페라의 문을 열어주었고, 이후 엔니오 모리코네(1928~2020)와 한스 치머(1957~) 같은 작곡가들이 또 다른 차원의 영화 음악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보물 같은 음악을 탐색하며 가장 아름다운 곡을 선정하는 과정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80년이 넘는 영화 음악 역사에서 나온 멋진 곡들로 음반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찬란함 뒤에 쌓아온 노력의 시간

오늘날 그의 무대를 보면 마치 처음부터 스타였던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삶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안정적인 직업을 선택하길 바랐던 부모님의 뜻에 따라 수학을 전공했으나, 음악을 향한 열정으로 뒤늦게 뮌헨 음악대학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그러나 그 선택이 곧바로 빛을 발한 것은 아니었다. 졸업 후 독일 자르브뤼켄 주립극장의 전속 가수로 2년간 일했으나, 길어진 단역 생활에 운전기사로 일하며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줄곧 발성에 어려움을 겪던 중 성악 트레이너 마이클 로즈를 만난 것은 그의 음악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됐다. 그와 함께 오랜 시간 훈련을 이어가며 비로소 그는 자신만의 음색, 오늘날 우리가 사랑하는 그의 짙고 어두운 목소리를 찾게 된 것이었다. 이후 1999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데뷔로 자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2001년 취리히 오페라 ‘피델리오’로 평단의 인정을 받았다. 2006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 역으로 데뷔하여 유망주로 단숨에 떠올랐고, 2010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로엔그린’의 연출을 맡은 한스 노이엔펠스가 주역으로 그를 지목하면서, 그는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성악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같은 해, 요나스 카우프만은 독일·프랑스·이탈리아에서 비평가들이 선정한 ‘올해의 성악가’에 이름을 올리며 그 명성을 확고히 했다.

그 후의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아는 그대로다. 세계 무대를 누비며 시대를 대표하는 테너로 자리한, 요나스 카우프만의 이야기다.

 

30년 넘게 ‘최고의 테너’로 불리며 활동해 왔습니다. 오랜 시간 성공적으로 경력을 쌓아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원칙이나 요소는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입니다. 이는 단순히 성대나 신체적 건강관리뿐 아니라, 어떤 일에 참여해야 할지, 무엇을 피해야 할지, 어떤 일을 기다려야 할지, 어떤 유혹을 견뎌야 할지 등을 판단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특히, 지나치게 이른 시기에 매력적인 역할을 제안 받을 때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유혹을 뿌리치고 “아직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가수가 자기 자신에게 가장 가혹한 비평가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술가로서의 철학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는 셰익스피어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항상 자신에게 충실하라.”

류태형(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소니 클래시컬

 

요나스 카우프만(1969~) 1994년 자르브뤼켄 주립 오페라 극장에서 전속 가수로 활동을 시작했다. 폭넓은 음역과 방대한 레퍼토리로 70여 편 이상의 오페라에서 주역을 맡고,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음반을 발매하며 그라모폰·디아파종을 비롯해 여러 매체의 상을 받았다. 2024년에는 프랑스 최고 권위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PERFORMANCE INFORMATION

요나스 카우프만 가곡 리사이틀 (피아노 헬무트 도이치)

3월 4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슈만 ‘방랑의 노래’, 리스트 ‘성스럽게 흐르는 라인강에’, 브람스 ‘동경’ 외

요나스 카우프만 오페라 콘서트 (요헨 리더/수원시향)

3월 7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토스카’ 중 ‘오묘한 조화’, ‘아이다’ 중 ‘내가 그 용사였다면! 정결한 아이다’ 외

 

 

GAEKSUK DB

2015년 6월 내한 공연 리뷰 중에서 (2015년 7월호 ‘객석’ 발췌)

1부 프로그램은 이탈리아 오페라 아리아만으로 꾸며졌다. ‘토스카’ 중 ‘오묘한 조화’로 묵직하면서도 열정이 넘치는 음성을 선보인 뒤 ‘라 조콘다’ 중 ‘하늘과 바다’로 카우프만의 독특한 해석을 드러냈다. 첫 음부터 음량을 반 이하로 줄여 불안한 열정과 희망을 표현한 것은 거의 접하지 못한 방식이었다. 약음으로 노래 전체를 끌고 가다 마지막에 크레셴도로 폭발시켰다. 묵직한 음색에 비해 성량이 큰 편은 못 된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그러나 카우프만은 약음을 잘 활용해 약간 아쉬운 성량을 효과적으로 책임졌다. (…) 2부는 프랑스 아리아였다. ‘르 시드’ 중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는 영웅의 간절한 기도라는 성격을 정확하게 살려냈다. ‘카르멘’ 중 ‘꽃노래’는 섬세한 메차보체의 고음에 이어 그 분위기 그대로 곡을 마무리하는 카우프만의 장기가 잘 살아났다. ‘베르테르’ 중 ‘봄바람이여, 어째서 나를 깨우는가’는 특유의 영웅적 음성을 나약한 영혼의 소유자에게 투여한 감동적 절창으로 눈물샘을 자극했다. (…) 홍혜경과 함께 부른 ‘축배의 노래’를 빼고도 4곡을 더 부른 카우프만의 앙코르 무대는 그야말로 관객의 얼을 빼기에 충분했다. 특히 모든 공연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미소의 나라’ 중 ‘그대는 나의 모든 것’을 합창석 쪽으로 360도 회전하면서 열창한 것은 진심으로 관객을 사랑하고, 또 관객에게 사랑받는 우리 시대 슈퍼스타의 모습이었다.

