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압지에서 김소희 명인의 구음과 함께 울다

해금 연주자 꽃별의 ‘거기서 들려오는 소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5월 1일 12:00 오전

안압지에서 받았던 위로
내가 김소희 명인(1917~1995)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재수할 때였다. 대학에 떨어지고 앞이 깜깜했다. 해금을 그만두어야 하나 생각했다. 하지만 여기에 다 적을 수 없는 많은 고민과 상처를 해결하지 못한 채 떠밀리듯 해금을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복잡한 마음을 안고 여행을 떠났다. 재수하는 주제에 너무 멀리 갈 수는 없어서 향한 곳이 경주였다. 3월 초, 아직 봄 같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어둑해진 저녁, 안압지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고, 몸이 움츠러들 만큼 공기가 쌀쌀했다. 우산을 쓰고 젖은 흙길을 천천히 걸었다. 날씨 때문인지 사람은 별로 없었다. 같이 가준 어머니는 멀찌감치 떨어져 걸었다. 아마도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준 것이었을 테다. 걷다 보니 불이 켜졌다. 은은한 조명이 안압지를 따스하게 밝혔다. 스산한 나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불이 켜진 안압지는 압도당할 만큼 아름다웠다. 하지만 바라볼수록 그 아름다움만큼 절망이 견고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비에 젖은 안압지를 걸으며 입에서 밑도 끝도 없이 소리가 나왔다. 중얼거리듯 흘러나오는 소리에는 해금 산조 가락도 들어 있고, 입시 곡으로 달달 외우던 정악곡도 들어 있었다. 어릴 때 듣던 자장가이기도 했고, 내가 꿈꾸는 음악인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나지막이 부르는 노래는 나의 울음이자, 나를 다독여주는 한풀이였다.

그때 나는 김소희 명인의 구음을 듣고 있었다. 선생의 입에서 쏟아진 소리가 이어폰에서 귀로, 귀에서 다시 나의 입으로 전해져 나왔다. 물론 나의 노래는 엉터리였다. 만일 누군가가 우연히 듣는다 해도 무슨 소린지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듣고 부르면서 세상에 대한 원망과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사그라졌다. 뭉쳐서 아프던 마음이 풀어지더니 가슴 깊은 곳이 몹시 뜨거워졌다. 우리 음악과 해금에 대한, 내가 미처 알지 못하던 ‘열망’ 같은 것, 혹은 ‘그리움’ 같은 것이 목구멍으로 차올랐다. 우산을 접고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드니 빗방울이 얼굴에 떨어졌다. 차가운 빗줄기가 얼굴에 닿을 때 느낀 그 감정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지금도 가끔 그 시간을 떠올린다. 안압지가 마음에 떠오를 때마다 오감에 전율 같은 것이 느껴진다. 사막처럼 갈라져 있던 나의 마음, 산산이 부서졌던 자존심, 해금의 줄을 끊어버리고 다시는 악기를 잡고 싶지 않았던 순간… 그런 것들을 품고 간 안압지에서 나는, 다시 나의 음악과 해금과 삶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익숙해지고 사랑하게 되어버린 것들이 나를 찌르고 아프게 했지만, 결국 다시 그것들을 껴안고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때 얼굴을 적시던 것이 눈물이었는지 빗물이었는지,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 찾은 안압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슬픔을 치유하는 명약, 구음
‘구음(口音)’이라고 한다. 일정한 법칙이나 악보 없이 ‘그냥 부르는 것’이 구음이다. 징 하나로 반주를 하기도 하고, 다른 악기가 추가되기도 한다. 가사 없이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부르는 입소리. 얼마나 많은 노래를 했기에 그렇게 입에서 끊임없이 가락이 흘러나오는 것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리를 듣다 보면 그런 궁금증은 사라진다. 그 소리를 따라 마음이 어디론가 흘러가기 때문이다. 잔잔하다가 급작스럽게 파도가 치고, 절벽으로 떨어져 바다 저 깊은 바닥까지 한없이 내려간다. 그렇게 폭풍 같은 날씨와 조류에 휩쓸려 저 바다 밑에 닿은 듯했는데, 다시 솟구쳐 올라 잔잔한 수면에서 따사로운 볕을 쪼인다. 굽이굽이 흘러가는 것이 우리나라 산세를 닮았고, 구구절절 사연 많은 것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닮았다.

김소희 명인의 소리는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하다. 어떤 노래든 자신의 목청에 맞게 부른다. 그리고 분위기를 압도하는 정서가 목소리에 깊이 배어 있다. 선생이 부른 여러 가지 구음이 있지만 오늘 소개하는 소리는 그중 선생의 음반 ‘입소리’(1991년 발매)에 담겨 있는 음원이다. ‘구성미가 뛰어나다’고 적으면서도 감히 ‘구성미’라는 평범한 미의 잣대를 들이대도 되는 것일까 싶어 망설여지는, 실로 대단한 연주다.
부드럽고 둥그런 징 소리, 명징하면서도 날카로운 정주 소리를 뚫고 낮은 목소리가 ‘아아’라며 가사도 없이 시작되면,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이승의 소리도, 저승의 소리도 아닌 것 같은 기분.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가려는 것 같은 소리.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어서 버텨보려 하지만, 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그 소리를 따라 어디로든 가지 않을 수 없다. 거부할 수 없는 소리인 것이다. 그렇게 안개 같은 소리가 이번엔 악기 소리로 이어진다. 진한 아쟁 소리, 대금의 울음, 거칠게 느껴지는 장구의 타점. 그것들을 아우르며 흔드는 목소리가 또다시 등장한다. 악기 각각의 처절하면서도 신명나는 연주를 기가 막히게 넘나들고, 뚫고 나온다, 그 목소리가.

