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고잉홈프로젝트 대표 손열음, 함께 만들어가는 음악 공동체의 매력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7월 3일 6:38 오후

FESTIVAL

피아니스트·고잉홈프로젝트 대표 손열음

함께 만들어가는 음악 공동체의 매력

베토벤과 라벨을 지나 쇼스타코비치로 향하는 고잉홈프로젝트의 발걸음

©Marco Borggreve

 

 

“생각하면 할수록 엉겁결에 태어난 단체예요.” 손열음의 솔직한 고백처럼, 2022년 창단한 고잉홈프로젝트는 거창한 청사진이나 대단한 각오로 출범한 악단이 아니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활동 중인 다양한 국적의 연주자들이 휴가를 맞아 귀국하거나, 한국을 방문하는 시기를 맞추어 국내 팬들에게 그동안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콘서트를 열면서 모인 집단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작이 무색하게도 이들의 여정은 매 순간 뜨거웠다. 2023년 12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이어진 베토벤 시리즈를 통해 끈끈한 앙상블의 틀을 다졌고, 2025년 2월부터 12월까지 펼친 라벨 시리즈를 거치며 프랑스 음악 특유의 색채감과 오케스트라만의 섬세한 음향을 만들어갔다. 서로 다른 문화권과 음악적 배경을 지닌 연주자들은 이제 쉬는 시간마저 반납한 채 음을 맞춰보는 ‘음악 집착 공동체’로 진화했다.
독일과 프랑스 음악을 탐구하며 전우애를 쌓아온 이들은 이제 7월부터 본격화될 쇼스타코비치 탄생 120주년 프로젝트라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연주자이자 기획자, 그리고 든든한 동료로서 ‘고잉홈프로젝트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치열하게 고민해 온 손열음에게 고잉홈의 현재와 미래를 들었다.

 

서로 다른 배경, 하나의 앙상블

최근 고잉홈프로젝트는 프로젝트성 악단을 넘어 하나의 음악 공동체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사실 누군가 거창한 각오를 품고 시작한 단체가 아니에요. 초창기에는 이 점이 약점 같았는데, 시간이 흐르며 단원들이 저마다 주인의식을 갖게 되면서 지금은 가장 큰 강점이 됐어요. 다양한 음악가가 각자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악단은 흔치 않거든요. 음악 공동체처럼 보인다면 저희에게는 가장 큰 칭찬이에요. 예상치 못했던 건 우리가 이렇게까지 음악에 집착하는 단체가 됐다는 점이에요.(웃음) 연습 시간도 훨씬 길어졌고, 쉬는 시간에도 연주자들이 한 번이라도 더 맞춰보려고 서로를 찾아다니곤 해요.

다양한 배경의 연주자들이 모인 만큼 고잉홈만의 독특한 색깔도 생겼을 것 같습니다.
전에는 문화권의 차이가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막상 함께해 보니, 각자가 익숙한 레퍼토리부터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독일에서 20년 넘게 활동한 연주자는 라벨의 관현악곡을 평생 한 곡밖에 연주해 보지 않았고, 프랑스에서 활동한 연주자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를 한 번도 연주해 본 적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처음엔 이 격차를 어떻게 좁힐지 고민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고잉홈만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익숙한 음악이 다른 이에게는 신선한 발견이 되거든요. 높은 숙련도와 신선함을 동시에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 저희만의 특징 같아요. 결국 이런 다양성이 고잉홈만의 하이브리드한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힘이 아닐까 생각해요.

베토벤과 라벨을 지나 이제 쇼스타코비치로 향합니다. 지금의 고잉홈프로젝트는 어떤 시점에 와 있을까요?
처음에는 러시아 음악 특유의 언어와 작품 자체의 낯섦 때문에 고민도 많았지만, 악장 스베틀린 루세브와 바이올리니스트 타츠키 나리타 덕분에 이 시리즈를 결심할 수 있었어요. 스베틀린은 러시아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깊고, 타츠키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절반 이상을 거의 외울 정도로 애정이 남다르거든요. 이 여정을 마치고 나면 창단 5년 만에 독일·프랑스·러시아 음악의 핵심을 두루 경험한 악단으로 거듭나게 될 테니, 고잉홈에게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의 공연 중 가장 ‘고잉홈다웠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올해 5월 고양아람누리에서의 모차르트 목관 협주곡 전곡 공연이 떠오르네요. 한 악단의 수석들이 하루에 그 많은 협주곡을 모두 연주하는 무대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2024년 7월 베토벤 교향곡 4번과 5번 공연이 기억에 남아요. 라이브 레코딩을 진행하느라 리허설을 엄청나게 했는데도, 본 공연에서는 다들 처음 연주하는 것처럼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냈죠. 연주가 끝난 뒤 한 단원이 “전우애가 생겼다”고 했는데, 정말 고잉홈이기에 가능했던 순간이었어요.

