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EKSUK’S EYE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미국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11월 30일 9:00 오전

from GERMANY

마술피리 & 세르세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다

코로나로 인해 공연예술이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오랫동안 널리 사랑받았던 베르디, 푸치니 등의 대형 오페라에도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따르고 있다.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여러 극장이 콘체르탄테 버전을 기획하거나 작은 앙상블로도 가능한 작품을 올리는 와중에 베를린 코미셰 오퍼는 연출가 배리 코스키(1967~)의 놀라운 아이디어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환영적 이미지로 채운 ‘마술피리’

이번 시즌 배리 코스키가 선보인 작품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다. 1791년 초연된 이래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독일어 오페라이지만, 연출가는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제의 ‘카르멘’을 역동적인 댄스 오페라로 만들고, R. 슈트라우스의 ‘살로메’를 오로지 핀 조명 하나만으로 다이내믹하게 만든 코스키는 분명 자신만의 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애니메이션·연극·라이브 음악이 결합된 독창적인 스타일의 작품으로 인기 있는 영국 극단 1927의 공동 창립자 폴 배릿, 수잔 안드레이드와 함께 3차원의 무대에 2차원의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환상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작품에는 ‘1927’이란 부제가 붙었는데, 이는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가 탄생한 바로 그 해를 의미한다.
이번 프로덕션에는 모든 배역이 이중으로 마련됐다. 무대에서는 배우들이 마임을 했고, 코로나 전파 방지를 위해 간격을 유지해야 하는 가수들과 합창단은 3층 객석에 띄엄띄엄 배치됐다. 간격 유지로 인해 군데군데 사라진 오케스트라의 악기 소리는 18세기산 피아노포르테가 채웠다. 친밀함과 키치 사이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연출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와 마치 극장에서 관람하는 듯한 애니메이션, 그리고 배우들의 명확한 몸짓과 표정 등을 통해 그간 오페라를 보면서 쓰지 않았던 감각을 확장하는 흥미로운 경험으로 이끌었다. 코스키는 “이러한 이미지에 대한 집중은 모든 관객이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공연을 경험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다만 즉흥성이 없는 2차원의 애니메이션은 연주자 각각의 상황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지휘자 아이나르스 루비키스는 꽤 속도감 있게 설정된 연주 템포에 간혹 일부 가수들이 여유를 부릴라치면 부지런히 다그치며 정해진 시간에 도달하도록 박차를 가했다. 땀으로 뒤범벅이 된 지휘자와 로봇처럼 정확하게 노래해야 하는 가수 입장에서 이 프로덕션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궁금했다.

 

