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국군교향악단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6월 1일 3:35 오후

COVER STORY

제복 입은 오케스트라

국군교향악단

©황필주

국군교향악단은 2010년 1월 국방부 근무지원단 군악대대 소속으로 창단된 전문 군 오케스트라로, 그 뿌리는 백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육·해·공군 장병과 군무원이 함께하는 이 단체는 군의 규율과 교향악단의 체계를 동시에 갖춘 곳으로, 국가 행사와 정기연주회 등 다양한 무대를 통해 군과 국민을 잇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호국과 보훈의 의미를 되새기는 6월을 맞아, 그 의미를 음악으로 만들어가는 국군교향악단의 어제와 오늘을 들여다본다

총괄 홍예원 기자 사진 황필주·국군교향악단

 


 

COLUMN

전선의 사기에서

시대의 공감을 향해

국립서울현충원 ©서울관광재단

국군교향악단을 통해 본 군 음악의 역사적 변천과
공공예술로서의 사회적 가치

군악은 군의 질서와 의지를 드러내는 음악이다. 그러나 그 역사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군악을 결코 단순하게 정의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전장에서는 신호였고, 병영에서는 사기였으며, 국가 의례에서는 기억과 애도의 언어였던 군악. 오늘날 군악의 다층적인 의미를 국군교향악단을 통해 짚어본다

 

전장의 신호에서 국가의 의례로

제프리 초서(1343~1400)는 저서 ‘캔터베리 이야기’ 중 ‘기사 이야기’에서 피리와 트럼펫, 케틀드럼과 클라리온(중세 및 르네상스 시대의 트럼펫 악기 통칭)이 “전투에서 피비린내 나는 소리를 울려 퍼뜨린다”고 묘사했다. 중세 문학에 남아 있는 이 흔적은 군악이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군사적 도구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트럼펫과 케틀드럼은 멀리까지 뻗어 나가는 음색과 깊고 장중한 울림 덕분에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드러내는 악기로도 사용되었다. 전장의 소리로 출발한 군악은 왕실과 국가의 의례를 장식하는 음악으로 확장되었다.

서구의 근대 군악대는 18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상설화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 군악대는 행진과 신호의 기능을 넘어 장교단의 사교와 오락, 병영 내 문화생활을 담당하는 조직으로 확대되었으며, 19세기 초에는 각 부대가 자체적으로 악대를 고용·운영하는 문화가 일반화되었다. 군악대는 국가에 의해 일괄적으로 제도화되었다기보다 전장의 전통과 왕실 의례, 장교단의 사교 문화가 결합하면서 각 연대와 대대 단위로 확산된 셈이다.

군악의 발전에서 예니체리 군악, 즉 메흐테르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예니체리는 14세기 후반 형성되어 1826년 해산될 때까지 존속한 오스만 제국의 정예 상비군이자 술탄의 친위부대였다. 이들의 군악은 다양한 북과 종, 큰북과 심벌즈, 트라이앵글이 뒤섞인 화려한 음향으로 군대의 사기와 위엄, 제국의 권위를 드러냈다.

이 낯설고도 강렬한 소리는 18세기 유럽 군악에 수용되었으며, 곧 오페라와 교향곡, 피아노곡의 ‘터키풍’ 음악으로 확장되었다. 하이든 교향곡 100번 ‘군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331, 베토벤 극음악 ‘아테네의 폐허’ Op.113 등에 남은 터키풍 음악은 전장의 소리가 음악의 어법 안으로 들어온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전쟁과 정훈, 한국 군악의 역사

사진 ➊ 대한제국군악대(1906)

한국 근대음악사에서 군악대는 서양음악이 뿌리를 내리는 중요한 출발점 가운데 하나였다. 1900년 12월 19일 칙령 제59호 「군악대설치건」을 통해 공식화된 대한제국 시기의 군악대는 서양음악이 국가 의례와 결합하며 공적 제도 안에 자리 잡는 통로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해방 이후 군악대의 역사는 국군 창설과 함께 전개되었다. 1946년 3월 육군의 전신인 남조선국방경비대 제1연대에 군악대가 창설된 이후, 군악 조직은 각 연대와 사단, 군악학교와 사관학교를 비롯해 해군과 공군 군악대로 확산되었다. 국가행사와 군 의식, 대민 행사에 참여한 군악대는 한국전쟁 발발 이후 정훈 활동의 핵심 단체로 기능했다.

