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해외 각지에서 테러가 수차례 발생하면서, 유럽의 몇몇 여름 페스티벌이 취소되는 등 현재 세계는 테러로 인한 공포에 휩싸여 있다. 지난해 이슬람국가(IS)는 한국을 테러 대상국으로 암시했고, 올해 6월엔 테러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테러 대상도 미군 공군 시설과 한국 사람으로 ‘지목’한 바 있다. 반면 현재 국내의 상당수 장소가 테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고, 공연장은 더욱 그러한 상태에 놓여 있다.
201x년 봄, 서울의 어느 유명 공연장. 티켓 파워가 대단한 해외의 유명 지휘자와 국내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연주. 전석 매진된 객석에 앉아 기침소리 없이 몰입하는 관객.
쿠앙! 고막을 찢는 폭음. 장내에 꽉 찬 연기. 점멸하다 암흑이 되는 조명들. 어둠을 가르는 비명 소리. 출입구를 어림잡아 뛰는 관객들. 촘촘한 좌석에 걸려 넘어지고 함께 쓰러지는 사람들. 우왕좌왕하는 공연장 직원들. “알라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라고 외치는 소리. 타타타, 타타타타. 불꽃을 튀기는 총소리.
그날 밤 10시 긴급 뉴스. 테러범들은 경찰 대테러 팀과 총격전을 벌이다 자폭했고, 경찰은 공연장 내부와 외부를 훑고 있다고 한다. 관객 1명은 폭탄 폭발로 현장에서 사망했고, 2명은 테러범들이 발사한 총알에 절명했다. 병원에 입원한 128명 중 32명은 중태에 빠졌고 나머지는 탈출 중에 넘어지고 밟혀 다쳤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폭탄 폭발로 죽은 관객은 이번 행사에 VIP로 초대된 국무위원이었는데,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폭탄이 정확하게 그의 좌석 밑에 장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온 나라가 충격에 휩싸였다.
다음 날, 이슬람 국가(이하 IS)의 인도네시아 지부는 이번에 서울에서 자행된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공개했고, 더 많은 테러가 한국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로부터 보름 뒤, 국가정보원과 경찰 합동수사반은 이번 테러를 준비하고 실행한 범인들은 IS 소속 아시아계 무슬림 2명과 공무원, 대학 교수, 회사원, 자영업 같은 일로 위장하고 살던 북한의 대남공작원 5명, 그리고 서울에서 자라고 대학을 졸업했으나 외톨이로 지내던 ‘외로운 늑대’까지 포함된 8인조였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공연장에는 한국인 ‘외로운 늑대’ 1명과 북한 공작원 1명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IS 대원 2명과 함께 공연장에 들어왔는데, 총기를 발사한 자들은 IS 대원들이었다.
테러 사건 이후, 전국에 있는 ‘아트센터’ ‘문예회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같은 이름이 붙은 공연장들은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관객들의 발길이 끊겼다. 교향악단 가운데 도산하는 곳들도 생기기 시작했고, 외국 공연 단체들과 계약을 체결한 기획사들은 위약금을 물어주면서 스러져 갔다. 국악·클래식 음악·발레·연극을 비롯한 여러 장르의 공연이 위축되고 많은 예술가가 일자리가 없어 떠돌게 되었다. 대신 오디오 기기와 음반이 잘 팔리는 호황 시대가 왔다. 사람들은 집이나 소규모 모임에서 공연을 감상하고 즐기는 동호인 모임을 선호하는 추세다.
위의 이야기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뒤를 돌아다본 가상 시나리오다. 이것은 허구다. 그러나 국내 공연장에서 이런 테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면 지금부터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것이다. 공연장에서 테러가 발생하면, 한동안 우리 공연예술계는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많은 사람은 아직도 한국이 테러의 안전지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슬람국가(이하 IS)는 2015년 9월과 11월 한국을 테러 대상국으로 암시했고, 올해 6월엔 테러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테러 대상도 미군 공군 시설과 한국 사람으로 ‘지목’한 바 있다. 지난해 말 국정원이 조사한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 안에 들어온 IS 추종자들이 여러 명 있었다. 실제로 IS에 입대한 한국 청년도 있지 아니한가!
올해 들어 지난 8개월 간 프랑스·독일·미국·터키·벨기에·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 여러 나라에서 17회 이상의 테러가 발생했고 대부분 IS가 자신들의 소행이라 인정했다. 조선일보는 테러가 점점 동쪽으로 오고 있음을 지적했고, 언론들은 한국이 테러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테러를 저지를 인자들은 더 있다. 북한의 첩자들은 대한민국의 한복판에서 탈북자를 죽였고, 북한은 근래에 탈북 주요인사들 암살 지령을 내렸다고 전해진다. 한국인이면서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테러를 감행한다. 누구도 남대문이 불탄 것을 ‘테러’로 규정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이것은 국보가 타버린 테러라 볼 수 있다. 범인이 자신의 불만을 남대문이 아닌 지하철이나 공연장에서 표출했다면 인명 피해는 상당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해외에서 테러가 발생한 곳은 주로 쇼핑몰, 극장, 회당, 교회, 공연장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였다. 현재 한국의 모든 장소가 테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고, 공연장은 더욱 그렇다. 누구든 공연장 로비에 쉽게 들어올 수 있다. 이스라엘이나 서구처럼 가방을 열어 보거나 금속탐지기로 인체를 검사하는 일은 없다. 일단 로비에 들어온 사람은, 공연 전 비어 있는 공연장 안으로 맘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다. 만약 공연 중 테러가 발생한다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서 관객들을 안전하게 이동시킬 것인지 훈련을 받은 직원도 없고, 상주하는 무장 경찰도 없다.
테러에 대비하려면, 경찰이나 테러 담당기관만 의지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과 공조해 최소한 세 분야가 함께 테러 대비 훈련을 하고 매뉴얼을 만들어 공유해야 한다. 첫째, 대관을 해주는 공연장 측에서 직원들을 훈련시키고, 로비나 공연장 출입자들을 검사해야 한다. 금속 탐지기를 로비 입구마다 설치하는 것은 기본이며, 무장 경찰도 상주해야 한다. 또한 대관한 공연 주최 측과 대테러 매뉴얼을 공유해 함께 대처하는 훈련을 해야 하고 테러신고센터를 운영해야 한다. 둘째, 공연주최 측은 공연장과 연계하고 출연자들과 합력해 테러 발생 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숙지시켜야 한다. 셋째, 공연장에 들어가는 출연자들과 관람객들은 스스로 테러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수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 방치된 물건 따위에 주의를 기울이고, 의심스러운 것은 바로 테러신고센터에 신고해야 한다.
지금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이상하거나 무리하다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테러가 발생한다면, 이러한 대비는 진가를 발휘해 희생을 최소화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설마, 설마 하다가 당하는 것보다 대비하여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지금 한국의 공연장들이 테러에 대해 무방비 상태인 것이 못내 걱정스럽다. 재앙이 닥치지 않도록 대비하자.
글 고세진 현 (재)KBS교향악단 사장. 미국 시카고 대학교 졸업(근동고고학 석사, 박사, Ph.D.). 이스라엘 예루살렘대학 교수 및 총장,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 및 총장, 미국 시카고 대학교 이스라엘 고고학 발굴단 감독,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 발굴단 감독, 에티오피아 악숨-시바의 여왕 땅 고고학 발굴단장, KBS교향악단 운영위원장·이사·후원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