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필하모닉 대표 파울 뮐러 & 예술감독 발레리 게르기예프

125년 전통의 오케스트라를 지키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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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월 7일 9:00 오전

INTERVIEW

창단 125주년을 맞이한 뮌헨 필하모닉이 지난 11월 내한했다.

백스테이지에서 만난 뮐러와 게르기예프에게서, 그들이 생각하는 뮌헨 필하모닉의 전통과 색깔을 들었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 바로 발레리 게르기예프를 일컫는 말이다. 그의 이동 궤적을 추적하면 아마도 1년에 지구를 수백 바퀴는 돌고 있을 것이다. 지난 11월 21·22일 뮌헨 필하모닉 내한 공연도 그랬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일찌감치 도착해 현지 적응을 시작했지만 게르기예프는 21일 공연 당일 오전에야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전날 밤 그는 유럽 모처의 콘서트홀 포디엄에서 또 다른 악단을 지휘하고 있었다.

게르기예프를 한국에 처음 알린 매체는 바로 본지, ‘객석’이었다. 1999년 2월 홍콩 아트페스티벌 현장에서 그를 단독 인터뷰한 바 있다. 당시 공연 일주일 전에 인터뷰 일정을 확정하고 질문지를 주고받던 여유를 20년이 지난 지금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었다. 인터뷰가 확정되었다는 기획사의 소식에도 반신반의하며 의구심에 가득 차 약속장소인 세종문화회관 백스테이지에 찾아갔지만 아니나 다를까. 마에스트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호텔에서 아직 출발하지 않았다는 소식에 좌절하고, 공연장에 도착한 뒤에도 리허설을 비롯한 공식 일정에 인터뷰는 뒤로 밀렸다. 보상심리가 동해서 뮌헨 필 대표 파울 뮐러를 집중적으로 공략(?)한 뒤 마에스트로와의 만남은 거의 포기할 즈음, 리허설을 마친 게르기예프가 본 공연을 불과 30분 남기고 인터뷰를 위해 등장했다. 촉박한 시간이었지만 인터뷰에 그는 성실하게 임했고, 스태프의 시간 재촉에도 “더 급한 사람인 내가 괜찮다는데”라며 안심시켰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지휘자와 ‘객석’의 20년 만의 재회는 이렇게 스릴 넘치는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한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 비교적 한국에 자주 오는 편인데, 어떤 인상을 가지고 있는가?

게르기예프 자주? 일본에 비하면 드물게 오는 편이다. 이 나라는 내게 늘 즐거운 곳이다. 실력 있는 젊은 한국 음악가들도 내게 늘 기쁨과 영감을 준다. PMF(태평양 뮤직 페스티벌) 예술감독으로 있으면서 그들과 함께 연주할 기회가 더 많아졌는데, 늘 그들의 재능에 놀란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심사위원장으로 2019년 6월에 개최되는 대회에서 보다 많은 젊은 한국 음악가들을 만날 것으로 고대하고 있다. 이번에는 기존의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성악 부문에 관악기 부문을 추가해서 개최한다.

