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곡연주로 한반도를 돌다, 피아니스트 손열음, 루돌프 부흐빈더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6월 5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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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손열음 & 부흐빈더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전곡이,

한반도에서 만나다

 

5월부터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을 선보이고 있는 손열음의 행군에,

6월 부흐빈더의 베토벤 전곡 연주까지 합류한다.

두 연주자의 ‘깊이’와 ‘세계’ 살펴본다

손열음(1986~)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김대진을 사사하고, 하노버 음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 및 모차르트 협주곡 최고 연주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 네빌 매리너/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더 필즈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녹음(오닉스 레이블)한 바 있다.

©Marco Borggreve

 

루돌프 부흐빈더(1946~) 2014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 최초의 피아니스트이자, 세계 각지에서 60회 이상 연주한 베토벤 스페셜리스트이다. 2020년에는 ‘디아벨리 프로젝트’로 새로운 디아벨리 변주곡의 세계 초연 음반을 발매하며 도이치 그라모폰(DG)과 전속 계약을 맺은 바 있다.

 

많은 기대를 안고 만난 사람의 모습이 예상과 다르다면, 그 만남의 순간은 오래 간직되기 마련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1986~)과의 첫 인터뷰가 그랬다. 그녀가 스무 살을 갓 넘겼을 무렵, 독일에서 생활하고 있던 손열음이 금호아트홀에서 일련의 베토벤 소나타 시리즈를 막 끝내고 KBS FM을 찾아왔었다.

중심이 잡혀 있는 템포 감각과 센스 넘치는 다이내믹의 연주도 훌륭했지만, 마이크가 꺼졌을 때 남긴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손열음의 모차르트, 이토록 다채로운

“연주할 기회가 많지 않지만, 제가 가장 선호하는 레퍼토리는 고전파 쪽이에요. 모차르트, 베토벤의 작품을 정말 사랑하고, 더 잘 치고 싶어요.”

그저 자기 관리를 똑 부러지게 하는 신예 피아니스트가 레퍼토리의 폭이나 음악가로서의 이미지를 고려해 남긴 멘트였다고 생각했는데, 그 인식이 달라진 것은 그녀가 열광해 마지않았던 피아니스트 두 명의 이름을 들은 후였다. 마르셀 마이어(1897~ 1958)와 알렉시스 바이센베르크(1929~2012). 정돈된 조형감각과 담백한 감성으로 내적 정열을 세련되게 내보이던 두 사람의 스타일을 떠올리며, 어느 때인가 손열음이 고전파를 본격적으로 다루게 되는 시간이 다가온다면 그의 이상형들과 닮아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늘 듣는 이들보다 두세 걸음 더 나아가 청중의 공감을 기다리는 손열음답게, 2023년 봄을 강타한 그의 모차르트는 참으로 기분 좋게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

 

모차르트의 변화무쌍한 기질과 의식을 살리는 연주

차이콥스키 콩쿠르 실황을 포함한 여러 무대에서 손열음이 연주한 모차르트 영상은 늘 조회 수 최상위를 차지한다. 그의 연주에 꾸준히 지지를 보내온 팬들에게 이번 음반(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집, Naïve)과 전국 투어는 푸짐하고 맛깔나게 차려진 만찬상처럼 느껴질 듯하다. 단숨에 연주된 라이브를 듣는 듯, 자연스러운 생동감이 느껴지는 음반과 함께, 이 녹음에 흥미로운 확대경을 들이댄 것 같은 흥미 만점의 리사이틀은 6월 말까지 이어진다.

 

모차르트 곡 해석의 변화

의젓하면서도 당당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캐릭터는 비교적 초기 작품에서 두드러졌다. 소나타 3번 K281의 론도 악장에서는 여유가 느껴지는 명인기와 확대된 스케일이 느껴졌으며, 소나타 4번 K282의 두 번째 악장(미뉴에트)에서는 생략된 음표들 안에서 자연스러운 율동감을 만들어내 긴 여운을 남겼다.