앞부분, 타악기와 함께하는 소리가 저승의 소리라면, 선율 악기와 함께 부르는 뒷부분의 소리는 절절한 삶의 소리다. 왜 그렇게 느껴지는지는 모르지만, 처음엔 함께 울어주고 원망하고 체념하다 결국 음악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등을 쓸어내리며 나를 안아주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마음을 얼러주는 음악이 바로 이 구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함께 울어주는 음악이라고도 말하고 싶다. 어디선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울하거나 슬플 때, 기분 전환을 위해 즐거운 음악을 들으면 소외감을 느껴 더욱 깊은 우울과 슬픔에 빠진다고 한다. 하지만 슬픈 음악, 다르게 말하면 아픔을 표현했거나 슬픔을 담은 음악을 들으면 동질감을 느껴 오히려 울음이 해소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구음보다 좋은 ‘슬픔을 치유하는 명약’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어진 삶에

다시 가본 안압지는 시간이 멈춘 듯 그대로였다. 무언가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가. 이렇게 빠르게 세상이 변하고 삶의 방식이 달라지는 때에, 언제 찾아가도 그대로인 장소가 있어서 행복하다.

안압지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인공 정원이다. 원래 이름은 ‘월지’였는데, 본모습을 잃고 방치되었을 때 갈대와 오리, 기러기가 많다고 하여 조선의 묵객들이 붙인 이름이 ‘안압지(雁鴨池)’라고 한다. 처음 지었을 때는 궁궐이었고, 건물도 더 많았다. 지금은 연못을 중심으로 산책길이 나 있는데, 연못 주변 어디서 보아도 전체 모습이 다 보이지 않게 하여 크기를 가늠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이는 공간이 그렇게 치밀한 계산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이 놀랍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여기 고여 있는 듯한 물이 깨끗하다는 것이다. 보통 연못은 물이 고여 있어 연꽃 같은 식물이 없으면 썩고 만다. 하지만 안압지 물속에는 식물이 거의 살지 않는다. 연꽃이 가득하면 못이 답답하고 작아 보이므로 특정 장소에만 연꽃이 필 수 있게 조성했단다. 그렇다면 어떻게 갇힌 물이 깨끗한가. 여기에서 안압지를 만든 이들의 지혜가 반짝인다. 입수부와 배수부를 만들어 물이 순환하게 만든 것이다. 연못이라면 당연히 고인 물이라고 생각하던 것은 나의 무지였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실 연못 아래에서 물이 흐르고 있던 것이다.

온기가 느껴지는 바위에 앉아 지금까지 내가 우리 음악 중에 가장 자주 들은 음악이 무얼까 생각해봤다. 아마 김소희 명인의 구음이었을 것이다. 요즘에는 다양한 우리 음악을 듣고 있지만, 내가 벽에 부딪혔던 시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던 시절, 어찌어찌 가면서도 늘 물음표를 품고 살아야 했던 그때, 나에게 필요한 건 나를 달래주고 위로해주는 음악이었다. 김소희 명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많이 울었고, 그 뛰어남에 오히려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선생의 소리가 남겨준 것은 따스함이다. 그 따스함이 바로 절망에서 다시 삶으로, 희망으로 걷게 하는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간 안압지는 다행히 춥지 않았다. 오래전 거기서 나를 달래준 음악 덕에 나는 삶으로 돌아왔고, 걷다 보니 조금씩 재밌어졌다. 절망이라는 것이 안고 있는 암담함과 무거움은, 차츰 작은 빛을 발견하는 기쁨과 이겨낼 힘을 기르는 즐거움으로 바뀌어갔다. 내가 알지 못하던 곳에서 새로운 싹을 틔우고, 틔운 싹을 아껴주니 작은 꽃을 피웠다. 절망이 코앞에 있을 때는 결코 그 너머를 상상할 수 없지만, 함께 울어주는 누군가가 있어서 그 시간을 견디게 된다. 한참 동안 앉아서 그 시간들을 돌아봤다. 누각의 아름다운 자태는 여전히 당당하고 고요했다. 수면에 비치는 누각 역시 매우 아름다웠다. 다만 수면이 사납게 흔들리면 누각도 거칠어졌고, 수면이 잔잔하면 누각도 평화로웠다. 물에 비치는 세상이 모두 그러했다. 소나무도, 바위도, 하늘도. 하지만 본래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저 그대로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를 향해 있는가, 나를 비추는 수면을 향해 있는가. 삶이 수면처럼 아무리 흔들릴지라도, 나는 그대로 당당하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봄꽃이 피기까지 수없이 바람을 맞아야 한단다. 그렇게 핀 꽃이 봄볕만 맛보면 좋겠지만, 여전히 날은 변덕스럽다. 때 아닌 비바람에 피자마자 져버리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꽃은 다시 핀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고 혹독한 겨울도 지나야 하지만, 결국 꽃은 핀다. 그래서 우리는 봄꽃을 보며 마음이 시린 것이다. 그 모든 시련을 지나 저렇게 의연하고 아름답게 꽃을 피우는 것이 너무나 고마워서.

봄꽃 아래서 이리저리 밀리면서도 웃으며 사진을 찍고, 속삭이고, 함께 걷는 사람들이 꽃 같아 보였다. 꽃 같은 사람들이 봄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해금 연주자 꽃별은 경계를 허무는 평화로운 음악을 꿈꾼다. 해금으로 세상의 수많은 삶과 이야기를 노래하는 한편, 국악방송 ‘꽃별의 맛있는 라디오’를 통해 우리 음악을 전하고 있다

사진 경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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