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관연주자 조성현·함경·김한

우리는 간다, 음악과 함께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12월 1일 12:00 오전

세계 속에서 새 길을 내어가는, 세 청년의 이야기

 

“한국 관악 주자들의 유명 오케스트라 입단 역사는 짧고, 그 사례 또한 매우 적다는 점에서 지금 우리의 젊은 연주자들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음악평론가 송현민은 지난해 베를린에서 활동 중인 유성권(바순)·조성현(플루트)·함경(오보에)과의 인터뷰를 통해 관악 주자들은 오케스트라 입단을 통해 빛을 보는 경우가 많은데, 명성 높은 오케스트라일수록 입단하기가 상당히 어렵고, 전통과 명성을 지난 단체라면 음악 외적 부분까지 신경 쓸 일이 많다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지난 10월, 우리의 젊은 관악 연주자들이 전해온 소식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조성현·함경·김한을 주축으로 결성한 파이츠 퀸텟이 칼 닐센 실내악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것. 덴마크를 대표하는 닐센의 실내악 작품 중 현악 4중주와 목관 5중주 작품을 재조명하는 이 콩쿠르는 올해 작곡가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대규모로 치러졌다. 파이츠 퀸텟은 결선에서 라벨 ‘쿠프랭의 무덤’ 편곡 버전, 장 프랑세 목관 5중주 1번, 닐센 목관 5중주 1번을 연주했다.

독일 고전어로 ‘나무’를 의미하는 ‘파이츠’. 이들은 3년 전 조성현(플루트)·함경(오보에)·김한(클라리넷)과 코야마 리에(바순)가 함께하며 목관 4중주로 시작됐고, 이후 베를린 필 아카데미에서 인연을 맺은 리카르도 실바(호른)가 합류하며 파이츠 퀸텟으로 발전했다. 목관 5중주단을 결성한지 얼마 되지 않아 2015 칼 닐센 콩쿠르에서 수상한 것은, 솔리스트로 여러 콩쿠르에서 수상했던 각각의 연주자에게 특별하고도 값진 성과였다.

2016년 6월 디토 페스티벌에 파이츠 퀸텟으로 첫 내한을 앞두고, 조성현·함경·김한이 2015년 12월 예술의전당의 ‘클래식 스타 시리즈’로 한국 관객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연주를 앞두고 세계 속에서 새 길을 만들어가는, 세 청년이 보내온 최근 소식을 전한다.

 


▲ 조성현(1990년생)은 예원학교를 거쳐 오벌린 음악원에서 에마뉘엘 파위의 스승인 미셸 드보스트를 사사했다. 이후 하노버 국립음대를 거쳐 뮌헨 국립음대에 재학 중이다. ‘카라얀 아카데미’로 불리는 베를린 필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베를린 필 정기연주회 무대에 서왔으며, 현재 이반 피셰르가 이끄는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플루트 수석으로 활동 중이다

플루티스트 조성현

베를린 필 아카데미 학생이자 베를린 필 정기연주회에 참여해왔던 저는 지난해부터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수석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베를린 필 아카데미에서 이반 피셰르와 함께한 연주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마침 그가 상임지휘자로 있는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에 플루트 수석 자리가 나서 바로 응시하게 됐고, 운 좋게 오디션에 합격했어요. 베를린 필 아카데미와 계약이 거의 1년이나 더 남은 상태라 아쉬운 마음도 컸습니다.

제가 인연을 맺은 두 단체는 과거 베를린 필하모닉, 베를린 심포니란 이름으로 서 베를린과 동 베를린을 대표하던 악단이고 지금도 세계에서 손꼽히고 있습니다. 베를린 필 아카데미에서 베를린 필의 에마뉘엘 파위 외에 유명 연주자들 곁에서 많이 배우고 경험을 쌓았다면,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에선 수석을 맡다 보니 더 적극적으로 리드해야 하더라고요.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는 아주 따뜻한 색깔을 지닌 악단이고, 단원들도 화목한 분위기라 다른 단원들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모두 편하게 챙겨주셔서 수석으로서 부담은 없는 편이에요. 그래도 아직 많이 배워나가는 중입니다.

파이츠 퀸텟은 경이와 한이 모두 같은 학교 후배였고 훌륭한 친구들이라 예전부터 같이 앙상블을 만들자고 자주 얘기했었죠. 경이와 오랜 친분이 있던 바수니스트 코야마 리에가 합류하면서 목관 4중주단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베를린 필 아카데미에서 만난 포르투갈 출신 호른 주자 리카르도 실바가 마지막으로 합류해 목관 5중주를 결성했어요. 각자 개별 활동 때문에 바쁘고, 다른 곳에 살다 보니 같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적은 편이지만, 서로 정말 친하고 마음도 잘 맞아서 리허설도 수월한 편이에요. 서로 많이 배우고, 서로가 더 열심히 하는 힘이 됩니다.