‘세르세’, ‘코로나’라는 제2의 연출가
한편 이번 시즌 독일 극장에서 또 다른 대안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바로크 오페라이다. 대형 오페라를 공연하기 힘든 여건이다 보니, 소수의 합창과 출연진, 그리고 비교적 규모가 작은 오케스트라로 가능한 바로크 오페라가 최적인 셈이다. 이제까지 연말에 많이 상연됐던 화려하고 흥겨운 오페라와 오페레타를 대신해서 몬테베르디의 ‘율리시스의 귀환’(바이마르), ‘오르페오’(뉘른베르크), 퍼셀의 ‘디도와 에네아스’(에센), 페르골레지의 ‘마님이 된 시녀’(프랑크푸르트), 헨델의 ‘타메를라노’(빌레펠트) 등이 무대를 채우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오퍼도 헨델의 ‘세르세’를 다시 긴급 투입했다. 출연진은 공연 전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주인공 세르세 역을 맡은 가수의 검사 결과가 공연 직전까지도 나오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그녀는 무대 뒤 어딘가에서 격리된 채 노래했고, 그녀를 대신한 연기자가 무대에서 열연을 펼쳤다. 다행히 1막 후반부에 다시 무대에 투입되며 남은 소임을 완수했다.
‘세르세’(1738)는 오페라 세리아로 분류되지만, 사실 헨델은 이 오페라 안에 희극적인 요소를 꽤 많이 삽입했다. 런던에서 줄곧 진지한 오페라 세리아만 작곡했던 헨델이었지만, 이탈리아 오페라의 유행이 끝나가는 걸 직감했던지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거지 오페라’의 흥행요소를 차용해서 희극적 장면을 집어넣고, 다카포 아리아를 과감히 삭제했다(덕분에 오페라는 드물게 공연되지만, ‘세르세’의 아리아 ‘사랑스러운 나무 그늘이여(Ombra mai fu)’ 만큼은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아리아로 널리 알려졌다).
세르세는 페르시아 황제 크세르크세스 1세의 이탈리아식 이름이다. 성경에서 유대인 에스더를 왕비로 맞은 바로 그 왕이자,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와 결전한 이가 바로 세르세다. 헨델은 오페라에서 그를 제멋대로에 사랑에 굶주린 폭군으로 묘사했다. 로맨틱 코미디 같은 스토리 라인이지만, 연출가 틸만 쾰러(1979~)는 상당히 냉소적인 시선으로 등장인물을 해석했고, 각각의 캐릭터가 가진 외로움에 집중했다. 오페라를 통해 그는 사랑은 오로지 인생의 공허함을 극복하는 도구일 뿐이라고 피력했다. 이렇게 전체적으로 어둡고 비관적인 연출가의 콘셉트는 오페라 전체를 과장된 분노와 어둠으로 가득하게 만들었다. 헨델이 배치한 유머는 설득력을 잃고 겉돌았다.
코로나로 인해 공연계가 위축되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 극장은 일단 소속 가수를 우선에 두어야 한다. 한 가수가 오늘은 모차르트를 부르고 내일은 베르디를 부르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독일 극장이지만, 예전에는 바로크만큼은 전문 가수들을 데려와 공연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쉽지 않은 세상이 됐다. 베를리오즈와 R. 슈트라우스를 잘 부르던 가수가 바로크로 엔진을 교체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바로크가 아닌 다른 작품에서 만났으면 좋았을 출중한 가수들의 넓은 비브라토와 단조로운 프레이징은 다소 피로감을 줬다. 수묵화의 담백하고 가벼운 붓놀림이 필요한 그림에 두꺼운 유화물감을 찍어 아무리 얇게 터치한다 해도 원하던 색감은 나오지 않는다.
글 오주영(성악가·독일 통신원)

 

 

 

from SWITZERLAND

야나체크
마크로풀로스 사건

연주자는 없었다.
하지만 명연으로 남았다

야나체크(1854~1928)의 명작 오페라 ‘마크로풀로스 사건’이 제네바 그랑 테아트르에서 공연됐다. 2016년 헝가리 연출가 코르넬 문드르쪼(1975~)와 벨기에 플랑드르 오페라 발레가 합작해 탄생한 프로덕션이다.
2020년 최고의 오페라로 뽑힌 제네바 그랑 테아트르 무대에 이 작품이 처음 오르는 만큼 이목이 집중됐다. 이로 인해 극장의 걱정거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보수적인 제네바 청중이 일종의 공상 과학 소설 같은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바이러스 전파 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도 도전이 되었을 것이다.
이에 극장은 몇 가지 방안을 내놨다. 모든 관객은 집에서 티켓을 인쇄해 와야 극장에 입장할 수 있었다. 공연장 내에서 의무적으로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고 객석은 거의 절반인 800석으로 축소해 열었다. 고로 10월 26일 오프닝 공연 현장은 다소 썰렁해 보였다.
이번 연주는 토마시 네토필(1975~)의 지휘로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가 맡았다. 관객을 놀라게 한 것은 여기에 있었다. 네토필은 분명 지휘대 위에 등장했지만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극장은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오케스트라 파트는 녹음된 음원을 송출하고, 출연진은 이에 맞추어 공연한다’는 안내 방송을 내보냈다. 그럼에도 10월 26일부터 11월 6일까지 공연될 예정이었던 이 작품은 2회 공연에 그친 후 29일부터는 온라인으로만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오케스트라 파트 녹음은 지난여름 7월에 진행됐다. 네토필은 극장의 녹음 공연 제안에 다소 망설였다고 전했다. “오페라 지휘란 순간의 감정에 따라 템포가 변하는데 어떻게 출연진이 메트로놈처럼 기계적으로 따라올 수 있느냐”는 의문 때문이었다.
극장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그는 스코어 전체를 선적으로 연주하는 대신, 비연속적으로 악구를 잘라가며 작업했다. 특히 야나체크는 이 작품에서 체코어를 음악적으로 변형했는데, 네토필은 그 억양을 부각하기 위해 강렬한 리듬감을 덧입혔다. 공연 중에는 연출 동선에 잘 부합하도록 음원을 조정하며 재생했다. 출연진은 그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작품은 1시간 45분간 휴식 없이 단막으로 종결됐다. 3막으로 구성된 ‘마크로풀로스 사건’은 보통 2시간에서 2시간 15분간 공연된다.

