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원 홀딱 반하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3월 1일 12:00 오전

다시 태어나면 첼로를 할 거냐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악기를 한다면’ 첼로를 하겠다고 답합니다. 다시 어머니의 아이로 태어난다면 음악을, 그래서 첼로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노래를 불러주셨습니다. 이후에도 늘 불러주셨습니다. 저는 연주를 아주 망치면, 때론 잠을 못 이룰 만큼 예민해집니다. 한밤중에 집 밖을 뱅글뱅글 돌기도 하고, 무대에서 틀린 곳을 부질없이 방에서 혼자 연주해보기도 합니다. 그 ‘혼자 있고 싶어지는 순간’이 두렵다면 연주자가 되기 힘들 겁니다. 하루라도 첼로를 잡지 않으면, 다시 감각을 되돌려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다 첼로를 잡게 되면, 조금 촌스러운 표현이지만, 좋습니다. 개방현을 긋고 그 울림이 몸에서 느껴지는 순간이 좋습니다. 나는 아직도 내가 ‘소리를 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소리가 나왔으면’ 합니다. 소리를 내는 게 아니고, 소리가 나기를 희망합니다. 너무 어려운 얘기인가요?

 


▲ 인터뷰이 첼리스트 양성원
인터뷰어 박용완 편집장

2013년 2월 4일 오후 8시
월간객석 사옥 갤러리 정미소

안녕하세요, 월간객석 편집장 박용완입니다. 예술가와 기자가 밀실에서 진행해온 인터뷰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다 함께 홀딱 벗고 깨고 반하는 시간. 월간객석 오픈인터뷰 ‘홀딱’에 와주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홀딱’ 다섯 번째 주인공은 첼리스트 양성원 씨입니다. 박수로 맞이해주십시오.
양성원이 좌중의 박수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양성원 씨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인터뷰도 많이 하셨고, 또 제1회 객석예술인상 수상자이기도 해서 특히 ‘객석’ 독자라면 지면으로 자주 만나 온 음악가일 겁니다. 그래서인지 홀딱 벗길 수 있겠냐, 뭘 더 홀딱 반하게 할 수 있겠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좀 들었습니다. 선생님, 오늘 어떤 각오로 나오셨나요?
제가 ‘홀딱’ 반해서 왔습니다. 인터뷰는 특정 매체의 기자와 만나 일대일로 하는 건데, 이렇게 멋있는 공간에서 여러분을 만나게 되니 참 좋아요. 저는 정미소가 정말 맘에 듭니다. 몇 년 전 이 아래 극장에서 멋진 프로젝트를 했고, 또 (등 뒤를 가리키며) 이 벽도 마음에 들고요. 너무 화려하지 않은 장소에서 이렇게 열어놓고, 솔직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점에 반했습니다.

안식년이었던 지난 한 해는 어떻게 보내셨나요?
영국에 있으면서 로열 아카데미에서 강의도 하고, 연주도 많이 했습니다. 또 오래전부터 작업하고 싶었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여섯 곡, 전 36악장의 화성ㆍ프레이징ㆍ아티큘레이션을 설명하는 강의를 제작했습니다. 3월 초면 웹사이트(www.classicpot.co.kr)ㆍ스마트폰ㆍ태블릿 PC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만드는 과정에서 한두 번 포기하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 너무 큰 작업이었고, 생각보다 많은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오늘(2월 4일) 오전에 마지막 편집이 완성됐고, 프로모션 비디오를 오후에 받았습니다. 욕심은 역시 욕심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왜 이런 작업을 했느냐 하면,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ㆍ유럽ㆍ일본 등에서 마스터클래스를 할 때마다 항상 반복했던 점을 영상에 담고 싶었습니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아주 어린 나이에 시작해 대학 입시는 물론 대학원ㆍ국제 콩쿠르… 그 이상의 연주를 다니는 전 세계 모든 첼리스트가 겪어야 하고 넘어야 하는 작품입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항상 공부해야 하고요. 또 전 세계에는 많은 아마추어 첼리스트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가장 많이 연주하고 또 잘하고 싶어 하는 곡도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입니다. 왜 스마트폰을 염두에 두고 제작했느냐 하면, 학생들이 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낭비하기 때문입니다. 한 학교에서 다른 학교로, 혹은 지도 교수님 댁을 찾아가든, 거기서 다시 집에 가든 내내 ‘카톡’하느라 난리죠. 그 시간에 악보를 좀더 공부하면 어떨까, 생각하곤 했습니다.

