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클래식의 다음 주자 탄생기, 2023 윤이상국제콩쿠르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12월 4일 9:00 오전

HOT ISSUE

 

2023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K-클래식 다음 주자의 탄생기

 

전 우승자 임윤찬의 활약으로 더 주목받는 콩쿠르. 현장에서 보고 들은 그 열기와 화제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3년 만에 개최된 피아노 부문은 전임 우승자인 임윤찬의 성장세에 힘입어 주목도가 높았다. 26개국에서 183명의 피아니스트가 참가했으며, 10월 29일부터 본선에 진출한 17명의 참가자가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연주를 선보였다. 세 번의 라운드에서, 1·2차는 모두 독주, 결선은 이승원/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었다. 콩쿠르의 모든 라운드는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 중계됐다.

11월 4일에 열린 결선 무대, 우승을 차지한 것은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선보인 정규빈(1997~)이었다. 그리고 결선 바로 다음 날인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입상자 콘서트가 개최됐다. 갓 탄생한 입상자들의 생생한 현장을 들여다보고자, 이른 오후의 리허설 현장을 찾았다.

 

1위 정규빈

2위 김송현

3위 선율

4위 자루이 청

특별상 미소라 오자키

 

 

 

 

 

 

 

 

 

 

 

 

리허설 현장에서 만난 4인 4색의 결선 진출자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들어서자, 4위를 차지한 자루이 청(1998~, 중국)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1악장 리허설이 한참이었다. 1·2차 라운드에서 하이든의 건반 소나타로 정돈된 음색을, 라흐마니노프의 작품들에서 청중을 사로잡을 비르투오소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던 그의 강점이 엿보이는 작품이었다.

이번 콩쿠르 결선의 특징이 있다면, 네 명의 진출자가 각자의 개성으로 무장된 연주자들이었다는 것이다. 1위를 차지한 정규빈이 차분한 반묶음의 머리로 앉아 정제된 연주로 작품 전체를 조망하는 관조적인 태도를 가졌다면, 김송현(2002~, 2위)은 피아노 의자에 앉자, 무릎이 건반 밑에 곧 닿을 정도로 큰 키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압도적인 신체 조건을 갖춘 그는 의외로 섬세하고 감성적인 자세로 음악적 프레이징을 차례차례 만들어 나갔다. 결선 곡인 김송현의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연주는, 관객 투표를 거친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특별상과 유망한 한국인 연주자에게 돌아가는 박성용 영재 특별상이 모두 2위를 차지한 그에게 돌아간 이유를 납득하게 했다. 정규빈에게 명상하는 연주자의 모습이 연상됐다면, 김송현은 거인의 영혼에 깃든 섬세한 소년의 감성이 상상됐다.

이에 반해 3위를 차지한 선율(2000~)에게서는 운동선수의 움직임을 떠올리게 하는 뛰어난 탄력성이 느껴졌다.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이 가지고 있는 타악기적 주법은 그가 가진 타건의 민첩성을 강조하기에 적절했다.

 

미래를 향하는 콩쿠르의 ‘눈’

 

왼쪽부터 자루이 청(4위), 정규빈(1위), 김송현(2위), 선율(3위), 미소라 오자키(윤이상 특별상)

2003년 경남국제음악콩쿠르로 시작된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2008년에 해당 명칭으로 변경)는 한국 최초로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에 가입(2006)했다. 당시의 통영은 교통의 편의성, 콩쿠르를 개최하기 위한 숙박이나 식사 등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윤이상의 고향 통영에서 작곡가를 기리는 콩쿠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고 지자체와 관련 단체의 수고가 계속됐다. 첼로 부문 개최를 시작으로 매년 바이올린, 피아노 부문이 번갈아 열리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는 이제 20년간 쌓아온 입상자 목록이 그 자랑이다. 콩쿠르는 일찍이 실력을 갖춘 연주자들을 ‘알아보는 눈’을 갖추고자 집중했고, 이는 현재 콩쿠르를 거쳐 활발히 활동 중인 이들이 증명하고 있다.

올해 본선 진출자 17명 중 일본·중국·벨라루스 국적의 연주자가 각 한 명, 영국 국적의 연주자가 두 명,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한국 연주자였다. 일본인 진출자 미소라 오자키는 윤이상의 ‘인터루디움 A’를 가장 탁월하게 연주한 자에게 돌아가는 윤이상 특별상을 받았다. 벨라루스·영국 연주자 각 한 명이 본선 2차에 올랐지만, 대부분의 비율을 차지했던 한국인 연주자는 공교롭게도 반 이상 2차에 오르지 못했다. 국내라는 접근성과, 콩쿠르에서 탁월한 실력을 입증하고 있는 국내 젊은 연주자들의 등장 등을 고려해 본다면 한국인 연주자의 비중이 많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으나, 국제 콩쿠르에 걸맞은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없다는 점은 아쉽다. 앞으로의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는 어떠해야 할까. 언제나 그렇듯 미래는, 다음 세대에게 있다. ‘나를 발견당할 기회’로서 콩쿠르의 명성 쌓기가 계속 이어져야 할 때다.