한국전쟁은 냉전이 열전으로 전개된 사건이었던 만큼 사상전과 심리전의 성격이 강했다. 이때 음악은 중요한 전략적 도구로 활용되었다. 군악대와 군 교향악단은 정부와 군의 행사, 유엔군과 외빈 초청 행사, 선무공작과 위문 활동에 참여하며 전시 문화전선을 구축했다. 음악은 ‘무력의 작전보다 더 큰 전과를 거두는 군수품’으로서 장병의 전의를 고취하고 후방사회를 결집시키며, 국가가 상상한 전쟁과 국민의 감정을 조직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여기서 군악대와 군 교향악단의 활동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군악대가 관악과 타악 중심의 편성으로 행진과 의전, 사열, 국가행사와 군 의식을 담당했다면, 군 교향악단은 폭넓은 관현악 레퍼토리와 예술성을 보여주며 군의 ‘문화적 얼굴’로 기능했다.

사진 ➋ 해군정훈음악대(지휘 김생려) 제31회 정기연주회 공연 책자(1955.7.26·27)

사진 ➌ 해군정훈음악대 진해순회 연주(1950.12)

사진 ➍ 육군교향악단 춘계연주회(경향신문 1954.4.1)

 

 

 

 

 

 

 

한국전쟁기 해군정훈음악대, 육군교향악단, 한국교향악단 등은 후방사회의 위문과 선무를 담당하는 한편, 정기연주회를 개최하며 전문 연주 활동을 이어갔다. 국가동원예술의 성격을 지녔다는 점에서 이를 낭만적으로만 볼 수는 없지만, 전쟁기 한국 음악 활동의 명맥 유지가 군의 후원과 보호에 크게 힘입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전후 한국 교향악 운동의 재편과 전문 연주단체 형성에도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해군정훈음악대와 해군교향악단은 훗날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형성에, 육군교향악단에서 활동한 단원 상당수는 1956년 KBS교향악단의 창단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한국의 군악대와 군 교향악단은 전쟁과 국가, 군과 국민, 전선과 후방, 동원과 위문, 의례와 예술 사이를 오가며 한국 음악문화의 한 축을 형성했다.

 

국군교향악단국군교향악단

국군교향악단, 3군의 소리를 모으다

현재의 국군교향악단은 2010년 1월 창단된 국방부 산하 전문 군 오케스트라다. 국방부 군악 조직의 내부 인력 운용과 민간 전문가의 자문, 전문 음악감독의 참여, 그리고 정부 부처의 문화정책적 지원이 결합해 탄생했다. 「정훈·문화활동 훈령」에 따르면 국가 주요행사 지원과 장병의 정서 순화 및 사기 진작 등을 위해 국방부 근무지원단 군악대대에 국군교향악단을 편성·운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군교향악단의 가장 큰 특징은 육군·해군·공군이 함께하는 3군 연합 오케스트라라는 점이다. 특정 군의 부속 악단이 아니라 국군 전체의 문화적 얼굴이라 할 수 있다. 군대에서 계급과 명령이 질서를 만든다면, 오케스트라에서는 합주와 해석이 그 역할을 한다. 국군교향악단은 이 두 질서가 만나는 특별한 장소다. 계급과 군종, 복무기간과 출신 배경이 다른 연주자들이 같은 악보를 읽고, 같은 박자 안에서 호흡하며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는 과정은 군 조직 안에서 예술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3군의 소리를 하나로 모은 국군교향악단은 그 음악을 다시 장병과 국민에게 돌려보낸다. 장병의 사기와 정서를 북돋우는 한편, 국민에게는 군을 문화적으로 만나는 통로를 제공한다. 국군교향악단은 한국의 군악이 병영의 울타리를 넘어 예술적 전문성과 공공성을 함께 지닌 공공음악의 장으로 성장해 온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병영을 넘어 세계의 무대로