인터뷰 바로 직전에 질문지를 드렸는데, 질문 세 개 정도를 묶어서 답을 해주셨네요. 앞에 학생들이 많아서인지 강의하는 듯한 말투이기도 하고.
강의를 하면 한 50분은 저 혼자 떠듭니다.

안식년이 연구년이라지만 휴식의 의미도 있습니다. 강의ㆍ연주와 바흐 프로젝트만 하고 지낸 건 아닐 텐데, 본인을 위해선 어떤 일을 하셨나요?
…….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어요?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일 년을 지내고 왔습니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라면 오래전부터 지겹게 공부하고 연주하고 가르치셨을 텐데, 지겨울 땐 없었나요?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중 한 악 장을 처음 했던 건 만 열한 살 때입니다. 그 이후에도 항상, 그 다음 수준에서 해야 하는 곡들 중엔 바흐가 있었습니다. 파리 음악원에서 연말 시험에는 무조건 바흐를, 졸업 시험에서도 바흐를 연주해야 했고, 인디애나 석사 과정에도 물론 바흐가 있었습니다. 몇 번 도전하진 않았지만 국제 콩쿠르에서도 무조건 바흐를 연주해야 했습니다. 열한 살 이후 지금까지 단 한 해도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하지 않은 적이 없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 고생이 너무나 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모든 걸 다 잊고 세 시간, 네 시간, 다섯 시간을 가만히 앉아 바흐를 연주합니다. 원래 템포보다 두세 배 느리게요. 저의 어려운 심정을 닦아내고, 모든 걸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다시 눈을 뜨고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마법 같은 게 있습니다. 그런 버릇이 있다 보니 연주여행을 떠날 때면 무조건 바흐 악보가 가방에 꼭 들어갑니다.

아내 분도 음악을 하시지요. 남편이 방에 들어가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느리게 연주하면, 저 양반이 무슨 고민이 있구나… 알아챌 수 있겠네요.
제가 그러고 있으면 그 사람도 저쪽에 가서 바흐를 합니다. 하하하!

이 강의 영상에는 스티븐 이설리스ㆍ필리프 뮐러를 비롯해 여러 첼리스트들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인상적인 점은 이들이 하나같이 ‘연주자의 개성’을 강조한다는 겁니다. 첼리스트에겐 자유를. 그렇다면 정작 바흐가 이 작품에서 원한 것은 무엇일까요?
어느 누구라도 “바로 이것이다”라고 근거를 대고 확답할 수 없을 겁니다. 다만 제 생각엔 절대적으로 ‘바흐 자신의 큰 도전’이었습니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이전에 첼로라는 악기는 거의 연주되지 않았고, 연주가 됐을 적에는 당시의 슈퍼스타였던 비올라 다 감바를 반주하는 역할이었습니다. 혹은 바이올린을요. 베이스를 맡은 악기였지, 독주ㆍ협주곡을 위한 악기가 아니었습니다. 바흐는 이 악기를 접했을 때 무엇을 보았을까.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보지 않았을까요? 그 잠재력을 꿰뚫어본 바흐는 이 악기를 위해서, 미래를 향해 이 곡을 쓰게 된 겁니다. 어마어마한 도전이지요. 이 곡들을 하나하나 써가는 과정에는 기가 막힌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양성원이 옆에 누워 있는 첼로를 갑자기 일으켜 잡더니 1번 프렐류드의 도입부를 연주한다.
이 곡을 쓰는 순간부터 첼로의 역사는 바뀝니다. 그리고 그 첫 악장이 끝날 무렵에…
끝날 무렵부터 다음 악장으로 넘어가는 순간까지를 연주한다.
이 악기를 통해 새로운 세상이 열리리라! 그 소리가 들립니다. 동의하시나요? 동의하시죠?
좌중의 박수.