 

엘리나, 에밀리아, 엘리안, 유지니아
야나체크는 ‘마크로풀로스 사건’의 원작자 격인 극작가 카렐 차페크(1890~1938)의 동의를 받아 직접 오페라 대본 집필에 나섰다. 337세 에밀리아 마르티의 마지막 순간을 다룬 이 작품은 스릴러와 공상 과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신비로움이 가득하다. 막이 오르고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서주가 들려온다. 무언가 낯선 느낌이 먼저 찾아왔다. 라이브 연주가 아닌 녹음된 음원이 공연장을 채우는 데서 오는 이질감이다.
그러나 이런 느낌은 곧 사라진다. 극 중 오페라 가수인 에밀리아 마르티가 법정(대본상 변호사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청중은 묘한 감상에 사로잡혔다. 금발의 그녀는 선글라스와 몸에 꼭 붙는 청바지와 점퍼, 그리고 하이힐 부츠 차림으로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니는 독립적인 여성이다. 아름다운 디바이면서도 야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대본상 배경은 1920년 프라하이지만, 이번 연출은 오늘날 현대로 무대를 옮겨왔다. 옷차림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에밀리아가 치명적인 여성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337년 동안 여러 시대를 살며 그녀는 여러 남성을 유혹한다. 연출가는 에밀리아와 그녀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여러 남성 사이의 묘한 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담배를 피우는 장면(사진 참조)이나 다리를 벌리고 노골적인 자세로 의자에 앉는 장면들이 그 예다. 스위스 소프라노 라헬 하르니슈(1973~)는 강렬한 고음이 계속되는 노래도,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쉽지 않았을 연기도 탁월하게 해내 큰 갈채를 받았다. 공연 중 모든 시선은 그녀에게 집중됐다.
에밀리아는 1575년 크레타에서 태어난 히에오노무스 마크로풀로스의 딸이다. 그는 로돌프 2세의 주치의로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묘약을 만든다. 그러나 약의 효과를 로돌프 2세 앞에서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딸 ‘엘리나’에 시험한다. 그로써 그녀는 죽지 않는 긴 삶을 누리게 된다.
2막과 3막은 산장에서 일어난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장면이 영상으로 흘러나오고, 여기에 어우러지는 수려한 야냐체크의 오케스트레이션은 소름끼칠 정도로 아름답다. 때는 눈이 오는 추운 겨울로, 산장의 큰 유리문 밖으로는 아름다운 자연이 보인다. 에밀리아는 털 코트에 육상선수들이 입는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다. 가슴과 두 무릎은 붕대로 감겨있다.
그녀의 냉장고 속에는 검은 액체들이 수혈 봉투처럼 가득 차 있고 의자 곁에는 수혈기가 놓여있다. 상처투성이인 그녀는 가발마저 벗고 대머리로 임한다. 연출은 그녀를 일종의 좀비로 설정했다. 그럼에도 알베르트 그레고르와 그의 딸 크리스티나, 야로슬라브(바리톤 미하엘 크라우스 분)와 야네크(테너 줄리앙 헨릭 분) 부자(父子)는 모두 그녀에 매료됐다.
