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7월 20일 9:00 오전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

피아니스트의 전설 예술이라는, 인생의 말줄임표

 

 

※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인생에서 전부를 걸어도 아깝지 않은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주세페 토르나토레(1956~)의 ‘피아니스트의 전설(The Legend of 1900)’(1998)은 유럽과 미국을 오가는 버지니아호에서 태어나 그 배와 함께 생을 마감한 한 남자의 삶에 대한 영화다. 그의 전설과 같은 이야기를 통해 인생과 사랑, 그리고 그 모든 감정과 가치를 이어주는 예술을 그려낸다. 예술과 인생을 그린 영화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1988) ‘베스트 오퍼(The best Offer)’(2013)와 함께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예술 3부작으로 불리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뒤늦게 2002년 개봉했다가 4K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2020년 재개봉했다.

 

이토록 우아한 예술

1900년 유럽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자들을 실어 나르는 거대한 배 버지니아 호에서 태어나 버림받은 아기가 있다. 처음 아기를 발견한 석탄실의 노동자 데니는 그에게 ‘1900(나인틴 헌드레드)’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1900년은 자유와 성공의 나라였던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이 시작된 20세기의 첫해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나아가 감독은 피아노 연주에 천부적 재능을 가진 1900이라는 인물을 통해 문화 다양성과 대중성을 향해 나아갔던 20세기에도 여전히 라이브 음악은 그 나름의 가치가 있음을 강조한다.

1900은 배 위에서 승객들을 위해 피아노를 연주한다. 그가 들려주는 음악은 각기 다른 색깔이다. 인생을 즐기고 싶어 하는 일등석 부자들을 위한 곡은 흥겹지만, 간절한 위안이 필요한 삼등석 서민에게는 마음을 토닥이는 음악을 선사한다. 타고난 예술가인 그는 자신의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재능을 과시하지도 않는다. 그저 음악이 필요한 곳에, 음악이 필요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곡을 연주한다.

음악의 가치를 강렬하게 전하는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피아노 대결 장면이다. 세계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젤리 롤 모턴(1890~1941)은 1900에 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 세기의 대결을 바라는 관객들 앞에서 1900은 적극적이지 않다. 그에게 음악은 대결의 수단도, 승리를 위한 도구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모턴의 음악을 듣고 일반 관객처럼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그도 잠시. 모턴이 오직 대결에서 승리하고 싶은 마음으로 고난도 기교를 선보이고는 제 실력에 감동해 스스로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본 1900은 마음을 바꾼다. 1900은 극강의 기교를 보여주는 ‘Enduring Movement’를 연주하며 모턴의 오만함을 비웃는다. 이는 기교를 과시하기 위해 연주하는 예술가를 조롱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예술의 세상

첫눈에 반한 여인이 생긴 후, 1900은 육지로 내려 가정도 이루고, 피아노 연주로 경제 활동도 해보려 한다. 인생 처음으로 배에서 내리려던 날, 그 앞에 놓인 무한대의 세상을 바라보다 그는 다시 배로 돌아온다. 배와 육지를 잇는 계단 한가운데 서서 머나먼 세상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덜컥 겁이 난 것이다. 생애 마지막 순간, 1900은 친구 맥스에게 자신이 느꼈던 두려움에 대해 털어놓는다.

“피아노를 봐. 건반은 시작과 끝이 있지. 어느 피아노나 건반은 88개야. 그건 무섭지가 않아. 무서운 건 세상이야…. 배에서 내리려고 했을 때 수백만 개의 건반이 보였어. 너무 많아서 절대로 어떻게 해볼 수 없을 것 같은 수백만 개의 건반. 그거론 연주할 수가 없어.”

평생 버지니아호가 자신의 세계였고, 그 속에서 연주하는 피아노가 자신의 전부였던 1900. 그의 모습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길이 뚜렷하게 정해져 아주 작은 세상에 갇힌 채 예술만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아는 일부 예술가의 삶을 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1900이 절대 배에서 내리지 않을 것을 직감한 맥스는 폭발을 앞둔 버지니아호 구석구석을 뒤져 1900을 찾아낸다. 그러나 두려움에 떨면서 살아가기보다는 배와 함께 사라지고 싶다는 1900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를 놓아준다.

1900의 죽음을 목도한 맥스에게 악기상 주인은 헐값으로 팔아넘겼던 그의 트럼펫을 돌려준다. 1900을 통해 악기상 주인도, 맥스도 트럼펫이 단순히 버릴 수 있는 악기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맥스는 힘들어 놓아버리려 했지만,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음악과 예술가의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태어나 한 번도 육지를 밟아보지 못한 한 남자를 통해 예술가의 삶과 예술의 가치, 나아가 우리의 삶과 그 삶의 가치를 반추하게 만든다. 삶의 끈을 놓아버린 것 같지만, 사실 놓아버린 후에 삶의 의미가 더 강해진다는 점에서 1900의 죽음은 상실이 아니다. 오히려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음악의 힘으로 다시 살아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어쩌면 예술이란 인생에 방점을 찍는 마침표가 아니라 줄임표가 되어, 우리 인생과 늘 함께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서울문화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다.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영화·문화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 | | OST

‘피아니스트의 전설’

Sony Classical SK66767

아카데미아 이탈리아나 오케스트라/아메데오 토마시(피아노)/길다 부타(피아노)/잔니 오디(색소폰)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은 ‘피아니스트의 전설’에서 제1의 주인공이 되어 영화를 이끈다. 전설적인 피아니스트가 등장하는 영화에서 환상적인 음악을 성공적으로 재현해낸다. 주인공 1990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잔잔하게 담아낸 ‘Playing love’가 대중적으로 유명하다. 피아노 대결 장면에 등장하는 ‘Enduring Movement’는 영화에서 마치 여러 개의 손이 동시에 연주하듯 보이는 것처럼 한 사람이 연주할 수 없는 곡이라 한다. 이 곡은 총 31곡이 담긴 유럽 오리지널 OST에서는 들을 수 있지만, 미국에서 21곡으로 줄여 발매된 OST에서는 들을 수 없다. 국내 출시 OST는 미국판이다.

| | | 트랙 리스트

1 1900’s Theme 2 The Legend Of The Pianist 3 The Crisis 4 The Crave 5 A Goodbye To Friends 6 Study For Three Hands 7 Playing Love 8 A Mozart Reincarnated 9 Child 10 1900’s Madness #1 11 Danny’s Blues 12 Second Crisis 13 Peacherine Rag 14 Nocturne With No Moon 15 Before The End 16 Playing Love 17 I Can And Then 18 1900’s Madness #2 19 Silent Goodbye 20 Ships And Snow 21 Lost Boys Ca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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