이제 “동의하시죠?” 하면 저희는 박수치는 걸로. 선생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대해 이렇게 정리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최소한으로 최대한을, 단순함 속에서 다양함을, 가장 적은 것으로 가장 많은 것을 표현한 작품.”
그야말로 가장 깊이가 있으면서 무겁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곡인데 그보다 더 어려운 건 없겠지요. 바로 ‘하나의 세계’를 그린 곡입니다. 사실 바흐의 다른 작품들에도 이런 점이 포함돼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바흐가 세상을 떠나고 40년이 흐른 뒤 처음으로 바흐 음악을 듣게 됩니다. 모테트를 듣고 주저앉아 “저 작곡가는 누구이며, 저 사람의 악보를 보고 싶다”라고 하죠. 박물관에서 악보를 보고 공부했습니다. 비록 40년 후였지만, 바흐라는 이름은 거의 잊힌 상태였습니다. 바흐는 음악가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모차르트는 그렇게 바흐를 발견했고, 베토벤이 열두 살에 처음으로 연주를 하게 됐을 때도 역시 바흐 ‘푸가의 기법’을 하게 됩니다. 바흐가 끊길 듯 말 듯 우리에게 이어져온 이유는 위대한 음악가들이 알아본 덕분입니다.

지금 스크린에 띄운 사진은 바흐 프로젝트 촬영 현장이죠, 선생님. 
양성원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 저기 어디죠?
(그제서야 돌아보며) 아, 네! 맨체스터의 베로니얼(Baronial) 홀입니다. 15세기 성 안에 기막히게 아름답고 넓은 방이 있는데, 그곳입니다. 사진을 보여드리는 건 저렇게 딱딱하고 재미없게, 카메라 세 대 앞에서 바흐가 얼마나 깊이 있는지를 설명하느라 힘들었다는 뜻에서입니다.
이어서 모두 함께 이번 바흐 프로젝트에 관한 7분짜리 영상을 감상했다.

젊게 나오신 것 같아요. 단장을 좀 하셨나요?
아니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만큼 메이크업 많이 시키는 데는 없는 것 같아요. 저기서는 그냥 하라고 해서, 그냥 했어요.

첼로를 배워보고 싶을 만큼 영상이 아름답네요. 또 악보와 화성 분석이 자막처럼 등장하니 곡의 흐름과 변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좋습니다.
화성 분석을 제가 직접 하려 했는데, 확실히 전문지식이 필요해서 파리고등음악원에서 화성을 전공한 제 조카에게 의뢰했습니다. 그런데 푸는 과정에서, 연주자가 보는 입장과 화성 전공 학자가 보는 입장이 또 다르더군요. 두 가지 솔루션이나 세 가지 솔루션, 어느 때는 솔루션이 없기도 했습니다. 바흐의 마법이 그런 것 같아요. 화성을 알아들으면 스토리를, 곡의 개성을 알게 됩니다. 정체성을 깨닫게 되죠. 번역 애플리케이션의 번역이 엉망일 때가 많은 건 단어ㆍ단어ㆍ단어의 번역이기 때문입니다. 글의 스토리를 알고 있을 때, 정확한 번역이 가능하죠. 그 스토리를 이해하기 위해 화성이 필요합니다. 음표ㆍ음표ㆍ음표로 번역을 하면 어떨 때는 허무하게 들려요. 화성을 알아듣는 순간, 더 자유로워집니다.

방금 전 멀티미디어 형식의 레슨을 봤고, 지금은 또 이렇게 얼굴을 맞대고 질문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음악의 배움은 ‘도제지간’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스승은 테크닉에서부터 정신까지, 살을 맞댄 제자에게 모든 걸 전수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술 발달로 교육 환경이 크게 변화한다 해도 일대일 레슨 풍경에 큰 변화가 없을 거라 봅니다. 선생님 생각은 어떠세요?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 완전히 변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강의 영상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다운받을 수 있게 하자고 제안한 데는 하나의 계기가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공연을 끝내고 저녁을 먹는데, 전화기가 삐삐 울렸어요. 일본에 있는 친구가 편곡이 다 됐다며 악보를 보내온 겁니다. 저는 단추 몇 개 눌러서, 그 이메일을 함께 연주할 프랑스 친구들에게 전송했죠. 도쿄에서 몇십 초 전에 받은 악보가 순간적으로 싱가포르를 거쳐 파리로 전달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기술의 발전이 모든 걸 다 가르칠 수 있을까요? 절대 아닙니다.

멀티미디어 레슨이 가능하고, 참고할 수 있는 음반ㆍ영상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상황인데, 그럼 어느 산골에 사는 천재 소녀가 레슨을 받지 않고 컴퓨터로만 공부를 해서 데뷔할 순 없을까요?
어렵겠죠. 우리에겐 감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소리를 들어야, 직접적인 울림을 느껴야 감동이 뭔지 알 수 있습니다. 산에서 모니터만 봐서는 감동이란 게 있을 수 없죠. 무엇보다도, 컴퓨터는 제일 중요한 ‘음악성’을 알려줄 수 없어요.