크리스티나와 연인 관계에 있지만 야네크는 에밀리아를 향해 동요한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채 ‘아버지 야로슬라브가 가지고 있는 서류 봉투를 훔쳐오라’는 그녀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움직인다. 이에 실패한 야네크는 에밀리아 앞에서 권총 자살하고 만다. 한편, 야로슬라브는 서류를 준다는 조건으로 그녀와 정사를 요구한다. 이 장면에서 에밀리아는 청중을 보고 침대에 누워 붉은 장미를 두 다리 사이에 놓는다. 각자가 원하는 욕망과 갈망이 얽히고설켜 있다는 점에서 파솔리니의 영화 ‘테오레마’와도 닮아있다.
에밀리아가 그 서류를 찾으려 한 이유는 무엇일까? 야로슬라브가 유산 상속권 투쟁 중 발견한 엘리안 맥그레고르의 서류는 모두 ‘E. M.’이라는 이니셜로 서명되어 있다. 야로슬라브는 ‘E. M.이 에밀리아 마르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며 협박했다. 에밀리아가 정사를 승낙하면서까지 그 편지를 손에 넣으려 한 이유다.
사실 그녀는 이니셜 ‘E. M.’으로 요약되는 엘리나 마크로풀로스(Elina Makropoulos), 엘리안 맥그레고르(Elian MacGregor), 유지니아 몬테즈(Eugenia Montez) 그리고 에밀리아 마르티(Emilia Marty)로 살아왔다. 이런 그녀가 편지를 찾아 헤맨 이유는 다시 300년을 살 수 있게 해줄 묘약의 비법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오랜 삶의 끝에서
마침내 그녀는 그 비법을 손에 쥐었지만 회의에 빠진다. 미라처럼 온몸을 붕대로 감은 채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죽음을 택한다. 묘약의 비법을 크리스티나에게 전해 주지만 그녀는 이것을 불사른다. 피날레는 공포 영화처럼 기묘하게 끝났다. 그녀가 죽음을 선택하는 순간 실내는 어두워지고, 초록 조명이 부분적으로 비치는 가운데 별장 안의 모든 가구가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무대 바닥으로는 검은 물결이 카펫처럼 펼쳐지고 그녀는 그 가운데 휩싸인 채 무대 아래로, 즉 땅속으로 빨려들었다. 무대 위로 ‘E. M.’ 이니셜이 일렁이며 막이 내린다. 무대는 곧 그녀의 묘비가 된다.
제네바의 청중은 뜻밖의 대단원에 갈채를 보냈고, 언론과 비평가들도 오케스트라의 부재를 망각할 만큼 감정에 휩싸인 채 객석을 떠났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작품에 빠져드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 한 번은 꼭 해볼 만한 체험임에 모두 동의했다. 출연진 또한 모두 아주 균질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단, 삶과 죽음 사이 심오한 형이상학적 문제를 구체적인 시각 디테일로만 처리해 시적인 표현이 부족한 듯 느껴졌다. 야나체크 음악은 재생된 음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승화한 영적인 차원에 도달했다.
“이상했다.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체험이다. 아무리 우리가 야나체크의 음악이 지닌 감정을 최대한으로 그려내려 노력하고, 또 뜻밖의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해도, 인간적인 어떤 것이 결여되어 있었다.” 지휘를 마친 토마스 네토필의 문장이다.
글 배윤미(파리 통신원)

 

 