2018년 뮌헨 필이 창단 125주년을 맞이했다. 악단의 성공과 최고의 명성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뮐러 우선 유명한 음악감독들을 들 수 있겠다. 역사적으로 루돌프 켐페, 세르주 첼리비다케, 제임스 러바인,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지휘봉을 들었고, 현재 게르기예프가 우리와 함께 있다. 다른 한편으로, 과거의 전통을 생기 있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무리 훌륭한 과거더라도 아무 노력 없이 보존만 하려고 들면 박물관 신세를 면치 못한다. 오케스트라는 끊임없이 국제 시류에 반응하며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하고, 정치적·사회적 환경에도 부응해야 한다. 계속해서 앞으로 진보하기 위해서는 베토벤이나 브람스를 연주하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동시대 작품을 꾸준히 연주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주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생기 부여를 위한 또 하나의 미션은 관객 개발이다. 우리 악단은 교육 프로그램이 정규 연주 프로그램과 동등한 비중으로 편성되어 있다. 예산 확보는 우리 같은 운영진의 몫이지만 관객을 가르치는 주체는 음악가들이다. 따라서 음악가들의 역할도 과거에 비해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옛날에는 공연장에 와서 리허설하고 연주하고 가버리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의 음악가들은 관객들과 직접 소통해야 한다. 모든 면에서 과거와 달라졌고, 뮌헨 필은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명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게르기예프 뮌헨 필하모닉뿐 아니라 마린스키 극장에서도 관객 개발은 중요한 미션이다. 어른들의 손에 무작정 콘서트홀로 끌려온 아이들은 지루해하고 결국 클래식 음악에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게 마련이다. 마린스키는 매년 2천 명이 넘는 4~5세 어린이들을 모아서 흥미진진한 어린이 콘서트를 100회 넘게 개최한다. 단순히 음악만 연주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음악을 해설하고, 또 발레 단원들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그러고 나면 아이들에게 색연필을 주며 그림을 그리게 하고 그 그림들을 무대에 가져오게 해서 서로 비교하며 보여준다. 이런 경험이 아이들의 성장에 영향을 주고 성인이 되어서도 콘서트로 향하는 발걸음을 끊지 않는 동기가 된다.

뮌헨 필은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악단이다. 동시대 작곡가들의 작품에 노력을 기울인다는 사실이 좀 신선하게 들린다.

뮐러 동시대 작곡가들을 소개하고자 하는 전통은 구스타프 말러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뮌헨 필은 말러의 지휘로 그의 교향곡 4번과 8번을 세계 초연했으며 이후 브루너 발터의 지휘로 ‘대지의 노래’를 초연한 악단이다. 지금도 그 전통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만 해도 한스 베르너 헨체의 작품을 자주 연주했고 3월 볼프강 림의 생일에 그의 작품을 세계 초연하기도 했다.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베른트 알로이스 침머만의 작품도 소개했다. 이러한 동시대 작품 소개는 오케스트라 정책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고전에만 매달리다 보면 언젠가는 정체에 직면하고 악단의 음악적 발전이 저해되기 때문이다. 게르기예프 체제 이후로 뮌헨 필은 고전과 현대 연주 양쪽 모두에 비교적 동등한 비중을 두고 있다.

말러와 관련해서, 뮌헨 필을 지휘하며 당시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지휘자로서 체감할 수 있는가?

게르기예프 물론이다. 물론 1백 년 전 구스타프 말러가 직접 구현했던 사운드를 경험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독특한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남아 있다. 말러 시대와 달리 지금 이 악단은 다국적 음악가로 구성되어 있다. 러시아, 유럽의 다른 지역, 미국, 아시아 출신들이 모여 있다. 그런데 그들이 내는 소리는 전혀 ‘글로벌’하다거나 ‘인터내셔널’하지 않고 전형적인 독일 사운드이다. 독일 레퍼토리를 연주할 때 이런 특성을 더욱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다. 성 플로리안 교회에서 지휘했던 브루크너 교향곡들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관현악곡에서 특히 이 점이 직접적으로 와 닿았다.

뮌헨은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도시인데, 과거 말러와 같은 혁신적인 작곡가가 환영받고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뮐러 뮌헨이란 도시의 특성이다. 바이에른의 주도로서 뮌헨은 삶의 방식은 보수적이고 전통적이지만 기술이나 문화예술 영역에서는 역사적으로 늘 최고이자 최초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아 왔다.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에서는 보수적인 정치성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도시 전경을 둘러보라. 세계적으로 중요한 혁신 기술 연구소와 회사들이 뮌헨에 자리하고 있다. 도시가 보수와 전통만을 따지면 이들을 유치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시 정부뿐만 아니라 시민들 또한 최신 트렌드에 익숙해져야 하고, 음악을 포함한 문화 활동도 여기에 포함된다. 절대 시류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긴장감을 도시 풍경에서 엿볼 수 있다.

