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손인영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9월 14일 9:00 오전

NEW MOVEMENT

 

춤과 무용단에 새로운 움직임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손인영

 

©황필주

 

국립극장의 2020/21 시즌을 여는 첫 작품이자,
예술감독 손인영의 첫 번째 안무작인
‘다섯 오’에 관한 이야기

 

한국적 움직임은 무엇이고, 현대적 움직임은 무엇인가. 결국 한국적 창작 무용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지난해 국립무용단의 새로운 수장으로 부임한 손인영 예술감독은 무용수로 시작해 현재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이 질문과 함께했다.
손인영은 1985년 국립무용단에 입단해 7년간 단원으로 활동했다. 무용수 시절부터 안무에 대한 호기심과 꿈을 품었던 그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무용교육학을 공부하며 현대무용으로 춤의 영역을 넓혔고, 이후 성균관대에서 예술철학을 전공하며 동양철학 등으로 시야를 넓혔다. 그에게 이 모든 것은 한국적 창작 무용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 한국 전통무용을 기반으로 새로운 창작 춤을 선보이기 시작한 그는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하며 안무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후 서울예술단 무용감독, 인천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제주도립무용단 상임안무자 등 다양한 단체를 이끌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첫 둥지였던 국립무용단의 예술감독으로 돌아왔다.
무수한 과정을 거쳐 도착한 이곳에서 손인영은 과연 ‘한국적 창작 무용’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지도 거의 1년이 다 되어간다. 지금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나. 처음 무용단에 부임해 ‘설·바람’(1.24~26)을 준비하며 즐겁게 보냈다. 그러나 곧 코로나 여파로 재택근무에 돌입했고, 6월 예정이던 ‘제의’(6.5~7/LG아트센터)가 취소됐다. 예술감독으로 포부를 가지고 들어왔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모든 것이 멈추면서 해야 할 일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시간이 신작 준비를 위한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12명 이상 함께 연습할 수 없는 제한된 상황과 규격 속에서 자유로운 창작을 하기란 쉽지 않았으나, 어려운 고비를 넘기며 오랜만에 단원들과 다시 연습을 시작하니 활기가 돈다.
국립극장 아홉 번째 레퍼토리시즌 개막작으로 국립무용단의 ‘다섯 오’가 오른다. 예술감독 부임 후 첫 번째 안무작이다 보니 기대도 부담도 클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이제 내 나이쯤 되면 앞으로 내가 작품을 몇 개나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쏟아붓게 된다. 처음 3주간은 정신없이 몰입했고, 아이디어가 막히면 그림·영상·포스터·만화 등 다양한 자료를 찾아 공부했다. 이제 마지막 다잡아야 하는 시기에 와 있다.
‘다섯 오’를 통해 동양의 전통 사상인 ‘음양오행’을 춤으로 풀어낸다고. 한국적 창작 무용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순간부터 한국의 전통에 대해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동양철학도 공부했고. 작품의 주제에 대해서는 작년부터 고민했다. 그러던 중 미세먼지에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것이 내 몸과 마음을 이렇게까지 갉아먹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것이 가져온 엄청난 여파에 굉장히 놀랐다. 환경이 파괴되는 모습도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졌다. 여기서부터 ‘다섯 오’가 시작됐다. 이후 스태프들과 함께 작품을 발전시켜가는 과정에서 ‘자연’이라는 모티브가 나왔고, ‘오방’으로 연결됐다.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며 지금의 주제가 완성됐다.
움직임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는 무대디자인과 의상, 음악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개된 티저 이미지가 굉장히 모던한 이미지를 주던데, 정민선 미술감독에게 특별히 요청한 것이 있는가? 예술감독은 자신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는 자리다. 계속 공연을 해온 입장에서 나와 맞는 것 안 맞는 것 구분하게 됐다. 자기 예술성과 연관된 문제다. 그러니 스태프를 정할 때도 내 작품과 잘 맞는 사람을 찾는 게 당연하다. 안무자로서 나는 움직임을 만들고 구성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머지 부분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맡긴다. 미술감독(정민선)에게는 해외 공연에서도 간편하게 걸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달라는 메시지 정도만 전달했다. 이는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특정 장면이나 꼭 필요한 효과에 대한 코멘트 외에는 작곡가(라예송)의 아이디어에 믿고 맡긴다.