그럼 여기서 양성원 씨의 연주를 청해 들을까 합니다. 저는 연주자들을 많이 만나왔는데도, 그분들이 이렇게나 예민하다는 걸 오늘 또 한 번 느꼈습니다. 양성원 씨가 인터뷰 때 마이크를 쓰고 싶지 않다 하셨는데, 마이크를 들고 있다 활을 들면 감각이 무뎌지기 때문이랍니다. 선생님, 그래도 제가 막 마이크를 들이밀긴 했는데요.
오늘은 ‘인터뷰’를 하러 왔으니까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저희 활은 80그램 혹은 그것도 채 되지 않습니다. 이걸 긴 거리에 놓고 예민하게 밸런스를 맞춰야 하니, 나무 젓가락 쓰다가 아주 무거운 쇠 젓가락을 든 느낌이죠. 한 가지 부탁을 드릴게요. 안 찍으셨음 좋겠고, 특히 안 올리셨음 좋겠습니다.
양성원은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3번의 사라반드를 연주했다.

지금부터 관객들과의 질문 답변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김찬미 씨가 이런 질문을 보내주셨습니다. “저는 양성원 선생님의 연주에 홀딱 빠져 사는 30대 직장인입니다. 햇수로 3년 전, 오랜 로망이었던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선생님의 연주를 듣고 더욱 첼로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계속되는 연주회로 연습만으로도 빠듯한 일정을 보내실 것 같은데, 연주회가 아닌 자기 자신만을 위한 연주도 하시는지요? 그럴 때는 어떤 곡을 주로 연주하시는지?”
앞서 얘기했듯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 바흐를 연주하곤 합니다. 저 자신을 위해서는 절대 안 하고요. 식구를 위해서, 또는 다른 분야 예술가들의 작업을 보고 난 후에 연주를 하기도 합니다.

이어서 지덕연 씨의 질문입니다. “중2 남자아이를 둔 평범한 40대 아줌마인데 첼로 배운 지 얼마 안 돼서 연습만 하면 팔다리 어깨 쑤시는 것은 물론 다리에도 쥐가 나는 초보입니다. 연세대 학생들과 수업할 때 악보를 뒤집어 두고 연주하라고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인지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수업할 때 영어를 많이 섞어서 합니다. 모든 악보를 ‘upside down’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 “You have to know upside down”이라고 말한 것인데, 그야말로 번역 애플리케이션으로 해석하면 ‘거꾸로’가 되겠군요. 저는 뒤집어놓을 만큼 알아야 한다, 그만큼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는 뜻이었는데. 그런데 정말 뒤집어놓고도 알아볼 수 있으면 속속들이 아는 거겠네요.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학기 시작할 때 방학 동안 뭘 했는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해볼까요.

지덕연 씨 질문 하나 더 하겠습니다. “클래식 음악회만 가면 잠자는 중학생 남자아이를 계속 끌고 다녀야 할까요?” 바로 저기 앉아있는 학생인가 보네요.
그럼요. 꼭 끌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근데 공연 가기 전에 낮잠을 꼭 재워주세요. 특히 청소년들이 너무 가엽게도 잠을 공연장에 와서 자요. (그 학생을 바라보며) 우리 아드님 혼자만의 얘기가 아니니까, 괜찮아요. 공연장이 아니어도 지하철ㆍ버스… 어디서든 자요.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아이들 잠은 자게 해주세요.

이로빈 씨 질문입니다. 이 분은 오늘 못 오셨지만, 지면을 통해서라도 답을 드리고 싶어 꼽았습니다. “첼로 시작한 지 넉 달째인 초보 직장인입니다. 며칠 전 회사의 제일 어른께서 바흐의 아리오소를 들려주시며 이거 하라고, 내가 들어본다고 하셨습니다. 발등에 불 떨어진 거죠.” 지금 연습하고 계시겠군요. 근데 이로빈 씨는 또 욕심도 많으세요. “어떻게 하면 너무 꾸미지 않고 듬성듬성한 듯한데 사실은 잘 정돈된 연주를 할 수 있을까요?”
이 분의 질문이 예외는 아닙니다. 다들 웃고 계시는데, 많은 어머니들이 아이가 빠른 시일 안에 일등이 되길 바랍니다. 그야말로 레슨 서너 번에 완전히 다른 차원의 첼리스트 되기를 원하는 분이 한둘이 아닙니다. 물론 그건 절대 불가능합니다. 이 분께 제가 한 가지만 말씀 드리자면, 그 연주는 ‘절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자라는 점을 메워간다고 스스로 느끼는 순간부터, 본인이 질문에서 말하신 수준으로 연주할 수 있다는 걸 아셨으면 합니다. 연주 잘했을 때보다 못했을 때, 더 발전합니다.

