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슈타츠오퍼 ‘피델리오’ & 베이스 연광철 비장함으로 무장한 새 출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10월 4일 9:00 오전

베이스 연광철

비장함으로 무장한 새 출발 베를린 슈타츠오퍼 ‘피델리오’에 출연한 베이스 연광철 지난 시즌의 우울함을 날려버린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와 주역 가수 연광철 근황

베를린에 있는 세 개의 오페라하우스를 레스토랑에 비유한다면, 도이체 오퍼는 특급호텔의 뷔페와 같고, 베리 코스키(1967~)가 이끄는 코미셰 오퍼는 유명 셰프의 퓨전 레스토랑 같다는 느낌이다. 반면 슈타츠오퍼는 귀족적인 느낌이 가장 강하다고나 할까. 냅킨의 위치, 의자의 각도조차도 흐트러짐이 없고, 카리스마 넘치는 매니저가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을 것 같은, 오랜 역사를 가진 레스토랑을 방문하는 느낌이다. 그런 베를린 슈타츠오퍼가 2021/22 시즌을 베토벤의 ‘피델리오’(8.28~9.19)로 시작했고, 베이스 연광철이 로코 역을 노래했다.

2016년에 초연된 이 프로덕션은 당시 81세의 전설적인 연출자 해리 쿠퍼(1935~2019)와 스타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1942~)의 15년 만의 협업으로 큰 기대를 모았다. 콘셉트는 좀 독특했는데, 평범한 사람들이 악보를 들고 즉흥적으로 ‘피델리오’를 해보는 ‘극중극’의 콘셉트였다. 휘황찬란한 빈의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의 배경이 단지 천 조각에 불과했음을 보여주고, 게슈타포(나치 비밀경찰)의 지하 감옥을 본뜬 무대에서 이야기가 펼쳐졌다. 소박한 일상복을 입은 등장인물들이 반복적으로 실제의 극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쿠퍼의 접근 방식은 이미 그가 코미셰 오퍼에서 수석연출가로 재임(1981~2002)하던 1997년에 선보인 ‘피델리오’에서도 이미 목격된 바 있어서 큰 호평은 없었다. 오히려 그의 친절하지 않은 연출에 대한 관객 반응은 ‘의례적인 박수’ ‘관객의 지친 박수와 빠른 퇴장’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지난해 탄생 250주년을 제대로 축하받지 못한 베토벤이 작곡한 유일한 오페라를 통해 우울했던 지난 시즌을 해소하려는 극장의 비장함이 엿보였다. 지휘를 맡은 알렉산더 소디(1982~)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를 이끌고 깔끔하면서도 안정적인 앙상블을 들려줬다. 각 출연진도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는데, 그중 우리에게 섬세한 가곡 해석으로 유명한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1967~)는 악랄한 돈 피자로 역을 맡아 열광적인 환호를 이끌어냈다. 사람은 좋지만 돈 좋아하는 속물적인 캐릭터, 로코 역을 맡은 ‘베이스 연광철’은 연출의 의도에 따라 ‘인간 연광철’이 노래하는 로코로 분했는데. 관객은 이 베를린의 캄머쟁어에게 아낌없는 박수로 화답했다. 공연에 만전을 기하면서도 오랜만에 베를린을 방문한 가족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베이스 연광철(1965~)과 전화로 인터뷰를 나눴다.

코로나로 인해 2021년 상반기까지 약 60회 정도의 연주 일정이 취소됐다고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베를린 슈타츠오퍼 전막 무대에 선 소감이 궁금합니다. 리허설이 늦게 시작해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코로나 상황 때문에 공연 스케줄이 너무 늦게 확정됐거든요. 지난 6월에 빈에서 ‘로엔그린’을 출연하고 있을 때 이 공연 제의를 받았습니다. 사실 2014년에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 ‘피델리오’를 공연했지만 대사도 프로덕션마다 다르고, 또 독일 관객 앞에서 독일 오페라를 선보이는 것은 또 다른 긴장감이 있거든요. 만약 이 오페라를 다시 하게 되면 공부할 게 많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생각보다 너무 급하게 계약하게 되어 준비 과정이 수월하지는 않았습니다. 오케스트라 리허설도 한번 밖에 못 했거든요. 그래서 본 공연은 관객 앞에서 하는 드레스 리허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대 뒤에서 그런 상황이 있었는지 상상도 못 했네요. 언급하신 긴장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거든요. 연륜의 마법인가요? 마인드 컨트롤 방법이 있는 건지요? 모든 리허설을 공연한다는 마음으로 임합니다. 그리고 실제 공연은 그동안 해왔던 것과 똑같이 무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무대에서 평소보다 더 잘하겠다는 욕심이 있으면 소리를 더 내는 등 무리하게 됩니다. 연륜이라기보다는, 오랜 시간의 경험 끝에 잘 하려고만 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는 마이너스가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과장되게 연주하다 보면 단점을 보여주게 되는데요. 리허설을 하면서 스스로의 기량과 허용치를 깨닫게 됩니다.