이번 예술의전당 클래식 스타 시리즈에서 선보일 곡을 위해 고민이 많았어요. 솔로나 목관 5중주가 아닌 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 세 악기의 매력을 한 무대에 보여드리고 싶어서 1부에는 각 악기를 대표하는 독주곡과 트리오 무대, 2부에선 관객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곡들을 준비했어요. 특히 플루트는 바로크 시대 독주곡이 많은 편인데요. 이번 무대에서 제가 선보일 마레의 플루트를 위한 쿠플레 ‘스페인의 라 폴리아’는 바로크적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어요. 한 번쯤 들어본 듯한 아름다운 멜로디와 변주들로 이뤄져 마음이 편안해지는 곡이죠. 현악기로 연주될 때와 또 다른 매력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골랐습니다.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요즘 베토벤과 브람스 교향곡에 다시 푹 빠졌어요. 또 앞으로 솔리스트로 가장 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바흐의 플루트 소나타 전곡이에요. 그래서 그의 다른 악기 작품들도 많이 들으면서 공부하는 중이에요. 물론 에마뉘엘 파위의 음반은 매일 챙겨 듣고 있고요. 음악 외에는 축구를 좋아해서 네이버 스포츠 페이지를 확인하거나 주요 경기를 꼭 챙겨 보는 편이죠.

한국에선 내년 3월 쳄발리스트 김희정 선생님과 금호아트홀에서 바로크 곡으로 구성된 리사이틀이 있습니다. 그때는 나무 악기로 연주할 예정이라 또 다른 매력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유럽의 여러 페스티벌에서 솔리스트와 실내악 주자로 활동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한국 관객 분들을 찾아뵐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 함경(1993년생)은 예원학교를 거쳐 트로싱겐 국립음대에 진학해 니컬러스 대니얼을 사사했고, 현재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에서 모미닉 볼렌베버를 사사 중이다. 2013년 스위스 무리 오보에바순콩쿠르 우승 및 청중상, 하인츠 홀리거 최고해석상을 수상했다. 올해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잉글리스 호른 수석에 이어, 2016년부터 하노버 슈타츠오퍼 잉글리시 호른 수석으로 활동한다

오보이스트 함경

올해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잉글리시 호른 수석을 맡은 저는 2016년부터 하노버 슈타츠오퍼 잉글리시 호른 수석으로 활동합니다. 베를린 필 아카데미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작년 말부터 유럽 오케스트라 여러 곳에 원서를 넣던 중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잉글리시 호른 수석 1년 계약직 오디션을 보았는데, 운 좋게 합격한 것 같아요. 사실 그 오디션 하루 전날까지 덴마크에 있는 오케스트라 오디션을 보고, 베를린 공항에 내리자마자 오디션장으로 곧장 갔던지라 큰 기대가 없었거든요. 그로부터 몇 주 후에 치른 하노버 슈타츠오퍼 오디션도 안 되는 게 당연하고, 되면 정말 운이 좋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메이저 오페라극장의 솔로 주자를 뽑는 자리라 다른 오케스트라에 소속된 사람은 물론, 콩쿠르에서 매번 보던 친구들을 포함해 40명 정도가 하노버 슈타츠오퍼 오디션에 왔어요. 4차까지 이어진 오디션을 거쳐 마지막 라운드 3인에 뽑혔는데, 최종 결정을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그로부터 3일 후 오케스트라 매니저에게서 합격 연락을 받았습니다.

오보에가 아닌 잉글리시 호른 수석이라 부담은 덜한 편이에요. 그래도 오케스트라에선 사람들과 음악적 의견을 많이 주고받고 안부도 물어보면서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낍니다. 원래 소심한 성격이라 처음엔 좀 힘들었는데, 시간 흐를수록 점차 해결되는 것 같아요.

젊을 때부터 시작해 꾸준히 같이 연주하는 앙상블을 만들고 싶었어요. 파이츠 퀸텟으로 함께하면서 서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주고받고, 새로운 레퍼토리에 도전해나가고 있어요. 사실 목관 5중주는 하루 종일 붙어서 연습해도 음정 맞추는 게 쉽지 않거든요. 개성이 뚜렷한 다섯 악기가 앙상블을 이뤄야 하기 때문에, 이번 콩쿠르를 위해 같이 톤 컬러를 맞추는 연습까지 할 정도로 열심히 준비했고, 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이번 내한공연을 앞두고 시대별로 다양하면서 관객에게도 흥미로울 수 있는 곡들을 고민 끝에 골랐어요. 제가 선보이는 텔레만의 오보에를 위한 12개의 환상곡 중 9번은 그의 환상곡 가운데 자주 연주되지 않는 작품이죠. E장조가 오보에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곡의 멜로디는 정말 아름다워요. 특히 2·4악장에선 비르투오소적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시간이 갈수록 체력 관리의 중요성을 느껴요. 롱런을 위해서라도 잘 챙겨 먹고 매일 조금씩 운동하려고 생각합니다. 또 매일 새로운 음악 하나씩을 빼놓지 않고 들으 려고 노력해요. 요즘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에 빠져 있는데, 특히 4번과 11번을 자주 듣습니다.