첼로 전공자들도 많이 오셨는데요. 공통 질문은 이겁니다. “첼로 전공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음악을 공부한다는 그 자체가 고민인 시기겠지요.
왜 이걸 하고 싶은지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왜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며 하고 싶은지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계를, 젊은 친구들을 걱정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요즘처럼 연주가 많았던 시절은 없습니다. 연주가 예술의전당ㆍ세종문화회관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아셔야 해요. 재단ㆍ단체가 많아지고 복지 프로그램이 활성화됩니다. 음악가가 교수ㆍ솔리스트ㆍ오케스트라 뮤지션, 세 가지로 나눠지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음악을 통해 나눌 수 있는 게 많아졌고, 이보다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진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질문입니다. 저에게 양성원이란 첼리스트는 가장 정통의 길을 걸으면서도, 대중이 멀게 느끼지 않는 친근한 음악가입니다. 양성원이 어떠한 파격을 선보인다 해도 진지한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이 거부감을 갖지 않고, 한편 양성원이 아주 어려운 현대음악을 연주한다 해도 가서 들어보면 왠지 어려울 것 같지 않은… 선생님은 그런 음악가입니다. 반면, 어떤 음악가들을 떠올리면 그 명성만큼이나 차갑고 이질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일종의 경외심 같은 것일 수도 있는데요. 그런 경외심이 클래식 음악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한국ㆍ프랑스ㆍ영국ㆍ미국 등을 오가며 공부하고 가르치고, 또 연주하고 계시는데 클래식 음악에 대한 막연한 경외심, 그리고 두려움은 외국에서도 마찬가진가요?
그곳에도 말씀하신 경외심 같은 게 있습니다. 정통의 홀과 오케스트라, 프로그램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오히려 청중은 우리가 젊습니다. 제 생각에 그런 경외심은 선입견에서 오는 듯해요. 저도 오랫동안 어머니ㆍ아버지 손잡고 음악회에 갔었는데 “조용히 해야 한다, 절대로 소리 내면 안 된다”라는 얘기를 듣고 들어갔어요. 그 인상이 오래 갔습니다. 그게 너무 엄하게 느껴졌고, 아직도 가끔은 엄하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용해야 하는 건, 다름 아닌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아서 한두 페이지 앞으로 돌아가 다시 읽어볼 때가 있죠. 여기 이 부분을 놓쳐서 이해가 안 됐구나, 하면서요.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곡일수록 한 음 한 음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휴대전화가 울린다거나 옆 사람이 심하게 움직이거나 해서 터닝포인트를 놓치면, 치명적입니다. 모든 청중이 100퍼센트 음악에 몰입할 때가 있는데, 그때가 바로 명곡이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명곡이 연주됐다고 해서 명곡을 들으신 건 아닙니다.

준비된 관객 질문이 끝나고, 현장에서 즉석으로 질문을 받았다. 지면 관계상 그중 두 가지를 소개한다.
“바흐를 배우며 제 인생에 두 번의 쇼크가 있었는데, 그중 첫 번째가 선생님께 바흐를 배우며 접근했을 때입니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낭만 스타일의 바흐를,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유일한 분이 양성원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낭만 스타일로 바흐를 연주하는 학생들을 보면 어떠세요?” _연세대 제자 출신의 첼리스트
우선 그 선생님을 평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가 낭만 스타일의 바흐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제 바흐가 낭만 스타일이라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다만 바흐만큼 낭만적인 음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해석에 있어 역사에 남을 두 사람을 꼽자면 파블로 카살스와 아너르 빌스마입니다. 카살스 이후의 모든 첼리스트들은 카살스의 영향을 받은 연주와 녹음을 했고, 빌스마 이후의 모든 첼리스트들은 빌스마 혹은 카살스의 영향을 받고 연주와 녹음을 합니다. 두 분의 연주는 충격적으로 다르지만, 두 분의 공통점은 화성을 이해하고 연주한다는 점입니다.