from AUSTRIA

빈 연극계의 흐름

시대를 반영한 작품들

오스트리아에서 산 지 15년, 항상 아쉽게 생각하는 것이 있었다. 빈이 ‘세계 음악의 수도’라는 말에는 수긍하는 사람이 많지만, ‘세계 제일의 연극 도시’라는 자랑은 잘 드러나지 않다는 것. 이러한 사실은 한국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빈 연방 국립극장인 부르크 극장을 먼저 살펴보자. 1776년 합스부르크 황실극장으로 출발한 부르크 극장은 독일어권 최초의 극장이다. 유럽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독일 함부르크 슈타츠오퍼보다 두 배나 많은 예산과 종신 단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한 시즌 초연하는 연극만 해도 평균 22개로 가장 많다.
2018년에 발표된 ‘오스트리아의 문화재산(Austria’s Cultural Wealth)’에 의하면 빈에는 총 90개의 극장과 500여 개의 정규 극단이 있다. 전국 9개 주의 주립·시립극장에는 연출가·배우 등 정규직원 5천여 명이 종사하고 있고, 2014/15 시즌에만 1,500회 공연에 6백 9만 장의 티켓이 팔렸다. 빈 시민은 문화적으로 일종의 ‘극장 강박증’에 걸린 것 같다고 말할 정도다.
오스트리아 연방정부는 부르크 극장, 빈 국립오페라극장을 비롯하여 폴크스오퍼 등 3개의 연방 국립극장을 보조하고, 1788년 개장된 요셉슈타트 극장, 유겐트 극장, 르네상스 극장 등 빈 특별시와 지방 주립·시립극장들은 주정부와 시정부가 합하여 50%의 예산을 지원한다. 부르크 극장의 귀족성에 대항하여 설립된 폴크스오퍼와 재단 법인의 사립 극장들은 40%의 정부 보조를 받는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차원의 보조에 힘입어 오스트리아 연극은 튼튼하게 운영·발전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극장들이 상반기 시즌 시작부터 문을 닫았으나, 여름이 지나고 소강기를 맞았을 때 전국의 극장이 프로그램을 축소·조정하여 9월 말부터 하반기 시즌의 문을 열었다. 많은 극장이 전염병과 관련되거나 인류와 지구의 종말을 우려하는 주제의 연극을 올렸는데, 그중에서도 빈에서 큰 반응을 가져온 부르크 극장의 작품을 통해 올해의 분위기를 맛볼 수 있었다.

 

부르크 극장으로 보는 빈 연극계의 흐름
마틴 쿠제(1961~) 부르크 극장장은 하반기 첫 공연작품으로 스페인 극작가 페드로 칼데론 데 라 바르카(1600~1681)의 ‘인생은 꿈’을 선보였다.
바실리우스 왕은 태어난 왕자 지기스문트가 악령의 섭리로 폭군이 될 것이라는 점성가의 예언을 듣고, 왕자를 국경 요새의 지하 감옥에 유폐한다. 왕은 말년에 죄책감을 느끼고 왕자를 다시 복권시킨다. 그러나 감옥에서 꿈꾸던 이상향을 펼치려던 왕자를 의심하곤 그를 다시 유폐한다. 왕자를 동정한 귀족 로사우라가 반란군을 일으켜 왕자를 구출하지만,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그들의 꿈은 실패하고 만다.
마틴 쿠제는 코로나 팬데믹을 악용하여 권력과 세력을 확장하려는 오늘날의 종교·정치가 등의 야심가들에게 운명을 악용하지 말라는 칼데론의 교훈을 공포스런 연출로 형상했다.

 

무서운 분위기의 또 다른 연극 ‘화장터(Der Leichenverbrenner)’는 첫 장면부터 코로나19 사망자를 태우는 화장장을 연상시켰다. 체코의 극작가 라디슬라브 푸크(1923~1994)의 ‘화장터 인부’(Spalova mrtvol)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니콜라우스 하비안(1987~)이 연출과 주연을 맡았다. 작품 속 주인공은 화장터 인부로, 거대한 사회구조의 톱니로 하찮은 존재들이 된 인간들이 그럭저럭 살다가 소멸되는 것을 수없이 본다. 그는 “우리는 소멸한다. 위대한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위대한 희생을 해야한다”며 해학적으로 소멸이 당연하다고 절규한다.
이 밖에도 부르크 극장은 오늘날 수없이 많은 ‘히틀러 망령’의 재생을 풍자하는 ‘나의 투쟁(Mein Kampf)’, 그리스 고전 비극 ‘박코스의 여신도들(Die Bakchen)’, 현대화한 ‘메데아’ ‘하늘 천막(Das Himmelszelt)’ ‘귀향(Die Rueckehr)’ ‘엣다(Die Edda)’ ‘돈 카르로스(Don Karlos)’를 비롯해 이슬람 여성 문제를 다룬 ‘그와 그 무엇(The Who and The What)’ 등을 공연했다.