오늘날 세계 각국의 군대는 대부분 군악대를 운영한다. 군악은 더 이상 단순한 의전이나 군사적 행진에 머물지 않고 국가 의례와 사기 진작, 추모, 대민공연, 문화외교의 장으로 확장되고 있다. 때로는 군악 자체가 세계적인 축제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매년 8월 에든버러성 앞 광장에서 열리는 ‘로열 에든버러 밀리터리 타투’가 대표적이다. ‘타투’는 17세기 네덜란드어 ‘doe den tap toe’, 즉 ‘술통 꼭지를 잠그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매일 밤 연대 드럼대가 이 신호를 연주하면 선술집은 술 판매를 중단했고, 병사들은 숙소로 돌아갔다.

이 축제는 1949년 조지 이언 말콤 오브 폴탈록(1903~1976) 중령이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제작한 군사 쇼 ‘썸씽 어바웃 어 솔저’를 계기로, 에든버러 시장의 초청을 받아 1950년 공식 출범했다. 이후 에든버러 페스티벌 시즌을 대표하는 대형 야외 공연으로 성장했으며, 오늘날에는 매년 약 22만 명의 관객이 현장에서 관람하고 전 세계 약 1억 명이 방송으로 시청하는 국제적 문화행사로 자리 잡았다.

사진 ➎ 로열 에든버러 밀리터리 타투(2009)

사진 ➏ 로열 에든버러 밀리터리 타투 공연단

 

 

 

 

 

 

 

2025년 열린 75주년 공연 ‘우리를 만든 영웅들’에는 900명 이상의 출연자가 참여했다. 매시드 파이프·드럼대, 로열 에든버러 밀리터리 타투 공연단, 폴란드 국경수비대 악단, 스위스 극비 드럼코어, 미국 공군 의장대 드릴팀, 미국 육군 올드 가드 피리·드럼대, 우크라이나 해군 오케스트라 등이 무대에 올랐다.

사진 ➐ 미국 육군 올드 가드 피리·드럼대

이 행사의 의미는 단순한 볼거리에 있지 않다. 군악 특유의 절도와 집단성, 의례성은 조명과 무대연출, 성곽이라는 장소성, 관객의 환호와 결합하면서 도시의 축제이자 관광상품, 나아가 국가 브랜드로 확장되었다. 군이 지역사회와 만나는 방식으로 출발한 공연은 이제 각국의 군악대와 공연단이 모여 서로의 문화와 기억을 나누는 국제적 무대로 성장했다. 이 사례는 군악이 전장과 병영을 넘어 도시의 광장과 세계의 무대로 나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억과 위로의 공공음악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추모하고 그 공헌을 기리는 시간이기에, 6월의 군악은 기억과 위로의 소리가 된다. 금관악기의 낮고 어두운 선율이 울려 퍼질 때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누구를 위로하며, 무엇을 향해 함께 걸어가야 할 것인가를 성찰해야 한다. 이때 군악은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공동체가 전쟁과 희생을 기억하고 슬픔을 형식화하는 방식이 된다. 국군교향악단이 들려주어야 할 소리도 바로 그 지점에 있다. 군과 국민을 잇고, 전쟁의 기억을 애도와 평화의 감각으로 바꾸는 음악. 어쩌면 그것은 군악을 넘어 세상의 모든 음악이 끝내 도달해야 할 가치인지도 모른다.