피아노 소나타 7번 K309의 1악장(알레그로 콘 스피리토)에서는 단순한 악상 속에 예측 불가능한 프레이징과 아고긱으로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연출해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에서 울리던 ‘바로 그 친숙한 멜로디’를 감상하는 또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즉흥적이다 못해 때로는 충동적인 아이디어로 텍스트에 멋진 드라이브를 거는 모습은 제시부 반복 때 만들어낸 꾸밈음과 변형된 선율 등으로 구체화됐다.

소나타 10번 K330에서는 과도하지 않은 멜로디 연출이 달콤한 갈랑트 양식으로 만들어진 이 소나타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었고, 소나타 12번 K332의 2악장 아다지오와 소나타 14번 K457의 2악장 아다지오 등에서는 투명한 음색으로 관조적 감상을 뽑아내다가가도 순간적인 표정 변화를 만들어내는 페달링이 연출의 포인트였다.

따져보면 모차르트의 건반악기 소나타 속 음표들은 지극히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상징과 암시의 언어들이다. 일견 단조롭고 심심한 악상을 떠올리게도 되는 작품들에 음향적 유희를 첨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무엇보다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유효적절한 구사를 고려할 수 있는데, 손열음의 연구가 단순히 텍스트만을 들여다본 결과가 아니라는 것은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고정 팬이 많은 소나타 8번 K310에서는 오케스트라 투티와 앙상블이 오고 가는 교향악적 전개를 느끼게 했으며, 규모가 큰 소나타 13번 K333의 3악장 알레그레토 그라지오소에서 보여준 협주곡적인 진행은 작곡가의 초기 구상을 정확히 구현해 보여준 해석이었다.

오리지널리티, 특히 고전파에서의 그것은 지시어들을 철저히 분석해 지킨다는 ‘기본’에서 나온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속주로 몰아붙이곤 하는 소나타 11번 K331의 3악장 ‘터키 풍으로(Alla Turca)’의 템포 지시어는 알레그로가 아닌 알레그레토(조금 빠르게)이며, 손열음은 이번 연주에서 이 원칙을 훌륭하게 지켜냈다. 소나타 6번 K284의 마지막 변주 악장에서는 기복이 심하지 않은 다이내믹과 귀족적 정서로 고전적 단정함을 뽑아냈으며, 소나타 11번 K331의 1악장 변주는 각 변주가 지닌 율동감과 숨겨진 다성부적 요소를 찾아내 이색적인 결과물을 선보였다.

식사를 할 때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먼저 먹는 사람이 있고, 가장 맛있는 부분을 마지막까지 남겨 놓는 사람이 있다. 음식으로 따지자면 손열음의 이번 프로젝트는 후자에 가까울 수 있겠다. 진정으로 무대를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전달되는 그의 모차르트 탐험은 이제 네 번의 무대를 남겨 놓고 있다. 큰 행복감과 함께 내놓을 작곡가의 하이라이트는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부흐빈더의 베토벤, 영원히 도전하는 힘

루돌프 부흐빈더(1946~)의 베토벤은 그간 충분하다 싶을 만큼 화제에 올라 새삼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지난 3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고통스러웠던 팬데믹 동안 공교롭게 큰 생일(2020년에 탄생 250주년)을 맞았던 베토벤의 예술 세계 역시 우여곡절을 감내해야 했다. 그런 면에서 올해 6월 말부터 펼쳐지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사이클은 참으로 오랜만에 펼쳐지는 진정한 베토벤 축제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2023)

Naïve V8049

 

이번 프로젝트는 그간의 내한으로 부흐빈더의 다양한 베토벤 해석을 맛본 팬들에게 더욱 큰 반가움으로 다가올 듯한데, 이는 그가 60여 회라는 무시무시한 베토벤 사이클 ‘기록’을 세우고 있음에도 늘 새로운 시작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전곡을 연주할 때마다 새로 배웁니다. 매번 새로운 도전이죠.” 이미 세 차례나(그중 두 번은 실황 녹음)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했지만, 한 발짝씩 ‘완성된 베토벤’으로 나아가고 있는 부흐빈더의 음악적 지도와 그 방향을 최근 발매된 음원들을 통해 엿보는 것은 흥미롭다.

