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서점

책으로 떠나는 음악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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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0월 14일 9:00 오전

문화공간

 

 

글 박서정 기자 사진 초원서점

 

언덕배기의 낡은 건물, 그 안에서 비밀스러운 작당 모의가 이뤄질 것 같은 곳. 초원서점의 첫인상은 그랬다. 가게 앞에 세워진 오래된 자전거와 기차역 대합실에 어울리는 긴 의자 때문일까. 아니 어쩌면 이 밤, 음악회를 보러 다름 아닌 서점으로 모여든 한 무리의 사람들 때문일지도. 주인장이 직접 오려 붙였을 법한 빼뚤한 간이간판, 빈티지 책장을 가득 채운 종이책,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포크 록은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했다. 확실히 이 작은 독립서점은 평범한 주택가 풍경 속에서 비범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염리동 끄트머리에 자리한 초원서점의 정체는 음악을 테마로 한 서점이다. 2016년 문을 연 이래 손님들에게 음악 서적만을 선보이고 있다. 재즈·힙합·클래식·한국가요 등 음악과 관련된 책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가에 대한 평전은 최대한 들여놓는다. 가사집과 악보부터 밴드 언니네 이발관 보컬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 오지은의 ‘익숙한 새벽 세 시’처럼 음악가가 쓴 산문집까지 모아놨으니, 음악에 특화된 서점으로 꽤 밀도가 높다. 좁지만 서점의 구색을 갖춘 이 곳의 도서 선정 기준은 손님의 취향이다. 서점 주인 장혜진은 “BTS보다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의 책이 더 잘 팔리는 곳, 현재 한국 음악 시장의 주류에 있는 힙합 관련 책은 팔리지 않는 곳이다.”라고 설명했다. 편리한 전자책 대신 독립서점에서 종이책을 사가는 이들의 취향이 최신 트렌드와 거리가 멀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다면 왜 음악을 택했을까. 여기엔 주인장의 취향이 작용했다. “나는 김현식과 에릭 클랩튼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그들을 다룬 책을 찾아 읽다 음악가의 삶에 관한 이야기에 매료됐다. 역사를 알면 같은 거리도 다르게 보이듯이, 노래에 얽힌 이야기를 알면 음악을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음악을 서적으로 접하길 바라는 이유다.” 그는 옛 한국가요를 특히 좋아한다며 아끼는 중고서적을 유일하게 유리문이 달린 책장에서 꺼내 보였다. 1992년 출판된 가수 김현식의 시집 ‘지상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 70년대 활동한 포크 가수이자 연출가 김민기의 작품을 엮은 ‘김민기’ 등이었다. 그런데 ‘책으로 음악 하자’니,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던 김창완의 노래 가사가 연상됐다. 세간의 문법과 달라 엉뚱하지만 당당한 선포 같았다. 장혜진은 “음악 서적을 뒤적이다 문득 잊고 있던 음악에 대한 애정을 되찾고, 관심 없던 음악 장르에도 기웃거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책만으론 역부족이라 음악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도 열고 있다. 그중 하나가 예의 ‘초원 음악회’다. 지금까지 가수 곽푸른하늘, 카더가든, 오지은 등이 목소리로 서점을 채웠다. 특이한 점은 사전에 가수를 알리지 않는 티켓 판매 방식이다. 관객이 다양한 음악을 편견 없이 접하게 하기 위함이라는데, 매번 음악회는 서로의 어깨를 맞댈 정도로 붐빈다. 다른 음악 세계로 이끌어줄 서점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었으리라. 그만큼 음악의 바다는 넓고 깊으니까.

 

초원서점 10월 행사 일정

10월 15일~11월 19일 초원살롱-노랫말 들리는 밤

노래 가사에 담긴 시대상과 음악가의 삶을 토대로 한국 대중 음악사를 돌아본다. 격주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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