아, 최근에 벼룩시장에서 필름카메라를 하나 구입했어요. ‘객석’ 독자들을 위해 제가 찍은 사진을 선물로 보내드립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 김한(1996년생)은 예원학교와 이튼칼리지를 거쳐, 현재 길드홀음악연극학교에서 음악학사 과정을 이수(앤드루 웹스트 사사) 중이다. 2006 베이징 음악 콩쿠르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 2008 일본 클라리넷 페스티벌에서 최연소로 독주회를 가지면서 해외 페스티벌과 무대에 초대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통해 뤼베크 국립음대에서 자비네 마이어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다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지난해 6월 이튼칼리지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하고, 9월부터 런던의 길드홀음악연극학교에서 음악학사 과정을 이수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르침을 받는 앤드루 웹스터 선생님은 영국 국립오페라단에 클라리넷 주자로 계셨고, 지금은 어핑엄스쿨 음악부장으로 재직 중이세요. 이튼칼리지 시절부터 선생님을 만났는데, 음악적으로 많은 조언을 해주시고 항상 친구처럼 대해주셔서 정말 재미있게 악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지난 10월부터는 유럽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통해 뤼베크 국립음대에서 자비네 마이어 선생님께 한 학기 동안 레슨을 받고 있습니다. 자비네 마이어는 어릴 때부터 존경했던 분이고, 중학생 시절 마스터클래스를 받은 적이 있는데, 첫 레슨 때 저를 기억해주셔서 무척 기분이 좋았습니다.

선생님이 주신 첫 연습곡은 슈타미츠의 클라리넷 협주곡이었어요. 클라리넷을 처음 배우는 학생들이 연주하는 아주 쉬운 곡으로 알려져 있고, 저도 초등학교 4학년 이후 자주 연주하지 않은 곡인데, 오랜만에 다시 공부해보니 정말 재밌더라고요. 어릴 땐 느낄 수 없었던 중요한 음악 요소를 다시 발견하고, 선생님도 아주 기초적인 부분부터 철저하고 세심하게 가르쳐주셔서 재밌게 배우고 있습니다.

또 파이츠 퀸텟 멤버 모두 독일에 살고 있어서 제가 뤼베크에 있는 동안 형들이 있는 베를린으로 자주 놀러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많이 어리고 부족한데 파이츠 퀸텟으로 활동하면서 형, 누나와 친구처럼 지내고 인정받다 보니 더 신나서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특히 형들과는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어요.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해서 형들을 만나면 늘 가족 같은 느낌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목관 연주자로서 배워야 할 점을 참 많이 느껴요. 게다가 올해 칼 닐센 콩쿠르는 저희 퀸텟이 결성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간 큰 콩쿠르인데, 수상한 것도 놀라운 성과지만 그 과정을 재밌게 준비하고 저희의 음악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더 행복했어요.

이번 클래식 스타 시리즈 프로그램은 형들과 오랜 시간 동안 머리를 싸매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만들었어요. 목관 앙상블 곡이 많지 않고, 특히 플루트·오보에·클라리넷만을 위한 트리오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거든요. 트리오 외에도 각 악기의 매력과 저희의 앙상블 실력을 보여드릴 수 있는 자리가 될 것 같아요. 특히 비트만의 클라리넷을 위한 환상곡은 제가 가장 좋아하고, 또 자주 연주하는 독주곡 중 하나입니다. 외르크 비트만이 작곡가이자 클라리네티스트여서 악기의 장점과 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부분이 많고, 현대곡이지만 그리 부담스럽지 않게 들을 수 있는 곡입니다.

요즘 새로운 곡들을 접할 때면 작곡가의 의도를 생각하고, 저만의 해석을 해야 한다는 부담이 점점 커지곤 해요. 하지만 최근 류재준 선생님의 클라리넷 곡을 연주할 땐 생존한 작곡가와 대화하며 의미를 확인하고, 음악을 함께 만들 수 있어서 좋았어요.

내년 이맘때에는 정명훈/서울시향과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합니다. 제가 열두 살 때 같은 장소에서 같은 곡으로 협연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클라리넷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아름다운 곡이지만 공부할수록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곡이에요. 하지만 그사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진 심규태·이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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