1985년 국립무용단에 입단해 7년간 단원으로 활동했다. 그동안 단원으로, 지금의 예술감독으로 국립무용단의 변화된 모습을 말한다면? 내가 무용수 시절이었을 때의 국립무용단은 ‘극(劇)무용’에 집중했다. 외부에서는 이미 한국춤의 새로운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었고. 당시 선생님들의 안무를 보며 ‘나라면 이렇게 할 텐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마 그때부터 안무가로서의 꿈이 내 안에 자리 잡은 것 같다.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시점에 앞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는데, 그에 대한 답이 ‘무언가를 더 배우고 싶고 안무를 하고 싶다’는 거였다. 대학 재학 시절에 안무법을 배웠지만, 여전히 뭔가 채워지지 않는 것 같아 유학을 떠났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도 국립무용단은 변화보다는 정체성과 역사 보전에 힘쓰고 있는 것 같았다.
국립무용단에 변화를 느낀 것은 언제부터였나. 어느 날부터 국립극장의 덩치가 커지기 시작했고, 국립무용단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안호상 극장장(2012~2017년)이 국립극장에 몰고 온 획기적인 변화 속에서 안성수 안무가와 정구호 연출가가 국립무용단과 함께하며 ‘단(壇)’(2012), ‘묵향’(2013), ‘향연’(2015) 등의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이때 홍보·마케팅에 대한 관점도 현대적으로 바뀐 것 같다. 비판도 있었지만, 동시에 많은 박수도 함께 따랐다. 아직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한국적 현대무용’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잘 모르기 때문에 계속 실험해 나가는 거고. 좋든 나쁘든 그 과정에서 나오는 모든 결과를 수렴하며 나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변화’는 ‘시도’할 때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
국립무용단에 돌아와 꼭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나. 한국적 창작무용을 통해 해외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것, 세계 무용계의 본류에 들어가는 것이다. 국립무용단은 충분히 그 가능성을 지닌 단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은 ‘세계성’이다. 세계 시장에서 보았을 때, 우리의 움직임이 ‘전통’이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하나의 독창적인 움직임으로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현재 국립무용단이 추진하고 있는 ‘전통의 현대화’나 ‘새로운 전통 쓰기’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안무에 얼마나 많은 움직임을 재료로 사용할 수 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한국무용도 그 재료 중 하나이고. 오스트리아 원주민의 움직임을 모티브로 한 이르지 킬리안(1947~)의 ‘스탬핑 그라운드’처럼, 우리만이 가진 동양적 움직임에 대한 창의적인 재해석이 필요하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 등의 해외에서는 동양적 움직임을 눈여겨보고 있고, 모티브로 많이 활용하고 있다.
해외 무대에서 본 우리 춤의 가능성은 어떤가. 막상 해외에 나가보니 큰 기대와 달리 각 무용들의 특별한 차이는 없더라. 이는 우리 춤도 충분히 세계 시장의 본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는 그 시장에서 소외당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열심히 끼어들지 않아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거다. 우리의 것을 우리가 재구성·재창작하며 더욱 적극적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해외 프로듀서, 스태프와도 협업하며 연결고리를 넓혀야 하고. 앞으로 10년 뒤를 보면서 작품에 투자해야 한다. 네덜란드와 캐나다 무용계가 어느덧 주류에 올라선 것처럼 우리도 더욱 공격적인 시도를 통해 성장해야 한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국립극장

 


국립무용단 ‘다섯 오’

9월 17~20일 달오름극장
안무 손인영, 미술감독 정민선, 음악감독 라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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