 

 

린츠 주립극장 ‘오이디푸스 왕’
오스트리아에는 빈을 제외한 8개 주에 수많은 주립·시립극장이 있다. 8백여 개의 옛 성에도 극장이 있으며, 카바레와 지하 포도주 창고를 개조한 여러 극장이 각 지방에 존재한다.
지방 공연 중 인기가 높았던 것은 린츠 주립극장의 연극 전용 극장에서 열린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다.
약 2,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작품은 흑사병 확산으로 테베 왕국의 온 국민이 울음과 고통의 울부짖음을 토하고 있는 것을 첫 장면으로 한다. 이들은 사제를 앞세워 왕에게 재앙을 물리치는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애원한다. 연출가 페터 비텐베르크(1960~)는 이 장면에 흑사병 대신 ‘코로나’와 ‘지진’을 첨가했다.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하고 방역복을 입었으며, 건물은 모두 무너져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한 관중은 첫 장면부터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오이디푸스 왕과 처남 크레온,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 이오카스테 왕비 등 신이 내린 운명 속에서 펼쳐지는 인물 간의 갈등과 의지 대립이 작품 전체에 흐른다. 극의 마지막, 감춰졌던 진실이 드러나며 이오카스테 왕비는 목메어 자결하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생부와 생모를 알아보지 못한 눈을 뽑고 자진 추방을 단행, 자신이 버려졌던 키타이론 산으로 향한다. 코러스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무서운 운명에 경악하며 합창을 마친다. 그러나 그들의 반향은 코로나 위기를 만들고 확산시키는 원인의 제거를 요구하고 있었다.

글 김운하

 

 

from AMERICA

유연성이 덕목

빠르게 적응하며 살아남는다

뉴욕의 대표적인 공연기관은 일찍이 시즌 취소를 선언했다.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거리두기 대면 음악회를 열려 해도, 뉴욕주법상 불가능하다. 온라인 음악회를 위한 예산도 상상을 초월한다. 2016/17 시즌 뉴욕 필하모닉의 상주 음악학자로 활동했던 뉴욕대의 마이클 베커만 교수는 “공연 해설 강좌를 진행했던 자신보다, 강의실에서 마이크를 전달하는 직원의 몸값이 훨씬 높았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하면서, 지나치게 조직이 비대해져 버린 거대 공연 단체를 에둘러 비판했다.
뉴욕의 한 바이올리니스트는, “팬데믹 시기에 뉴욕 음악계는 잠정 휴업을 선언한 대형 단체들이 아니라, 유연성을 갖춘 중소 단체들의 운영에 달렸다”고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수긍이 가는 주장이지만, 문제는 단체 규모나 예산의 크기와 상관없이 팬데믹은 누구에게나 다가온다는 점이다.

 

중소 단체의 활약

지난 10월, 뉴욕의 중견 체임버 오케스트라인 오케스트라 오브 세인트룩스(Orchestra of St. Luke’s)의 온라인 콘서트 시리즈에서 멘델스존 d단조 협주곡을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재키브는 지휘자 없이 현악 4중주단과 함께 연주했다. 평소 40명 넘게 참여하는 풀 편성의 현악 오케스트라를 1/10 수준으로 줄인 셈이다.
댈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콘서트 트럭(The Concert Truck)’을 개시해 12월 중순까지 댈러스 지역을 이동하며 음악회를 연다고 밝혔다. 약 5m 길이의 트럭을 개조했는데 소수 인원만 무대에 설 수 있다는 뜻이다. 뉴욕 필하모닉은 지난 8월 말 ‘뉴욕 필 밴드왜건(NY Phil Bandwagon)’을 시작한 바 있다.
평소 20명 내외의 연주자들이 무대에 오르는 소규모 체임버 오케스트라인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에게도 팬데믹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가을 연주회를 준비하는 오프 시즌 동안 과거 연주 영상을 편집해 게시하는 작업을 포함해, 지난 9개월간 30개가 넘는 연주 영상을 추가로 올렸다. 뉴욕의 팬데믹 상황은 조금씩 개선되어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시즌 오프닝 공연을 온라인에서나마 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정했던 일정은 전면 수정됐다. 기존의 1시간 30분 내외의 프로그램을 45분 정도로 줄이고 긴 곡 대신, 짧은 곡을 여러 곡 배치해 분위기의 변화를 꾀했다. 온라인 공연 특성상 관객의 이탈이 쉽기 때문이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볼티모어 심포니, 디트로이트 심포니와 같은 단체들 역시 비대면 연주에 맞는 프로그램으로 발 빠르게 변경하여 시즌을 이어가고 있다.