 

 

125년을 이어온 뮌헨 필하모닉의 전통과 개성

다른 악단과 비교할 때 뮌헨 필만의 독특한 개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뮐러 악단의 연주를 들으면 그 전통을 생동감 있게 실감할 수 있다. 아주 개인적인 느낌이라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독특한 전통을 감지할 수 있다. 그 사운드는 전통적인 레퍼토리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현악 사운드는 매우 깊이 있고 아주 화사하고 부드러운데, 게르기예프가 늘 주목하고 있는 점이다. 그리고 2백 명이 넘는 단원들이 늘 하는 얘기인데, 첼리비다케가 만들어놓은 사운드가 아직도 남아 있다고 자기들끼리 말한다. 단원들은 세대가 교체되어 새로운 인물들인데 악단은 과거의 전통적인 사운드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매력적이다. 소리만으로는 전통의 현신이라 할 수 있다.

게르기예프 지휘하면 뮌헨 필의 전통을 확실히 실감할 수 있다. 오늘 연주할 말러 교향곡 1번은 뮌헨 필의 주력 레퍼토리 중 하나인데, 홀의 컨디션이 현악 사운드를 구현하기에 충분치 않아 단원들이 좀 고전하고 있다. 이밖에 브루크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베토벤, 브람스 등 독일 레퍼토리에서 특히 월등하다. 하지만 프랑스 레퍼토리와 이탈리아 오페라도 썩 훌륭하며 매우 폭넓은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다. 지휘자로서 이 악단과 함께 한 가장 인상적인 경험은 앞서 언급했듯이 성 플로리안 교회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 것이다. 음원 뿐 아니라 영상도 녹화했다. 그 과정이 그야말로 ‘삶’ 그 자체였다. 홀에서 연주만 한 것이 아니라, 브루크너가 이 교회 오르가니스트로 재직하던 시절의 사무실을 사용했다. 작곡가의 삶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작업이었다. 성 플로리안 교회에서 연주를 하며 브루크너가 악보에 구현한 음표들이 바로 이 교회의 어쿠스틱을 재현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 연주 음원은 이미 출시되었고 곧 DVD로도 발매될 예정이다.

 

 

마에스트로는 뮌헨 필과의 인연이 각별한 것으로 안다.

게르기예프 2010~2011년 뮌헨 필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곡을 연주했는데, 그때부터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이들과 일하는 것이 익숙하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연주 중 특히 4번이 만족스럽고 인상적이었는데, 이번 125주년 기념 음반에 수록되어 있다. 이 전집에 스트라빈스키의 관악곡도 하나 수록되어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게 연주되는 레퍼토리다.

뮌헨에는 뮌헨 필 말고도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과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가 있다. 이들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경쟁적인가 아니면 협동적인가?

뮐러 양쪽 모두다.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가 세 개나 상주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뮌헨은 그야말로 음악도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도이긴 하다. 뮌헨 필 공연은 늘 만석이니 다른 두 오케스트라에 뒤처지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런 경쟁은 오케스트라에 좋은 영향을 끼친다. 우리의 기량을 계속해서 끊임없이 개발해야 할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주력 레퍼토리 측면에서 비교하자면 어떠한가?

뮐러 바이에른 슈타츠오퍼는 당연히 오페라 레퍼토리에 초점을 맞춘다. 슈트라우스와 바그너 연주에 강세를 보인다. 뮌헨 필은 브루크너 연주가 독보적이며 이에 자부심을 느낀다. 방송 교향악단의 경우는 2차 대전 이후 만들어져 훨씬 역사가 짧지만 매우 훌륭하다. 또한 우리보다 동시대 음악 소개에 훨씬 더 많은 공을 들이고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마리스 얀손스를 음악감독으로 영입한 이후에는 뮌헨 필과 레퍼토리가 유사해지는 측면이 있긴 하다.

 

 

클래식 음악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게르기예프 솔직히 나는 클래식 음악의 미래에 크게 비관적이지 않다. 우리가 연주하러 가는 곳마다 만석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객석을 보며 관객들이 얼마나 젊은지 살펴본다. 미국은 훨씬 좋은 조건의 공연장을 가지고 있지만 관객들이 대부분 노년층이라 걱정스럽다. 반면 한국은 비싼 티켓 가격으로 악명이 높음에도 젊고 열정적인 젊은이들로 객석이 가득 차 있어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

노승림(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박진호(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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