“도레미와 오선만 아는 상태로 스무 살에 대학에서 첼로를 시작해 이제 십 년이 됐습니다. 첼로 전공자가 아닌, 첼로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아마추어 첼리스트와 팬들을 위해 평소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_서른 살의 직장인 아마추어 첼리스트
항상 생각하지요! 바쁘고 힘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첼로를 한다는 데 진짜 박수를 쳐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첼로는 혼자 하기에 벅찬 악기입니다. 음악을 사랑하는지, 첼로를 통한 음악을 사랑하는지, 앙상블을 통한 즐거움을 느끼는지… 그런 걸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취미로 사진을 찍습니다. 청각에 치여 살아서 시각으로 자신을 충족시켜야 하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먹돌이(먹보)’입니다. 감각을 붓으로 느끼는 것도 좋아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악보의 도레미파를 ‘ABCDㆍ일이삼사’로 생각하지 말고 내 청각, 내 감정, 내 안의 혼과 연결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럼 더 넓게 보이실 겁니다.

그럼 이제 ‘홀딱’의 마지막 순서, 다시 쓰는 바이오그래피로 넘어가겠습니다. 일반적인 프로필을 다시 쓴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양성원은 1967년 9월 2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신, 나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기 위해 태어났다.
글쎄요. 가끔 인터뷰에서 다시 태어나면 첼로를 할 거냐라는 질문을 받는데, 다시 태어났을 때 ‘악기를 한다면’ 첼로를 하겠다고 답합니다.

파리고등음악원과 인디애나 음대에서 필리프 뮐러ㆍ야노스 스타커와 공부했다. 대신, 그에게 처음으로 음악을 들려준, 음악을 사랑하게 해준 사람은 누구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제일 먼저 생기는 게 청각입니다. 그 청각을 통해서 어머니 목소리를 듣게 되고 외부와의 접촉이 이뤄집니다. 어머니는 제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노래를 불러주셨다는데, 그게 절대적으로 제일 영향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려서도 늘 노래를 불러주셨습니다.

양성원은 코다이 ‘무반주’ 첼로 소나타,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녹음했고, 또 연주회에 자주 올린다. 대신, 나는 이럴 때 혼자 있고 싶다.
가끔은, 아니 자주 연주를 망칩니다. 아주 망쳤을 때는, 때론 잠을 못 이룹니다. 밖에 나가서 집 건물을 뱅글뱅글 돌다가 들어올 때도 있고, 방에서 틀린 곳을 연주할 때도 있고, 좀 많이 예민해집니다. ‘혼자 있을 때’를 이겨낼 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혼자 있고 싶어질 그 순간이 두려우면 공연을 못 할 거예요. 혼자 있고 싶을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해야 하는 게 연주이지 싶어요.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양성원은 지난 2012년 안식년을 가졌다. 대신, 내가 진짜 쉬어본 적이 있다면 언제다.
스키 타다 다쳐서 깁스를 하고 석 달간 첼로를 못 건드렸습니다. 쉬었다기보다, 하루에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종종 그렇게 살아야지 했는데, 어림없어요.

내 손에 첼로가 없을 때면 내 마음은 이렇다.
하루나 이틀은 쉬어보지만 사흘 이상 쉬기는 어려울 겁니다. 가끔 일요일에 첼로 케이스를 일부러 안 열 때가 있는데, 다시 감각을 되돌려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내 손에 첼로가 있을 때면 내 마음은 이렇다.
조금 촌스럽지만, 좋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개방현을 긋고, 첼로의 울림이 몸에서 느껴지는 그 순간이 참 좋습니다.

양성원은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이러이러한 평을 들었다. 대신, 지금 나 자신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아직도 저는 제가 ‘소리를 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언젠가는 ‘소리가 나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첼로를 하고 있습니다. 그 희망을 얘기해주고 싶어요.

*양성원은 이번 봄, 한국ㆍ일본ㆍ프랑스에서 총 9회의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연주회를 갖는다. 3월 16일 여수 예울마루ㆍ21일 서울 LG아트센터ㆍ23일 부산영화의전당ㆍ30일 대구북구문화예술회관. 한편 양성원이 예술감독을 맡은 평촌아트홀 실내악축제는 3월 20일부터 23일까지 이어진다.

글 박용완(spirate@) 사진 심규태(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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