제복 입은 오케스트라, 국군교향악단은 한국 군악의 긴 여정을 상징하는 단체다. 오늘날 국군교향악단의 의미는 전장의 음악, 국가동원의 음악, 위문의 음악으로 기능했던 군 음악의 역사를 공공예술의 언어로 전환하는 데 있다. 군 내부의 예술단체에 머물지 않고 장병의 정서와 국민의 문화적 경험을 잇는 공공음악의 장으로 나아가는 것, 호국과 보훈의 기억을 예술적 성찰의 언어로 바꾸는 것, 나아가 한국 군악의 역사와 현재를 세계와 나누는 문화사절로 성장하는 것. 그것이 오늘날 국군교향악단이 지닌 가능성이자 과제다.
남영희((재)부산문화회관 공연예술본부장)


국군교향악단은 어떤 공연을 할까?

 

국군의 날 정기연주회부터 순회공연, 국가 행사와 대외 교류 무대까지. 국군교향악단의 연주는 행사의 성격과 현장의 분위기,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에 따라 매번 다른 방식으로 이뤄진다 (2025~26년 공연 정리)

정리 유내리 기자 사진 국군교향악단

 

 

국방부 군악대대 전쟁기념관 정례행사

지난 4월, 서울 용산구 삼각지 전쟁기념관 앞 계단을 가득 메운 군악대대 장병들. 육·해·공군 군악·의장 부대가 함께하며 시민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2026년 4월 17일

 

 

제1군수지원사령부 부대 이전 1주년 기념 순회연주회

제1군수지원사령부에서 열린 국군교향악단 순회연주회. 이날 공연은 부대 이전 1주년 기념행사와 함께 마련됐다. ◎2026년 4월 23일

 

 

 

 

현충원 작은 음악회

봄 햇살 아래 국립서울현충원 내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 군악대와 현악 앙상블이 야외무대에서 시민들과 가까이 호흡했다. ◎2026년 4월 18일

 

 

 

 

학군단(ROTC) 모집 홍보 공연

성균관대와 한양대 등 대학 캠퍼스에서 열린 학군단(ROTC) 모집 홍보 현장이다. 봄 캠퍼스를 찾은 이들은 밴드 공연과 거리 공연를 진행했다. ◎2026년 3월

 

 

 

국군교향악단 기획연주회

가정의 달을 기념해, 국군교향악단의 영화음악 콘서트가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됐다. 단원들은 익숙한 스크린의 선율을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풀어내며 관객과 만났다. ◎2025년 5월 22일

 

 


Beyond Story

전장(戰場)에서 음악으로 밥을 지은 여인, 홍은혜

1984년 10월의 ‘객석’은 ‘전장에서, 거리에서 그들을 노래했다’라는 제목으로 한국 군악대의 역사를 다뤘다. 국군의 날을 위한 기획이었을 것이다. 국군의 날은 한국군이 북한군을 반격한 끝에 38선을 넘어 평양까지 점령한 1950년 10월 1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날이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혁을 보면 고려교향악단을 전신으로, 서울교향악단·해군정훈음악대·해군교향악단을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됐음을 알 수 있다. 1945년 해방 후, 그해 10월에 고려교향악단이 창단됐는데, 운영난에 내부 분란까지 겹치면서 3년 뒤 해체된다. 이후 잔존 단원들과 서울관현악단의 단원들이 모여 1948년에 서울교향악단을 창단했지만, 1950년 6.25 전쟁의 발발로 해산되었고 피난 가지 못한 단원들은 북한군의 서울 점령 후 월북·납북되며 악기와 악보도 소실되었다.

