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INTERVIEW
뮤지컬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 창작의 기본은 자유 ‘엘리자벳’ ‘레베카’ 등을 작곡한 그가 말하는 뮤지컬 창작론 헝가리 출신 뮤지컬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Szilveszter Levay, 1945~)는 뮤지컬 음악은 열려있는 음악이라고 말한다. 한 작품 안에서도 스토리나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음악 양식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엘튼 존·스티븐 스필버그 등과 협업하며 100곡 이상의 영화·TV 프로그램 음악을 작곡했다. 이후 뮤지컬 음악으로 분야를 옮겨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함께 뮤지컬 ‘엘리자벳’(1992) ‘모차르트!’(1999) ‘레베카’(2006) ‘마리 앙투아네트’(2006) 등의 작업에 참여했다. 자유로움이 있어야만 창작이라는 놀이 공간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다는 그는 2010년 ‘모차르트!’로 인연을 맺은 배우 김준수의 ‘엘리자벳’ 공연을 축하하기 위해 흔쾌히 한국을 찾았다. 굽네치킨과 빈대떡을 이야기하며 호탕하게 웃던 그를 만났다.
2012년 국내에서 초연한 ‘엘리자벳’은 실존 인물인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의 삶에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으로, 국내에서는 4번째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프로덕션의 ‘엘리자벳’을 본 소감이 궁금하다.
멋진 공연이었다. 이전 프로덕션보다 한 단계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대적인 감성들도 많이 반영되었고, 드라마적인 요소나 등장인물의 감정도 잘 표현되었다. 한 가지 중요한 변화는 극 초반 토드라는 이름을 붙인 죽음이 등장할 때 ‘사랑과 죽음의 론도’라는 곡이 추가된 것이다. 죽음이라는 캐릭터는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지만, 그는 이 넘버를 통해 엘리자벳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위험한 존재인 동시에 감정을 갈망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특히 극의 마지막 부분, 엘리자벳이 죽음에 다다름으로써 마침내 토드에게로 갔을 때 둘은 모두 하얀 옷을 입고 있다. 죽음을 맞이한 순간이지만 슬프거나 우울한 것이 아니라 토드는 ‘그녀가 이제 나에게로 왔구나’ 하는 행복감을 느낀다. 엘리자벳 역시 죽음을 통하여 평생 갈망하던 자유를 얻었다는 점에서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 있다.
엘리자벳의 넘버는 어떠한 특징을 갖고 있나?
대표곡 ‘나는 나만의 것’을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엘리자벳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느끼는가를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 젊은 황제의 청혼으로 궁정에 들어간 엘리자벳은 엄격한 궁중 규율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유를 평생 갈망하며 살아간다. 그녀를 짓누르는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엘리자벳에게 가장 중요한 감정이었기 때문에 이를 음악을 통해 폭발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극의 해설자이자 엘리자벳을 죽인 루케니의 곡들은 화려한 기교와 고음이 특징이다. 캐릭터의 성격을 극대화하여 표현하기 위한 장치라고 보아도 되는가?
한국의 루케니들은 가끔 배우들 스스로 원곡보다 더 높은 소리를 낸다. 이들이 내는 극강의 고음은 루케니가 가진 냉소적인 면을 강화한다. ‘밀크’나 ‘키치’와 같은 넘버를 통해 드러나는 화려한 기교는 입체적인 인물인 루케니의 다채로운 면모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야기꾼으로서의 여러 가지 모습도 함께 담아내고 싶었다. 루케니의 특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현대적인 노래 기법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공연이 이루어지는 현 시대의 관객들과 연결될 수 있다.
루케니를 제외한 다른 등장인물들은 좀 더 클래식하게 노래하는 것을 의도한 것인가?
처음부터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함께 하나의 이야기 속에 다양한 시간의 층위를 표현하고 싶었다. 궁정에서의 삶은 과거의 시간, 즉 클래식함을 대변한다. 그에 반해 해설자인 루케니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다는 점에서 현재를 대변하며, 토드는 시간을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시간적 차이를 음악적인 특징을 통해서도 표현하고자 했다. 궁정에서의 음악은 클래식하게 표현했고, 루케니의 넘버는 팝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토드는 신비로운 느낌이나 초현실적인 느낌이 드는 음악을 통해 이 세상 사람의 느낌이 아니라는 점을 전하는 동시에 살아있는 듯이 생생한 인물로 만들고자 했다.
뮤지컬 ‘엘리자벳’의 오케스트레이션이 갖는 특징은 무엇인가?
