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이야기가 곧 세상에 존재하는 이야기이니_이기쁨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9월 7일 9:00 오전

ARTIST’S ESSAY

내 안의 이야기가 곧 세상에 존재하는 이야기이니

연출가 이기쁨

공연 ‘헤카베’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창작집단 LAS / ‘1인용 식탁’ ©두산아트센터

경상도, 늦둥이, 외동딸

나는 경상도 집안의 늦둥이 외동딸로 태어났다. 장손인 할아버지에 장손인 아버지에게 자식이, 아니 정확하게는 ‘아들’이 없다는 것이 집안의 큰 결함이던 시절이었다더라. 둘째 숙부의 아들을 호적에 올려 대를 이으라는 압박을, 애써 물리쳤다는 어머니의 믿기지 않는 증언까지. 1980년대 대한민국은 아직 그런 세상이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나를 어렵게 임신하셨고, 일가친척 모두 내가 아들이기를 바랐다. 나아가, 무슨 근거였는지 당연히 아들일 것이라고 믿었다. 굳건한 믿음으로 준비해둔 ‘파란색’ 육아용품은 나의 탄생과 함께 쓸모를 잃었다. 어머니는 “남자애인 줄 알고 태교를 그렇게 하는 바람에 네가 이렇게 자랐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짧은 머리가 뭐 어때서

허리까지 길던 머리카락을 초등학교 4학년 때 싹둑 잘라냈다. 머리를 묶지 않아도 되니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머리카락이 뽑혀나갈 듯 당겨 12개의 방울로 쫑쫑 묶어내던 아침들이 참 싫었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도 내 머리 길이는 단발을 넘겨본 적이 없다.

짧은 머리로 인해 오해받은 적도 수두룩하다. 한번은 귀엽게 생긴 꼬마와 그의 어머니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 적이 있었다. 땡그란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꼬마 친구에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상냥한 표정을 지으며 “안녕!”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의 어머니가 “너도 삼촌한테 인사해야지” 하셨고, 아이는 아주 예의 바르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해주었다. 내가 이 아이의 진짜 이모, 또는 고모도 아니고, 진짜 삼촌은 더더욱 아닌데… 굳이 애써서 정정해야 할까? 그런 노력이 과연 필요한 것일까? 결국,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까지 입을 꾹 다문 채 꼬마 친구에게 미소를 보내는 것으로 그날의 에피소드는 끝이 났다.

그 뒤로도 비슷한 일을 겪었고, 오해를 내버려 두는 일에도 점점 익숙해졌다. 내심 남자와 여자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데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두고 떠들어대는 말들이 왜 그리도 많던지. 나는 그저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싶었을 뿐인데. 범죄행위가 아닌 이상, 도덕과 윤리와 의리를 저버리는 파렴치한 짓이 아닌 이상,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자유롭게 하고 싶었다.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유교적 자아’와 자유롭게 나만의 길을 걷고자 하는 ‘개방적 자아’는 매 순간 싸워댔다. 깊이 고민하자면 피로했고, 더는 어떤 생각도,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덧 나는 중립이라는 가치 뒤에 숨은 회피형 인간이 되어 있었다.

 

우리의 목소리가 곧 나의 목소리임을

시끄러운 속을 가리고, 입을 다물면 해결된다고 믿고 살아온 내게 2016년은 좀 다른 해였다. 그때 나는 극단 단원들과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2016.3.2~13/산울림 소극장) * 라는 연극을 준비하고 있었다. 연극의 기획 의도는 단순했다. ‘남자끼리 나와서 이야기하는 극은 많은데 여자끼리 나와서 이야기하는 극은 너무 없으니, 여자들이 모여서 웃고 떠들 수 있는 그런 극을 좀 만들어보자!’라는 것.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가 초연됐을 때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 사건으로 인해 나는 아마도 처음으로, ‘우리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게 되었다. 그 시간을 겪으며 이 작품은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무게를 가지게 됐다. 사람들은 우리 극단을 ‘페미니즘 연극’의 선봉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어떤 의도도 담지 않고, 그저 우리가 겪은 일을 우리가 직접 말하자며 만든 이야기가 이러한 메시지를, 이러한 힘을 가진 것이었다니.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부끄러웠다. 더는 입 다물고 피할 수만은 없었다.

 

이렇게 자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목소리’가 정말로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 그리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 목소리를 담기 위해. 그렇게 제작한 작품이 연극 ‘헤카베’ ‘줄리엣과 줄리엣’ ‘1인용 식탁’과 창작뮤지컬 ‘난설’이다. 9월에 공연되는 연극 ‘나, 혜석-나로 살고저’(9.11~27/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와 10월에 공연될 연극 ‘딸에 대하여’(10.23~25/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모두 다 그 고민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내년 초에 선보일 극단의 신작 역시 마찬가지다.

작품들에는 내 이전 세대의 여성들이 살아온 세상, 지금 내가 살아가는 세상, 그리고 다음 세대가 살아갈 세상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다. 그 마음이 강해질수록, 조심성도 커진다. 올바른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과 실수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시시때때로 나를 덮친다. 고민의 갈래는 또다시 수십 가지가 되고, 매일매일이 어둠 같다. 이 두려움과 피로감이 싫어 회피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겠지.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으니 이제는 멈출 수가 없다. 내 안의 이야기가 곧 세상에 존재하는 이야기이니 이것을 잘 살피고 관객에게 곡해 없이 보여주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그리고 앞으로의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ps. 어머니, 당신의 딸은 이렇게 자라고 있습니다. 아니, 불혹의 나이가 가까워오니 이제는 죽어간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의 딸은 이렇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는 걱정 마세요.

 

*연극 ‘헤라,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2016)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세 여신의 이야기를 재창작한 작품이다. 신화 속 질투, 욕망, 분노 등 원초적 모습을 통해 오늘날 현대 여성의 공감대를 자극한다.

 

이기쁨

연출가 이기쁨(1984~)은 한양대학교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극단 드림플레이 연출부에서 활동했고, 2009년 창작집단 LAS(라스)를 창단했다. ‘대한민국 난투극’ ‘손’ ‘산책하는 침략자’ 등을 연출했다. 제1회 한국연출가협회 젊은연출가상, 제12회 대한민국 연극대상 젊은연극인상을 수상했다. 현재 창작집단 LAS 대표와 한양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러스트 임주희

피아니스트 임주희(2000~)는 장형준·신수정·강충모를 사사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취미로 그리는 그림을 SNS에 올리는 등 대중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인 젊은 연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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