‘군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해군정훈음악대일 것이다. 이 정훈음악대의 편성경위는 6.25 전쟁과 함께 전국의 모든 음악·예술인을 성당에 몰아넣고 포박한 다음 이북으로 몰고 가던 중 임원식 소좌가 제일 먼저 도망쳐 버리는 바람에 상당수가 함께 탈출하게 된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탈출에 성공한 음악인들이 서울에 흩어져 있자 손원일 제독은 그들을 규합하여 해군정훈음악대로 편성해버렸다. 김생려를 단장으로 하는 이 음악대는 그 후 서울시로 이관, 오늘날 서울시립교향악단으로 성장하게 되었다.’(‘객석’ 1984년 10월호)

여기까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역사다. 그렇다면 전쟁 속에 그 음악가들은 어떻게 하여 해군정훈음악대에 소속되었나? 해군을 창설한 손원일(1909~1980) 제독은 음악가들을 상륙함(LST)에 태우고 전장 곳곳을 돌며 음악으로 힘과 용기를 북돋게 했다. 이를 계기로 손 제독은 전쟁 중에서도 음악과 예술을 챙겼던 ‘모뉴먼츠 맨’으로 기록된다.

여기에는 홍은혜(1917~2017) 여사의 공이 컸다. 손 제독이 ‘해군의 아버지’였다면 그의 부인인 홍 여사는 지금도 ‘해군의 어머니’로 통용된다. 1939년 이화여전(현 이화여대 전신) 음악과를 졸업한 그녀는 음악가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남편을 설득했고, 이것이 해군정훈음악대 창단에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만약 그녀의 관심과 지원이 없었다면 음악가들도, 한국 교향악단의 역사도 전쟁 속의 공백으로 남았을 것이다.

어느 원로 평론가는 “과거에 이화여전 음악과 출신들이 남편을 통해 한국 음악계에 알게 모르게 남긴 업적들은 어마어마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홍 여사가 여기에 딱 들어맞는 경우다. 홍 여사는 자신의 음악적 재능으로 ‘해군사관학교 교가’ ‘해방 행진곡’ ‘대한의 아들’ ‘해군부인회가’ 등의 군가도 작곡했다.

송현민(음악평론가·편집장)

 


 

INTERVIEW

국군교향악단은 엄격한 군의 질서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하나의 앙상블을 완성해간다. 악보 관리와 합주 조율, 국가 행사와 의전 무대 준비에는 음악적 완성도와 군 조직 특유의 엄정함이 동시에 요구된다.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가는 이들의 목소리로 듣는 국군교향악단의 무대 안팎

홍예원·최성혁 기자

 

권정선

군악대대장│육군 중령

©황필주

국방부 근무지원단 군악대대는 교향악대·관악대·전통악대·팡파르대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심에서 권정선 군악대대장은 ‘지휘자’이자 ‘지휘관’으로서 조직을 이끈다. 그는 힘과 위로를 부여하는 음악의 역할을 조직 내에서 의미 있게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장병과 국민 모두에게 음악을 통한 긍정적인 에너지와 자긍심을 전달하겠다는 신념을 이어오고 있다.

군악대대장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자리인가?
음악을 이끄는 지휘자이자 부대를 운영하는 지휘관이다. 서로 다른 역할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람과 조직을 하나의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닮았다. 국방부 근무지원단 군악대대는 네 개의 악대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악대의 개성과 기능을 살리면서도 조화롭게 하나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군악대는 국민이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군의 모습 중 하나인 만큼, 음악적 완성도뿐 아니라 조직의 품격과 책임감까지 함께 이끌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네 개의 악대는 각각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가?
교향악대는 깊이 있는 음악성과 풍부한 표현력을 바탕으로 공연과 연주회의 중심 역할을 하고, 관악대는 의전과 야외 행사 등에서 군악대의 상징성과 에너지를 보여준다. 전통악대는 우리 고유의 음악과 문화를 군의 품격과 함께 전달하는 역할을 하며, 팡파르대는 절도 있고 상징적인 연주를 통해 국가 의전의 의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각 악대의 스타일과 임무는 다르지만 결국 국민에게 감동과 자긍심을 전한다는 목표는 모두 동일하다는 생각이다.

대대장으로서 갖는 본인만의 원칙과 사명감은 무엇인가?
군악대를 이끌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존중과 책임감이다. 결국, 좋은 음악도 좋은 무대도 사람 사이의 신뢰와 호흡에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군악대는 단순히 연주를 하는 조직이 아니라, 국민이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군의 모습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행사 하나에도 군의 품격과 진정성이 담겨야 한다.