하나의 작은 심포니처럼 금관악기·목관악기·현악기로 구성된 오케스트레이션은 클래식한 세계를 상징한다. 동시대적이나 미래적인 느낌은 신시사이저나 키보드·베이스·드럼을 통해 표현했다. 편곡이나 오케스트레이션을 할 때 중점을 뒀던 것은 두 가지 요소의 음악들이 독립적이거나 부딪히지 않으면서 잘 녹아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서로 다른 느낌의 음악들이 하나의 여정을 따라 잘 흘러갈 수 있게끔 하려고 했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뮤지컬 음악
뮤지컬 음악을 작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할리우드 영화 음악으로 정점을 찍었을 때, 오랜 작업 파트너인 미하엘 쿤체가 황후 엘리자벳을 소재로 한 뮤지컬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아내의 진심 어린 조언에 도전하게 됐다. 그녀는 영화음악은 유행이 지나면 잊히기 마련이나, 뮤지컬 음악은 늘 무대 위 배우들을 통해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며 나를 설득했다. 신기한 것은 아내가 어렸을 때부터 엘리자벳에 대한 역사책이나 자료를 수집해왔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늘 거론되던 엘리자벳을 통해 뮤지컬 음악의 작곡을 시작하게 된 것이 마치 운명같이 느껴진다.
작곡할 때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받나?
이야기 자체의 극적인 상황이라든지 감정선을 파악하며 영감을 얻는다. 예를 들어, 엘리자벳의 경우 그가 처한 상황이나 장면을 면밀하게 들여다본다. 멀리서 관찰하고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엘리자벳의 감정에 이입할 수 있도록 노력한 뒤, 이를 음악을 통해 표현한다. 이러한 작업 과정을 거치다 보니 캐릭터별로 뚜렷한 특징을 가진 넘버들이 탄생하는 것 같다.
‘엘리자벳’을 포함해 ‘모차르트!’ ‘마리 앙투아네트’ 등 유럽 뮤지컬을 한국에 알린 장본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나 웨스트엔드 뮤지컬과 다른 유럽 뮤지컬만의 특징이 궁금하다.
나의 작품만을 근거로 말하자면 이들 모두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뮤지컬이다. 각 캐릭터의 감정이나 극적인 상황들이 중요한 작품이라는 뜻이다. 그러다보니 중요한 장면에서 대화나 대사에 의존한다기보다 극 중 상황을 고조시키는 음악을 많이 활용하는 편이다. 작품의 주제 역시 음악을 통해 표현되며, 언더스코어를 활용하거나 주제 테마가 되는 음악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반면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대사가 이어지다가 적절한 시기에 노래가 들어오고, 노래가 끝나면 다시 대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참여했던 작품 중 실존 인물을 다룬 작품들이 많다. 이때 음악적으로 고려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역사적인 인물을 다룰 때는 음악적으로 그들을 특성화시키려고 노력한다. 이를 위해선 그들이 살았던 시대성을 드러내는 클래식한 오케스트라의 역할이 중요하다. 동시에 현대성을 드러내는 팝적인 요소가 공존하도록 한다. 클래식한 음악과 팝 음악이 공존하도록 하는 것은 현대 청중들이 작품 속 음악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인가? 반반이다. 반은 동의하지만, 반은 다른 이유에서다. 예를 들어 모차르트의 일대기를 그린 ‘모차르트!’에서는 어린 아마데와 청년 볼프강이 함께 등장한다. 아마데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대변하며, 볼프강은 모차르트의 인간적인 측면을 드러낸다. 모차르트라는 역사적 인물의 천재성을 클래식 음악적인 요소가 짙은 넘버를 통해 표현했다면, 자기주장을 강하게 펼치는 모차르트를 표현할 때는 볼프강이 등장한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선 팝적인 요소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대의 모차르트는 지금 시대로 보면 팝스타인 엘튼 존이나 아이돌인 김준수와 같은 이들의 삶과 다르지 않을 만큼 파란만장하며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국 공연계에서 뮤지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뮤지컬 음악의 작곡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조금은 조심스럽게 표현하고 싶은 부분이지만, 작곡의 기본은 학교에서나 책을 통해 배우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내 안에서 느껴지는 영감과 감정을 음악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뮤지컬 음악을 작곡할 때는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자유로움이 있어야만 창작이라는 놀이 공간 안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느끼는 색다른 즐거움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내한할 때마다 묵는 남산의 호텔은 가장 좋아하는 호텔 중 하나다. 창문을 내다보면 서울의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오늘은 눈이 쌓여있어서 굉장히 낭만적이었다. 한국 음식을 먹는 것 또한 큰 즐거움이다. 좋아하는 한국음식으로는 빈대떡과 숯불 고기가 있다.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음식이라면 몇 년 전 배우 김준수와 콘서트를 할 때, 매일같이 시켜 먹던 굽네치킨이다.(웃음)
올해도 한국에서 ‘마리 앙투아네트’와 ‘레베카’를 선보인다. 다시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 있나?
꼭 오고 싶다. ‘엘리자벳’만큼 멋있는 공연이 되기를 기대한다.
글 권하영 기자 사진 EMK뮤지컬컴퍼니