음악가로서 20세기를 바라보는 방법

올해 시리즈는 쇼스타코비치를 중심에 두고 20세기 작곡가들을 함께 조명합니다.

©Marco Borggreve

쇼스타코비치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대조’라는 방식을 택했어요. 올해는 거슈윈·버르토크·코플런드·브리튼을 배치했습니다. 첫 공연인 ‘1925’에서는 독학파 거슈윈과 엘리트 음악기관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쇼스타코비치가 각자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작품을 발표한 해를 조명해요. 두 번째 ‘1939’에서는 동시대를 살며 전쟁과 체제의 압력으로 흔들리는 세계를 유럽을 서로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버르토크와 쇼스타코비치를 연결하죠. 이어지는 코플런드와 브리튼은 쇼스타코비치와 직접 교류했던 인물들인데, 특히 브리튼은 유머와 냉소 등 여러 면에서 가장 닮은 작곡가예요. 내년에도 20세기 협주곡들과 교향곡을 연결하는 시리즈를 이어갈 계획입니다.

‘1925’ ‘1939’ ‘The Iron Curtain’ 등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전면에 내세운 제목들도 눈에 띕니다.
쇼스타코비치는 평생 체제와 전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 비극은 개인을 넘어 시대의 비극이기도 하죠. 미시사와 거시사는 분리될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그를 괴롭혔던 수많은 문제가 오늘날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잖아요. 쇼스타코비치는 단지 과거의 작곡가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한 화두가 된 셈이죠. 그래서 이 음악들을 더 과감하게 무대로 끌어내고 싶었습니다.

고잉홈만이 할 수 있는 것

고잉홈프로젝트의 공연은 작품을 나열하기보다 하나의 서사를 구축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클래식 음악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장르이지만, 단순한 여흥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연주자와 관객 모두가 호기심을 가질 만한 서사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결국 늘 같은 질문으로 돌아가게 돼요. “고잉홈만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무엇을 유지하고 무엇을 다르게 할 것인지 고민하게 되고, 그 질문이 제 프로그래밍의 출발점이 됩니다.

고양아람누리 상주단체 활동과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고양아람누리라는 좋은 공간을 시민들에게 더 가까운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 있었어요. 저희 공연을 계기로 이곳을 찾은 분들이 자연스럽게 다른 문화생활도 즐기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멋진 상생이죠. 교육 프로그램인 ‘고잉홈아카데미’는 온라인 심사로 선발된 학생들이 저희 공연에 직접 합류하는 인턴십 형태로 운영돼요. 제가 소속된 교육기관이 없다 보니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젊은 학생들과 교류하는 것 자체가 신기하고 감사해요. 요즘 세대에 대한 걱정 섞인 시선도 있지만, 막상 만나보면 “어머님이 누구시니”라고 묻고 싶을 정도로 반듯하고 뛰어난 친구들이 정말 많거든요.(웃음) 저 역시 그 친구들에게 많은 자극을 받고 있어요.

연주자와 기획자로서 가장 자주 마주하는 고민은 무엇인가요?
사실 저는 불규칙하고 다소 피동적인 사람이라 연주자로 살 때는 본성을 크게 거스르지 않아도 됐어요. 하지만 고잉홈은 달라요. 구성원 모두가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꾸준히, 스스로 찾아서 하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 단체예요. 그만큼 인내심과 능동성이 필요하죠. 결국 현실적인 고민은 늘 하나예요. 돈과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웃음) 그것 말고는 다 참을 수 있어요. 그만큼 재미있으니까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
2027년까지 쇼스타코비치 시리즈를 무사히 완주하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사실 저희는 늘 이런 마음으로 무대에 오릅니다. “다음 해에도 만나요, 제발!”

 

홍예원 기자 사진 파이플랜즈

고잉홈프로젝트 ‘베토벤 전곡 시리즈 Finale’(2024.12.8/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손열음(1986~)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수학했다.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 및 모차르트 협주곡 최고 연주상을 수상했으며, 평창대관령음악제 제3대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2022년 고잉홈프로젝트를 창단해 활동하고 있다.

 

PERFORMANCE INFORMATION
고잉홈프로젝트-쇼스타코비치 전곡 시리즈
‘1925’ 7월 8~11일 경주·부산·진주·서울
거슈윈 피아노 협주곡 F장조(협연 손열음),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번
‘1939’ 7월 15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버르토크 바이올린 협주곡 2번 Sz.112(협연 타츠키 나리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6번
‘The Iron Curtain’ 8월 9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코플런드 ‘엘 살롱 멕시코’, 클라리넷 협주곡(협연 조인혁),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The 9th’ 8월 16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8·9번
‘The Rebels’ 12월 16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브리튼 ‘단순 교향곡’ ‘젊은 아폴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4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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