주어진 업무 중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인가?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결국 ‘균형’에 있다. 음악적으로는 높은 완성도를 유지해야 하고, 조직적으로는 일정과 인원, 행사 준비가 흔들리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연주는 무대 위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수많은 준비와 소통 속에서 완성된다. 그래서 대원들이 가장 좋은 상태로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전체 흐름을 꼼꼼하게 살피는 데 가장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소회가 궁금하다.
오랜 시간 군악 장교로 근무하며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은 결코 혼자만의 힘만이 아니라, 함께해 준 선배와 동료, 그리고 후배들의 신뢰와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매 순간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 어느덧 지금의 위치에 서 있게 되었고, 그만큼 책임감도 더 크게 느끼고 있다. 이제는 개인의 성장보다 부대의 발전과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일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후배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드는 것도 지금의 내 역할이라 생각한다.

최성혁 기자

 


 

이용수

교향악대장│육군 소령

©황필주

정기연주회를 비롯해 국가 행사·순회공연·대외 교류 공연 등 여러 형태의 무대를 수행하는 국군교향악단에는 음악적인 완성도는 물론 다양한 현장 환경에 대응하는 적응력과 유연성도 요구된다. 이용수 교향악대장은 “국군교향악단의 역할은 단순한 연주를 넘어 음악을 통해 군의 가치와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라며, 진정성과 책임감 있는 음악에 대한 사명감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

국군교향악단의 일과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매일 아침 전 인원이 모여 하루의 과업을 공유하고, 각자 부여된 연습을 중심으로 일과가 이루어진다. 합주가 진행되는 매주 화요일은 공연 및 각종 행사 준비로 비교적 바쁘게 운영된다. 정신전력교육과 전투체육, 병영 생활지도 등 기본적인 일정도 병행한다. 간부·군무원의 경우 연습 외에도 공연 준비와 관련된 행정 처리·악기 관리·이동 준비 등의 실무를 함께 수행한다. 또한, 음악을 완성하는 것만큼이나 그 음악이 잘 구현될 수 있는 환경의 조성도 중요하기 때문에 교향악대장은 단원들의 컨디션과 리허설 분위기를 지속적으로 살피며, 일정이나 행정적인 요소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다양한 형태의 무대를 수행해야 하는데, 준비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공연 준비와 관련한 소통은 내부적으로는 지휘자·간부·주무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외부적으로는 공연 기획자 및 관계 부서와 일정·프로그램·동선 등을 사전에 지속적으로 조율한다. 특히 국경일이나 국가행사의 경우에는 정해진 형식과 흐름을 정확하게 숙지해야 한다. 정기연주회는 비교적 안정된 환경에서 준비되지만, 대부분의 외부 공연은 행사 목적에 맞게 곡 구성과 흐름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경우가 잦다. 리허설을 진행할 여건이나 환경이 충분하지 않아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맞춰가야 하는 일도 빈번하다. 때문에, 빠른 판단력과 대응력을 갖춘 채로 연주 뿐 아니라 전체적인 진행을 바라봐야 한다.

병사들의 입대와 전역이 반복되며 주기적으로 변동되는 상황일 텐데.
매번 새로운 구성으로 호흡을 맞춰야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세부적인 표현에 앞서 ‘기본적인 기준’을 빠르게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리듬·타이밍·다이내믹 등 핵심 요소를 먼저 정리하고, 그 위에 음악적인 표현을 쌓아가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기존 단원들이 중심을 잡아주며 자연스러운 팀 사운드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교향악대장으로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면?
공연이 끝난 뒤 관객의 반응을 마주할 때, 특히 위문 공연이나 국가 행사와 같은 의미 있는 공연에서 누군가에게 그 음악이 위로가 되었음을 체감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이 역할의 보람과 가치를 분명하게 느낀다. 덧붙여, 국군교향악단을 통해 장병들이 음악적으로 한 단계 성장하고, 앞으로 음악 인재로 나아갈 수 있는 소중한 발판이 되기를 늘 바라는 마음이다.
최성혁 기자

 


 

윤창희

국군교향악단 악보계│해군 상사

악보계는 무대 뒤에서 공연의 질서를 세우는 자리다. 악보의 준비와 보관, 반출입과 수정 작업까지 책임지며 국군교향악단의 연주가 정확히 출발하도록 돕는다.