유형종(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세나 뮤직 앤 아트 매니지먼트

 


 

DISCOGRAPHY

 

음반으로 남은 결정적 순간들

 

오페라를 중심으로 확인하는 요나스 카우프만의 음악 세계 요나스 카우프만은 누가 뭐래도 현재 세계 오페라 무대의 ‘원 톱’ 테너임이 틀림없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의 오페라뿐만 아니라 독일 리트와 이탈리아 칸초네까지 완벽하게 아우르는 광범위한 레퍼토리를 자랑하는 그는 과거 음반 전성시대의 스리 테너(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를 한 몸에 담고 있는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곡 녹음이 의미하는 카우프만의 위상

01 ‘오텔로’ Sony 19439707932

음반이 상업적인 가치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 이 시대에 비효율적인 스튜디오 녹음은 물론이고 영상물을 제외하면 공연 실황 음반조차도 발매되기 힘든 현재의 오페라 환경에서 카우프만은 오페라 전곡을 스튜디오 녹음으로 진행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이 사실은 오페라계에서 그가 지닌 위상을 잘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강력한 지지자이자 든든한 동반자인 지휘자 안토니오 파파노와 함께 녹음한 베르디 ‘아이다’와 ‘오텔로’(01 Sony). 그리고 푸치니 ‘투란도트’(02 Warner Classics) 등 일련의 전곡 스튜디오 음반들은 요즘 시대에 진정 드물고 귀중한 기록이라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내면적 갈등으로 인해 지극히 어둠 속으로 침잠해야 하는 ‘오텔로’의 3·4막에 카우프만보다 더 깊이 있는 해석을 들려준 테너는 없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아울러 그의 ‘투란도트’ 녹음은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다. 1926년 ‘투란도트’ 초연 당시 지휘자 토스카니니(1867~1957)는 3막 피날레를 완성한 프랑코 알파노(1875~1954)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알파노가 완성한 400소절 중 무려 100소절을 삭제했는데, 이번 녹음은 그 부분을 복원한 최초의 녹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숙기의 녹음들뿐만 아니라 그의 경력 초기의 녹음들인 래틀/베를린 필하모닉과의 ‘카르멘’ 실황 녹음과 안젤라 게오르규와의 ‘나비부인’ 전곡 스튜디오 녹음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폭넓은 레퍼토리의 핵심을 짚는 명반들

03 ‘동경’ Decca 4781463

요나스 카우프만의 빛나는 녹음 경력은 그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알프레도 역을 통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직후인 2007년에 녹음된 ‘낭만적 오페라 아리아집’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필자는 그 이듬해 클라우디오 아바도/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와의 독일 오페라 아리아집 ‘동경’(03 Decca)과 파파노와 함께 한 ‘베리스모 아리아집’(04 Decca)이야말로 테너 카우프만이 될성부른 떡잎으로서 지닌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보석 같은 초기 녹음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완벽한 딕션을 들려준다는 점도 그가 글로벌 스타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조했다. 특히 2013년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녹음한 ‘베르디 아리아집’과 2014년 ‘푸치니 아리아집’, 그리고 2017년 ‘프랑스 오페라 아리아집’까지, 이 세 음반은 카우프만의 넓은 오페라 스펙트럼 가운데에서도 핵심을 들려주는 명반들이다.

진한 다크 초콜릿을 연상시키는 독보적인 음색과 폭발적인 고음, 배역에 대한 무서운 몰입과 천부적인 연기력, 이뿐만 아니라 청중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멋진 외모까지, 그야말로 오페라 무대 위의 ‘완전체 테너’라 할 만하다. 이러한 카우프만의 존재는 오페라 전곡 녹음이 고화질 영상물로 대체된 21세기의 미디어 환경에서 그저 축복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하지만, 2010년 파리 오페라의 ‘베르테르’, 2012년 런던 로열 오페라의 ‘토스카’와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 2015년 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벌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팔리아치’, 2015년 런던 로열 오페라의 ‘마농 레스코’, 같은 해 런던 로열 오페라와 2017년 뮌헨 바이에른 슈타츠오퍼의 ‘안드레아 셰니에’, 2019년 런던 로열 오페라의 기념비적인 베르디 ‘운명의 힘’ 등은 모두 그야말로 결정판이라 부를 만한 공연이었는데, 이 공연들이 음반으로 남지 않은 것은 상당히 큰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카우프만은 독일인이지만, 지중해를 떠올리게 하는 외모로 인해 이탈리아의 풍광과 전혀 위화감 없이 어울리는 것도 큰 장점이다. 그중 2016년에 녹음한 이탈리아 칸초네 음반 ‘달콤한 인생’(05 Sony)은 그의 대중적 흡인력을 완벽히 보여준 음반이었다.