 


INTERVIEW

 

심사위원장 김대진

상상력과 창의력을 갖춘 진출자들에 주목했다

 

김대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가 20회차를 넘어가고 있다. 한재민·임윤찬 등 해당 콩쿠르 우승자들이 많은 활약을 하면서 콩쿠르의 주목도는 올라가는 중인 것 같은데.

콩쿠르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이미 잘 알려진 연주자를 우승자로 꼽아 콩쿠르의 이름을 알리는 경우와 콩쿠르에서 먼저 실력을 알아보고 우승자로 선정한 연주자가 그 후에 더 많은 활약을 하는 경우다.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는 후자에 속한다. 자리가 잡힌 콩쿠르라는 것을 심사위원 섭외를 하면서도 느낀다. 이제 더 이상 그들에게 이 콩쿠르가 무엇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심사위원들은 조직 위원회가 들이는 세심한 정성과 프로페셔널한 운영 방식이 콩쿠르 발전에 큰 몫을 했다는 것을 느끼는 것 같다.

본선 진출자 대다수가 한국인이었다. 실력 좋은 한국 연주자들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지만 국제 콩쿠르라는 것을 떠올려 볼 때 아쉬웠다.

예비 심사가 끝났을 때는 외국인 연주자들도 다수 있었는데, 본선 일정에 각자의 사정상 많이 참여를 못 한 것 같다. 외형적인 면에서 본다면 아쉬운 점이 있을 수도 있겠다.

결선 진출자 4인은 서로 다른 개성의 연주자를 모아둔 것처럼 그 음악적 매력이 달랐다. 이런 연주자들에게 순위를 매기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네 명 중 누가 우승을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로 각자의 개성과 특징이 굉장히 뚜렷했다. 요즘은 창의력을 가진 연주자를 찾는 것이 중요한 흐름이다. 결선 다음날 있는 입상자 콘서트에서 심사위원들끼리 재밌는 이야기를 나눴다. 흔히 결선 다음 날의 공연은 긴장이 풀려 연주를 잘하기 어려운데, 이번에는 다들 오히려 입상자 콘서트에서 결선 때보다 연주를 잘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심사위원들끼리 “우리가 입상자를 잘 골랐다”며 웃었다. 콩쿠르 심사에서 중요한 관점은 ‘연주를 내일 당장 해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인가’이다. 현재 연주자로서 손색이 없는 사람을 찾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올해 콩쿠르 심사는 굉장히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그중에서 1위를 차지한 이가 피아니스트 정규빈이다. 어떤 연주자라고 느꼈나.

과장이 없는 것이 이 연주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피아노를 치는 제스처 등이 자극적이기도 하고 심지어 연주보다 더 강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규빈은 이와 반대로 음악을 음미하며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자 매력이다.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는 윤이상의 작품을 본선에서 연주해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콩쿠르 우승자들이 모두 그의 작품을 잘 해석내고 연주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일 텐데, ‘윤이상의 작품을 잘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란 어떤 역량의 강점을 갖춘 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나.

상상력의 측면이라고 생각한다. 윤이상의 작품은 공간감이 넓다. 마치 우주를 연상케 하는 표현력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일부러 의도한 것이든, 타고난 감각으로 표현되는 것이든, 연주를 위해 꼭 필요하다. 올해 윤이상 특별상을 받은 미소라 오자키는 본선에서 작품을 암기해서 연주했다. 암기가 연주의 전부는 아니지만, 콩쿠르 기간 내에 그만큼 작품에 시간을 들이고 연구했다는 점에서 수상에 의미가 더 있었다고 생각한다.

 

INTERVIEW

 

우승자 정규빈

좋아하는 작품으로 결선에 도전하는, 균형 있는 용기

입상자 콘서트 리허설 후, 대기실에서 그를 만났다. 피아노 밖의 그는 조금 더 정적인 자유로움이 돋보였다. 리허설 당시 대기하며 무대 바닥에 편안히 앉아있는 모습이 인상 깊어 “신체가 유연해 보이는데 피아노 외에 운동 같은 취미가 있냐”고 묻자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며 수영을 열심히 한 편이라고 답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정규빈은 현재 뮌헨 국립 음대 석사 과정에서 안티 시랄라를 사사하며 재학 중이다. 축구를 좋아한다는 그는 종종 뮌헨에서 바이에른 경기를 보는 것이 소소한 취미다.