악보계에 지원한 계기가 궁금하다.
단순한 악보 배포를 넘어 공연 전반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중요한 보직이다. 평소 연주 준비 과정에서 악보의 정확성과 체계적인 관리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했고, 이를 직접 수행하며 부대 전력에 기여하고자 했다.

악보 반입·반출이나 사보 프로그램 운용에서 보안과 관련한 어려움은 없는가?
악보는 저작권 및 군 내부 자료 관리 측면에서 중요한 자료이므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외부 반출 시 승인 절차를 준수하며, 사용 이후 반드시 회수 및 보관을 시행한다. 디지털 자료의 경우에도 접근 권한을 제한하고, 불필요한 복제를 방지하는 등 보안 규정을 준수하여 관리한다. 사보·편곡에는 시벨리우스·피날레·도리코 등 전문 프로그램을 활용하는데, 보안 규정에 따라 외부 프로그램 사용이 제한될 수 있기에 승인된 범위 내에서 작업을 진행하거나, 필요시 별도의 절차를 밟는다.

국군교향악단 악보계가 갖춰야 할 중요한 자질이 있다면?
군 조직 특성상 공연 외 행사 및 대외 지원이 많아 일정 변동이 잦고 처리할 곡의 수가 상당한 편이다. 이러한 환경 특성상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에 대한 이해와 신속한 악보 처리 능력은 물론, 종종 발생하는 돌발 상황에 따른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응능력이 필요하다.
최성혁 기자

 

김지환

국군교향악단 악장│육군 병장

 

©황필주

악장은 교향악단의 첫 호흡을 여는 사람이다. 국군교향악단 안에서 그는 음악적 기준을 세우고, 다른 단원들이 하나의 소리로 모이도록 이끈다.

민간 교향악단과 비교했을 때, 국군교향악단 악장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무엇인가?
가장 큰 차이는 ‘음악적 완성도’와 ‘군 조직의 질서’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악장은 단순히 연주를 리드하는 역할을 넘어, 단원들이 안정적으로 합을 맞출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명확한 기준을 세워야 한다.

오케스트라의 사운드와 결속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기준을 세우고 있나?
기본적인 사운드와 연주 스타일의 기준을 꾸준히 공유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호흡, 음정, 아티큘레이션 같은 기초적인 부분을 반복적으로 맞추며 새로운 단원들이 팀워크에 빠르게 녹아들도록 돕고 있다. 군 조직의 특성상 질서와 책임감이 강조되는 만큼, 음악적 소통을 이어가면서도 조직 내 균형을 함께 고려하고자 한다.

국군교향악단은 민간 교향악단과 비교해 프로그램 구성에서 어떤 차이가 있나?
국군교향악단은 다양한 공식 행사와 기념 공연을 수행하기 때문에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대중성과 상징성을 두루 갖춘 프로그램도 자주 연주한다. 특히 국가 행사에서 연주했을 때, 음악이 단순한 공연을 넘어 깊은 의미와 역할을 가진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국군교향악단에서의 경험이 전역 후 행보에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이라 보는가?
연주자로서 갖추어야 할 책임감과 협업의 가치를 그 어느 때보다 깊이 배우게 됐다. 음악적으로도 빠르게 적응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성장했다고 느끼며, 이러한 경험이 어떤 무대에서든 큰 자산으로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홍예원 기자

 


 

김광일

국군교향악단 관악 파트장│전문군무경력관

 

©황필주

관악 파트장은 의전과 야외 연주, 장엄한 군악의 에너지를 책임지는 자리다. 그는 병사들과 호흡하며 금관과 목관의 소리를 하나의 힘 있는 울림으로 다듬는다.