2021년 가을 발매된 부흐빈더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 음반은 이른바 ‘무지크페어아인 사이클’로 불린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이어진 녹음에는 다섯 명의 지휘자 이름만으로도 화려함 그 자체다. 이 중 피아노 협주곡 4번(틸레만/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은 락다운으로 무지크페어아인이 아닌 드레스덴 쿨투어 팔라스트에서 녹음되었고,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함께 한 얀손스/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녹음은 얀손스(1943~2019)의 마지막 흔적으로 남게 되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부흐빈더의 연주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무엇보다 ‘자유로움’이 될 것이다. 필자와 직접 대화를 나눴던 2021년 가을 내한 당시, 그는 “40여 년간 베토벤을 연주하고 이제야 약간 자유로워졌다”고 언급했는데, 그러한 그의 홀가분함이 건반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주요 주제를 표현할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루바토와 카덴차 패시지들에서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아고긱의 허용은 다분히 파격적이지만 듣는 이들의 호감을 자아낸다. 20여 년 전부터 오로지 실황 녹음만을 고집하고 있는 그의 선택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과부를 포함한 비르투오소적인 표현에 있어서도 자연스럽게 흔들리는 악상과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악센트 등을 그대로 수록하는 것 역시 베토벤만이 지닐 수 있는 생동감을 위한 과감한 접근 방식이다.

 

악성(樂聖)의 거대한 그늘 아래서

최근 그의 스타일에서 발견되는 놀라운 점은 베토벤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작품 속에서도 소위 범(汎) 베토벤적인 느낌이 풍겨 나온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스페셜리스트만이 이룰 수 있는 경이로움이라고 하겠는데, 대표적인 예가 2020년 도이치 그라모폰(DG)에서 발매한 ‘디아벨리 프로젝트’다.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은 1973년 텔레풍켄을 통해 발표했던 그의 실질적인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며 만들어진 녹음은 본편에 이은 또 다른 변주 열한 개로 더욱 특별해졌다. 열두 곡의 신작 변주를 계획했지만,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1933~2020)가 세상을 떠남에 따라 열한 개의 변주가 부흐빈더의 손에 의해 초연됐다. 그리고 그 흥미진진한 내용은 이듬해의 내한 공연에서도 소개됐다. 그가 만들어내는 모든 음향들은 온전히 악성의 거대한 그늘에 놓여있었다. 레라 아우어바흐의 ‘Diabellical Waltz’에 등장하는 악마적인 음향, 크리스티안 요스트의 ‘Rock it Rudi’의 경쾌한 율동감, 필립 마누리의 ‘200년 후’의 날렵한 쾌감, 막스 리히터의 ‘Diabelli’에서 울려퍼진 작곡가 특유의 포스트 미니멀리즘과 탄둔이 ‘Blue Orchid’에서 그린 무한의 공간감 등을 베토벤이라는 거대한 공통분모 속에 녹여 낼 수 있는 피아니스트는 단연코 부흐빈더 뿐일 것이다.

그가 만들어내는 베토벤은 스스로 만족을 느끼지 않기에 오래도록 멋진 모습의 물음표로 남을 듯하다. “내 인생의 끝에서 피아니스트로서의 정점을 경험하게 되기를 바라지만, 부끄럽게도 지금껏 이룬 것이 별로 없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성취해야 할 것은 점점 더 많아지죠. 베토벤의 소나타들로 말하자면, 영원히 끝내지 못할 작업처럼 생각되기도 합니다.” 베토벤을 연주하는 2023년의 부흐빈더는 여전히 도전자다.

김주영(피아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사진 파이플랜즈·빈체로

 

Performance information
손열음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회(공연마다 4곡 연주)

5월 2·6일(서울), 3일(원주), 7일(통영) 공연 완료

6월 21일 오후 7시 30분 광주 유스퀘어문화관 금호아트홀

6월 22일 오후 7시 30분 대구 수성아트피아 대공연장

6월 24일 오후 5시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6월 25일 오후 5시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

 

루돌프 부흐빈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회

6월 28·30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7월 1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7월 6·7일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7월 8·9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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