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페오 음악박물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5월 18일 9:00 오전

문화공간

 

오르페오 음악박물관

소리나는 박물관을 꿈꾸다

 

 

부산에서 온 합주단을 보려고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이니 한적한 시골 교회가 모처럼 북적였다. 그날 현악 8중주단의 소리가 공명시킨 것은 교회당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마음도 음악으로 울렸다. 1980년대 중반이었다. 단 한 번의 연주회였지만, 첼로와 바이올린, 비올라를 처음 보는 김해 아이들에게 미친 영향은 적지 않았다. 그들 중 한 아이는 오케스트라의 첼리스트가 됐고, 다른 아이는 음악박물관의 관장이 되어 이색적인 악기를 모았다. 오르페오 음악박물관 신재현 관장의 회상이다.

오르페오 음악박물관(성남시 분당구)은 일반적인 박물관과 외관부터 다르다. 신도시 주택가의 건물 지하에 있다. 내부로 들어가야 진가가 드러난다.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악기·악보·교본 등 전시품 600여 점이 빽빽이 관람객을 에워싼다. 전시된 악기만 해도 바이올린의 전신 격인 고악기부터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된 팬플루트와 희귀한 이중관 튜바까지 다양하다. 모두 신 관장이 직접 수집한 것들이다. 박물관 한쪽에 걸린 12세기 양피지 악보는 2014년 구입했다. 그 스스로 악기 제작자이자 음악교육을 전공한 신 관장은 2000년부터 음악박물관 설립을 목표로 악기를 수집·연구해왔다. 2018년 2월 정식 개관했는데, 작은 박물관이어도 내실을 인정받아 1년 만에 성남시티투어 관광코스로 지정됐다.

전시된 대부분이 소리나 제대로 날까 싶을 만큼 오래된 악기들이었다. 기자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신 관장이 직접 악기들을 시연해 보였다. 이날 연주한 악기는 오카리나·바이올린베이스·오르간 등 10여 종에 달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19세기 후반 제작된 혼바이올린이었다. 축음기의 원리를 이용해 현악기와 금관악기가 섞인 음색을 냈다. 전시 해설을 하며 익숙하게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에 원래 관람객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소리를 들려주느냐 물으니 그렇단다. “악기와 관련해서 만드는 사람, 연주하는 사람,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이 바로 음악이에요. 연주되지 않는 악기는 그저 사물에 그칠 뿐이지요.” 그가 ‘소리 나는 박물관’ 즉, 체험형 전시를 지향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 악기 관리도 철저히 한다. 적정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밤낮으로 가습기와 에어컨을 틀고, 석고보드에 목자재로 벽을 덮었다.

어린이들이 단체 관람을 올 때면, 신 관장은 아이들과 함께 우쿨렐레를 연주한다. 원래 4현이지만, 아이들이 연주하기 쉽게 그가 3현으로 제작한 우쿨렐레 여러 대가 박물관에 비치되어 있었다. 아이들에게 생생한 음악교육을 해주고 싶어서란다. 이러한 바람은 그가 음악박물관을 꿈꾸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헝가리에서 음악교육을 공부한 신 관장은 우연히 마을의 작은 악기박물관을 방문했다. 악기로 빼곡한 박물관에서 수많은 숨결이 묻은 악기를 보며 살아있는 음악교육을 할 수 있겠다는 데 생각이 이르렀다. 한국에 제대로 된 악기박물관이 드물던 시절이었다. 그에게 음악의 꿈을 심어준 지난날의 경험이 다시금 떠올랐다.

처음엔 외국인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악기박물관을 세워야 한다고. 그들로부터 악기 구매처 정보를 구했고, 악기제작 사업에서 번 돈을 악기 수집에 고스란히 썼다. 외국 경매 사이트에서 희귀한 악기를 낙찰받으려 밤을 꼴딱 새우기도 수백 번. 유학 시절 어렵게 산 첼로 1대가 600여 점의 전시품이 되기까지, 20여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음악박물관이란 오랜 꿈을 이룬 소감을 물으니 “아직은 아니다”라고 한다. 지금은 완벽한 음악박물관 운영을 위한 ‘리허설 기간’이라는 것. 몇십년은 거뜬히 자립할 수 있는 박물관이 되도록 준비 중인 것들이 많다고 했다. 개인으로 흩어진 악기 수집가들을 모아 음악박물관 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박물관 입구에는 이를 위한 모금함이 마련되어 있었다. 더욱 다채로운 소리로 채워질 박물관을 기대해 본다. 관람 전 예약 문의는 오르페오 음악박물관(031-714-9767)으로.

글 박서정 기자 사진 오르페오 음악박물관

 

 

전시된 민속악기들

 

 

 

혼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신재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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