 

들을거리와 볼거리를 동시에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을 맡았던 공연기획자 송승환은 최근 인터뷰에서 지금 상황을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마트폰을 이용해 집에서 짧은 연주 영상을 올리는 것으로 소통하는 연주자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형편이 좀 나은 경우는 전문 카메라와 마이크로 촬영하거나, 집이 아닌 특별한 공간에서 색다른 영상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좋은 연주에 대한 갈증을 가진 애호가들은 갑자기 쏟아지는 수많은 영상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난감해하기도 한다. 또한 바이올리니스트 레이 첸 같은 일부 유튜브 스타를 제외한다면, 연주자 대부분은 온라인 플랫폼에 익숙하지 않다. 특히 미국 내 단체들은 연주자와의 계약과 노조 문제 때문에 연주 영상을 함부로 촬영하거나 사용하지 못한다.
냉혹하지만 현실에 대한 자구책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환경을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쩔 수 없이 온라인 플랫폼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어떤 지점이 있지 않을까? 대면 관중이 필수인 ‘연주회’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온라인 전용 콘텐츠에 대한 좋은 예시는 가까운 곳에 있다.
대중가요계에서는 신곡을 발표할 때 뮤직비디오를 함께 공개하는 것이 당연한 흐름이다. 해외에서 촬영하고 첨단 효과를 사용할 경우, 4분짜리 비디오 제작에 억대의 예산이 들어간다. 그래서 화려한 뮤직비디오를 통해 곡을 접했던 사람은 실제 가수가 무대에 나와 직접 노래하는 모습을 볼 때 상대적으로 밋밋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클래식 음악에 이런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명 작곡가의 알려진 작품을 다루거나, 팝 음악을 클래식 악기로 연주하는 커버 영상이 대부분이다.

 

살아있는 작곡가를 위한 연주 영상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는 색다른 도전을 시작했다. 지난 10월부터 이어진 프로젝트 ‘월간 스포트라이트(Monthly Spotlight)’는 잘 알려진 과거의 작곡가와 작품이 아닌, 현존하는 동시대 작곡가의 작품을 조명한다는 데 의의를 둔다.
이렇게 선정된 곡을 연주하는 모습을 뮤직비디오에 담고, 작곡가와 연주자의 인터뷰까지 제작한다. ‘월간 스포트라이트’의 가장 큰 차별점은 마치 월간지처럼 매달 새로운 뮤직비디오가 발표된다는 것이다.
10월 ‘월간 스포트라이트’에서는 작곡가 김택수(1980~)의 바이올린 듀엣곡 ‘잊힌 깽깽이 주자들을 위한 오마주(Homage to Anonymous Ancient Fiddlers)’를 선정해 두 편의 뮤직비디오와 세 편의 인터뷰 영상을 제작했다. 작곡가와 연주자를 위한 장을 마련하고, 현대음악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기 위해서다. 청중에게는 볼거리까지 제공하는 점도 매력적이다.
11월은 뉴욕 출신의 작곡가 앨빈 싱글턴(1940~)의 무반주 비올라 독주곡을 비올리스트 조던 박(1994~)이 연주한다. 추후 외르크 비트만(1973~), 사무엘 아들러(1928~), 앤드루 노먼(1979~), 그리고 프린스턴 대학 작곡과 교수 서주리(1981~)의 작품이 ‘월간 스포트라이트’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글 김동민(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Leave a reply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