 

뮌헨에서의 석사 과정은 얼마나 남았나.

두 학기 남았다. 코로나가 시작되며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현재 사사 중인 안티 시랄라 선생님과는 추구하는 음악의 방향이 같아 만족한다.

리허설 현장에서 지휘자와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 같던데.

결선 당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의 길이가 워낙 길어 제한된 리허설 시간에 충분히 맞추지 못했었다. 지휘자와 단원들이 최대한 맞춰주셔서 결선은 잘 마무리됐지만, 아쉬웠던 부분들을 적어와 리허설 때 공유했다.

말한 대로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콩쿠르에서 연주하기에는 길이도 길고, 피아니스트의 비르투오소적인 요소가 두드러지는 작품도 아니다.

브람스의 작품이 콩쿠르에서는 다른 러시아 작품들만큼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좋아하는 곡을 치는 게 맞다고 생각해 선정했다. 베토벤과 브람스의 작품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다.

각 라운드의 레퍼토리는 어떤 기준에서 선정했는지도 궁금하다.

좋아하는 작품들이 다 들어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0번, 슈만의 ‘유모레스크’ 등이다. 프랑크는 프랑스 작곡가지만, 1차에서 연주한 ‘전주곡, 코랄과 푸가’는 독일적 색채가 짙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2차에서 연주한 야나체크의 피아노 소나타 1번은 예전에 연주했던 곡이다. 체코 작곡가의 작품인데, 시위 때에 죽은 대학생을 기리기 위해 쓴 곡이라 작품이 가진 특징적인 음울한 분위기를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라우타바라(1928~2016)의 연습곡 Op.42는 50분을 연주하는 독주회 구성의 다양성을 위해 포함했다.

1차 본선 지정곡으로 윤이상의 피아노를 위한 5개의 모음곡이 포함돼 있었다. 윤이상의 작품을 연주해 본 적이 있었나.

콩쿠르를 준비하며 처음 접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곡과 가까워졌다. 상당히 엄격한 12음 기법으로 작곡되어 있으며, 기교적으로도 쉽지 않은 작품이다. 그러나 악보를 연구하다 보면 곡마다 치밀하게 다양한 방법으로 구성된 12음 기법을 찾아낼 수 있고, 이를 발견할 때마다 느끼는 즐거움이 있었다. 엄격한 틀 속에 다양한 음악적 표현이 존재했고, 한국 전통악기의 묘사도 찾을 수 있었다. 연주자 입장에서는 이 두 측면을 모두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고, 콩쿠르를 통해 윤이상 선생님의 작품을 연구해 볼 수 있어서 뜻깊었다.

2015년 도쿄 음악 콩쿠르 우승 이후, 꽤 긴 시간이 흐른 후의 콩쿠르 우승이다. 이번 콩쿠르 도전의 계기는 무엇이었나.

콩쿠르에 나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많이 나가진 않는다. 1년에 한두 개 정도인데 그게 올해는 이 콩쿠르였던 것 같다. 상을 받은 것도 감사하지만, 콩쿠르에서 연주하며 무대를 통해 스스로를 점검하는 시간이었다. 어떤 점들이 좋았는지, 혹은 부족했는지 스스로 생각하는 기회였다.

콩쿠르는 자신의 음악 세계를 알릴 기회다. 이 콩쿠르를 통해 어떤 특징을 가진 아티스트로 기억되었길 바라나.

악보를 진지하게 공부하고, 악보에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는 사람으로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콩쿠르 우승 이후에 기대하는 활동이 있나.

피아노 레퍼토리는 워낙 방대해서, 아직 연주해 보고 싶은 곡들이 많다. 뮌헨에 돌아가면 많은 작품들을 다 익혀서 무대에 올리고 싶다. 베토벤 소나타들, 브람스 말년의 작품, 슈베르트 마지막 소나타들, 바흐의 건반 악기를 위한 곡 등이다. 수상 소감에서 말한 것처럼, 상을 받은 것은 음악 인생 중 일어난 하나의 일이고, 연주자로서의 갈 길은 아직 멀다. 또한 우승으로 생긴 연주 기회를 통해 무대와 더 가까워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의 음악적 목표나 계획은 무엇으로 두고 있나.

앞서 말한 것이 나의 목표다. 그리고 한편으론 어릴 때부터 교향곡에 대한 관심도 많았고, 지휘자가 꿈이기도 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때 부전공으로 지휘과를 졸업했고, 기회가 된다면 독일에서도 지휘 공부를 하고 싶다. 당장은 공부하고 싶은 피아노 작품들에 집중하겠지만, 언젠가는 지휘자로서의 음악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

허서현 기자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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