독일어 대사를 처리하는데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객석 끝까지 전달이 잘 되면서도 극적으로도 자연스러웠는데요. 외국어로 그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어떻게 현재의 그 ‘능력’을 갖게 되었나요? 가수는 오페라 홀 전체를 하나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 공간의 울림을 통해 자음 하나, 모음 하나가 어떻게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첫 리딩 연습은 어땠나요? 지금과 그다지 다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제 은사님이 보셨는데 ‘자라스트로를 처음 하는 사람 같지는 않구나’라고 하셨으니까요. 애초에 언어적인 감각을 타고나신 분인가 봅니다!(웃음) 언어도 사실은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음악 자체가 언어에서 시작됐고요. 노래를 하려면 먼저 텍스트를 읽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만큼 언어가 중요한 것이죠. 성악가들이 너무 소리 내는 것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성악가는 언어, 문화를 전달하는 사람, 문화에 대한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Staatsoper Berlin
FIDELIO
Musikalische Leitung: Daniel Barenboim
Inszenierung: Harry Kupfer
Bühne: Hans Schavernoch
Kostüme: Yan Tax
Licht: Olaf Freese
Besetzung:R.Trekel, E.Novak, C.Nylund, A.Schager

극장 컨디션을 날카롭게 파악하라!

개인적으로 무대 위의 연광철을 처음 본 건 2006년 ‘돈 조반니’의 레포렐로 역이었어요. 2010년에 프랑크푸르트에서 ‘돈 카를로’의 필립포 2세 역을 보았고, 이번 ‘피델리오’의 로코 역까지 보면서 음색이 세월에 바라지 않고 여전히 건강함과 탄력이 살아있다고 느꼈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요? 목소리는 하나의 악기입니다. 근육이 노화되듯이 나이가 들수록 변하죠. 주변 동료들을 보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배려가 없습니다. 악기는 변하고 있는데 테크닉은 여전히 같은 것을 사용하죠. 우리가 차를 사면 5년이 지난 후 생기는 문제와 10년 후의 문제는 다르지 않습니까? 그것을 고쳐가듯이, 마찬가지로 항상 새로운 테크닉을 적용하면서 노래해야 합니다. 결국 끊임없는 연습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몸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알기에 나이에 맞는 근육을 가질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합니다. 또한 앞서 이야기했듯이 오페라 극장의 홀 전체를 악기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같은 역을 하더라도 극장에 따라 다르게 적용해야 합니다. 가령 빈에서 노래하게 되면 오케스트라 피트가 굉장히 높이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의 피치는 높고, 극장의 규모는 크죠.

그렇다면 바이로이트처럼 오케스트라 피트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낮은 곳에서는 어떻게 하나요? 바이로이트 오케스트라 피트는 낮지만 극장 자체의 울림이 굉장히 좋기 때문에, 선명하게 들리기 위한 연구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울림이 큰 곳에서 빈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노래하면 곤란하죠.

후배 성악가들에게 정말 귀한 정보군요. 많은 것을 이루신 분인데, 여전히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목표가 있을까요? 아마 작은 극장에서 노래한다고 해도 음악적인 퀄리티나 음악적인 태도가 바뀌지 않았을 것입니다. 꿈을 너무 크게 가지면 그것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많고 그만큼 이룰 확률은 적어지죠. 저는 처음부터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고 싶다고 유학길에 오른 것은 아니었어요. 노래 자체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독일에 왔죠. 나이가 들고, 육신은 쇠퇴하는 가운데 이상적인 음악 사이에서 조화를 찾으며, 조금씩 성장하며 여기까지 온 것이라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결과도 따라왔지요. 음악은 커피처럼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커피의 신맛을 좋아하고 또 다른 이는 싫어합니다. 그래서 음악에서 최고를 꼽는다던가, ‘세계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만이 노래할 수 있는 ‘맛’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을 하고 성공을 위한 수단보다는 음악 자체에 집중해야겠지요.

베이스는 오페라에서 비중이 작기 때문에 ‘최소한 작은 아리아라도 있는 역할을 부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보신 적 없나요? 베를린 슈타츠오퍼 오디션에 섰던 날, 비록 오디션이었지만, 피아노와 무대에서 노래하게 된 그 자체로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슈타츠오퍼에서 노래하게 됐을 때는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또 노래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음에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오페라 전체에서 단 두 마디를 불렀던 적도 있었죠. 그런데도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고 또 남과 다른, 저만의 음악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저도 ‘내가 쟤보다 잘하는데 왜 더 큰 역을 주지 않나’라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저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남들이 가진 것을 갖지 못했다고 해서 제 상황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보다 더 뜨겁고 열정적이고자 했고, 감사하고자 했습니다.

 

글 오주영(성악가·독일통신원) 사진 베를린 슈타츠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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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_베이스 연광철-1
연광철 ©황필주
7_베이스 연광철-2
피델리오 ©Bernd Uhlig
7_베이스 연광철-3
피델리오 ©Bernd Uhl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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