국군교향악단 관악 파트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국군교향악단은 타 군악대와 달리, 오케스트라 수석급 전문군무경력관들이 병사들과 호흡하며 수준 높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주로 애국가나 군가처럼 힘차고 장엄한 곡들을 연주하는 만큼, 부드러운 앙상블 이면에 응축된 강한 에너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우리만의 차별점이다.

국가 행사나 의전 연주는 일반적인 무대와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는가?
행진곡과 의전 음악은 현장 변수가 매우 많다. 주요 인사의 보폭이나 입장 시간에 따라 타이밍이 급박하게 변하기 때문에, 클래식 음악이나 재즈 연주보다 훨씬 높은 집중력과 단원 간의 긴밀한 소통이 요구된다.

야외 연주 환경에서 관악기의 음정과 밸런스를 유지하는 노하우가 있다면?
관악기는 온도에 매우 민감한 악기다. 여름에는 음정을 낮추기 위해 튜닝관을 뽑고, 겨울에는 음정을 높이기 위해 다시 끼운다. 특히 소리가 금방 흩어지는 야외 특성상, 공연장보다 소리를 더욱 응축시켜 연주하려고 한다.

복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작년 기획연주회에서 군악대대를 대표해 협연했던 순간과 작곡병이 쓴 트럼펫 트리오 곡을 내가 지도하던 용사들과 함께 연주했던 것! 성공적으로 마치고 무대 뒤에서 함께 껴안으며 기쁨을 나눴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홍예원 기자

 


 

이재인

©황필주

교향악대 타악 파트장│육군 상병

타악 파트장은 교향악단의 박동과 긴장을 조율한다. 군음악 특유의 추진력과 절도를 만들며, 장르와 공간에 따라 가장 알맞은 소리의 질감을 찾아낸다.

타악기 전공자로서 국군교향악단만이 가진 복무 환경의 이점은 무엇인가?
좋은 연습 환경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타악기는 악기 특성상 현악기나 관악기처럼 개인이 부대 내로 지참하기가 어려운데, 좋은 악기들과 시설이 준비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입대 전부터 기대를 가졌다.

연주하는 장르에 따라 타악기 고유의 음색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고자 하나?
가장 큰 변화를 주는 요소는 ‘소리의 질감’이다. 클래식 음악은 호흡에 따른 섬세한 터치를 요구하는 반면, 군가나 전통악대와의 협업에서는 명확한 템포 유지와 직진성이 우선된다. 장르에 맞춰 스틱의 종류나 타점을 바꾸며 곡 분위기에 최적화된 소리의 질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대규모 편성 안에서 타악 파트만의 강한 에너지와 절도를 유지하기 위해 공유하는 원칙이 있다면?
우리 파트의 원칙은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는 것이다. 타악기는 무대 가장 뒤편에 위치하기 때문에, 편성의 규모가 커질수록 소리가 객석까지 도달하는 물리적인 전달 속도를 고려해야 한다. 단순히 소리를 크게 내는 것이 아니라, 지휘자의 템포보다 미세하게 앞서 나간다는 감각으로 연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감각을 공유하는 것이 우리가 유지하는 ‘군인다운 절도’의 핵심이다.

악기 간의 밸런스와 사운드를 최적화하기 위해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는가?
연주자 개개인의 소리가 객석에서 어떻게 들릴지 공간감을 체크하는 데 집중한다. 파트장으로서 “베이스드럼 소리가 너무 울리니 천으로 울림을 조금 줄여달라”거나 “스네어 드럼 소리가 날카로우니 조금 더 깊게 쳐달라”는 식으로 구체적인 가이드를 준다.

홍예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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