 

독일 오페라에 녹아든 그의 정체성

06 ‘바그너 아리아집’ Decca 4785189

독일 출신인 만큼 바그너 작품의 출연을 게을리하지 않는 점은 바그네리안인 필자에게도 반가운 일이다. 그의 독집 음반 중 도널드 러니클즈의 지휘로 녹음한 ‘바그너 아리아집’(06 Decca)에는 ‘로엔그린’ 3막의 ‘머나먼 나라에서’가 오리지널 버전으로 수록되어 있다. 그는 이듬해 2013년에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맞아 드레스덴에서도 크리스티안 틸레만의 지휘로 이 오리지널 버전의 아리아를 불렀고 이 또한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카우프만은 ‘탄호이저’ ‘로엔그린’ ‘트리스탄과 이졸데’ ‘발퀴레’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파르지팔’ 등 대부분의 바그너 작품을 무대 위에서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2021년 빈 슈타츠오퍼 실황 ‘파르지팔’(07 Sony) 녹음은 메조소프라노 엘리나 가랑차, 베이스 게오르크 체펜펠트 등 환상의 캐스팅들과 함께 그의 오랜 바그너 커리어의 결산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독일 오페라 분야에서 카우프만의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해석은 바로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이다. 그는 경력 초창기인 2004년, 아르농쿠르/취리히 오페라의 실황 영상과 더불어 아바도가 지휘한 2010년 루체른 페스티벌 실황 음반, 그리고 원숙기인 2015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영상에 이르기까지, 전곡 녹음만 세 가지를 남기고 있는데, 어느 것이나 주인공 플로레스탄 해석의 완성형이라고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하다.

09 ‘빈’ Sony 19075950412

“프리츠 분덜리히 이후 가장 중요한 독일 테너”라고 불리고 있는 카우프만에게 있어 자기 뿌리를 찾는 여정이자 정체성이라고도 볼 수 있는 두 장의 명반이 있다. 바로 1920년대 독일어권의 인기 오페레타와 영화 음악을 수록한 ‘당신은 내게 이 세상 전부’(08 Sony)와 빈 오페레타 넘버들을 수록한 ‘빈’(09 Sony)이다. 그가 오페레타 넘버들을 멋지게 소화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나 할리우드 배우 마를레네 디트리히(1901~1992)의 명곡 ‘노래는 끝났어요’를 이토록 매혹적으로 재해석한 것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가 2022년에 녹음한 ‘더 사운드 오브 무비’(10 Sony)는 20세기 후반 할리우드 영화에 열광했던 세대로서 젊은 날 카우프만의 기억이 오롯이 담긴 명반이다. 특히 한스 치머가 작곡한 영화 ‘글래디에이터’(2000)의 주제에 이탈리아어 가사를 붙인 ‘그대 손에’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음반에 담긴 소탈한 성품

11 ‘함께(Insieme)’ Sony 19439987002

필자가 실제 몇 차례 만나보았던 인간 요나스 카우프만은 무대 위의 카리스마 넘치는 주인공의 모습보다 그저 소탈하고 겸손하며 친근한 독일 아저씨에 가까웠다. 친구와 주변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카우프만의 인품을 보여주는 상당히 인상적인 음반이 바로 2021년에 로마에서 녹음된 ‘함께’(11 Sony)이다. 오페라 속에서 때로는 우정을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감정의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운명적 파트너인 테너와 바리톤의 드라마틱한 2중창을 수록한 음반이다. 절친한 프랑스 바리톤 루도빅 테지에(1968~)와 함께 베르디를 비롯한 이탈리아 작품들을 수록했다.

배려심이 좋은 카우프만은 상대방 여성 성악가와 상성이 유난히 좋은 가수로도 정평이 나 있다. 지난해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여 푸치니 오페라 속 남녀 주인공들의 사랑의 2중창으로만 엮은 최신 음반 ‘푸치니 러브 어페어’(12 Sony)는 그런 의미에서 상징적인 음반이다. 이탈리아 볼로냐 테아트로 코무날레에서 2024년 2월 9일~11일, 단 사흘 동안의 녹음 일정에 안나 네트렙코(‘마농 레스코’), 소냐 욘체바(‘토스카’), 말린 비스트룀(‘서부의 아가씨’), 아스믹 그리고리안(‘외투’), 마리아 아그레스타(‘나비 부인’), 그리고 프리티 옌데(‘라 보엠’)까지, 한 사람만도 섭외하기 쉽지 않은 세계 정상급 소프라노 여섯 명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을 수 있는 테너는 카우프만 외에는 상상하기 어렵다.

한편, 그는 초기부터 피아니스트 헬무트 도이치와 함께 독일 리트의 해석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지금까지 남긴 녹음들만으로도 21세기 음반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스타 테너 요나스 카우프만. 어느덧 50대 중반에 접어들며 커리어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그가 앞으로 어떤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갈지 자못 궁금해진다.

유정우(음악 칼럼니스트·흉부외과 전문의) 사진 소니 클래시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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